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의 역사상 가장 기억할만한 한 순간으로 기록되는 켈빈 클라인 청바지 광고를 찍을 때 브룩 쉴즈는 열다섯 살이었다. 가히 ‘배바지’라 불러도 좋을 청바지를 입고 몸을 ㄱ자 형태로 기울인 채 셔츠 단추를 채우는 브룩 쉴즈의 사진이 타임스퀘어에 걸렸을 때, 타임스퀘어 일대는 이 광고를 보기 위해 멈춰 선 차들로 극심한 교통 정체를 겪기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그 광고 속, 통통하게 살이 오른 브룩 쉴즈의 모습에는 크리스티 털링턴을 비롯해 당시의 슈퍼모델들이 보여주는 완숙한 아름다움과는 또 다른 섹시함이 있다. 소녀시대도 요즘 진을 입고 나온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형형색색의 스키니 진을 입고 나올 때도 있고, 형형색색의 핫팬츠를 입고 나올 때도 있지만 ‘소녀’들이 가장 아름다워 보일 때는 정직한 블루 진을 입었을 때다.
흰 티에 청바지가 제일 예쁜 나이
언젠가 MBC <음악 중심>에서는 블루 진에 잘디 잔 깅엄 체크가 들어간 셔츠를 입고 배를 훤히 드러낸 채 등장했는데 빨갛고 노란 바지도 반짝이는 스팽글 티셔츠도 없었지만 어느 때보다 빛이 났다. 그 날 노래가 시작되면서 카메라에 잡힌 어느 멤버의 팔에는 분홍색 구슬 팔찌가 채워져 있었는데 그건 완벽한 ‘디테일’이었다. ‘소녀’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가지고 있었고, 가지고 싶어했을 법한 그 구슬 팔찌는 이미 어른이 된 몸과 충돌하는 한편으로 기막히게 어우러졌다.
앨범 재킷 사진도 마찬가지다. 하얀색 티셔츠에 블루 진, 특별한 소품이라고는 롤러 스케이트 밖에 없는 그 옷차림은 이들이 ‘소녀’임을 정확히 일깨우고 ‘소녀’들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에 집중하게 만듦으로써 어떤 값비싼 드레스보다 값진 역할을 해낸다. 앨범 안에 들어 있는 부클릿에는 멤버들이 면 소재 티셔츠 원피스를 입고 찍은 사진들도 들어 있는데, 요즘 소녀 그룹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요상한 ‘코스프레’ 드레스와 더불어 그 티셔츠 원피스를 입고 무대에 서지 않은 건 백 번 잘 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대놓고 “나 생각 없는 여자예요. 섹시해요?”를 말하는 옷에 대체 무슨 매력이 있을까.
이브 생 로랑이 소녀시대를 보았다면!
어릴 때, 엄마 몰래 사 입었던 옷들이 지금에서는 ‘내 스타일의 오점들’로 기억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이를 먹으면 입고 싶어도 못 입는 옷이 있다. 청바지와 무늬 없는 티셔츠가 그런 옷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몸의 실루엣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스키니 진과 ‘쫄티’는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한 어떤 장치(커다란 목걸이, 요란한 벨트 등등) 없이는 도전하기 힘들다. 몸의 군살도 군살이려니와 ‘가장 아름다운 때’를 지난 몸은 왠지 모르게 휑한 분위기를 지니게 되는 까닭이다. 그래서 청바지는 43킬로그램의 몸짱 아줌마보다는 58킬로그램의 여고생이 입었을 때 더 아름답다. 하이 패션 디자이너로는 최초로 데님을 상품화했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은 종종 이런 탄식을 내뱉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내가 블루 진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청바지는 수수한 한편으로 섹시하고, 강렬하면서도 심플해!” 이브 생 로랑이 아직 살아있었다면, 그래서 소녀시대가 청바지 입고 ‘Gee’를 부르는 모습을 보았다면 그의 한숨은 아마 더 깊어졌을 것이다.
사족. 어느 블로거가 형광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티셔츠와 같은 색 구두를 신은 소녀들의 사진 밑에 형광펜 사진을 붙여 놓은 걸 본 적 있다. 그걸 보고 한참을 웃은 기억이 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청바지와 쫄티에 어울리는 신발이 무엇인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신는 것보다 조금 덜 투박한 디자인이었으면 어떨까? 아니면 메리제인? 대답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글. 심정희 ( 패션디렉터)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흰 티에 청바지가 제일 예쁜 나이
언젠가 MBC <음악 중심>에서는 블루 진에 잘디 잔 깅엄 체크가 들어간 셔츠를 입고 배를 훤히 드러낸 채 등장했는데 빨갛고 노란 바지도 반짝이는 스팽글 티셔츠도 없었지만 어느 때보다 빛이 났다. 그 날 노래가 시작되면서 카메라에 잡힌 어느 멤버의 팔에는 분홍색 구슬 팔찌가 채워져 있었는데 그건 완벽한 ‘디테일’이었다. ‘소녀’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가지고 있었고, 가지고 싶어했을 법한 그 구슬 팔찌는 이미 어른이 된 몸과 충돌하는 한편으로 기막히게 어우러졌다.
앨범 재킷 사진도 마찬가지다. 하얀색 티셔츠에 블루 진, 특별한 소품이라고는 롤러 스케이트 밖에 없는 그 옷차림은 이들이 ‘소녀’임을 정확히 일깨우고 ‘소녀’들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에 집중하게 만듦으로써 어떤 값비싼 드레스보다 값진 역할을 해낸다. 앨범 안에 들어 있는 부클릿에는 멤버들이 면 소재 티셔츠 원피스를 입고 찍은 사진들도 들어 있는데, 요즘 소녀 그룹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요상한 ‘코스프레’ 드레스와 더불어 그 티셔츠 원피스를 입고 무대에 서지 않은 건 백 번 잘 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대놓고 “나 생각 없는 여자예요. 섹시해요?”를 말하는 옷에 대체 무슨 매력이 있을까.
이브 생 로랑이 소녀시대를 보았다면!
어릴 때, 엄마 몰래 사 입었던 옷들이 지금에서는 ‘내 스타일의 오점들’로 기억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이를 먹으면 입고 싶어도 못 입는 옷이 있다. 청바지와 무늬 없는 티셔츠가 그런 옷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몸의 실루엣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스키니 진과 ‘쫄티’는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한 어떤 장치(커다란 목걸이, 요란한 벨트 등등) 없이는 도전하기 힘들다. 몸의 군살도 군살이려니와 ‘가장 아름다운 때’를 지난 몸은 왠지 모르게 휑한 분위기를 지니게 되는 까닭이다. 그래서 청바지는 43킬로그램의 몸짱 아줌마보다는 58킬로그램의 여고생이 입었을 때 더 아름답다. 하이 패션 디자이너로는 최초로 데님을 상품화했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은 종종 이런 탄식을 내뱉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내가 블루 진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청바지는 수수한 한편으로 섹시하고, 강렬하면서도 심플해!” 이브 생 로랑이 아직 살아있었다면, 그래서 소녀시대가 청바지 입고 ‘Gee’를 부르는 모습을 보았다면 그의 한숨은 아마 더 깊어졌을 것이다.
사족. 어느 블로거가 형광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티셔츠와 같은 색 구두를 신은 소녀들의 사진 밑에 형광펜 사진을 붙여 놓은 걸 본 적 있다. 그걸 보고 한참을 웃은 기억이 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청바지와 쫄티에 어울리는 신발이 무엇인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신는 것보다 조금 덜 투박한 디자인이었으면 어떨까? 아니면 메리제인? 대답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글. 심정희 ( 패션디렉터)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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