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떡해. 또 품절남이 늘었어. 임요환이 김가연이랑 교제한대.
임요환? 야, 그건 결혼이 아니잖아. 물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걸 또 품절남이라고 할 것까지 있냐. 그건 그렇고 너 임요환 좋아했었어? 너 스타크래프트 할 줄도, 볼 줄도 모르잖아.
스포츠를 이해하는 거랑 선수의 팬이 되는 거랑 얼마든지 별개일 수 있다는 걸 아직도 이해 못하지? 너야말로 언젠가 나한테 원포인트 교습을 받야겠다.
아니, 좋아하려면 좋아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거잖아. 잘생기긴 했지만 그게 그렇게 중요해?
응.
아.
그리고 너도 전에 이윤열 얘기하면서 임요환 보고 ‘황제’라고 하지 않았어?
아, 물론 그렇게 말했지. 나도 임요환이 스타크래프트의 역사에 남긴 업적을 무시하려는 건 아니야. 그가 역대 최고의 플레이어라고는 말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역대 최고의 스타인 건 사실이니까. 물론 잘생긴 얼굴이 한 몫 하긴 했지만 실력으로도 당대 최고의 선수였고.
읊어봐, 읊어봐. 우리 [임]의 업적이 어땠어?
우선 전성기였던 2001년에는 총 전적 142승 57패로 승률 71.4%를 기록했어. 그래도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잘 모르겠지? 이게 말하자면 열 번 싸우면 일곱 번은 이겼단 얘기잖아. 하지만 단기전과 장기 레이스는 전혀 달라. 즉 승률은 같은 70%라 해도 열 번 싸워 일곱 번 이긴 것과 백 번 싸워 칠십 번 이기는 건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돼. 후자처럼 표본이 많아질수록 우연이 개입될 확률은 줄어들게 되니까. 가령 역대 야구팀 중 최고의 포스를 자랑하던 2008년 SK 와이번스조차 정규 시즌에서 77승 37패로 70%에 조금 못 미치는 승률을 기록했어. 그런 면에서 142승 57패라는 기록은 경이로운 거지.
거봐. 내가 잘은 모르지만 임요환 실력이 있는 건 분명하다니까?
그것 참 지식인 같은 대답이구나. 아무튼 실력도 실력이지만 분명 임요환에게는 그 이상의 것이 있었어.
알아, 얼굴.
크기? 너 안티지?
무슨 그런 위험한 발언을. 어느 안티가 나처럼 칭찬을 하냐. 내가 말하려고 했던 건 임요환의 무시무시한 승부 근성이야. 임요환의 업적은 보통 기욤 패트리라는 스타크래프트 1세대 최강자를 꺾은 한국인 게이머이자, 잘생긴 얼굴을 겸비한 스타성으로 수많은 대중들을 자신의 팬 혹은 스타크래프트의 팬으로 흡수해 e-스포츠의 대중화를 이끌었고, 당시로서는 거의 엽기적으로 보일 정도로 독창적인 전략과 유닛 컨트롤로 스타크래프트, 더 정확히는 자신이 조종하는 테란이라는 종족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것으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아. 하지만 나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임요환의 승부에 대한 열망을 이야기하고 싶어.
어머, 잘생기고 실력도 있는데 근성도 있는 거야? 내가 잘은 모르지만 그럴 줄 알았어.
어떤 면에서 그것 때문에 역대 스타플레이어 중 가장 많은 안티를 모을 정도로 임요환이 보여준 승부에의 집착은 유별났어. 경기에 지면 눈물을 보이거나 이를 악다물고 스스로에게 분노하는 모습으로 분위기를 살벌하게 만드는 건 보통이었고. 그런 승부욕으로 굉장한 역전극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그가 전성기를 조금 벗어난 2003년 벌인 도진광과의 경기는 아마 스타리그 역대 최고의 경기 중 하나일 거야.
그리 말하면 내가 아나.
스타크래프트에서 ‘GG’란 표현 들어봤어? 그래, 들어만 봤구나. Good Game의 약자인건데, 일종의 항복 선언 같은 거야. 패색이 완연해지면 그렇게 ‘GG’ 선언을 하는데, 방금 말한 도진광과의 경기에서 임요환은 흔히 본진이라고 말하는 자신의 병력 생산부지를 상대방에게 완전히 유린당했어. 당장 ‘GG’를 외쳐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지. 하지만 어딘가에 숨겨놨던 공격 유닛을 몇 기 가져와 상대방의 운송 수단을 모두 파괴하는 집념 끝에, 다 진 경기에서 오히려 상대방의 ‘GG’를 받아냈어. 이후 이 경기는 경기가 벌어졌던 8월 15일을 기념해, 8. 15 대첩이라 기록되게 되지. 사실 결코 유려하다 할 수 있는 경기는 아니었어. 정말 상대를 진흙탕으로 끌고 들어간 거지.
너 칭찬하려던 거 맞아?
