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미영 작가]
*이 글에는 ‘옷코는 초등학생 사장님!’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나에게 첫 텔레비전은 전자제품이 아니라 가구와도 같았다. 우리 집에 처음으로 등장한 텔레비전은 외관은 나무로 마감이 되었고, 밑으로는 네 개의 다리가 지탱하고, 수상기 양 옆으로는 스피커가 있고, 브라운관 앞으로 문짝을 달아서 여닫을 수가 있었다. 꽤 살뜰한 아빠 덕분에 텔레비전 문이 자주 열리지 않았기에 더더욱 가구처럼 여겨졌다. 나는 낮에 부모님이 없는 시간을 틈타서 안방으로 살금살금 들어가곤 했다. 브라운관을 가린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리고 브라운관에 상상 속 친구들을 그리고, 이야기를 채우며 키들거렸다.
이후 비교적 요즈음 텔레비전의 모습과 닮은, 전자제품에 가까운 텔레비전과 함께했다. 안방극장이라는 표현처럼, 그 시절 텔레비전은 가족의 희로애락을 책임졌다. 아빠가 야구 중계에 빠졌듯, 엄마가 일일연속극에 빠졌듯, 나는 만화 영화에 빠졌다. 그 시절 만화 영화의 주인공들은 참 씩씩하고 밝았다. 심하게 전형적이었다. 그래도 그들의 순정(純情)에 늘 마음이 동했다.
하나노유는 신께서 내려주신 물로 야생동물이 상처를 치료하던 곳으로 동물과 인간 그 누구도 거부하지 않고 치유하는 곳으로 불린다. 하나노유 온천마을에서 미네코는 일흔 살의 고령에도 직원 에츠코, 요리사 코우와 함께 방 4칸짜리 료칸 ‘봄의 집’을 운영한다. (료칸은 다다미 객실과 정원, 온천 그리고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일본의 전통 여관을 뜻한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열두 살 옷코(코바야시 세이란)는 외할머니 미네코에게 오게 된다.
‘봄의 집’에 도착하고 옷코는 이내 콧구멍을 후비적거리는 것이 일상인 유령 우리보(마츠다 사츠미)와 마주한다. 처음에는 식겁하지만 금세 곁을 내어준다. 우리보는 외할머니 미네코의 어릴 적 친구이고, 곁에서 외할머니를 지켜볼 수 있음에 행복을 느끼는 유령 소년이므로. 우리보는 옷코를 구슬려서 료칸의 ‘작은 사장님’으로 미네코를 돕게끔 한다. 미네코는 자신의 기모노를 손녀 옷코에 맞게 수선하고, 옷코는 기모노와 료칸의 업무가 몸에 배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학교에서 옷코는 일찍부터 마을에서 가장 큰 료칸의 후계자로 키워진, 본명 마츠키(미즈키 나나)보다 핑프릴로 통하는 소녀를 만난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소녀는 첫 만남부터 팽팽하게 맞선다. 옷코는 우리보에 이어 유령 소녀 미요(엔도 리나)를 보게 된다. 미요는 ‘맹꽁이 사장’이라 놀려도 예사로이 받아주는 옷코의 곁을 맴돌게 된다.
옷코는 꼬마 도깨비 종돌이의 봉인도 풀어준다. 유령과 달리 인간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아니 탐하는 먹깨비다. 요괴라서 개성 있는 사람과 궁합이 딱인 종돌이는 개성 넘치는 손님을 하나 둘 료칸으로 이끈다. ‘봄의 집’ 식구들의 따스한 서비스로 손님들은 힘을 얻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시간이 흘러 옷코와 유령 친구들 사이에 이별의 날이 찾아든다. 선택된 아이들이 신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카구라 춤을 추는 날에. 외할머니 미네코의 연주에 맞춰 옷코는 마츠키와 함께 카구라 춤을 추며 유령 친구들을 떠나보낸다. 하늘에서 펄펄 꽃비가 내린다.
지난달 27일 개봉한 ‘옷코는 초등학생 사장님!’(若おかみは小?生!)은 동명의 아동 문학을 원작으로 한다. ‘고양이의 보은’(2002) ‘목소리의 형태’(2016)의 작가 요시다 레이코가 각본을 맡았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모노노케 히메’(1997)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등에서 원화와 작화를 맡았던 코사카 키타로는 첫 연출작 ‘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2003)을 내놓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차기작으로 돌아왔다. 안팎으로 짜임새가 느껴지는 작가와 감독의 조합이다.
옷코는 죽은 엄마, 아빠의 푸근한 품이 못내 그립다. 문득문득 살아있는 것처럼 여겨질 만큼. 아직 혼자인 것이 두려운 열두 살 옷코에게 사연이 있는 유령과 사연이 있는 손님이 다가온다. 그리고 옷코는 외할머니의 친구였던 우리보, 마츠키의 언니였던 미요, 그리고 각각의 손님들과 벗이 된다. ‘봄의 집’의 어엿한 작은 사장님이 된다. 옷코의 한 뼘 성장이 진심 곱다.
“푸딩에서 봄의 맛이 나네.”
극 중 옷코의 대사다. 어린 시절에 말이다. 만화 영화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소박하지만 참 힘이 났다. 이따금 주저앉고 싶은 순간에도 기지개를 켤 수 있었다. 그 시절, 한입에 쏘옥 들어오던 포근포근한 위로를 오랜만에 다시금 맛볼 수 있었다. 봄의 맛이 나는 애니메이션이다.
