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집에게는 관원의 자격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는 왜 이 모양일까요? 관원의 자격을 지닌 사내들이 쭉 만들어 왔는데 말입니다.” 지난번 KBS 에서 여자의 몸으로 성균관에 위장 입학한 제자 김윤식(박민영)이 이와 같은 당돌한 질문을 던지자 정약용 선생(안내상)께서는 바로 답을 하지 못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순간 뭐에라도 찔린 양 뜨끔한 표정을 지으시더군요. 명분이 아닌 실리를 중시하는 실학의 대가시지만 그 점만큼은 염두에 두지 못하셨던 모양입니다. 서자나 천민들이 받아온 차별은 불합리하다 여기셨을지 몰라도 여자라는 이유로 받는 갖가지 차별 대우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으셨던 게 아닐까요? 어쩌면 남녀유별에 기인한 불평등을 당연시 하며 살아오셨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나마 고마운 일은 김윤식의 뒷모습을 ‘제법인데?’ 하는 기색으로 대견하다는 듯 지켜보셨다는 사실이겠지요. 여느 사대부라면 계집 주제에 어인 망발이냐며 당장 내치고 말았을 일이니까요.
선생의 가르침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선생께서 김윤식이 여자임을 눈치 채셨던 날 “출사는 계집에겐 가당치 않은 일이다”라며 단박에 성균관 출재를 종용하시는 걸 보고 실망을 했다는 거 아닙니까. 좀처럼 보기 드문 존경할만한 어르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첫 수업 때 하신 “우리 제발 밥값들은 좀 하고 살자”라는 말씀에 머리라도 한 대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답니다. 그 말씀은 과연 제가 밥값을 제대로 하며 살고 있는지, 나잇값은 하는 건지, 무엇보다 글 값을 하고 있는지 깊이 반성할 계기가 됐습니다. 또한 논어 위정편 ‘군자불기’, 즉 군자는 한정된 그릇이 아니다. 진리를 탐하는 군자라면 갇혀있는 그릇처럼 편견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말씀도 마음에 와 닿았고요. 저도 그 놈의 쓰잘데기 없는 편견 때문에 일을 그르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서 말이죠.
어디 그뿐인가요. 지식이 협소한 사람은 자칫 자신의 좁은 생각에 사로잡혀 완고한 사람이 되기 쉬우니 학문을 갈고 닦아 유연한 머리로 진리를 배우라는 말씀도 폐부를 찌르더군요. 사실 요즘 우리가 간장 종지만한 얕은 지식 좀 가졌다고 얼마나 아는 척, 잘난 척 해가며 살고 있는지 어르신께서는 짐작도 못하실 걸요. 어쨌거나 가르침마다 구구절절 어찌나 옳은 말씀이신지 하나하나 받아 적어가며 마음 속 스승으로 받들어 모시고 있었다니까요. 그리 여기던 어르신이 난데없이 계집 운운하시니 외람된 말씀이지만 ‘천하의 정약용도 어쩔 수 없는 남자로군’이라 할 밖에요. 한편으론 관습이란 게 이래서 무서운 거다, 했습니다. 아무리 깨인 분이라 해도 평생을 이끌어온 통념은 누군가가 부러 깨우쳐주지 않는 한 스스로는 깨닫기 어려운 법인가 봅니다.
꿈꾸는 자를 도와주세요 지난번엔 이런 가르침도 주시더군요. “학문은 되묻는 것이다. 당연한 이치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스스로 묻는 자는 스스로 답을 얻게 되어 있다.” 허니 김윤식, 아니 김윤희의 ‘자격을 지닌 사내들이 이끌어온 세상이 왜 이 모양 이 꼴인 것이냐’는 의문을 기꺼이 가납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이 세상에 질문을 던질 기회를 달라고, 새로운 세상을 꿈꿀 기회를 허락해 달라 청한 윤희의 소망을 부디 저버리지 말아주세요.