그러니까 끝까지 들어봐. 임요환을 좋아하던 사람들은 그 근성이 매력적이라 생각했고, 그를 싫어하던 사람들은 그 집착이 볼썽사납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기본적으로 팬이든 안티든 그가 벌인 승부에의 열정이 진짜라는 것만큼은 인정했어. 언젠가 말한 것처럼 스포츠는 일종의 유사 전투인 경우가 많은데 바로 이런 승부욕 때문에 e-스포츠는 게임이 아닌 스포츠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거야. 과거에 비해 포스가 많이 부족하지만 아직도 임요환이라는 플레이어가 회자되는 건 그래서야. 그리고 요즘처럼 뒤숭숭한 시기에는 더더욱 이런 선수가 필요하고.
뒤숭숭? 그건 무슨 소리야?
넌 잘 모를 수도 있겠구나. 요즘 스타리그는 승부조작 때문에 굉장히 분위기가 흉흉해.
승부조작? 경기가 조작되었다는 얘기야?
맞아. 거의 모든 프로 스포츠에는 승패에 따른 내기가 따르는 법인데, 스타리그 역시 마찬가지야. 상당한 돈이 오가는 불법 온라인 베팅 서비스가 있나 보더라고. 사실 그것만으로도 문제일 수 있는데, 더 큰 문제는 전직 프로게이머가 브로커가 되어서 현직 프로게이머에게 큰돈으로 유혹하며 승부 조작을 권하는 거야. 말하자면 져달라고 하고선 상대편 선수에게 돈을 걸어 돈을 따는 거지.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말이야?
응. 나도 믿고 싶지 않지만 사실이야. 비슷한 일이 과거 이탈리아 축구리그인 세리에 A에서도 벌어졌었는데 정말 다른 무엇보다도 ‘리얼’이어야 할 스포츠가 ‘쇼’가 되면 그것만큼은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다고 생각해. 진심으로 그들의 승부에 가슴 뛰고 울고 웃던 팬들에게 그보다 실망스러운 일 역시 없을 거고. 오락 따위가 무슨 스포츠냐고 폄하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정말 임요환을 비롯한 수많은 선수들이 열정을 바쳐 일군 e-스포츠의 토대가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일이야. 그렇게 되면 네가 좋아하는 임요환 역시 활동할 무대가 없어지는 거지.
정말? 그렇게 되면 안 되지만, 만약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면 임요환은 무슨 활동을 해야 할까?
음… 국방부장관? 전에 보면 상대편 진영에 홀로 떨어진 병사 유닛을 기어코 비행기에 태워 데려가더라고.
글. 위근우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임요환? 야, 그건 결혼이 아니잖아. 물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걸 또 품절남이라고 할 것까지 있냐. 그건 그렇고 너 임요환 좋아했었어? 너 스타크래프트 할 줄도, 볼 줄도 모르잖아.
스포츠를 이해하는 거랑 선수의 팬이 되는 거랑 얼마든지 별개일 수 있다는 걸 아직도 이해 못하지? 너야말로 언젠가 나한테 원포인트 교습을 받야겠다.
아니, 좋아하려면 좋아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거잖아. 잘생기긴 했지만 그게 그렇게 중요해?
응.
아.
그리고 너도 전에 이윤열 얘기하면서 임요환 보고 ‘황제’라고 하지 않았어?
아, 물론 그렇게 말했지. 나도 임요환이 스타크래프트의 역사에 남긴 업적을 무시하려는 건 아니야. 그가 역대 최고의 플레이어라고는 말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역대 최고의 스타인 건 사실이니까. 물론 잘생긴 얼굴이 한 몫 하긴 했지만 실력으로도 당대 최고의 선수였고.
읊어봐, 읊어봐. 우리 [임]의 업적이 어땠어?
우선 전성기였던 2001년에는 총 전적 142승 57패로 승률 71.4%를 기록했어. 그래도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잘 모르겠지? 이게 말하자면 열 번 싸우면 일곱 번은 이겼단 얘기잖아. 하지만 단기전과 장기 레이스는 전혀 달라. 즉 승률은 같은 70%라 해도 열 번 싸워 일곱 번 이긴 것과 백 번 싸워 칠십 번 이기는 건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돼. 후자처럼 표본이 많아질수록 우연이 개입될 확률은 줄어들게 되니까. 가령 역대 야구팀 중 최고의 포스를 자랑하던 2008년 SK 와이번스조차 정규 시즌에서 77승 37패로 70%에 조금 못 미치는 승률을 기록했어. 그런 면에서 142승 57패라는 기록은 경이로운 거지.
거봐. 내가 잘은 모르지만 임요환 실력이 있는 건 분명하다니까?
그것 참 지식인 같은 대답이구나. 아무튼 실력도 실력이지만 분명 임요환에게는 그 이상의 것이 있었어.
알아, 얼굴.
크기? 너 안티지?
