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조현주 기자]
‘공항 가는 길’ 김하늘, ‘캐리어를 끄는 여자’ 최지우, ‘우리 집에 사는 남자’ 수애 / 사진=KBS, MBC 제공
‘공항 가는 길’ 김하늘, ‘캐리어를 끄는 여자’ 최지우, ‘우리 집에 사는 남자’ 수애 / 사진=KBS, MBC 제공
‘신선한’ 소재는 방송가가 늘 찾아 헤매는 요소다.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주인공의 직업이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 ‘무늬만 직업’이었던 과거와는 다르다. 의사, 변호사, 방송국 PD나 아나운서 등 전통적인 주인공 캐릭터 직업 외에 최근 방송되고 있는 미니시리즈 속에는 기상캐스터, 승무원, 로펌 사무장, 노량진 학원 강사, 장르물 작가 등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주인공이 나온다.

드라마가 직업을 그리는 방식은 다양하다. 최근에는 크게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를 통해 호기심과 선망을 자극하는 방식과 현실을 보여주는 유형으로 나뉠 수 있다. 극 속 주인공의 직업은 캐릭터의 성격은 물론 극 전개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직업사전에 등재된 국내 직업수는 1만1440개에 달한다. 평생직장에 대한 개념이 사려지면서 다양한 직업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고, 드라마 역시 다양한 직업으로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한다.

MBC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검사나 변호사가 아닌 로펌 사무장의 활약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인 차금주(최지우)를 ‘변호사보다 잘 나가는’ 로펌 사무장으로 설정해놓았다. 커다란 여행용 캐리어에 재판 서류를 가득 넣고 다니며 시도 때도 없이 많은 사건을 처리하는 차금주의 모습으로 색다른 재미를 더한다.

지난 6월 인기리에 종영한 tvN ‘또 오해영’에서 에릭은 음향감독 역을 맡았다. 주인공의 섬세하고 세심한 성격과 부합했다. 실제 음향감독이 작업하는 방식을 꽤나 디테일하게 구현하면서 직업에 대한 관심도를 높였다.

‘또 오해영’ 스틸컷 / 사진=tvN 제공
‘또 오해영’ 스틸컷 / 사진=tvN 제공
OCN 개국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던 ‘38사기동대’는 국내 최초 세금 징수 공무원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였다. 드라마 제목인 ‘38사기동대’는 서울시 38세금징수과의 별칭인 38기동대에서 따왔다. 편법을 이용해 세금을 탈세하는 이들에게 사기를 쳐서라도 세금을 받아낸다는 통쾌한 스토리를 그렸다. 빨간 딱지를 붙이는 세금 징수 공무원의 애환에 사기꾼과 결탁한다는 드라마틱한 요소를 결합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교차하며 참신한 드라마로 인정받은 MBC ‘W’에는 웹툰 작가가 등장했다. 웹툰 ‘미생’ ‘내부자들’ 등을 연재한 윤태호가 작가가 직접 자문을 맡아 조언을 했다. MBC ‘운빨로맨스’에서는 요새 각광 받는 게임개발자가 주인공으로 나섰다.

또 다른 하나는 ‘삼포세대’처럼 현실을 보여주는 유형이다. JTBC ‘청춘시대’ 속 윤진명(한예리)은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요즘 취준생(취업준비생)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다양한 직업과 삼포세대를 연결 짓기도 한다. SBS ‘질투의 화신’에서는 주인공인 표나리(공효진)는 생계형 기상캐스터다. 옥탑방에 살면서 방송국 사람들의 온갖 일을 도맡기도 한다. tvN ‘혼술남녀’는 노량진 학원가의 이야기를 통해 고시생들의 애환과 함께 초짜 강사 박하나(박하선)의 고군분투기를 담는다. KBS2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은 사라져가는 맞춤양복점의 현실과 가업을 잇길 바라는 아버지와 자식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질투의 화신’ 스틸컷 / 사진=SBS 제공
‘질투의 화신’ 스틸컷 / 사진=SBS 제공
KBS2 ‘공항 가는 길’은 경력 12년의 부사무장 승무원 최수아(김하늘)가 등장한다. 여성들에게 선망의 직업으로 여겨지는 승무원은 그간 화려함에 가려져 그 이면은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공항 가는 길’은 최수아를 통해 디테일한 승무원의 삶과 ‘워킹맘’의 애환을 극 속에 녹였다. 또한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하는 공항의 특별한 감성에 주목해 감성 멜로를 극대화시키는 효과까지 더했다. 오는 24일 첫 방송되는 KBS2 ‘우리 집에 사는 남자’에서 수애 역시 승무원으로 등장한다.

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는 “신종 직업이 많이 생겼다.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하는 만큼 직업 역시 다양하게 그리고 있다. 무엇보다 소재의 신선함을 어필하기 위해 직업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전통적으로 변호사, 의사, 방송국 아나운서, PD 등이 주인공의 주요 소재로 그려졌는데, 새로운 걸 원하는 시청자의 요구에 맞춰 점차 세분화되거나 완전히 각도를 달리하게 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혼술남녀’ 속 학원 포스터 / 사진=tvN 제공
‘혼술남녀’ 속 학원 포스터 / 사진=tvN 제공
드라마가 아무리 현실을 반영한다고 해도 현실은 아니다. 어느 정도의 조미료가 쳐지기 마련이다. 이 과정서 잡음이 생기기도 한다. ‘질투의 화신’은 1회는 기상캐스터가 가슴과 엉덩이를 내밀고 방송을 하는 모습과 방송국내에서 하대를 받는 듯한 표현으로 기상캐스터 비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제작진은 곧바로 “극적으로 표현된 건 드라마로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해명했다. ‘캐리어를 끄는 여자’ 역시 변호사를 뒤흔드는 사무장의 존재가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앞서 SBS ‘닥터스’에서 박신혜는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액세서리와 네일아트를 한 긴 손톱으로 뭇매를 맞았다. 결국 박신혜는 네일아트를 지웠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극적인 표현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팩트(사실)다. 직업에 대한 모순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라고 해도 정확한 정보 파악이 우선이 돼야 한다”면서 “판타지를 자극하든 현실을 보여주든 직업에 대한 정확한 사전조사와 이에 따른 형성화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조현주 기자 jhjdhe@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