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개그계는 그런 면에서 특이한 세계다. 공연에서의 스킨십은 물론 남녀를 가리지 않고 ‘센 농담’이 오간다. 선후배 간의 위계질서도 엄격한 대신 내부의 유대감은 굉장히 끈끈한데, 개그맨이 되기 전까지 평범한 학생이었다가 이 세계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어땠나.
박지선
: 처음 일주일 동안 5kg 정도가 빠졌다. 나는 학교도 연극영화과나 체육학과처럼 규율이 엄한 데가 아니라 “선배님!”하고 부르면 “야, 그냥 오빠라고 해~”하는 평범한 데를 다녔기 때문에 갑자기 여기에 왔을 땐 굉장히 긴장하고 ‘센 농담’에 깜짝깜짝 놀라고 그랬다. 그래서 그 당시 찍은 사진 보면 피골이 상접해 있다. 하지만 지내다 보니 어떨 땐 무섭게 혼내던 선배들도 사적으로는 “힘들지?”하면서 잘 해주시니까 무서운 게 진심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또 이해가 되는 게, 개그맨들은 전국 팔도에서 ‘똘기’있는 사람들, 무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수마다 열댓 명씩 모인 사람들이다. 그렇게 독특한 사람들만 모인 곳에서 규율이 없으면 얼마나 난장판이 되고 하극상이 생기겠나. 그런 식으로 나 스스로가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래서 한 달 지난 뒤에는 8kg이 쪘다. 하하. 아무 것도 안 해본 애 치고는 적응 잘 했다고 다들 신기해했다.

“내 비주얼이 이런데 굳이 벗어날 생각은 없다”

신인 때 ‘삼인삼색’의 부작용 캐릭터로 알려지고 ‘조선왕조부록’의 원빈으로 떠서 ‘봉숭아 학당’의 여성학자까지 왔다. 그런데 못생긴 여자 캐릭터를 계속 가져가는 데 대한 비판이나 아쉬움도 있다.
박지선
: 사실 ‘삼인삼색’ 때는 내가 개그를 제대로 해봤던 애도 아닌데 단지 캐릭터가 독특하다는 이유만으로 2개월 만에 모든 개그맨의 꿈인 <개콘> 무대에 믿고 올려주신다는 게 너무 고마웠다. 그래서 ‘왜 못생긴 역할을 시키나’ 하는 불만도 전혀 없었고. 원빈 캐릭터는 못생겼지만 그렇다고 기죽는 게 아니라 남자들을 부려먹고 우악스럽게 대하는 걸 통쾌하게 보신 분들도 많았다. 여성학자 같은 경우는 후반으로 갈수록 소재 때문에 외모에 관련된 얘길 많이 썼지만 연애술사에서는 그걸 벗어나려고 한다. 나도 황현희 선배가 하시는 말 개그 같은 걸 좋아하고, 똘똘하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개콘>은 워낙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보는 프로그램이라 ‘조선왕조부록’처럼 아이들이나 나이 드신 분들이 좋아하는 몸 개그적인 요소, 콩트도 필요하다. 물론 내가 가지고 있는 비주얼이 이런데 굳이 벗어날 생각은 없고, 그걸 이용하는 동시에 아이디어적인 개그도 하고 싶지만 급하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개그를 1, 2년 하고 그만 둘 건 아니니까.

요즘은 ‘봉숭아 학당’ 외에 새 코너도 기다려진다.
박지선
: 요즘에는 신고은 선배와 같이 할 코너를 만들고 있다. 고은 선배가 예전에 했던 ‘문화 살롱’같은 느낌으로. 그런데 금요일마다 있는 코너 검사에서 자체적으로 까인 것도 있고. 하하. ‘조선왕조부록’을 같이 했던 동기 오빠들과도 다시 같이 해보고 싶다. 동기들과 한 코너를 같이 할 때는 소품이나 리허설 스케줄 잡는 문제처럼 어려움도 있지만 정말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솔직히 최근 한 달 정도는 연애술사 캐릭터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신경을 많이 못 썼는데 이제 다시 스퍼트 해야지.

<개콘> 무대에서는 캐릭터가 강한 연기자인데 라디오나 버라이어티에 나가서도 음악 얘기나 가족 얘기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적응하는 것 같다.
박지선
: <개콘>이 아닌 데서는 ‘여성학자’나 ‘원빈’이 아닌 박지선으로 나가는 게 좋다. 하지만 일단 초반에는 “가체 쓰고 나와 주세요” “여성학자 복장으로 나와 주세요” 하는 제작진들의 요청을 따라간다. 그렇게 가서 한 번 잘 하고, 두 번 잘 한 것 같으면 세 번째 쯤은 “그냥 평범하게 하고 가도 될까요”라고 물어본다. 그렇게 원빈에서 박지선으로 점점 넘어가는 거, 무슨 일이든 둥글둥글하게 푸는 걸 좋아한다. 사실 그런 점에서 라디오가 좋긴 하다. 음악 얘기도 많이 할 수 있지만 비주얼적인 장치가 없이 그냥 내 얘기를 할 수 있으니까.

