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연말시상식 결과가 그렇듯 그 어떤 선택도 모든 사람의 지지를 받을 수는 없다. 많은 사람이 봤다고 해서 더 ‘좋은’ 드라마라고 할 수 없듯, 많은 사람이 좋아한다고 해서 더 ‘옳은’ 드라마라고 할 수도 없다. <10 아시아> 기자들과 평론가들이 뽑은 ‘올해의 드라마, 감독, 작가, 배우’ 역시 철저한 ‘개인의 취향’에 따른 것이다. KBS <성균관 스캔들>이 KBS <추노>를 단 한 명의 차이로 제치고 ‘올해의 드라마’로 뽑혔다 해서 <추노>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MBC <선덕여왕>의 고현정이 압도적인 표를 얻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의 배우’에 장혁을 비롯한 수많은 배우들이 언급된 것은 어쩌면 2010년 한국 드라마계가 보다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 덕분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10 아시아> 필자들이 지난 1년 동안 누구보다 성실히 한국 드라마를 사랑하며 지켜봐 왔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그저 즐겨 주시길.






KBS <성균관 스캔들>은 올해 “가장 잘 만든 작품은 아닐지라도 가장 의미 있는 작품”(윤희성)이었다. “나이브한 위선이나 쿨함으로 포장한 위악의 우회도로를 택하지 않고 꿈을 이야기하기 쉽지 않은 시대, 보기 드문 균형감과 화장기 없는 말간 얼굴로 꿈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질문을 던졌던 드라마”(백은하)이자 “로맨스 성장담의 외피를 두르고 원칙을, 시대를, 변혁을, 지성을, 묻고 또 물었다.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올해의 발견’”(조지영)이라는 표현대로 김윤식, 아니 김윤희는 성균관 유생뿐 아니라 시청자와 평단도 한방 먹였다. 물론 “후반부는 위태로웠고, 이야기는 순간순간 불균질했”(강명석)던 것을 비롯한 약점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 불균질의 에너지가 청춘, 사극, 정치 드라마의 틀에 틈을 내는 무엇을 보여줬다”(강명석)는 평가 역시 유효하다. 무엇보다 드라마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그것도 청춘의 목소리로 젊은 세대를 향해 던졌다는 사실은 이 무기력한 시대를 모처럼 일깨운 시도였다. 그래서 “보는 사람을 울리거나 웃기는 드라마는 많았지만 이렇게 가슴 뜨겁게 만드는 드라마는 흔치 않았다”(윤희성)는 것이 <성균관 스캔들>에 대한 가장 솔직한 감상일 것이다.



KBS <추노>
위근우 기자 10년에나 한 번 나올 법한 일회적 우연들이 모여 만들어진 유일무이한 창작물. 앞으로 <추노>보다 더 뛰어난 작품은 분명 나오겠지만 <추노>를 대체할 작품은 오직 <추노>뿐이다.
윤이나 TV평론가 2008년과 2009년의 치열한 ‘저자거리 정치’가 지나가고, 현실정치에 대한 냉소만 남아버린 2010년과 가장 잘 어울리는 텍스트.
김선영 TV평론가 2000년대 이후 내용적으로는 영웅 신화의 해체와 주변 계급의 복권으로, 형식적으로는 트렌디하고 스타일리시하게 변화해온 사극 진화의 최종판. 2000년대 한국 계급 사회에 대한 가장 뛰어난 성찰의 드라마.
장경진 기자 의미 있는 서사, 완성도 높은 퀄리티를 비롯해 시청률과 이슈까지도 잡아내며 2010년의 시작을 알렸다.
이승한 기자 미디어가 세상과 정치에 대해 써내려 간 가장 격렬한 격문.

MBC <파스타>
김교석 TV평론가 올해 쏟아진 무수한 드라마 중에서 연기와 정서, 디테일이 가장 잘 어우러진 작품. 무엇보다 일상을 가장 자연스럽게 표현한 드라마.

SBS <인생은 아름다워>
정석희 칼럼니스트 살아보면 아름답기는커녕 그다지 즐거울 것도 없는 게 인생이다. <인생은 아름다워>에는 아름다운 삶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 좋았다.

