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그 장면, 그 사람만 생각하면 괜히 얼굴이 붉어지고 민망함을 주제할 수 없어 천장을 향해 하이킥을 날릴 때가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이 올해도 어김없이 쏟아져 나왔다. 민폐캐릭터부터 콜라키스까지 가 눈과 귀를 의심하게 만든 2011 드라마계의 ‘노땡큐’ 순간들을 선정했다.의 김연정(이하늬)은 시언니 오영심(신애라)을 사랑하는 문신우(박윤재)를 좋아하고, 동생 김순정(김준형)은 자신을 좋아하는 방진국(이두일)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들은 싸운다. 역시 우주영(서영희)이 힘들게 만난 생모는 약혼남의 큰 엄마이자 예비 시어머니의 남동생 가정을 파탄시킨 원수란 사실에 절망하고, 동생 우주미(김소은)는 생모를 시어머니로 모신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렇게, 우주영은 계속 운다. 이해하려고만 해도 뒤 목이 당겨오는 복잡한 이들의 호적 관계는 사실상 두 드라마의 전부다. 화제만을 위해 만들어진 이런 관계의 반복은 챙겨 보는 사람들에게는 시간이 반복되는 듯한 어지러움을, 어쩌다 본 사람들에게는 왠지 다 알 것 같은 시시함만 준다. 설마, 하며 끝까지 보지는 말자. 정 궁금하다면 방송 중 터져 나오는 기사를 훑는 게 더 낫다. 도대체 무엇에 반할 걸까. 눈물 흘리며 립싱크 하는 규원(박신혜)의 모습?() 첫 만남에서 고음 불가로 노래했던 은비(구혜선)의 목소리?() 예술을 주제로 한 두 드라마의 연출자와 작곡가는 여주인공의 매력에 빠져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다. 의 작곡가 재이(최다니엘)는 은비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특별 뮤지컬 오디션을 요청할 정도로 매력에 빠지고, 의 연출가 석현(송창의)은 노래가 아닌 가야금으로 오디션에서 합격한 규원을 뮤지컬 주인공으로 추천했다. 문제는 규원과 은비가 갖고 있는 뮤지컬 배우로서의 특별한 가능성이 재이와 석현의 눈에만 보이고, 시청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곡가와 친해져서 실력도 안 되는데 주연 자리를 꿰찬 사람”이라고 은비를 판단하는 의 유진(박기웅)의 대사가 그저 야속하게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극 중 인물이어야만 보이는 예술혼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 뿐이다. 그랬구나. 시청자 따돌리고 너네끼리만 반했구나. 학벌 지상주의인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 남자를 속이고 학력을 위조했다. 양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밑바닥 인생을 살던 장미리(이다해)의 거짓말에는 씁쓸하지만 동정의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거짓말로 입사한 호텔의 정리해고를 피하기 위해 VIP 고객인 일본 총리 딸 유우(지연)를 상대로 펼친 한 편의 연극은 분명 타인의 슬픔을 이용한 폭력이었다. 자신이 살기 위해 동성애로 아버지와 냉전 중인 소녀에게 “나도 사실 동성애자에요. 동생 같으니까 편하게 말할게”라니. 곧바로 기다렸다는 듯 떨어지는 눈물도 연민보다 짜증을 느끼게 했다. 생존 본능을 가장한 폭력이라, 이후 투정하듯 계속되는 장미리의 거짓말 중에서도 면죄부 받을 수 없는 거짓말이 되지 않을까. 드라마에서 똑 부러지게 자기 일 하는 여성을 찾기란 출생의 비밀이 없는 막장 드라마를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기껏 자기 걱정해서 흑사회 수사에서 빠지라고 했더니 굳이 맨 몸으로 단독수사를 해서 기어이 납치를 당한 KBS 의 수윤(이시영)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일에서 꼿꼿한 자존심이나 과도한 열정은 절대적인 방해요인이다. SBS 의 고다경(김아중)은 서윤형(건일)의 시체를 바꿔치기한 뒤 특수부검실로 향하는 윤지훈(박신양)의 앞을 가로막고는 무작정 사과를 요구했고, KBS 의 윤지혜(최정원)는 수술하는 의사라면 누구나 할 줄 아는 타이매기는 못하면서 입가에 풍선껌을 덕지덕지 붙인 채 병원을 휘젓고 다니는 데는 1등이다. 