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아이들, 꿈. 학원물을 지탱하는 가장 큰 축인 이 세 가지 요소는 그동안 무수한 성장 드라마에서 변주되어왔다. 때로는 벽이, 때로는 인큐베이터가 되었던 학교 안에서 꿈꾸고 사랑하고 자라는 아이들. 그들의 좌절과 성장을 얼마나 진정성 있게 담아내느냐에 따라 학원물의 승패는 판가름 난다. KBS 도 이 세 가지 축에 의해 움직인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이제껏 보아왔던 학원물과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다른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윤희성 기자와 윤이나 TV평론가가 서로 반대편에 서서 를 말한다. 쿨한 척 하지 않는 진심과 기성세대의 안일한 희망이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분석한 찬반론이다. /편집자주
글. 윤희성 nine@
편집. 이지혜 seven@
어떤 이는 꿈을 잊은 채로 살고, 어떤 이는 남의 꿈을 뺏고 살고, (봄여름가을겨울 ‘어떤 이의 꿈’) KBS 의 아이들은 꿈을 이루려고 산다. 고혜미(수지)는 빚을 갚기 위해서 반드시 스타가 되어야 하고, 시골 소년 송삼동(김수현)이 혜미를 향한 우직한 순정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함께 데뷔를 해야 한다. 진국(택연)이 아버지로부터 받아온 상처를 치유할 곳도, 윤백희(함은정)의 열등감을 해소할 곳도 결국 무대다. 아이돌 출신 배우들의 연기 논란, 러브라인, 만화 같은 설정들에 가려져있지만, 는 그 아이들이 꾸는 꿈에 대한 드라마다.
다행스럽게도 에는 노래와 춤이 있다
하지만 가 말하는 그 꿈이 단순히 ‘스타’일 것이라고 판단했다면, 그건 오산이다. 이 드라마가 말하는 꿈은 삼동이 말대로 “자꾸 도망가서 안 보이는” 것에 가깝다. 입시반 아이들은 자신이 뭘 좋아하고, 뭐가 되고 싶은지조차 정확히 알지 못하는 루저들이다. 기린예고의 경쟁체제에서 자신의 재능이 뭔지 조차 몰랐던 입시반 아이들은 계속해서 실패하고, 탈락한다. 하지만 강오혁 선생(엄기준)은 성공의 길을 가르쳐주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같이 무언가를 만들어 나가면서 꿈을 ‘그려 볼’ 것을 주문한다. 이 멋진 스승과 함께, 입시반 아이들은 꿈을 찾는 것이 꿈을 이루는 것보다 더 큰 성장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진국과 백희가 속한 그룹 K의 데뷔 이후, 혜미와 삼동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자기가 처한 바로 그 자리에서 여전히 연습 중인, 바로 그 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입시반 아이들의 구체적인 성장 과정은 얼렁뚱땅 넘어가는 수많은 에피소드 속에 묻힌다. 혜미가 자신이 모두에게 주목받는 주인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를 구구절절 설명하기엔, 가 벌려 놓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에는 노래와 춤이 있다. 물론 아이돌 출신이고 아니고를 떠나 배우들의 춤과 노래 실력은 재능이나 천재성을 운운하기엔 민망한 수준인 경우가 많았고, 무대도 그리 완성도 있는 것이라곤 할 수 없다. 는 이를 이야기가 있는 노래와 춤으로 극복한다. 꿈 그 자체에 대한 시(詩)인 ‘어떤 이의 꿈’은 쇼케이스 양 쪽 모두의 중심 테마였고, ‘뱀’과 ‘새’로 나뉜 댄스 경연대회의 주제는 데뷔반과 입시반 사이의 갈등을 시각화 시켜 퍼포먼스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겨울아이’나 ‘기다리다’와 같은 노래들은 설명되지 않은 아이들의 감정을 실어 전하는 통로가 되었다. 그래서 의 노래나 무대는 길어도 지루하지 않게 극 속에 녹아들며, 어느 순간엔 뮤지컬과 같은 효과를 주기도 한다. 1화에서 혜미와 백희가 함께 부른 ‘거위의 꿈’을 돌이켜 보면, 이건 놀라운 변화다.
너무 쿨한 이 세상에서 꼭 건네야 했던 말
4회 정도까지만 해도 컬트적인 재미를 주는 작품으로만 남을 것 같았던 는 그렇게 혜미처럼 성장했다. 무리한 설정과 유치한 편집, 배우들의 실제와 극중 상황을 비트는 개그, 개연성 없는 사건 전개, 예측 불가능한 다음 장면은 ‘스러움’으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그러면서도 입시반 아이들은 꿈도 꾸고 사랑도 하며 착실히 성장했다. 물론 현실을 자각하는 게 우선이라는 시경진 선생(이윤지)의 말보다는, 꿈을 향한 진심이 우선이라는 강오혁 선생의 말에 힘을 실어주는 의 감성은 확실히 대책 없이 낭만적인 데가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진심의 길이 정도(正道)라고 말하는 세상이 바로 “승산이 없어도 포기를 안 하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삼동이의 세계, 의 세계다. 이 드라마 속 노래들이 최신 아이돌의 그것이 아니라 낭만이 녹아있는 90년대 감성의 노래들로 채워지는 것이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는 세상의 사람들이 쿨 한 척 하느라, 백희의 엄마처럼 먹고 사는 게 바빠서, 경쟁의 논리를 가르치는데도 벅차 아이들에게 “뭔가를 미치도록 좋아하는 것도 재능”이라는 말을, “네 드라마의 끝은 여기가 아니”라는 말을 해주지 않을 때, 대신 그 말을 건넨다. 하니와 캔디를 위해 네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 실패했다고 인생도 꿈도 끝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때, 아이들은 성장한다. 오글거려도, 유치해서 얼굴이 빨개질 것 같아도, 그 말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는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이 ‘농약 같은 드라마’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매력의 근원이면서, 를 새로운 의미의 성장드라마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다. 그리고 이제 아이에서 어른이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도저히 제 힘으로 감당이 안 될 만큼 무겁고 잔인한 현실”이 찾아왔을 때, 꿈을 꾸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되어버렸을 때도 의 아이들은 남은 성장의 계단을 마저 오를 수 있을까.
