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다’라는 건 ‘다르게 생겼다’일수도 ‘다르게 말한다’일수도 있다. 혹은 ‘다르게 행동한다’와 ‘다르게 생각한다’일수도. 이 중 가장 알기 쉽고 그래서 가장 선입견을 품기 쉬운 것은 역시 ‘다르게 생겼다’가 아닐까. SBS <뿌리깊은 나무>에서 밀본 수장 정기준(윤제문)의 호위 무사 윤평을 연기한 배우 이수혁 역시 마찬가지다. “얼굴이 하얗고 키 크고 목소리가 귀신처럼 무서웠어요”라는 윤평의 인상착의에 대한 묘사는 이수혁의 첫인상이기도 하다. 같은 하늘을 지고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고 있다는 게 어색하게 느껴지는 그의 비현실적 외모와 뜻밖에 단단한 저음의 목소리, 이 간극에서 비롯되는 묘한 분위기는 ‘다른’ 캐릭터를 만들고 싶은 많은 감독과 작가들의 욕망을 자극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꿈꿨던 배우의 길에 이제 막 들어선 신인배우는 “생김새도 그렇고 모델 할 때의 이미지가 너무 세서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실제로 나는 그런 애가 아닌데. (웃음) 좀 더 평범한 사람 같은 역할을 하고 싶어요”라 말한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하고 싶은 일 한 가지를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 여러 가지를 해야 하는 법. 스스로 한복도 칼도 너무 어색했던 이수혁에게 윤평은 처음부터 달가운 역할은 아니었다. “작품을 많이 해봤으면 부담이 덜 했을 텐데 자신이 없는 상태에서 사극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스스로 준비가 되었을 때 당당하게 카메라 앞에 서고 싶었던 신인배우는 당연한 경험부족으로 혼란을 겪었고, “초반 7,8부의 화면이나 표정은 보기 싫어요. 연기라기보다 너무 상황에만 집중해있어서”라고 단호한 평을 내리는 목소리엔 아쉬움이 물씬 묻어 있다. 하지만 새로운 경험을 통해 기대하지 않았던 즐거움과 배움을 만나는 것 역시 시작하는 사람들의 특권이 아니던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뿌리깊은 나무>를 통해 얻은 것은 길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서 “밀본의 나쁜 애 아냐? 칼 액션 한 번 해봐요”라는 말을 듣는 대중적 인지도만은 아니었다. “막연하게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좋은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은 감히 못 했어요. 연기도 못 하고 그릇도 안 되니까. 그런데 한석규 선배, 장혁 선배를 보면서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어요.” 조금은 멋쩍은 듯 이야기하는 이수혁을 보고 있으면 다른 외모라는 틀에 가려진 그의 다른 생각과 다른 이야기가 점점 궁금해진다. 우선은 그의 음악 취향부터. 다음은 이수혁이 다섯 곡만 꼽기 어려운 듯 고심하며 추천한 여행지에서 들으면 더욱 좋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음악이다.




1. Sean Lennon의 < Friendly Fire >
“모델 일 할 때 파리에서 혼자 한 달 반 정도 지낸 적이 있었어요. 친구들이랑 갔을 때는 분위기도 좋고 볼 것도 많은 곳이라 정말 좋았는데 일하러 가서 밥도 늘 혼자 먹으려니까 미치겠더라고요. (웃음) 이 노래가 없었으면 못 견뎠을 것 같아요. 같이 듣거나 추천해준 사람 생각도 많이 났고요. 존 레논 아들로 사는 삶이 얼마나 힘들까 싶어서 이 사람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어요.” 이수혁이 추천한 첫 번째 곡은 션 레논의 ‘Parachute’다. 결코, 뛰어넘을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존재의 아들로 태어난 비운의 아티스트로만 규정하기에 션 레논은 아깝고 아쉬운 이다. ‘Parachute’는 그만의 따뜻한 음색의 매력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곡이다.



2. Sigur Ros의 < Takk… >
“이 곡은 제목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웃음) 영화 <이파네마 소년> 찍을 때 바닷가에서 3개월 정도 살았거든요. 제 촬영이 빌 때가 잠깐 있었는데 스틸 찍던 포토그래퍼 누나가 듣고 있는 걸 뺏어서 귀에 꽂고 바다에 들어갔어요. 깜짝 놀랐어요. 과장이 아니라 정말 천국에 온 것 같은 느낌. 50분 동안 반복재생 해놓고 눈 감은 채 계속 물속을 걸어 다녔어요. 그래서 바다에 가는 사람들한테 꼭 추천해요.” 손을 대면 부서져 버릴 것 같은 모래성 혹은 끊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가느다란 실 같은 음악이 이어지는 ‘Sæglopur’. 제목은 아이슬란드어로 ‘Lost at sea’, 즉 ‘바다에서 헤매다’라는 의미다.