박미영 작가 stratus@tenasia.co.kr
[박미영 영화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한 작가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진위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텐아시아에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나에게 첫 텔레비전은 전자제품이 아니라 가구와도 같았다. 우리 집에 처음으로 등장한 텔레비전은 외관은 나무로 마감이 되었고, 밑으로는 네 개의 다리가 지탱하고, 수상기 양 옆으로는 스피커가 있고, 브라운관 앞으로 문짝을 달아서 여닫을 수가 있었다. 꽤 살뜰한 아빠 덕분에 텔레비전 문이 자주 열리지 않았기에 더더욱 가구처럼 여겨졌다. 나는 낮에 부모님이 없는 시간을 틈타서 안방으로 살금살금 들어가곤 했다. 브라운관을 가린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리고 브라운관에 상상 속 친구들을 그리고, 이야기를 채우며 키들거렸다.
이후 비교적 요즈음 텔레비전의 모습과 닮은, 전자제품에 가까운 텔레비전과 함께했다. 안방극장이라는 표현처럼, 그 시절 텔레비전은 가족의 희로애락을 책임졌다. 아빠가 야구 중계에 빠졌듯, 엄마가 일일연속극에 빠졌듯, 나는 만화 영화에 빠졌다. 그 시절 만화 영화의 주인공들은 참 씩씩하고 밝았다. 심하게 전형적이었다. 그래도 그들의 순정(純情)에 늘 마음이 동했다.
하나노유는 신께서 내려주신 물로 야생동물이 상처를 치료하던 곳으로 동물과 인간 그 누구도 거부하지 않고 치유하는 곳으로 불린다. 하나노유 온천마을에서 미네코는 일흔 살의 고령에도 직원 에츠코, 요리사 코우와 함께 방 4칸짜리 료칸 ‘봄의 집’을 운영한다. (료칸은 다다미 객실과 정원, 온천 그리고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일본의 전통 여관을 뜻한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열두 살 옷코(코바야시 세이란)는 외할머니 미네코에게 오게 된다.
‘봄의 집’에 도착하고 옷코는 이내 콧구멍을 후비적거리는 것이 일상인 유령 우리보(마츠다 사츠미)와 마주한다. 처음에는 식겁하지만 금세 곁을 내어준다. 우리보는 외할머니 미네코의 어릴 적 친구이고, 곁에서 외할머니를 지켜볼 수 있음에 행복을 느끼는 유령 소년이므로. 우리보는 옷코를 구슬려서 료칸의 ‘작은 사장님’으로 미네코를 돕게끔 한다. 미네코는 자신의 기모노를 손녀 옷코에 맞게 수선하고, 옷코는 기모노와 료칸의 업무가 몸에 배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학교에서 옷코는 일찍부터 마을에서 가장 큰 료칸의 후계자로 키워진, 본명 마츠키(미즈키 나나)보다 핑프릴로 통하는 소녀를 만난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소녀는 첫 만남부터 팽팽하게 맞선다. 옷코는 우리보에 이어 유령 소녀 미요(엔도 리나)를 보게 된다. 미요는 ‘맹꽁이 사장’이라 놀려도 예사로이 받아주는 옷코의 곁을 맴돌게 된다.
옷코는 꼬마 도깨비 종돌이의 봉인도 풀어준다. 유령과 달리 인간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아니 탐하는 먹깨비다. 요괴라서 개성 있는 사람과 궁합이 딱인 종돌이는 개성 넘치는 손님을 하나 둘 료칸으로 이끈다. ‘봄의 집’ 식구들의 따스한 서비스로 손님들은 힘을 얻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시간이 흘러 옷코와 유령 친구들 사이에 이별의 날이 찾아든다. 선택된 아이들이 신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카구라 춤을 추는 날에. 외할머니 미네코의 연주에 맞춰 옷코는 마츠키와 함께 카구라 춤을 추며 유령 친구들을 떠나보낸다. 하늘에서 펄펄 꽃비가 내린다.
지난달 27일 개봉한 ‘옷코는 초등학생 사장님!’(若おかみは小?生!)은 동명의 아동 문학을 원작으로 한다. ‘고양이의 보은’(2002) ‘목소리의 형태’(2016)의 작가 요시다 레이코가 각본을 맡았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모노노케 히메’(1997)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등에서 원화와 작화를 맡았던 코사카 키타로는 첫 연출작 ‘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2003)을 내놓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차기작으로 돌아왔다. 안팎으로 짜임새가 느껴지는 작가와 감독의 조합이다.
옷코는 죽은 엄마, 아빠의 푸근한 품이 못내 그립다. 문득문득 살아있는 것처럼 여겨질 만큼. 아직 혼자인 것이 두려운 열두 살 옷코에게 사연이 있는 유령과 사연이 있는 손님이 다가온다. 그리고 옷코는 외할머니의 친구였던 우리보, 마츠키의 언니였던 미요, 그리고 각각의 손님들과 벗이 된다. ‘봄의 집’의 어엿한 작은 사장님이 된다. 옷코의 한 뼘 성장이 진심 곱다.
“푸딩에서 봄의 맛이 나네.”
극 중 옷코의 대사다. 어린 시절에 말이다. 만화 영화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소박하지만 참 힘이 났다. 이따금 주저앉고 싶은 순간에도 기지개를 켤 수 있었다. 그 시절, 한입에 쏘옥 들어오던 포근포근한 위로를 오랜만에 다시금 맛볼 수 있었다. 봄의 맛이 나는 애니메이션이다.
박미영 작가 stratus@tenasia.co.kr
[박미영 영화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한 작가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진위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텐아시아에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