무슨 그런 위험한 발언을. 어느 안티가 나처럼 칭찬을 하냐. 내가 말하려고 했던 건 임요환의 무시무시한 승부 근성이야. 임요환의 업적은 보통 기욤 패트리라는 스타크래프트 1세대 최강자를 꺾은 한국인 게이머이자, 잘생긴 얼굴을 겸비한 스타성으로 수많은 대중들을 자신의 팬 혹은 스타크래프트의 팬으로 흡수해 e-스포츠의 대중화를 이끌었고, 당시로서는 거의 엽기적으로 보일 정도로 독창적인 전략과 유닛 컨트롤로 스타크래프트, 더 정확히는 자신이 조종하는 테란이라는 종족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것으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아. 하지만 나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임요환의 승부에 대한 열망을 이야기하고 싶어.
어머, 잘생기고 실력도 있는데 근성도 있는 거야? 내가 잘은 모르지만 그럴 줄 알았어.
어떤 면에서 그것 때문에 역대 스타플레이어 중 가장 많은 안티를 모을 정도로 임요환이 보여준 승부에의 집착은 유별났어. 경기에 지면 눈물을 보이거나 이를 악다물고 스스로에게 분노하는 모습으로 분위기를 살벌하게 만드는 건 보통이었고. 그런 승부욕으로 굉장한 역전극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그가 전성기를 조금 벗어난 2003년 벌인 도진광과의 경기는 아마 스타리그 역대 최고의 경기 중 하나일 거야.
그리 말하면 내가 아나.
스타크래프트에서 ‘GG’란 표현 들어봤어? 그래, 들어만 봤구나. Good Game의 약자인건데, 일종의 항복 선언 같은 거야. 패색이 완연해지면 그렇게 ‘GG’ 선언을 하는데, 방금 말한 도진광과의 경기에서 임요환은 흔히 본진이라고 말하는 자신의 병력 생산부지를 상대방에게 완전히 유린당했어. 당장 ‘GG’를 외쳐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지. 하지만 어딘가에 숨겨놨던 공격 유닛을 몇 기 가져와 상대방의 운송 수단을 모두 파괴하는 집념 끝에, 다 진 경기에서 오히려 상대방의 ‘GG’를 받아냈어. 이후 이 경기는 경기가 벌어졌던 8월 15일을 기념해, 8. 15 대첩이라 기록되게 되지. 사실 결코 유려하다 할 수 있는 경기는 아니었어. 정말 상대를 진흙탕으로 끌고 들어간 거지.
너 칭찬하려던 거 맞아?
그러니까 끝까지 들어봐. 임요환을 좋아하던 사람들은 그 근성이 매력적이라 생각했고, 그를 싫어하던 사람들은 그 집착이 볼썽사납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기본적으로 팬이든 안티든 그가 벌인 승부에의 열정이 진짜라는 것만큼은 인정했어. 언젠가 말한 것처럼 스포츠는 일종의 유사 전투인 경우가 많은데 바로 이런 승부욕 때문에 e-스포츠는 게임이 아닌 스포츠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거야. 과거에 비해 포스가 많이 부족하지만 아직도 임요환이라는 플레이어가 회자되는 건 그래서야. 그리고 요즘처럼 뒤숭숭한 시기에는 더더욱 이런 선수가 필요하고.
뒤숭숭? 그건 무슨 소리야?
넌 잘 모를 수도 있겠구나. 요즘 스타리그는 승부조작 때문에 굉장히 분위기가 흉흉해.
승부조작? 경기가 조작되었다는 얘기야?
맞아. 거의 모든 프로 스포츠에는 승패에 따른 내기가 따르는 법인데, 스타리그 역시 마찬가지야. 상당한 돈이 오가는 불법 온라인 베팅 서비스가 있나 보더라고. 사실 그것만으로도 문제일 수 있는데, 더 큰 문제는 전직 프로게이머가 브로커가 되어서 현직 프로게이머에게 큰돈으로 유혹하며 승부 조작을 권하는 거야. 말하자면 져달라고 하고선 상대편 선수에게 돈을 걸어 돈을 따는 거지.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말이야?
응. 나도 믿고 싶지 않지만 사실이야. 비슷한 일이 과거 이탈리아 축구리그인 세리에 A에서도 벌어졌었는데 정말 다른 무엇보다도 ‘리얼’이어야 할 스포츠가 ‘쇼’가 되면 그것만큼은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다고 생각해. 진심으로 그들의 승부에 가슴 뛰고 울고 웃던 팬들에게 그보다 실망스러운 일 역시 없을 거고. 오락 따위가 무슨 스포츠냐고 폄하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정말 임요환을 비롯한 수많은 선수들이 열정을 바쳐 일군 e-스포츠의 토대가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일이야. 그렇게 되면 네가 좋아하는 임요환 역시 활동할 무대가 없어지는 거지.
정말? 그렇게 되면 안 되지만, 만약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면 임요환은 무슨 활동을 해야 할까?
음… 국방부장관? 전에 보면 상대편 진영에 홀로 떨어진 병사 유닛을 기어코 비행기에 태워 데려가더라고.
글. 위근우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