뮤지컬 <엘리자벳>│오스트리아판 <사랑과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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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한 삼류 드라마.” 대중의 눈에 비친 오스트리아 황후 엘리자벳의 삶은 이보다 더 탁월한 정의를 찾기 어려워 보인다. 말타기와 외줄타기를 좋아하던 열 여섯, 사촌오빠 요제프와 사랑에 빠져 황후가 된 여자. 정치는 물론 부부의 잠자리 사정까지 시시콜콜하게 참견하는 대공비 소피를 시어머니로 둔 여자. 자신이 낳은 아이를 기르기는커녕 3주간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여자. 미모를 무기 삼아 국민들이 마실 우유로 자신을 가꾸던 여자. 시어머니의 계략으로 남편으로부터 성병을 얻은 여자. 그리고 결국 암살된 여자. 하지만 뮤지컬 은 말한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유를 꿈꾸고 스스로의 삶을 일으키고자 치열하게 살았던 여자라고.
뮤지컬 <엘리자벳>│오스트리아판 <사랑과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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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드’ 회차를 늘려 달라
뮤지컬 <엘리자벳>│오스트리아판 <사랑과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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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부터 블루스퀘어에서 공연을 시작한 에 매회 화력 높은 박수가 터져 나오는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이 작품에는 뮤지컬 팬들의 굳건한 신뢰를 받는 김선영, 류정한을 비롯해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롤을 해내는 배우들로 가득하다. 루케니 역의 박은태는 자신의 존재감을 그 어떤 작품보다 강하게 심었고, 윤영석의 요제프는 마마보이와 로맨티스트 사이의 적정선을 그리며 엘리자벳을 든든히 서포트했다. 그리고 김준수는 화룡정점이다. 가사전달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굴려진 발음이나 쉰 목소리로 내는 광기어린 웃음은 이질적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정체를 알 수 없는 죽음(이하 토드)에 가까웠다. 나른한 목소리와 적절히 배치된 숨소리는 44곡의 넘버 중 유난히 느린 템포와 블루지한 토드의 곡에 녹아들어 묘한 분위기를 풍겼고, “동적인 토드가 될 거”라 공언했듯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긴장감이 그의 움직임에 있었다. 상황에 맞춰 탁성과 미성을 나눠 쓰는 창법 역시 끊임없이 완전한 자유로서의 죽음을 갈망해온 엘리자벳과 토드의 관계를 한층 더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오스트리아의 역사는 송스루 안에서 더욱 생소했고, “위대한 사랑”이라는 엘리자벳과 토드의 관계 역시 모호하기만 하다. 스토리가 류의 통속극 형태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극단적인 이야기 위로 음악과 거대한 실물 세트, 수 차례의 의상 체인지 등 다양한 장치가 더해져 무대는 지루할 틈 없이 채워졌다. 하지만 여백의 상징 대신 직접적인 설명으로 가득한 연출은 때로는 과하게, 때로는 안일하게 보였다. 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되풀이되는 한 일가의 고독을 그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엘리자벳과 남편 요제프, 아들 루돌프는 한 목소리로 울부짖는다. “날 혼자 두지마.” 그리고 그 외로움은 거대한 성이 아닌 낯선 이들의 수군거림과 “그저 흔한 싸구려”라 통칭되어 판매되는 기념품 속에 더 있었다.

초연에서 중요한 것은 대중성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 단언할 수 없지만 은 더 많은 함의를 담은 작품이다. 토드 역시 자살을 멋있는 것이라 여기던 당시 오스트리아의 분위기에서 나온 캐릭터다. 그의 나른한 음악에는, 그와 함께 추는 춤에는 이유가 있다. 토드가 살아 움직일 때 비로소 엘리자벳도 깨어날 수 있다. 지금의 은 한국 관객이 좋아할만한 구성으로 이루어져있다. 하지만 앞으로 공연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좀 더 디테일한 세공이 필요하다. 뮤지컬을 상업 장르라 단정 지을 수 없는 것 또한 한 작품에 담긴 깊이와 가치가 다양한 분야에서 끊임없이 도출되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은 몇 캐럿짜리 다이아몬드가 될 수 있을까.

사진제공. EMK뮤지컬컴퍼니

글.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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