물론 법도가 지엄한 시절에 여자의 몸인 윤희가, 더구나 병든 동생 윤식을 돌보기 위해서라지만 엄연히 나라 법을 어긴 윤희가 자신의 이름으로 출사를 하는 일은 있을 수 없겠죠. 그렇지만 여염으로 돌아가 남편 뒷바라지로 여생을 보내게 된다면 그는 너무나 아깝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까요? 아버님이신 성균관 박사 김승헌의 유품을 지금껏 내내 간직하고 계셨던 금상(조성하)께서 특별히 마음을 쓰시긴 할 테지만 여자라는 것을 아셨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잖아요. 사생취의(捨生取義), 의로운 세상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길 두려워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뜻을 윤희가 이어갈 수 있도록 선생께서 힘써주시길 부탁드리옵니다. 성균관의 또 다른 스승이신 유창익(박근수)선생께서도 이미 윤희의 빼어난 재주를 알아보셨지 싶으니 연합 작전을 펴 보시는 건 어떨까요. 하긴 모든 사실이 밝혀졌을 때 유창익 선생께서 보일 반응도 오리무중이긴 하네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
선생의 가르침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선생께서 김윤식이 여자임을 눈치 채셨던 날 “출사는 계집에겐 가당치 않은 일이다”라며 단박에 성균관 출재를 종용하시는 걸 보고 실망을 했다는 거 아닙니까. 좀처럼 보기 드문 존경할만한 어르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첫 수업 때 하신 “우리 제발 밥값들은 좀 하고 살자”라는 말씀에 머리라도 한 대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답니다. 그 말씀은 과연 제가 밥값을 제대로 하며 살고 있는지, 나잇값은 하는 건지, 무엇보다 글 값을 하고 있는지 깊이 반성할 계기가 됐습니다. 또한 논어 위정편 ‘군자불기’, 즉 군자는 한정된 그릇이 아니다. 진리를 탐하는 군자라면 갇혀있는 그릇처럼 편견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말씀도 마음에 와 닿았고요. 저도 그 놈의 쓰잘데기 없는 편견 때문에 일을 그르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서 말이죠.
어디 그뿐인가요. 지식이 협소한 사람은 자칫 자신의 좁은 생각에 사로잡혀 완고한 사람이 되기 쉬우니 학문을 갈고 닦아 유연한 머리로 진리를 배우라는 말씀도 폐부를 찌르더군요. 사실 요즘 우리가 간장 종지만한 얕은 지식 좀 가졌다고 얼마나 아는 척, 잘난 척 해가며 살고 있는지 어르신께서는 짐작도 못하실 걸요. 어쨌거나 가르침마다 구구절절 어찌나 옳은 말씀이신지 하나하나 받아 적어가며 마음 속 스승으로 받들어 모시고 있었다니까요. 그리 여기던 어르신이 난데없이 계집 운운하시니 외람된 말씀이지만 ‘천하의 정약용도 어쩔 수 없는 남자로군’이라 할 밖에요. 한편으론 관습이란 게 이래서 무서운 거다, 했습니다. 아무리 깨인 분이라 해도 평생을 이끌어온 통념은 누군가가 부러 깨우쳐주지 않는 한 스스로는 깨닫기 어려운 법인가 봅니다.
꿈꾸는 자를 도와주세요 지난번엔 이런 가르침도 주시더군요. “학문은 되묻는 것이다. 당연한 이치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스스로 묻는 자는 스스로 답을 얻게 되어 있다.” 허니 김윤식, 아니 김윤희의 ‘자격을 지닌 사내들이 이끌어온 세상이 왜 이 모양 이 꼴인 것이냐’는 의문을 기꺼이 가납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이 세상에 질문을 던질 기회를 달라고, 새로운 세상을 꿈꿀 기회를 허락해 달라 청한 윤희의 소망을 부디 저버리지 말아주세요.
물론 법도가 지엄한 시절에 여자의 몸인 윤희가, 더구나 병든 동생 윤식을 돌보기 위해서라지만 엄연히 나라 법을 어긴 윤희가 자신의 이름으로 출사를 하는 일은 있을 수 없겠죠. 그렇지만 여염으로 돌아가 남편 뒷바라지로 여생을 보내게 된다면 그는 너무나 아깝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까요? 아버님이신 성균관 박사 김승헌의 유품을 지금껏 내내 간직하고 계셨던 금상(조성하)께서 특별히 마음을 쓰시긴 할 테지만 여자라는 것을 아셨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잖아요. 사생취의(捨生取義), 의로운 세상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길 두려워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뜻을 윤희가 이어갈 수 있도록 선생께서 힘써주시길 부탁드리옵니다. 성균관의 또 다른 스승이신 유창익(박근수)선생께서도 이미 윤희의 빼어난 재주를 알아보셨지 싶으니 연합 작전을 펴 보시는 건 어떨까요. 하긴 모든 사실이 밝혀졌을 때 유창익 선생께서 보일 반응도 오리무중이긴 하네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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