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고백할 게 있어요. 사실은 저 사랑하는 여자가 있어요.” “뭐라고? 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니! 그 여자는 절대 안돼!” 한 여자를 6년 동안이나 사랑해온 남자의 순정과 그것을 정신병자의 헛소리쯤으로 취급하는 부모의 격렬한 반대. 그러나 이것은 세상의 반대에 부딪친 연인들의 러브 스토리가 아니다. 뉴욕에 사는 데빈(데빈 라트레이)은 콘돌리자 라이스를 사랑한다. 그렇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뽑히기도 했던 미국의 전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다. 제5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경쟁부문인 ‘세계영화 음악의 흐름’에 초청된 <콘돌리자 구애소동>는 어디까지가 연기고, 어디서부터가 진짜인지 가늠하기조차 힘든 거대하고도 기괴한 농담 같다.

“처음 본 순간 눈을 뗄 수가 없었던” 콘디(콘돌리자 라이스의 애칭)에게 반한 데빈의 생활은 온통 그녀로 가득하다. 컴퓨터의 바탕화면은 그녀의 얼굴로 도배되어 있고, 하드 드라이브는 그녀의 각종 연설 영상, 어린 시절 사진들로 꽉 차있다. 그렇게 지고지순하게 콘디만을 바라본 데빈은 마침내 그녀를 만나기 위해 워싱턴으로 향한다. 뉴욕에서 출발해 콘디가 살았던 도시들을 돌며, 연인의 흔적을 더듬는 데빈은 때로는 눈물짓고 때로는 분노한다. 소설 <앵무새 죽이기>의 배경이기도 한 콘디의 고향 버밍햄에서 데빈은 그녀가 당했던 각종 인종차별들에 가슴을 치는 한편 그녀의 전 약혼자를 만나 질투에 아랫입술을 깨문다. 사랑에 빠진 데빈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콘돌리자 라이스를 비판하기 위한 종착역까지 웃음이 끊이지 않게 인도하고, 그것은 <나홀로 집에> 케빈의 못된 형이었던 데빈 라트레이의 압도적인 코믹 연기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콘디의 친구, 선생님, 어머니, 전 약혼자 등 데빈의 캐릭터를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 실존인물들이고, 오로지 자료화면으로만 등장하는 콘디의 대사도 실제 그녀가 했던 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여정이 계속 될수록 완벽하고 순결한 여자로 생각됐던 콘디는 점점 “거짓말쟁이에 전쟁광”으로 변해가고, 데빈은 혼란스럽다. 물론 미국의 전 국무장관이 지시한 전쟁포로 고문이나 9.11 테러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책임을 묻는 감독의 시선은 다소 가벼워서 코미디라는 시럽을 발라놓은 신 포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 대답이 없는 국무부 건물을 향해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는 데빈을 보고 있으면, 사지에 몰린 남편들을 위해 정치인을 만나길 간청했지만 아무런 답도 듣지 못하고 좌절된 우리나라의 현실이 생각나 마냥 낄낄거릴 수만은 없게 한다.

글. 제천=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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