라디오야말로 그 사람이 가장 잘 드러나는 매체인데, 그만큼 말을 하다 보면 사고 나는 게 한 순간일 때도 있다.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는 데 대한 부담은 없나?
박지선
: 그래서 평소에 잘 하려고 한다. ‘내가 보통 때 나쁜 말을 많이 하고 지내면 방송에서도 실수를 할 수 있겠구나’ 싶어서 언제나 말을 부들부들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카메라 불 켰을 때랑 껐을 때 다른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냥 다 같은 캐릭터로 지내니까. 그냥, 편한 이미지면 좋겠다. 쟤는 동네 할머니들이랑 친했던 여자애, 수수해 보이는 여자애, 학력 좋다고 하던데 말하는 거 보니 어딘가 하나 비어 보이는 여자애. 그런 게 그대로 나오면 좋겠다.

“나이가 많이 들면 시골 분교 같은데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

방송 외에는 어떤 꿈이 있나.
박지선
: 나이가 많이 들면 시골 분교나 대안학교 같은, 일반 학생들보다 혜택을 덜 받거나 제도권 교육에 적응 못하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 내가 선생님이 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건 임용고사 준비가 힘들어서이기도 했지만, 인생 경험이 아무 것도 없는 내가 그냥 공부만 하고 선생님이 된 다음에 애들에게 “넌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살아라”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개그맨으로 일을 해 봤고 앞으로 계속 많은 경험을 쌓다 보면 나중에 선생님이 되었을 때 “선생님이 뭘 알아요?”하고 대드는 애들한테 “너, 개그맨실 집합 당해 봤어?” “너, 대학 축제라고 갔는데 다단계 행사였던 적 있냐?” 등등 해줄 말이 많지 않을까. 여러 가지 힘든 상황을 겪어 본 거에 대해 애들도 동질감을 느낄 거고. 물론 선생님이 되려면 거쳐야 하는 과정이 많으니까 정식 교사가 되지 못하더라도 아이들의 상담자는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2월부터는 대학 신입생들의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된다. 개그맨이 되기 전까지는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 잘 듣는 모범생으로 지낸 선배로서 그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은가.
박지선
: 무조건 경험을 많이 하면 좋겠다. 뭘 해야 할지 모를 때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모험적인 걸 해보는 게 좋다. 돈 없어서 여행 못 가는 게 아니라, 돈 없이 그냥 가보는 거다. 너무 학교 공부에만 매달리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다른 길을 선택해서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처럼, 전공에 얽매이지 말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찾길 바란다. 사실 학생이라는 건 그렇게 방황하면서도 특급대우를 받는 위치니까 최고다. 사회에 나오기 전의 유예기간,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기간이니까.

지금 다시 신입생 시절로 돌아간다면 연애를 경험해야 하지 않겠나?
박지선
: 노력을 할 거다. 털털한 성격, 분명 그것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알겠다. 너무 안 꾸몄던 게 패인이다. 술 마시고 밤새 노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해도 남자친구 사귈 애들은 다 사귄다. 나도 조금만 더 여성스럽게 하고, 매일 추리닝 입는 게 아니라 원피스 한 번 사 입고, 구두 하나 사 신고, 그랬어야 하는데!

그걸 알면서 왜 지금 그렇게 안 하나. (웃음)
박지선
: 하아…힘들어서. 내가, <개콘> 아이디어 짜느라 좀 힘들다. 옷 차려입을 정신이 없다. 아니 사실은 절실하지 않아서 그런가? 아무래도 기타리스트 소년이 빨리 유학 가고, 시아준수가 한류 스타 되고, 샤이니도 해외 진출하고, 희열 오빠도 어디로 좀 사라지고 그래야 연애를 할 것 같다. 이 사람들 다 갑자기 유학 가면 내가 보낸 줄 알아라. 하하하.

평소 ‘멋쟁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어떤 의미인가.
박지선
: 특별한 생각은 없지만, 그냥 좋아서 쓴다. 나는 “하하하하하하하!”라는 말도 굉장히 많이 쓴다. 심지어 레포트에도 “하하하하하”를 썼을 정도다. 하하! 신기한 게, 일기를 쓸 때 “나는 왜 이것 밖에 안 될까. 왜 이럴까” 하면 점점 기분이 그렇게 처진다. 그냥 “하하하하하!”하고 “나는 멋쟁이!”라고 하면 생각도 긍정적으로 된다.

그럼 지금 박지선은 멋쟁이처럼 살고 있나?
박지선
: 그렇다. 하하. 우리 모두는 멋쟁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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