3. Air (French Band)의 < Pocket Symphony >
“Air는 제 아이팟에 거의 전 앨범이 다 들어 있는데 이 곡은 있는지도 몰랐어요. 아무래도 제가 알고 유명한 곡만 찾아 듣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이파네마 소년> 감독님이랑 저희끼리 뮤직비디오 같은 걸 만들었는데 이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쓰셨더라고요. ‘어, 이 노래 처음 듣는 건데’라고 했었는데 아이팟에 있었어요. 일본 삿포로와 유바리에서 되게 추운 겨울에 걸어가는 장면이랑 같이 작업하셨는데 잘 어울려요. 외로운 느낌도 들고.” 이수혁이 추천한 세 번째 곡 ‘Left Bank’는 누구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Sexy Boy’를 비롯해 다프트 펑크 등과 함께 프렌치 댄스 레볼루션을 주도했던 프렌치 일렉트로닉 듀오 Air의 곡이다.



4. Telepopmusik의 < Angel Milk >
“친한 스타일리스트 형이 추천해준 건데 고등학교 때 굉장히 많이 들었어요. 요즘 다시 들어도 질리지 않아요. 이성이든 동성이든 함께 조용히 얘기하고 싶을 때 들으면 좋아요. 와인 마실 때도 좋고요. 몇 년 전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Telepopmusik이 12월 31일에 내한 공연한 적 있는데 그때 가서 봤어요. 커다란 LP판으로 음악을 틀어주는데 정말 좋았어요.” 몇 년 전 모 휴대폰 광고에 삽입된 ‘Breathe’를 비롯해 많은 일렉트로닉 뮤직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Telepopmusik의 ‘Don`t look back’은 마치 바닷속 모래를 밟으며 걷을 때 느껴지는 사각거림의 촉감이 발끝에 전해지는 것 같은 곡이다.



5. Royksopp의 < The Understanding >
“이 곡은 제목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Tellepopmusik이랑 Roysopp은 특히 어렸을 때 많이 들었던 음악이에요. 요즘은 밴드나 힙합도 많이 듣는데 중, 고등학교 때는 일렉이나 트랜스를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곡은 들으면 고등학교 시절이 많이 생각나요.” 일렉트로닉 뮤직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 위에 북유럽의 스산하면서도 세련된 풍경을 얹은 ‘Beautiful Day without you’는 읊조리듯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일렉트로닉 뮤직의 하위 장르 중 다운템포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다고 평가받는 노르웨이 출신 듀오 Royksopp 특유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이수혁은 <뿌리깊은 나무>의 중반부터 영화 <차형사>와 MBN 시트콤 <뱀파이어 아이돌>의 촬영을 병행했다. “촬영장을 정신없이 오가느라 후반엔 집중력이 좀 떨어져서 아쉬웠음에도 놓치기 아쉬운 작품들이었다.” <차형사>에서는 “겉보기엔 되게 그래 보일지 몰라도 사실 그런 행동은 안 해서 좀 부담스러웠어요”라고 말하는 ‘굉장히 싸가지 없는’ 모델을 연기했다. 지구에서 아이돌 연습생이 된 외계별 뱀파이어들의 이야기인 <뱀파이어 아이돌>에서는 왕자 빠빠(이정) 곁에서 윤평 만큼 충직한 마음을 보여주는 호위 무사 무까딜이 되었다. “예전 같으면 회사에서 아무리 권해도 시트콤을 선택하지 못했을 거예요. 여러 작품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일, 하기 싫은 일을 떠나 지금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야기가 되게 재밌고 같이 하는 친구들과 지내는 것도 좋아서 제일 즐겁게 촬영하고 있기도 하고요.” 이 말이 진심인 건 늘 근엄한 얼굴을 하는 것 같지만 무까딜의 입가에서 슬며시 배어 나오는 미소를 종종 발견하기 때문이다. ‘하기 싫은 일은 티가 팍팍 나는’ 솔직한 스물다섯 청년은 지금 이 일이 즐거운 게 분명하다. 즐겁다, 이제 막 스타트라인을 박차고 뛰어나간 신인에게 이것 이상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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