MBC 드라마넷 <별순검3>
이지혜 기자 수사물의 재미에 한국적인 정서를 성공적으로 가미하면서 현대사회와 궤를 같이 하는 사회 문제까지 구한말에 녹여냈고, 마지막까지 단 한 에피소드도 안일하게 끌지 않았다.





KBS <추노>의 등장은 “한국 드라마사에 하나의 사건”(이지혜)이었다. “각양각색, 결도 질도 다른 털들을 한데 모아 묶은 붓으로 그려낸 장대한 걸개그림”(백은하)이었던 이 작품은 무수히 많은 요소들에 의해 완성되었지만 수훈을 꼽는다면 역시 곽정환 감독일 것이다. 전작 KBS <한성별곡-正>에서도 시대와 사회에 대한 깊고도 예리한 성찰을 보여주었던 그는 <추노>를 통해 자신이 “탐미적인 미장센 그 자체로도 작품의 주제와 문제의식을 담아낼 수 있는 재능”을 지닌 감독임을 증명했다. 특히 흩날리는 종이 사이로 대길과 태하, 철웅이 합을 겨루던 장면에서 곽정환 감독은 “탐미적인 동시에 서로 다른 신념과 목적을 가진 사람들의 부딪힘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순간”(위근우)을 만들어냈고 “<추노>에서 보여준 액션 신은 영화 <아저씨>의 액션과 더불어 올해의 최고의 액션이라 할 만 하다”(김교석)는 평가를 얻었다. “불가능을 겁내지 않은 감독의 뚝심은 결국 ‘스타일리시 하면서 현실을 반영하는 고증이 잘 된 사극’이라는 있을 법 하지 않은 드라마”(윤희성)를 세상에 내놓았고 드라마가 작품이 아닌 상품이 되어 버린 시대에 작품이자 상품으로서의 성취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데 성공한 그는 “검증된 형식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실험을 멈추지 않는 뚝심으로, 멜로물과 홈드라마의 홍수를 버텨내는, 거의 유일하고도 든든한 제방”(조지영)이기도 하다. <추노>의 천성일 작가와 다시 손잡은 KBS <도망자 : Plan B>가 기대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TV 드라마가 한 번도 도달한 적 없는, 힘과 미가 공존하는 신세계로 시청자들을 옮겨다 놓았”(백은하)던 곽정환 감독의 다음 행보는 여전히 기대할 만하다.



MBC <파스타> 권석장 감독
김선영 TV평론가 <파스타>가 전문직 로맨스의 오랜 숙원인 ‘일과 사랑의 조화’를 어깨에 힘주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해결해낸 데는 연기와 대본의 힘도 지대했으나 감독의 연출력이 이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조율했다.
최지은 기자 <파스타>가 단순한 멜로드라마를 넘어 작은 주방을 치열한 전장으로 그려내고 조직과 리더십에 대한 성찰까지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연출의 힘이 가장 크다.

OCN <신의 퀴즈> 이준형 감독
정석희 칼럼니스트 새로운 시도들이 돋보인다.





여전히, 김수현이다. SBS <인생은 아름다워>는 그의 전작들에 비해 다소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뇌관 가운데 하나인 동성애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벌어진 크고 작은 논란들은 작품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막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논란들은 40년 넘게 ‘국민 작가’의 상징과도 같았던 그가 “환갑을 넘어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현실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논란이 되는, ‘살아 있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증명”(윤이나)이 되었다. 그동안 “가부장제 가족이라는 현실의 틀 안에서 가치관의 충돌(MBC <사랑이 뭐길래>), 세대 차이(KBS <목욕탕집 남자들>), 중년 여성의 자아 찾기(KBS <엄마가 뿔났다>)등 다양한 명제에 대해 힘닿는 지점까지 이해하고 대답하려 애썼”(이승한)던 김수현 작가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성 소수자 문제 역시 가족 안에서 이해될 수 있는 또 하나의 ‘다름’으로 받아들이며 “평생 쌓아올린 작가로서의 파워를 가장 의미 있는 방향으로 사용”(최지은)했다. “도덕 상실과 인간관계 해체의 시대에 우리 사회 윤리의 최종 거점으로서의 가족을 이야기하는 ‘김수현 가족극’이라는 하나의 독립 장르”(김선영)로서 모든 문제를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고 대화와 토론으로 상황을 해결해나가는 그의 방식이 “가끔은 너무나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에 숨이 막히기도”(이가온)하고, 젊은 세대를 묘사하는 방식 등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김수현 작가가 없는 인생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정석희)는 고백에는 진심으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SBS <닥터 챔프>의 노지설 작가
강명석 기자 오늘도 밤새며 일하며 먹고 사는 모든 이들을 위한 위안. 어른의 성장 이야기 안에서 직장 드라마와 멜로를 묶는 솜씨와 인생에 대한 가볍지도 느끼하지도 않은 사색이 빛난다.
장경진 기자 자칫하면 한없이 관념적이고 판타지로 변질될 수 있는 이야기를 캐릭터 하나하나에 사소하고 보편적인 감정으로 촘촘히 담아내며 나의 이야기로 치환시켰다.

