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미워할 수 없다. CF에서 도시 남자의 눈빛으로 도발적인 표정을 지을 때나, MBC<트리플>의 능글맞고 엉뚱한 아르바이트생을 할 때도 그를 미워할 수 없다. 호시탐탐 동찬(윤상현)을 밀어내고 혜나(윤은혜)의 수행집사가 되고 싶어서 안달 내는 KBS <아가씨를 부탁해>의 메이드를 연기할 때 조차 김영광은 모나거나 비뚤어진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스칸디나비아적인 신체와 지극히 친근한 눈매, 시원스러운 미소가 묘하게 어우러진 그의 외모에서 그늘이나 악의를 찾아보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좋은 땅만 밟고, 밝은 볕만 쬐고 자랐을 것 같다고 말하니 김영광은 헤실 웃으며 답한다. “어, 아닌데. 전 진흙탕과 구렁텅이에 빠져서 살았던 사람이에요. 하하.”

조용한 시골 소년, 디올 옴므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중학생 시절의 소년은 작고 조용한 아이였다. 160cm가 채 되지 않았고,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막연히 사장님이 되고 싶었다. 이왕이면 좋아하는 만화책을 실컷 볼 수 있는 만화책방 사장님이면 더 좋을 것 같았다. 고등학생이 되고, 첫 여름 방학이 지나자 친구들이 낯설어 할 만큼 키가 쑥 자라 있었다. 몇 번이나 교복 자켓을 고치고, 새로 사면서 졸업할 무렵이 되자 그는 학급에서 키가 제일 크고, 그리고 조용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인가 소년은 부산에 하루 동안 내려가서 뒤통수 모델이 되어 주는 아르바이트를 제의 받았다. 촬영장에서 만난 남자는 그의 전화번호를 물었고, 자꾸만 서울로 놀러 오라고 그를 귀찮게 했다. 생일을 맞아 멀리 놀러 나온 소년에게 남자는 “상상도 못해 본” 비싼 청바지를 선물로 사 주었다. 갓 스무살 언저리였던 김영광은 생각 했다. “우와. 운이 좋구나.”

그러나 진짜 운은 그 때부터 시작됐다. 생전 패션 잡지 한번 본 적 없었던 그는 순식간에 패션쇼에 서더니 100m처럼 느껴졌던 첫 런웨이를 경험 한 후 “마음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수많은 쇼와 화보를 그의 얼굴로 채워 나갔다. 심지어 밀라노와 파리에서까지 주목을 받으며 캣워크를 걸었다. “가면 워낙 고생을 하니까 ‘내 다신 오나봐라’ 하면서 돌아와요. 그런데 한 석 달 쯤 있으면 ‘아, 다시 가야 하는데’하는 생각이 들죠. 영어를 잘 못하니까 간단한 이야기만 하고, 손짓으로 소통 하지만 다행히도 다들 귀엽게 봐주고 잘 대해준 것 같아요.” 별 것 아닌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디올 옴므 패션쇼의 런웨이를 걸었던 최초의 동양인 남자 모델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할 법한 성과다. 하지만 김영광은 그런 칭찬에도 픽 웃을 뿐이다. “에이, 정해 놓은 법이 어디 있나요. 마침 그때 쇼 디렉터가 절 잘 봐 준거죠, 뭐.”

“이제 연기하는 재미를 점점 알아가고 있어요”

매사에 담담하고 싱거운 것 같지만, 그것은 기억을 대하는 그의 태도일 뿐이다. 그저 운이 좋아서, 타고난 몸으로 모델이 됐다고 하지만, 그를 연기의 세계로 이끈 건 그 자신의 의지였다. 연기를 하려고 여러 번의 오디션을 보고, 그만큼 거절을 당하면서, 김영광은 마음속에 오기를 키웠다. “잠깐 얘기를 나눠 보고는 저의 인생에 대해 평가하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자신의 기준으로 저를 나쁘게 보는 거죠.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나, 꼭 배우 한다! 그렇게 생각 했었어요.” 순둥이 같던 얼굴에 반짝, 열정의 씨앗이 비친다. 그리고 “겨우 세 작품 했고, 비중은 적지만 이제 연기하는 재미를 점점 알아가고 있어요. 리허설에 없던 애드리브를 했는데 감독님이 아무 말씀 안하시고 오케이 해주시면 신기하고 그래요”라며 연기에 대해 말하는 그의 얼굴은 한층 밝아져 있다. 김영광은 곧 연기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 학교 진학을 계획하고 있다. 조용히 학교의 한 자리에 앉아있던 중학생, 그리고 타고난 몸으로 화려한 캣워크를 밟던 모델. 그가 자신의 의지로 청춘의 액셀러레이터를 밟기 시작했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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