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고 스트레스 안 받았더니 잘 컸나 봐요.” 언제 키가 그렇게 컸냐는 질문에 전혜진은 정말 스트레스와는 거리가 먼, 시원한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현재 출연 중인 SBS <가문의 영광> 현장이 “쪽대본도 없고 분위기도 좋다”지만 막 오전 촬영을 마치고 왔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에너지 넘치는 웃음과 구김살 없는 표정이다. 어쩌면 그녀의 대답은 데뷔 후 10년 동안 정말 ‘잘 큰’ 현재의 모습에 대한 대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브라운관과 스크린 속에서 자란 아이
자신의 배역 이름이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했던 SBS <은실이> 속 은실이로 인상 깊은 아역 연기를 보여준 이후 전혜진의 이미지는 개개의 배역이 아닌, 성장 그 자체였다. 은실이 이후 중학생 때는 언니의 옛 남자친구에게 ‘네가 사람이냐?’고 쏘아대던 MBC <네 멋대로 해라>의 현지를, 고등학생 때는 교복입고 담배를 피우던 영화 <신부수업>의 불량소녀를 연기하며 그녀는 문득문득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부쩍 자란, 아니 자라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기분이 드는 건 그 때문이다. 착한 심성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던 은실이의 맑은 눈망울부터 짝사랑하는 남자가 다 마시고 버린 종이컵을 소중히 간직하는 혜주(<가문의 영광>)의 무기력한 표정까지, 그동안 거쳐 간 필모그래피의 흔적을 얼굴 곳곳에서 찾아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 역할은 단 한 번도 연기한 적이 없다”는 그녀라 해도 현지처럼 성깔 있는 모습이, 혹은 영화 <궁녀>의 미친 궁녀 정렬의 광기가 얼굴에 그대로 드러날 리는 없다. 다만 “두 작품을 다 잘할 자신이 없다면 욕심 부리지 않고 하나에만 집중하는 게 맞다”고 말할 때 느껴지는 강단과 영화 <클로저>와 나탈리 포트만의 매력에 대해 흥분하며 말하는 모습에서 이런 연기들의 어떤 원형을 확인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만약 “딸이 되바라지는 모습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 어머니의 교육 아래 온전한 학교생활을 하고 자신의 뚜렷한 생각과 취향을 가진 개인으로 성장하지 못했다면, 그래서 ‘잘 먹지도 못하고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면’ 오히려 연기자로서 성장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은실이 보다 전혜진이 기분 좋은 지금
<가문의 영광>에서 자칫하면 자폐아로 오인 받을 수 있는 혜주의 감정선을 능란하게 조절하며 실력 있는 성인 연기자로 거듭난 것도 마찬가지다. 아오이 유우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 <도쿄!>에서 보여 준, 생각을 알 수 없지만 멍하진 않은 표정 연기의 탁월함에 대해 본인 역시 꿈꾸는 듯한 얼굴로 말할 수 있는 그녀기에 <가문의 영광>의 정지우 작가 역시 “혜주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부분이 많으니 앞으로 같이 채워가자”고 제안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자신을 은실이로 기억해주는 것이 싫진 않지만, 지난 <가문의 영광> 제작발표회 기사에서 아무 수식 없이 배우 전혜진으로 소개된 것이 기분 좋았다고 말하는 이 20대 초반의 배우에게 이제 아역이라는 굴레와 성장이라는 이미지는 어울리지 않을지 모른다. 그만큼 그녀는 모든 면에서 잘 컸다. 아마 한 해가 다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해했던 사람이라면 아쉬워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침 많은 연예계에서 어긋난 길을 걸어본 적 없이 10년의 경력을 쌓은 젊은 배우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좋은 연기자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역시 제법 뿌듯한 과정일 것이다. 비록 그녀의 키는 더 이상 자라지 않을지 몰라도.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브라운관과 스크린 속에서 자란 아이
자신의 배역 이름이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했던 SBS <은실이> 속 은실이로 인상 깊은 아역 연기를 보여준 이후 전혜진의 이미지는 개개의 배역이 아닌, 성장 그 자체였다. 은실이 이후 중학생 때는 언니의 옛 남자친구에게 ‘네가 사람이냐?’고 쏘아대던 MBC <네 멋대로 해라>의 현지를, 고등학생 때는 교복입고 담배를 피우던 영화 <신부수업>의 불량소녀를 연기하며 그녀는 문득문득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부쩍 자란, 아니 자라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기분이 드는 건 그 때문이다. 착한 심성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던 은실이의 맑은 눈망울부터 짝사랑하는 남자가 다 마시고 버린 종이컵을 소중히 간직하는 혜주(<가문의 영광>)의 무기력한 표정까지, 그동안 거쳐 간 필모그래피의 흔적을 얼굴 곳곳에서 찾아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 역할은 단 한 번도 연기한 적이 없다”는 그녀라 해도 현지처럼 성깔 있는 모습이, 혹은 영화 <궁녀>의 미친 궁녀 정렬의 광기가 얼굴에 그대로 드러날 리는 없다. 다만 “두 작품을 다 잘할 자신이 없다면 욕심 부리지 않고 하나에만 집중하는 게 맞다”고 말할 때 느껴지는 강단과 영화 <클로저>와 나탈리 포트만의 매력에 대해 흥분하며 말하는 모습에서 이런 연기들의 어떤 원형을 확인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만약 “딸이 되바라지는 모습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 어머니의 교육 아래 온전한 학교생활을 하고 자신의 뚜렷한 생각과 취향을 가진 개인으로 성장하지 못했다면, 그래서 ‘잘 먹지도 못하고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면’ 오히려 연기자로서 성장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은실이 보다 전혜진이 기분 좋은 지금
<가문의 영광>에서 자칫하면 자폐아로 오인 받을 수 있는 혜주의 감정선을 능란하게 조절하며 실력 있는 성인 연기자로 거듭난 것도 마찬가지다. 아오이 유우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 <도쿄!>에서 보여 준, 생각을 알 수 없지만 멍하진 않은 표정 연기의 탁월함에 대해 본인 역시 꿈꾸는 듯한 얼굴로 말할 수 있는 그녀기에 <가문의 영광>의 정지우 작가 역시 “혜주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부분이 많으니 앞으로 같이 채워가자”고 제안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자신을 은실이로 기억해주는 것이 싫진 않지만, 지난 <가문의 영광> 제작발표회 기사에서 아무 수식 없이 배우 전혜진으로 소개된 것이 기분 좋았다고 말하는 이 20대 초반의 배우에게 이제 아역이라는 굴레와 성장이라는 이미지는 어울리지 않을지 모른다. 그만큼 그녀는 모든 면에서 잘 컸다. 아마 한 해가 다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해했던 사람이라면 아쉬워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침 많은 연예계에서 어긋난 길을 걸어본 적 없이 10년의 경력을 쌓은 젊은 배우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좋은 연기자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역시 제법 뿌듯한 과정일 것이다. 비록 그녀의 키는 더 이상 자라지 않을지 몰라도.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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