MBC <파스타> 서숙향 작가
김교석 TV평론가 ‘막장’이 흐름을 지배하는 드라마계에서 <파스타>의 캐릭터들은 모두 상식에 기반하고 있으면서도 유쾌했다. 신데렐라나 캔디 형이 아닌 여성 캐릭터, 유치하지 않은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차기작을 기대한다.
이지혜 기자 주방에서 연애하는 이야기에 그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운명과 비극, 엇갈림으로 점철된 사랑이 아니라 차근차근 추억을 쌓아가고 조금씩 다가가는 보통 연애를 온기를 잃지 않고 그려냈다.

KBS <구미호: 여우누이뎐> 오선형, 정도윤 작가
백은하 편집장 친절한 이야기꾼으로서의 역할을 잃지 않으면서도 결국 드라마의 주인은 시청자, 해석자들의 것임을 일깨워주는 작법의 정석.
조지영 TV평론가 닳고 닳은 뻔한 공포물의 외형에서 슬픔을 끌어내고, 소수자의 권리와 공존, `다름`에 대한 성찰을, `지금, 여기`를 환기시켰다.

MBC <욕망의 불꽃> 정하연 작가
윤희성 기자 큰 어른으로서 김수현은 용서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정하연은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을 이해하게 만든다. 자본가의 추악함을 들춰내는 깊이나 불안에 영혼을 잠식당한 인간의 심리를 추적하는 상상력, 대화만으로 긴장감을 증폭시키는 테크닉은 연륜으로 빚어진 경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보는 이를 불편하게 만든다지만, 그게 문학이다.

KBS <추노>의 천성일 작가
위근우 기자 그 어떤 합리적 물음조차 허락되지 않는 시대에 몸으로 부딪히는 수컷들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무엇보다 그 절박함이 가장 와 닿았다.





KBS <추노>는 곽정환 감독, 천성일 작가의 드라마인 동시에 이대길의 드라마였고 이는 장혁의 몸을 통해 완성되었다. <추노>에서 장혁은 “원경의 스펙타클과 근경의 페이소스를 동시에 구현했고 멜로와 해학도 제법 해냈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액션을 만들어냈고, 깊이 고민한 표정으로 드라마를 구축했다. 그러나 대길의 몸짓에는 생활의 냄새가 묻어났고, 얼굴에는 본능만이 번뜩였다.”(윤희성) “양복을 입고 빈 창고 같은 곳에서 조폭을 상대로 1대 몇으로 싸우는 액션 신에 익숙한 우리에게 <추노> 속 이미지처럼 날것으로 굴러들어온 빛나는 액션배우”(김교석)로서 장혁은 “대길을 연기하는 것을 넘어 <추노>의 스타일 그 자체”(강명석)이자 “<추노>라는 크고 복잡한 드라마의 지도를 몸 속에 품은 듯 했던 연기자”였다. 무엇보다 “노력하는 배우는 좋은 배우지만, 그 노력의 흔적을 지울 만큼 완벽하게 인물을 연기해낸 배우는 훌륭한 배우”(윤희성)라는 말대로 그가 연기한 이대길은 ‘장혁이 열심히 노력해 연기하는 이대길’이 아니라 그냥 이대길이었다.



