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매주 1회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1920년대 초 동경에 박열(이제훈)이라는 조선인 무정부주의자와 그와 함께하는 일단의 독립투쟁 청년들이 있었다. 이들은 어디선가 자금을 끌어와 매국노를 린치하거나 폭탄 투척 등의 과격한 투쟁을 벌였다. 어느 날 후미코(최희서)라는 묘한 일본인 아가씨가 박열을 찾아온다. 그녀는 박열과 같은 무정부주의자이며 동지이자 애인으로 언제나 큰 힘을 주는 존재가 된다. 그러다가 1923년에 동경을 중심으로 관동대지진이 일어난다. 내무대신 미즈노(김인우)는 희생양을 찾아 국민들의 불만을 돌리고자 지진 후에 벌어진 혼란이 모두 조선인의 소행이라는 소문을 퍼뜨린다. 이에 자극받은 일본인 애국청년들의 무차별 학살이 벌어지고 박열은 신변의 위협을 느껴 상대적으로 안전한 경찰서에 체포되어 갇히기로 작정한다.
조선인 폭동의 확실한 증거를 남기려 고민하던 미즈노는 마침 감옥에 있던 박열을 선택해 그가 폭탄 테러를 모의했다는 죄를 뒤집어 씌우려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박열과 후미코의 재판. 영화의 본격적 시작은 이 때부터다.
감독은 재판을 재구성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재판이라는 게 사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법리 공방으로 이어지는 까닭에 극적 재미를 찾아 연결하다 보면 연출의 힘이 부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사실을 외면하거나 왜곡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한계를 느껴서인지는 몰라도 감독은 끊임없이 박열의 배짱과 후미코의 돌발 행동을 부각시켜 관객에게 재미를 선사하려 한다. (후미코 역의 최희서는 어디서 갑자기 나온 배우인지는 몰라도 연기가 대단했다.) 그 작업이 눈물겹게 느껴졌지만 종종 영화의 주제의식을 훼손시킨다는 인상을 받았다. 힘차게 시작했던 도입부와 여운을 주어 마땅한 엔딩 크레딧이 그만 빛을 잃고 말았다. 재판 과정이 감독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루했던 것이다. 또한 대지진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일본 내각의 우유부단함과 재판부가 보여준 무력함 역시 현실감이 떨어졌다. 이런 의미에서 ‘박열’은 이준익 감독에게 새로운 숙제를 남겨준 영화이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 ‘박열’이 보여주려는 현실은 당연히 요즘 아베 내각이 보여주는 우경화 조짐일 테고, 결국 군국주의 시절의 황당무계한 국가관이 부활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일 것이다. 그 점에서는 박열과 같은 인물의 재조명은 썩 훌륭한 작업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국가관과 애국심이 유약해져만 가는 젊은 세대들에게 박열을 상기시켜줄 필요가 있다. 어떤 압력과 회유에도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대한의 사나이다운 기백을 보여준 인물은 우리의 정의감을 자극시키는 구석이 분명히 있다. 감독의 연출 의도가 비교적 잘 살아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박열’이 크게 흥행에 성공을 거두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 정도의 흥행 요소가 갖추어져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점이 아쉽다.
박태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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