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정인 : 앨범 녹음할 때는 아무 생각 없이 했거든요. 음악에 맞춰서 ‘이 부분이 클라이맥스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진행했는데, 하다보니까 고음을 하게 된 거예요. 그런데 이제 라이브를 해야 하잖아요. 조심스러운 부분이 생겨서 연습을 하다가, 집에 있는 옛날 보컬 책을 봤어요. 그 전에는 ‘빤하네’ 했던 내용이 이제 조금씩 이해가 되더라고요. 오, 뭐야. 역시 사람은 공부를 해야 돼! 하면서 보다가 그 날 책을 막 주문했어요. 연습하는 방법이랄까요, 여러 부분에서 힌트를 얻었죠.
10. 하하. 결혼하고 발표하는 첫 앨범이에요. 결혼 전과 후, 앨범 작업 과정에 변화가 있던가요?
정인 : 결혼하고 1~2개월 만에 나오는 앨범이라면 달랐을 수도 있을까 싶긴 해요. 그런데 워낙 오래 만난 사이이기도 하고 결혼하고도 시간이 꽤 지나서, 진짜 별 느낌이 없어요. 어쩌면 의식적으로 생각 안 하는 면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제가 달달한 감성의 음악을 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변화를 좀 막고 있지 않았나 싶네요.
10. 전에 언뜻 본 건데요, 결혼은 ‘이 사람 없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 하는 게 아니라, ‘이 사람 없이도 괜찮을 것 같다’ 싶을 때 하는 거래요. 정인 씨는 어땠나요?
정인 : 저도 동의해요. 음악 작업을 할 때에도 그렇거든요. 내가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남에게 기대고 싶다고 생각하면, 정말 대화가 안 되고 정말 기대게만 되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저 역시 음악적으로 성숙하다 보니까 다른 음악인들과 작업할 때 할 말이 생기더라고요. 정치 오빠도, 제가 제대로 서 있을 때 서로 의지가 되는 것 같아요.
10. 음악은 어때요? “음악 없이 못살겠다” 쪽인가요, 아니면 “음악 없어도 살 수 있어” 쪽인가요?
정인 : 잘 모르겠어요. 절실함에서 나오는 힘이 있잖아요. 요즘 그런 절실한 마음을 더 키우고 있는데, 예전에는 항상 ‘언제든 음악을 그만둘 수는 있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어요. 음악 아니어도 난 뭐든지 할 수 있다고요.
10. 지금의 절실함은 어디서 생기기 시작하던가요?
정인 : 시간이 지나면서 이 일이 숙명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더라고요.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생각도 내가 잘나서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이게 내 길이 아닐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었거든요. 이 길이 나랑 잘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는. 내 재능을 의심했죠. 정재일이나 조정치 같은, 음악하려고 태어난 것 같은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아닌 것 같았거든요. 내 길도 아니고 잘하지도 못하겠고. 그냥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는,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섞여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 앨범 작업을 하면서, 특히 ‘비틀비틀’ 가사를 쓰면서 많이 바뀌었어요. 다 내려놓았어요. ‘자질,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냐. 그냥 하면 되지.’(웃음) 좋아서 하는 일이고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니까요. 내가 큰 가수는 못 되더라도 이 일이 나의 숙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10. 결과에 대한 욕심을 버려서 가능한 일이었을까요?
정인 : 오늘 아침까지는 진짜 그랬거든요? 타이틀곡도 개인적으로 너무 마음에 들어서, 결과는 어떻게 돼도 다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차트를 보니까 그렇진 않더라고요. 하하하.
10. 에이. 당장 1위는 못해도 오래도록 남을 앨범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수가 숙명처럼 여긴다면, 이 직업의 무게가 달라지기도 하겠어요.
