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유청희 기자]
배우 이이경./사진제공=HB엔터테인먼트
배우 이이경./사진제공=HB엔터테인먼트
‘자신이 없었다.’ 이이경은 최근 종영한 MBC ‘붉은 달 푸른 해’의 대본을 받았을 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tvN ‘국경 없는 포차’ 촬영 당시 파리에 있을 때였다. ‘고백부부’에 이어 ‘으라차차 와이키키’의 유쾌한 모습, ‘검법남녀’로는 쾌활한 형사의 모습을 보여준 그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 사람들이 웃을까봐 걱정했단다. 대본부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그가 자세를 고쳐 잡고 한 자 한 자 읽어내려 간 대본이 지금의 ‘붉은 달 푸른 해’가 되었다. 형사 강지헌과 함께 고민하고 성장한 배우 이이경을 만났다.

10. 악플 달릴 각오까지 하고 ‘붉은 달 푸른 해’를 선택했다고 들었다. 왜 그런 각오가 필요했나?

이이경: 내가 느끼는 내 모습이라는 게 있다. 아직도 내가 나오면 ‘얼굴만 봐도 웃기다’라고 하는 분들도 있고. ‘으라차차 와이이키’ 때 너무 재미있는 모습을 많이 보여드렸다. 거기다 이번 작품은 아동학대를 다룬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드라마에서 형사 역할인데, 단순히 흉내나 분위기로만 캐릭터를 꾸며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욕 먹는걸 떠나서 나로 인해 드라마에 피해가 갈까 엄청 걱정이 되는 거다. ‘검법남녀’에 이어 연달아 형사 역할을 보여주는 것도 걱정됐고. 그런데도 이겨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말은 지금에서야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자신이 없다’는 말을 많이 했다.

10. ‘검법남녀’에 이어서 또 형사 역할이었다.

이이경: 그렇다. 드라마로는 연달아, 또 같은 방송사에서 형사 역을 보여주게 되는 거니까 여기서 오는 딜레마가 있었다. 그래도 미란다원칙을 말하거나 할 때는 앞선 작품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이경은 “형사 강지헌이 시청자와 극을 연결해주는 인물이라 부담이 많았다”고 했다./사진제공=HB엔터테인먼트
이이경은 “형사 강지헌이 시청자와 극을 연결해주는 인물이라 부담이 많았다”고 했다./사진제공=HB엔터테인먼트
10. 배우의 입장에서, ‘검법남녀’의 차수호 형사와 ‘붉은 달 푸른 해’의 강지헌 형사는 어떻게 달랐나?

이이경: 원래 역할을 맡을 때 포지셔닝을 정확하게 하려는 편이다. ‘검법남녀’의 수호는 부검 현장을 벗어나 사건 현장에서 제일 많이 돌아다니는 캐릭터라 활동성에 신경썼다. 그런 수호의 순수한 면을 가지고 스테파니 리와 확실히 환기할 수 있는 연기를 하는 것도 중요했고. 이번 작품에서는 (김)선아 선배가 극 안에 완전히 빠져있는 인물이라면, 나는 시청자에게 전달하고 연결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참 어려웠다. 형사 역할이 나오면 원래 통쾌함이 큰데, 우리 드라마는 사건이 계속 풀리지 않는다. 거기서 오는 답답함을 내가 잘 이끌고 가야 시청자들이 오히려 계속 궁금하게 따라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점이 가장 다르고 어려웠다.

10. 대본도 밀도가 높았다. 아동학대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뤄서 어렵지 않았나?

이이경: 많았다. 한 번 읽어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대본이었다. 일단 대사 자체에 정보 전달이 많았다. 8할이 정보였는데, 그 안에서 아동학대라는 주제가 드러난다. 살면서 아동학대라는 주제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볼 일이 없었다. 실제로 이런 사례들이 있느냐고 감독님에게 물어봤더니 ‘실제 사례는 너무 심해서 드라마에 쓸 수가 없다. 드라마로 미화한 게 이 정도’라고 하셨다. 강지헌은 아이들이 힘든 걸 함께 바라보는 역할이었기도 했다. 그 점이 힘들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지 않았을까.

10. 가장 감정적으로 이끌린 장면이 있었다면?

이이경: 강지헌이 붉은울음(아동학대 가해자만을 벌하는 범인)을 취조하다가 동료인 수영(남규리)보고 나가라고 하는 장면. 붉은울음과 강지헌 둘만 취조실에 남아있는데, 그 다음에 나한테 최면을 건다. 마지막 회를 종영 당일 오전 10시 정도까지 찍었다. 그 장면도 대본이 두 번 정도 수정된 거였다. 원래 취조하다 그냥 끝나는 건데,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면서 지헌이 수영 보고 나가라고 한다. 원래는 없던 대본이었다. 그 장면을 찍는데 콧물에 침까지 나오면서 NG가 많이 났다. 몇 번이나 찍었는데도 눈물이 계속 났다.

MBC ‘붉은 달 푸른 해’ 마지막 회 방송 캡처
MBC ‘붉은 달 푸른 해’ 마지막 회 방송 캡처
10. 무엇 때문에 그렇게 눈물이 났나?