물론 가장 압권은 SBS 의 공아정(윤은혜)이다. 자신의 전 남자친구와 결혼한 친구 앞에서 자존심 좀 세우겠다고 남의 귀한 아들 혼삿길을 제대로 막았으니,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미안하다’는 문자만 남기고 사라졌다 나타나는 여자는 처음이라 정신줄을 놓았다 하더라도 이럴 순 없다. 한류스타 강우(문정혁)는 신분을 숨기는 명월(한예슬)을 침대로 내동댕이치더니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달라”고 요구한다. 뺨을 때려도 무방한 상황. 그러나 한 술 더 뜨는 명월이 “이렇게 하면 믿어줄래요?”라며 셔츠 단추 두 개를 풀어 보인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읊조리는 강우만큼이나 시청자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 아닐까. 명월이 강우에게 안긴 채 한 이불을 덮고 있는 장면으로 아름답게 봉합한다 할지라도 이건 명백히 데이트 폭력이다. ‘서로 사랑하니까’ 할 수 있는 행동으로 포장될 수는 없는 것이다. 혹시 강우가 “남녀 관계라는 거 별거 없다. 색기로 밀어붙이는 거다”라는 가르침을 전파하는 남파공작원 리옥순(유지인)의 특강을 수강한 것은 아닐까. 손발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건 비단 대사뿐만이 아니다. MBC ‘라디오 스타’의 검은 연기와 함께 사라졌으면 하는 CG들이 있다. SBS 에서 한동주(심창민)의 아랫도리를 가리기 위해 등장한 핑크색 하트는 KBS 의 수영장에 널린 청둥오리들 이후로 가장 해맑은 CG였다. 날개 달린 하트가 화면 위에 둥둥, 그걸 보는 우리의 발은 동동. 백 번 양보해서, MBC 에서 희생된 안내상과 백진희의 엉덩이까지도 귀여운 만화 수준의 특수효과라고 눈감아줄 수 있다. 그러나 SBS 의 CG는, 영화 장르로 분류하자면 가히 블록버스터SF판타지…라기보다는 그냥 재난이다. 아수라(임혁)의 소파에서 쿨쿨 자고 있는 임경업 장군 귀신, 가정부의 내장을 스캔하기 위한 아수라의 레이저 눈빛 그리고 어느새 가정부의 앞치마에 나타난 암세포까지. 이런 CG들이 실제 방송장면에 쓰였다는 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아정(윤은혜)이 첫사랑을 뺏어간 친구에게 지기 싫어 결혼했다는 거짓말을 할 때부터 이 드라마에 대한 기대는 사라져갔다. 하지만 은혜로운 유전자 기준(강지환)과 상희(성준) 형제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용서할 수 있었다. 바라는 것은 단 하나, 기준과 상희 형제를 바라볼 때 두 눈에 새겨지는 하트가 더 이상의 실소로 지워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마음 하나 뿐이었다. 하지만 는 그 소박한 바람마저 앗아간다. 무리한 설정 위에 온갖 뻔한 클리셰를 단순 나열하며 조금도 캐릭터의 감정을 설득하지 못하던 이 드라마의 무리수는 최소한 시청자의 가슴을 선덕선덕하게 만들어야 할 키스 장면에서 절정에 달한다. 얼마 전까지 상관없는 사람이라 서로를 밀어내다 약간의 감정의 진전이 생기자마자 느닷없이 온 방과 온 몸에 콜라를 흩뿌리며 키스를 하고, 그런 후에는 또 원래 상태로 돌아가버리는 이 콜라 키스는 ‘그래서 저 방은 누가 치우나’ 하는 걱정꺼리만 시청자에 안겨준다. 방이라도 좀 덜 어지럽혔으면 이렇게 말라붙은 콜라의 끈적끈적함까지 상상되진 않았을텐데. 고영욱과 박하선의 연애가 많은 사람의 반감을 사는 것은 고영욱이 합격하기 전까진 불가촉천민이라는 고시생이어서가 아니다. 고영욱이 박하선에게 고백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게 하는 과정을 보면서 소름 끼쳤던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고영욱은 스토킹에 가까운 구애의 문자를 보내고, 우연히 물에 빠진 박하선을 구한 것으로 마음의 부담을 지운다. 자작극이 의심되는 ‘사랑하는 여인을 구한 한 고시생의 사랑’이라는 글을 인터넷에 유포하고, 박하선의 주위 사람들을 부추겨 프로포즈를 위한 꽃다발을 들이민다. 