정인 : 제가 원래 엄청 산만했어요. 편하게 살길 좋아하고. 옛날 인터뷰 보면 ‘재밌게 살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거든요. 피처링도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하다 보니까 많이 하게 된 것이고요. 지난날에 대해 후회는 없지만, 이제는 조금 더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람이 확 달라지진 않으니까 여전히 ‘헬렐레~’ 하면서 살겠지만(웃음), 좀 더 집중해서 내 음악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10. 그럼 정규 앨범을 기대해 봐도 좋을까요?
정인 : 글쎄요. 정규를 만들어야 해서 만드는 것 말고 그 당시의 무언가가 쫙 나와서 자연스럽게 만들고 싶어요. 아직 시기상의 문제도 있고, 여러 가지로 잘 안 맞아서 못 냈는데, 그렇다고 해서 조바심은 전혀 없고요. 저만의 세계가 탄탄하게 만들어지면 딱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10. 이번 앨범 얘기를 좀 더 해볼게요. 개인적으로 첫 트랙 ‘비틀비틀’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원테이크로 녹음했다면서요.
정인 : 네, 맞아요. 총 세 번 불러서 첫 번째 부른 버전을 실었어요.
10. 결과물은 기록으로 남잖아요. ‘나중에 후회되지 않을까’라는 걱정은 없었나요?
정인 : 했죠. 물론 더하면 더할수록 좋았을 수도 있었는데 노래의 정신을 생각하다보니 원테이크가 맞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원래는 편곡도 컸고 가사도 사랑얘기였거든요. 가사가 제 이야기로 바뀌면서 좀 더 진정성을 담고 싶었고, 그래서 기타 연주만 넣게 됐어요. 사실 무척 잘 부른 버전도 있었거든요. 너무 잘했는데, 그게 너무 잘 맞춰진 느낌? 조금 더 거칠게 표현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냥 첫 번째 버전을 수록하게 됐습니다.
10. 가사 내용도 내용이지만, 조정치 씨의 연주가 정말 좋았어요. 영혼으로 교감하는 느낌이랄까요. 두 사람의 모습이 굉장히 아름답게 그려지더라고요. 작업 과정은 어땠나요?
정인 : 그동안 우리 관계가 어땠냐면, 한 명이 도와달라고 하면 다른 한 명이 싫어하는 사이였어요.(웃음) 오래 만났지만 음악적으로는 호흡이 잘 맞지 않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좀 마음을 열어보자고 얘기했어요. 같이 하면 얼마나 좋아요, 가장 서로를 잘 이해해주는 사람인데. 그런 대화를 나누고 나서, 오빠도 좀 마음을 열어준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오빠가 열정은 없는데(웃음) 그래도 이번엔 되게 많이 협조해줬어요.
10. 첫 번째 미니앨범 마지막 트랙 ‘고마워’에도 조정치 씨가 참여했잖아요. 심지어 그 땐 “feat. 남자친구”라고까지 했음에도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기사 제목부터 “남편 조정치 지원사격” 같은 문구가 나왔어요. 그게 부담스럽진 않던가요?
정인 : 그런 것도 있긴 한데, 한편으로는 내가 기자라도 기사 제목에 참~ 쓸 것 없겠더라고요. 하하하. 부담스럽기도 한데, 감사하기도 해요. 그렇게라도 또 알아주시고 관심 가져주시면, 감사한 일이죠.
10. 하하. 노래가 워낙 좋아서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것 같아요.
정인:아유, 감사해요. 끝까지 걱정이 많았어요. 괜찮게 들으실까? 그런데 의외로 1번 트랙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마음이 통하나’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 곡이 제겐 주제가 같은 곡이거든요.
10. 그렇지 않아도 자전적인 느낌이 물씬 나요. 스스로 비틀비틀 걸어왔다고 생각하나요?