이이경: 그때 대사가 ‘경찰이 못한 일을 은호(차학연)가 한 거 아니야’는 말을 한다. ‘경찰은 얼마나 무능력하냐’ 등등. 시대를 비꼬는 말이기도 했다. 극 안에서 은호 캐릭터에게 공감을 많이했다. 그래서 울었던 것 같다. 일단 무능력한 강지헌이 싫기도 했고.

10. 감정을 쓰는 연기를 오랜만에 하니까 힘들지는 않던가?

이이경: 그렇지는 않았다. 연기를 할 때, 감정을 건드리는 장면은 오히려 어렵지 않으니까. 조연들을 보면 리액션 대사 하나를 갖고 끙끙 앓는다. 왜냐면 그게 정말 어려우니까. 이를테면 앞에서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끝에서 ‘그 말이 정말 맞습니다!’라는 대사를 하나 하는 거다. 그 대사 한마디 할 때까지 앞에 말을 계속 받아주고 리액션을 다 받아줘야 한다. 그에 비하면 감정이 크게 건드려지는 장면은 오히려 연기할 때 수월하다.

10. ‘붉은달 푸른해’에 대한 호평이 많았지만 시청률은 높지 않았다. 아쉽지 않았나.

이이경: 시청률이 항상 4~6%대에 있어준 게 나는 고마웠다. 고정 시청자와 같이 가는 기분이었으니까. 채널 올리면 ‘남자친구’(tvN)가 있고 내리면 ‘황후의 품격’(SBS)이 있지 않았나. 장르도 분위기도 완전히 달랐다. 현장에서도 시청률 때문에 흐트러지는 건 전혀 없었다. 다른 분들도 그랬을 거다. (김)선아 선배님이랑 차 안에서 대화를 많이 했는데, “이경아, 너 이 작품 한 거 후회 절대 안할 거야’ ‘너, 이거 계속 남을 거야. 우리 작품 정말 좋은 작품이야.’ 이런 말을 정말 많이 해주셨다. 그런 말은 마음에 남는다고 생각한다. 큰 힘이 됐다.

배우 이이경은 “고정 시청률이 꾸준히 있어줘서 함께하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사진제공=HB엔터테인먼트
배우 이이경은 “고정 시청률이 꾸준히 있어줘서 함께하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사진제공=HB엔터테인먼트
10. 작품이 어두운 데 비해 촬영 현장 분위기가 좋아보였다.

이이경: 그렇다. 메이킹 영상들을 보면 내가 정말 장난을 많이 치고 있을 거다. 현장만큼은 유쾌했다. 대본도 무거운데 현장까지 무거우면 다른 분들이 출근하는 길이 우울할 것 같아서. 내가 재미를 찾아주고 싶었다. 말 잘 통하는 스태프들이랑 자주 놀았고, 감독님, 선아 선배랑 얘기를 정말 자주했다. 그러다가도 바로 촬영에 들어가고. 배우들끼리 이렇게까지 다 좋아도 되나 할 정도로 끈끈해졌다. 차학연과도 대화를 정말 많이 했다. 사근사근하고 너무 좋은 친구다. 종방연 때도 ‘형 옆자리는 저예요’라고 문자가 왔다.(웃음)

10. 드라마부터 예능까지. 데뷔하고 나서 쉰 적이 없는 것 같다. 방송에 안 나와도 어떤 독립영화라도 꼭 하고 있더라. 지치지는 않나?

이이경: 그냥 내가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신기해서 계속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일을 할 때 일한다는 느낌이 별로 안 든다. 힘이들더라도, 연기는 끝나면 다시 또 새로운 캐릭터를 만날 수도 있다. 내가 좀 워커홀릭이다. 집에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10. 차기작도 벌써 ‘으라차차 와이키키2’로 정해졌다. 시즌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더 특별할 것 같은데.

이이경: 그렇다.너무 좋은 분들, 이준기(이이경)를 만들어주었던 감독님과 작가님의 대본을 또 만난다. 단순히 ‘의리’를 떠나서 나를 위해 기다려준 것이 정말 감사하다. ‘한 번 한 걸 왜 또 하느냐’고 주변 분들이 조금 걱정해주셨다. 그런데, 나는 아직 캐릭터가 겹칠까봐 걱정할 나이는 아닌 것 같다. 찾아주는 분들이 있을 때, 보여줄 수 있을 때 더 많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10. 한동안 유쾌한 캐릭터로 많이 나왔지만 사실 악역도 많이 했고, 영화 ‘괴물들’ 등 어두운 작품에도 많이 나왔다. 다작하는 배우 이이경에게 ‘붉은 달 푸른 해’는 어떻게 남을 것 같나.

이이경: 작품을 대하는 마음과 집중력을 주는 작품. 끝까지 내게 집중력을 줬다. 그렇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작품이었다. 체감상 가장 빠르게 지나갔고, 대본이 찢어지기까지 읽으면서 고민했다. 좀 더 다양한 역할을 하는 데 자신감을 주기도 했다. 책임감에 무겁고 힘들었지만, 오랫동안 지헌이 캐릭터가 남아있을 것 같다.

유청희 기자 chungvsky@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