김갑수
백은하 편집장 무조건적 복종이나 존경의 박제된 아이콘이 아니라,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그러나 많은 것을 먼저 살아낸 선배의 얼굴과 가슴으로 어린 배우들을 바라보고 품는 진짜 어른의 연기.
조지영 TV평론가 캐릭터가 탐욕스럽든, 무능하든, 선하든, 노회하든, 1분을 나오든 전회를 나오든 드라마는 언제나 그를 중심으로 갈등하거나 자전했다. 상대방으로부터 최대치의 연기를 끌어내는 연기의 어떤 경지. 죽어도 죽지 않았던, 2010 드라마의 불사조

김소연
장경진 기자 <검사 프린세스>의 마혜리가 상당히 비현실적인 인물로 보일 수 있었음에도 디테일을 무기삼아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를 완성했고, <닥터 챔프>에서는 일상의 고단함을 지닌 김연우로 한 발짝 전진했다.
이가온 기자 지난 해 KBS <아이리스>가 김소연의 제2의 전성기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면, <검사 프린세스>와 <닥터챔프>는 그것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증명하는 작품이었다.

박유천, 박민영, 유아인, 송중기
정석희 칼럼니스트 한 사람이라도 삐끗했다면 그 같은 훈훈한 조합은 이뤄낼 수 없었겠지만 모든 우려를 씻고 기대 이상 선전했다. 굳이 한명을 꼽으라면 박유천. 갖가지 악재에도 놀라운 몰입도를 보여주었다.
최지은 기자 단지 ‘조선판 F4’ 같은 말로는 이들의 시너지를 설명할 수 없다. 젊은 배우들일수록 도전할 기회를 얻기 힘들어진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없었던 이 넷의 완벽한 조화와 작품을 통한 성장은 화면에 청신한 공기를 불어넣었고 청춘의 가장 반짝이는 순간을 보여주었다.

윤시윤
윤이나 TV평론가 단 한 배우의 존재감으로 설명되는 작품이 없었던 2010년 드라마에서 윤시윤은 배우의 이름이 아닌 캐릭터로 기억되는 몇 안 되는 존재 중 하나였고 이는 한 방송사에서 수여하는 신인상 이상의 가치가 있다.

성동일
위근우 기자 <추노>의 인물 대부분이 또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지만 ‘은혜는 몰라도 원수는 갚는’ 천지호의 원시적인 동물성은 그 유래를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걸 특유의 말투와 소름 돋는 톤과 눈빛으로 완성한 건 대본도 연출도 아닌 배우 성동일이었다.

공효진
이지혜 기자 조용하지만 강했다. 민폐를 끼치거나 눈치 없거나 수동적이기 십상인 여주인공 시장에서 사랑에 빠지고 일을 하고, 성장하는 보통 여자를 이렇게 사랑스럽게 그려낸 이가 또 있었던가.

서신애
이승한 기자 자신의 캐릭터를 잘 파악했을 뿐 아니라 ‘초옥의 몸에 빙의된 연이’와 ‘초옥의 몸에 빙의된 채 초옥인 척 하는 연이’를 연기하며 상대 배우 김유정의 발성과 호흡, 표정까지 흡수해서 각 단계별로 재해석 해내는 경지를 보여줬다.

김유정
김선영 TV평론가 쉬지 않고 왕성한 활동을 펼치면서도 작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구미호: 여우누이뎐>에서는 어엿한 주인공으로 작품의 주제의식과 운명적 멜로를 소화하며 아역 연기사에 획을 그었고, 신은경과 서우의 어린 시절을 두 개의 얼굴로 소화해낸 <욕망의 불꽃>은 이 놀라운 아역 배우의 두터운 존재감을 확인시켰다.

신민아
김교석 TV평론가 ‘올해의 배우’로 뽑은 이유는 그의 연기력에 물이 올랐다는 뜻이 아니라 신민아가 어떤 사람인지 드디어 알았다는 의미다. ‘이미지’만 있던 연예인에서 카메라 앞 매력 발산에 성공했다. 이 하나만으로도 차기작을 기대하는 시청자들이 많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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