정인 : 그렇죠. 지금도 비틀비틀 걷고 있고요. 제 생각에, 저는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운 좋게 이제까지 온 것 같거든요. 아까도 말했듯이, 완성형으로 태어난 사람도 있어요. 반면 저는 완성이 안 된 상태로, 뭔가 통하는 면이 있어서 계속 해나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고요. 기대는 있는데 그만큼 안 되는 것도 있으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감사한 건, 스태프 분들이 “그래. 너는 안 돼”라고 포기하는 게 아니라 “하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기회를 많이 주셨어요. 그래서 작품적으로는 어느 정도 좋게 만들 수 있게 됐죠. 사실 레코딩에 담긴 게 그 당시 저의 최고 상태에요.(웃음) 그리고 레코딩을 이기기 위해 연습하면서 조금씩 나아지기도 하고요. 이번에도 레코딩 때 턱걸이로 간신히 하다보니까 조금 나아졌진 거 같아요. 녹음을 하다가 너무 힘든 거예요, 잘 안 되고. 엔지니어 언니가 “이 심정을 담아서 가사로 써보자”고 얘기했고 그래서 내용이 바뀌었어요.
10. 좀 의외네요. 정재일, 노영심 등 완성형 뮤지션들과 계속 작업을 해왔잖아요. 그런데도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한 건가요?
정인 : 예를 들어, 완벽한 외모가 아니라도 점 하나가 되게 매력적일 수도 있잖아요. 제가 그런 케이스라고 생각했어요. 그냥 코드가 맞아서 매력적으로 보였다고요. 그걸 받아들이고 즐겁게 하면 되는데, 그러지 못했던 거죠. 지금 생각하면 욕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아닌 척 하지만 욕심이 많았던 거야.
10. 이제는 모자란 면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만의 매력을 발견하는 단계인 건가요?
정인 : 누군가 좋게 봐줬을 때에는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예전에는 누가 좋게 말해줬을 때에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했거든요. 제가 나름 긍정적인 스타일인데… 욕심이 많았네. 욕심이 내 눈을 가렸어! 지금 알았네, 욕심이 있었네~! 욕심이 비뚤어지게 있었어!
10. 그럼 나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된 지금은, 비틀거림이 적어질 거라고 기대하나요?
정인 : 아뇨 아뇨. 지금 마인드는 어떠냐면, 비틀대도 된다. 예전에는 비틀대는 걸 견딜 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렇게 힘들면 뭘 가냐. 안 가도 되지 않냐.’ 물론 그것도 맞는 말일 수 있지만, 지금은 비틀거리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고 있어요. 예전에는 라이브 하나를 망하면 세상이 꺼질 것 같고 스트레스도 너무 많이 받았는데, 이제는 ‘한 두 번 망하냐. 망하면서 사는 거지. 뭐, 대단히 잘 될 수 없을 뿐이지’ 생각해요.(웃음) 열심히 하면 되는 거니까요. 마인드가 살짝 바뀌었어요. 안 좋은 건가? 완벽을 추구해야 되나? 으하하.
10. ‘이 길이 내 길이 아닌 건가’라는 고민을 가지고도 상당한 무명 시절을 버티셨잖아요.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정인 : 오랜 무명시절이라 함은…
10. 솔로 데뷔 이전, 밴드 활동 시절을 얘기하는 거예요.
정인 : 그런데 저는 그 무명시절이라는 게 와 닿지가 않는 게, 그런 개념이 없었어요. 그 때는 더욱 더 음악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대중의 사랑, 무명, 유명, 그런 생각이 없었어요. 그냥 음악에 빠져 사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어요. 물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았지만, 그게 아무 상관없었어요.
10. 그럼 질문을 바꿔볼게요. 솔로 데뷔 후 7년 동안, 당신의 원동력이 됐던 건 무엇인가요?