극중 캐릭터에 놀라울 정도로 동화된 신들린 고영욱의 연기가 오히려 이 막나가는 사랑에 대한 불쾌함을 더하고 있으니, 이를 안타까워해야 할지 짜증을 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다. SBS 정기준이 ‘대은은 어시은’(깊게 은둔하는 것은 시끌벅적한 시장 속에서 세상 사람과 동고동락하는 것)이라 했던가. SBS 의 국가대테러정보원 NTS는 이미 정기준의 전략을 사용한 바 있다. 아니, 그랬다고 믿고 싶다. 일거수일투족이 조심스러울 정보원들은 한강에 화려하게 떠 있는 인공섬, 세빛둥둥섬에서 일한다. 밤낮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개방된 그 곳에서 정보원들이 일을 한다니, 일을 하려면 관광객 코스프레라도 해야 할 판이다. 정보원들의 수영 실력을 시험하기 위해서인지 심지어 장마에는 떠내려가는 것도 걱정해야 한다. 설마 NTS가 한강 르네상스를 홍보하기 위해 세빛둥둥섬에 정착한 것은 아닐 거다. 우리 공무원은 그럴 분들이 아니다. 조재현은 패망한 백제의 군주라는 역할을 소화해낼 연기력을 가진 배우다. 하지만 어린 의자를 연기한 노영학(93년생)이 하루아침에 조재현(65년생)으로 바뀔 때 시청자들이 도저히 드라마에 몰입할 수 없다고 볼멘소리를 내는 것은 연기력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문제다. 아무리 호색한을 가장하려 했다 한들 성인이 된 의자(조재현, 다시 한 번 65년생)이 딸 뻘일 궁녀들과 빗속에서 축국을 하다 아버지 무왕(최종환, 65년생)에게 호통을 들을 때 지구의 중력이 주름살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상식이 떠오르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아무리 조재현에 대한 애정이 충만하다 한들 부부만 불로초를 달여 먹는 듯 조금도 변하지 않는 무왕과 사택비(오연수, 71년생), 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은고(송지효, 81년생) 사이에서 홀로 늙어버린 의자(조재현, 다시 한 번 65년생)가 주는 위화감을 어쩌란 말인가. 에서 대통령 후보자의 딸 서연(황선희)이 살인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법의관 지훈(박신양)은 피해자가 되기를 자처했고, 자신의 죽음으로 범죄 증거를 남겼다. 사건은 해결됐지만, 은 또 다른 ‘싸인’을 우리에게 던졌다. 바로 쪽대본과 ‘생방 촬영’이 당연시되는 드라마 제작 현실이 결국 어떠한 참혹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를 싸인으로 남긴 것이다. 방송사고의 증거로는 컬러바의 등장과 지훈의 환영과 다경(김아중)이 공원에서 만나는 마지막 장면의 음향사고가 있고, 이후 제작진은 방송 당일 저녁까지 촬영을 하다가 빚어진 실수라고 인정했다. 이외에도 촉박하게 진행되는 촬영 스케줄로 크고 작은 방송사고가 일어나곤 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도돌이표처럼 계속된다. 제작진과 연기자들의 희생이 만들 낸 ‘방송사고’라는 증거품이 얼마나 더 많은 드라마에 나와야 열악한 제작 환경이 개선을 시작할 수 있을까. 물론 SBS 의 지형(김래원)이 올드한 남자라는 건 인정한다. 나쁜 남자가 대세인 시대에 알츠하이머에 걸린 여자와 함께 살기 위해 부모의 뜻을 거스르고 파혼하는 남자가 흔한 건 아니니까. 하지만 사람이 올드하다고 해서 음료수 취향까지 올드한 건 아니다. 분명히 지형과 재민(이상우)의 뒤에는 ‘2001 공동학술대회’를 홍보하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는데 왜 두 사람은 병사이다 나발을 불고 있는 것인가. 2001년은 소풍가는 길에 삶은 달걀을 먹다가 목이 메여 병사이다를 벌컥벌컥 마시는 시대가 아니라 세련된 캔 사이다, 잠시 뚜껑을 닫았다가 언제든지 다시 꺼내먹을 수 있는 페트병 사이다가 팔리던 밀레니엄 시대란 말이다. 이건 박지형을 미련하고 촌스러운 남자로 만들어버리겠다는 꼼수임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동네 구멍가게나 고기집에서만 구할 수 있는 병사이다를 굳이 소품으로 쓸 이유가 없다.
글. 이가온 thirteen@
글. 김명현 기자 eighteen@
글. 한여울 기자 sixteen@
글. 박소정 기자 ninete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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