글 윤이나
보색으로 꾸며진 모자이크처럼 KBS 는 흥미로운 동시에 혼돈스럽다. 제목에서부터 직설적으로 밝히고 있듯, 이 드라마는 순진하게도 시종일관 꿈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드라마는 꿈이 간절할수록 초라해진다는 무서운 법칙을 설파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꿈을 이루기 위해 외모를 가꾸어야 하고, 어른들의 정치적 대립에 이용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꿈을 손 안에 넣고 나서도 그것을 잃게 될까 전전긍긍해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곳은 다름 아닌 학교다. 그동안 드라마 속에서 자본과 성적에 의해 서열화 되었던 아이들이 이제는 재능이라는 척도로 다시 편 가름 된다. 가난한 금잔디와 공부를 못하는 홍찬두는 에 없다. 재능이나 잠재력이 있지 않으면 이야기의 중심에 들어올 수 없는 기린예고야 말로 전쟁터나 다름없는 곳이기 때문이다.글. 윤이나(TV평론가)
아이들의 꿈을 대신한 어른들의 위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는 여전히 꿈과 희망을 지지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꿈의 주체는 아이들이 아니다. 정하명(배용준)은 강오혁(엄기준)의 노트에서부터 기린예고가 출발했음을 고백했다. 그리고 타인이 실현시켜 놓은 꿈의 결말을 넘겨받은 강오혁은 어린 시절의 소망을 이루고, 양진만(박진영)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좌절된 데뷔에 대한 대리만족을 얻을 뿐 아니라 자신이 엄마를 빼앗아 버린 고혜미(수지)의 유사가족이 되어 죄 사함까지 구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맡은 아이들의 꿈은 강오혁의 노트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미치도록 좋아하는 것도 재능”이라며 아이들을 독려하지만 정작 그러한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은 강오혁일 뿐, 아이들은 여전히 지지 않기 위해 춤추고 노래할 뿐이다. 아이들을 구명하고 강오혁이 떠난 11회, 드라마는 다시 강오혁을 불러들이기 위한 미션을 제시했다. 덕분에 아이들은 드라마가 설명하는 기술을 습득하지만, 지도자가 없이도 자신의 꿈을 확고히 하는 법을 배울 기회를 잃었다. 아이들을 끝까지 지켜주는 좋은 선생님이 되겠다는 강오혁의 꿈이 또 한 번 이루어 졌을 뿐이다.
이토록 드라마가 붙들고 있는 강오혁의 꿈은, 요컨대 20세기 소년의 것이다. 드라마는 학교 바깥의 세상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꿈과 재능, 노력을 모두 갖춘 윤백희(함은정)는 ‘되는 놈’을 완성하는 무엇이 없어 좌절하고 그런 그녀에게 회사는 의리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이리아(윤영아)는 김필숙(아이유)의 목소리를 자신의 것 인양 포장하지만, 힘없는 개인인 필숙의 진실은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21세기의 시장은 잔인할 정도로 냉정한 곳이다. 그러나 강오혁의 교실은 정직함과 인내, 신의와 같은 지난 세기의 덕목들을 가르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음악이 아니라 데뷔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 강오혁을 위협하던 마두식(안길강)이 어느새 그의 조력자가 되었다는 점은 그래서 주목할 부분이다. 성악이라는 고혜미의 꿈을 파기한 마두식이 이제는 포기했던 자신의 꿈을 상기하기 위해 그녀를 응원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른의 입장에서 쓰인 동화일 뿐이다. 드라마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이들을 위한 격려가 아니라 피곤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성공을 바라는 어른들을 향한 위안인 것이다.
그것으로 아이들을 구원할 수 있다고?
그래서 데뷔를 제안 받은 고혜미나 아버지를 자극하기 위해 데뷔를 이용한 진국(택연)이 아직도 자신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청력 이상으로 좌절한 송삼동(김수현)이 동시에 실연의 상처를 겪으며 지나친 위기에 몰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아이들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답을 얻지 못하고 있어야 하며, 그것을 알려줄 사람은 다시 돌아와 ‘예언의 서’를 완결 지을 강오혁이기 때문이다. 의 가장 큰 판타지는 K가 빌보드를 점령했다는 깜찍한 설정이 아니라, 그 모든 과정을 일구어 낸 것이 불륜과 해고 위기로 얼룩진 인생을 살고 있는 어른 루저라는 점이다. 불안과 부당함에 노출되어 있지만 그것을 “행복한 여정”이라고 부르는 그 어른은 순진한 조언과 열혈의 태도라면 아이들 몇 명쯤은 충분히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기성세대의 희망을 대변한다. 그러나 너무 높은 꿈은 오히려 서글픈 법이다. 드라마 속에서 필숙과 제이슨(우영)의 이야기가 중심 스토리보다 매력적인 건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감정과 욕망의 주체인 필숙은 강오혁의 꿈에서 자유로운 인물이며, 자가 발전하는 그녀와 소통하는 제이슨은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성장을 보여준다. 이제 어른들은 선장에서 내려와 조타수로 물러날 때다. 보고 싶었던 건 아이들의 꿈이지, 어떤 이의 꿈을 위해 아이들이 동원되는 광경은 아니지 않은가.
글 윤희성
글. 윤희성 nine@
편집. 이지혜 sev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