정인 :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당당하고 싶은 마음인 것 같아요. ‘비틀비틀’ 가사에도 나오는 내용인데요, 내 마음에 안 드는 무대인데 박수를 받았을 때가 있잖아요. 그 때 좀 더 당당해지고 싶었어요. 그리고 ‘진짜’가 되고 싶은 감정. 아티스트로서의 욕심이라고 할까요? 그걸로 계속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노래가 잘 되면 자유로운 기분이 들거든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요즘에는 그런 개인적인 욕심 외에도 또 다른 힘이 생겼어요. 제 음악을 들어주시는 분들이요. 예전엔 가수들이 이런 얘기를 하면 귓등으로도 안 듣고 ‘그런가보다’ 했는데(웃음) 지금은 달라졌어요. 제가 마지막으로 냈던 앨범이 ‘가을남자’였거든요. 그게 기대한 것만큼 히트를 한 앨범이 아닌데, 주변에 사유리 언니도 그렇고 우연히 만난 팬 분도 “‘가을남자’ 너무 좋아요”라고 말해주더라고요. 아, 이런 감정이구나. 그 때 알았어요. 이번 앨범도 타이틀은 ‘유유유’이지만 많은 분들이 수록곡에도 귀 기울여주고 마음을 써주는 걸 보면, 이젠 거기에서 힘을 얻어요.
10. 타이틀곡은 ‘유유유(UUU)’에요. 아름다운 팝발라드 넘버죠. 개인적으로 정인의 발라드를 무척 좋아해요. 무척 솔직하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노래를 부르는 입장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정인 : 아무 생각 없이 부르는 게 목표에요. 신기하게,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노래를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제가 아무리 슬퍼하면서 노래를 해도 안 슬프게 들을 때가 있고, 노래하는 4분 동안 너무 불편해서 다른 생각만 했는데 관객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도 있어요.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경험이긴 한데, 중요한 건 순간에 집중하고 생각 없이 하는 것 같아요. 그 전에 내가 해왔던 것들을 믿고 나를 믿으면서요.
10. 나를 믿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조금 더 설명해주실래요?
정인 : 예전엔 무대에 오르기 전에 강박적으로 목을 풀고 연습을 했어요. 그걸 안 하면 노래를 다 망칠 것 같은 거예요. 그런데 요즘에는 무대를 하는 게 뭔가를 새로 만든 게 아니라, 내가 연습하고 살아온 게 다 나오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당장 내가 애쓰고 어떻게 해야지 생각해서 하는 게 아니라, 나를 믿고 흘려보내는 거. 그게 뭔지 조~금 알 것 같아요.
10. 이를 테면 밥을 먹는 것처럼, 노래도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는 말인가요?
정인 : 예를 들어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나를 꾸미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과장을 한다거나 순간순간 애쓰지 않아도,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다 보이는, 그런 노래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10. 노래 제목의 ‘U’가 ‘당신(You)’를 가리키는 말이잖아요. 가수 정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줬던 ‘당신’을 세 사람 꼽아 보면요?
정인 : 리쌍은 두 명인가요? (10. 한 팀으로 하죠.) 그럼 리쌍. 그리고, 윤건 오빠와 엔지니어 곽은정 언니. 곽 언니는 거의 공동 프로듀서 같은 역할에 보컬 디렉팅까지 해줬어요. 가끔은 농담 삼아 “이 노래를 나 혼자 부르는 게 아니라 곽 언니랑 같이 부르는 게 아닐까” “내가 곽 언니의 아바타 아닐까” 그런 얘기도 해요.(웃음) 노래를 부를 때 내가 갖고 있는 안 좋은 습관을 곽 언니 덕에 많이 고쳤어요. 제가 처음 나왔을 때 발음이 안 좋다는 얘기를 되게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잘 몰랐어요. 발음을 못 들었어요. 그 때 곽 언니가 잡아줬어요. 그리고 그걸 잡아주기 위해 ‘너 이렇게 해라’가 아니라 내가 왜 못 들을까 부터 인생 전반에 대한 얘기를 정말 많이 나눴어요. 저에겐 멘토와 다름없는 사람이에요.
10. 인간 정인에게 영향을 많이 줬던 사람은요?
정인 : 조정치, 곽은정 언니, 그리고 길(리쌍) 오빠를 넣고 싶어요.
