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노규민 기자]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 스틸컷/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 스틸컷/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서대문 감옥 여옥사 8호실에 앳된 소녀 한 명이 끌려 들어왔다. 얼마나 얻어 맞았는지 한쪽 눈은 함몰 직전이다. 8호실 수감자 중 몇 명은 그를 알고 있었다. 1919년 3.1 만세운동 이후 충남에서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열입곱 살 유관순이다.

3평 남짓한 작은 감방 안에 30명 가까운 여성들이 서로 밀착한 채 모여 있다. 발 디딜 틈도 없다. 나이가 들었거나 몸이 불편한 몇몇만 겨우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다. 그 중엔 임산부도 있다. 한 자리에 계속 서 있으면 다리가 굳어 경련이 오거나 마비된다. 여성들은 꼿꼿하게 선 채로 앞사람을 따라 연신 옥사 안을 뱅뱅 돈다. 종일 걷고 또 걷는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항거: 유관순 이야기’/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말 몇 마디도 마음대로 못한다. 말하는 소리가 흘러나가는 순간, 간수는 날을 세우고 방 안을 노려본다. 잘못 걸리면 또 끌려가서 고문을 받거나, 독방 신세를 지게 된다. 마치 개굴개굴 울다가 누군가 나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지는 개구리처럼 모두가 숨을 죽인다.

유관순은 불편한 심경을 숨기지 않았다. 뒷 일을 생각 못 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당당했다. 제 몸이 망가지는 한이 있어도 나라와 부모를 빼앗아간 일제 앞에서 침묵할 수 없었다. 그녀가 입을 연 순간 너나 할 것 없이 한 명 한 명 외치기 시작했다. “우린 개구리가 아니다. 우린 개구리가 아니다”

그리고 1년 뒤 유관순의 입에서부터 시작된 또 다른 한 마디는 서울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봄날 싹이 움트듯 웅크리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두 팔을 뻗고 외쳤다. “대한 독립 만세”

‘항거: 유관순 이야기’ 스틸컷./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항거: 유관순 이야기’ 스틸컷./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유관순이 서대문 감옥에 갇힌 후 1년여의 이야기를 담았다. 조민호 감독은 “우연히 서대문 형무소에 들렀다가 유관순 열사의 사진을 봤다. 슬프지만 당당한 눈빛을 보고 영화에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이지만 그동안 유관순과 그의 감옥살이를 담은 영화는 없었다. 조 감독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유와 해방을 향한 꿈을 굽히지 않았던 유관순의 삶을 정직하게 담아냈다.

3·1운동 1주년을 기념해 1920년 여옥사 8호실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됐다는 이야기도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다. 여옥사 8호실에는 유관순 이외에도 수원에서 30여 명의 기생을 데리고 시위를 주도했던 기생 김향화, 다방 직원이었던 이옥이, 유관순의 이화학당 선배 권애라, 감옥 안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기른 임명애 등 다양한 인물들이 수감돼 있었다.

영화는 유관순을 중심으로 3평 남짓한 작은 옥사 안에서 일제에 당당하게 맞선 여성들의 우정과 연대를 보여주며 뜨거운 울림을 선사한다. 여옥사 8호실 여성들이 줄줄이 서서 옥 안을 하염없이 걷는 장면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잔상이 남을 정도로 충격적이다. 알고 있었어도 고문과 폭행 등 일제의 야만적인 행태를 보는 내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항거: 유관순 이야기’/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를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후 흑백과 컬러로 나눠 편집한 점도 독특하다. 유관순의 과거 회상 장면 정도만 컬러일 뿐 서대문 옥사에서의 이야기는 모두 흑백으로 표현했다. 흑백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은 처음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물이 처한 상황과 그들의 감정이 더 애잔하게 다가온다. 또한, 널찍한 풍경이나 공간 등이 흑백으로 표현된다면 다소 답답할 수 있지만 옥사라는 한정된 공간이기에 그 특징이 더 두드러지며, 인물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무엇보다 고아성은 몰입도 높은 연기로 관객들의 감정을 움직인다. 유관순의 슬픔부터 불안한 심리, 당당함, 리더십까지, 내면부터 외면까지 유관순 자체가 됐다. 여기에 김새벽, 김예은, 정하담 등 주목받는 신예들이 펼치는 연기 앙상블이 놀랍다. 그때의 여옥사 8호실 사람들처럼 단단하게 하나가 돼 열연한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오는 27일 개봉한다.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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