10. 아니, 개리 씨는 왜 빼나요.(웃음)
정인 : 개리 오빠는 정말 음악 사부 같은 느낌이고요. 길 오빠는 산에도 같이 다니고, 사생활을 좀 나누는 사이거든요.
10. 아까도 조정치 씨 얘기를 잠깐 했지만, 두 분이 같이 있으면 조정치 씨가 되게 어른처럼 보여요. 좋은 영향을 많이 주는 분 같아요.
정인 : 제가 어릴 때에는 마냥 밝은 게 콤플렉스일 정도였거든요. 음악하는 데에도 방해가 되고. 생각이 엉뚱하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게, 정치 오빠를 만나면서 밸런스가 맞아진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니까, 스스로 알아서 밸런스를 맞추게 된 거죠. 만약에 오빠를 안 만나고 나보다 기가 약한 사람을 만났다면 저는 지금 완전…아, 그게 나았으려나? 더 좋았을까?(웃음). 오빠는 원래 되게 어두웠거든요. 그런데 저 때문에 사람 됐죠. 하하.
10. 예전에 흑인 음악을 좋아했다고도 했고, 목소리가 워낙 특이하기도 하니까요. 한국적인 멜로디 안에서 어떻게 자신의 매력을 살릴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아요.
정인 : 네. ‘미워요’를 할 때 아홉 개의 완성 테이크가 있었어요. 어떤 건 정인스럽게, 어떤 건 좀 더 소울풀하게, 그러면서 아홉 개가 나왔죠. 그런데 마지막에 생각해보니, 그런 식으로 계산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노래에 맞게 해야죠. 나 자체로 있다가 노래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자기 색깔을 어떻게 잡을지 누구나 고민하잖아요.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정인 답다고 하는 거에 부합할까’ 생각하면서 노래하면, 다 까여요. 조금이라도 사심이 들어가면 스태프들이 다 알더라고요. ‘비틀비틀’도 더 과장된 버전으로 연습한 게 있었는데 너무 멋만 부린다고 해서 바꿨어요. 욕심은 내려놓고 노래에 맞추자. 나를 믿자.
그래서 예전과 달라진 것도 있어요. 노래도 달라지고 목소리도 달라졌죠. 변화에 대한 고민도 되게 컸어요.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가’가 터닝 포인트였죠. 그 때 리쌍 오빠들이 예쁘게 불러보라고 했어요. ‘이거 내가 아닌데’ 하면서 불렀는데, 사람들이 잘 받아들이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하면 내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거예요. 뭔가 하나 장착된 느낌입니다. 그런 슬럼프가 ‘사람 냄새’ 할 때 한 번 더 왔어요. 그 때도 엄청 예쁘게 불렀어요. 더 오버스럽게 부른 버전도 있었는데, 결국 가장 자연스럽게 부른 걸로 갔어요. 그런데 더 좋다는 반응이 많더라고요. 괜찮은 거예요, 그렇게 해도! 뭔가 벗어낸 느낌이었어요.
10. ‘정인스럽다’는 틀을 깨뜨린 듯한 느낌일까요?
정인 : 사실 정인스럽다는 틀도 내가 만든 게 아니었거든요. 그냥 저의 어떤 포인트가 대중의 선호와 잘 맞아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돼버린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이게 진짜일까’ 생각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럼 진짜 중요한 걸 놓치게 될 거 같았어요.
10. ‘러쉬’나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사실 대표곡 가운데 피처링으로 참여한 노래들이 꽤 많잖아요. 어쨌든 남의 노래니까, 내 노래로 그걸 뛰어 넘어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던가요?
정인 : 그동안은 없었어요. 그게 자연스러운 상태였으니까요. 피처링 노래를 능가하는 게 뭔가가 나오면 당연히 (대표곡이)바뀔 거라고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 들였어요. 그런데 요즘은 넘고 싶긴 해요. 무슨 일이 있었냐면, 이번에 리쌍 노래에 참여한 미우라는 가수 아시죠? 사실 미우랑 저는 목소리도 다르고 창법도 다르거든요. 서로 너무 달라서 모창도 잘 못해요. 하지만 듣는 사람에겐 이미지가 있잖아요. 리쌍의 노래에 피처링 했다는. 이번에 미우가 피처링한 노래가 나왔을 때 저인 줄 알았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이미지가 되게 강하구나, 싶었어요. 거기에 감정을 쓸 필요는 없겠지만, 그 이미지를 넘고 싶긴 하죠.
10. 아까 정인에게 영향을 준 사람을 꼽아봤잖아요. 정인 씨 역시 노래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니까요, 혹시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싶다는 바람이 있을까요?
정인 : 그건 너무 욕심인 거 같고요.(웃음) 누구든 들어주시고 그 곡을 느껴준다면 그걸로 너무너무 행복하죠.
10. 질문을 바꿔볼게요. 이 앨범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길 바라나요?
정인 : 어떤 식으로든 감성이 젤리처럼 몽글몽글해졌으면 좋겠어요. 감성을 건드릴 수 있는 앨범이 되길 바랍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
사진. 리쌍컴퍼니
저 멀리 누군가 걸어간다. 비틀비틀 걸어간다. 미끄러져 구르기도 한다. 그는 생각한다. ‘이 길이 내 길이 맞는 걸까. 내게 정말 충분한 재능이 있는 걸까.’ 불안해하면서도, 그는 계속 걸어간다. 박수의 무게를 무거워하고 ‘진짜’를 동경하면서.10. 조정치 씨 SNS를 통해, 최근 정인 씨가 엄청난 책을 구입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책 제목이 무려 ‘고음보컬 가이드북’ ‘1주일 만에 3옥타브’ ‘버클리 보컬의 정석’이에요.
저 멀리 누군가 불끈 다리에 힘을 준다. 발걸음은 여전히 비틀댄다. 하지만 그는 생각한다. ‘이 길은 내 숙명이다.’ 하여 비틀대는 그의 발걸음은 흡사 흥에 겨운 춤사위처럼 보이기도 한다. 비틀비틀. 그것은 어쩌면 똑바로 걷기의 다른 말인지도 모른다. 가수 정인의 이야기다.
정인 : 앨범 녹음할 때는 아무 생각 없이 했거든요. 음악에 맞춰서 ‘이 부분이 클라이맥스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진행했는데, 하다보니까 고음을 하게 된 거예요. 그런데 이제 라이브를 해야 하잖아요. 조심스러운 부분이 생겨서 연습을 하다가, 집에 있는 옛날 보컬 책을 봤어요. 그 전에는 ‘빤하네’ 했던 내용이 이제 조금씩 이해가 되더라고요. 오, 뭐야. 역시 사람은 공부를 해야 돼! 하면서 보다가 그 날 책을 막 주문했어요. 연습하는 방법이랄까요, 여러 부분에서 힌트를 얻었죠.
10. 하하. 결혼하고 발표하는 첫 앨범이에요. 결혼 전과 후, 앨범 작업 과정에 변화가 있던가요?
정인 : 결혼하고 1~2개월 만에 나오는 앨범이라면 달랐을 수도 있을까 싶긴 해요. 그런데 워낙 오래 만난 사이이기도 하고 결혼하고도 시간이 꽤 지나서, 진짜 별 느낌이 없어요. 어쩌면 의식적으로 생각 안 하는 면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제가 달달한 감성의 음악을 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변화를 좀 막고 있지 않았나 싶네요.
10. 전에 언뜻 본 건데요, 결혼은 ‘이 사람 없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 하는 게 아니라, ‘이 사람 없이도 괜찮을 것 같다’ 싶을 때 하는 거래요. 정인 씨는 어땠나요?
정인 : 저도 동의해요. 음악 작업을 할 때에도 그렇거든요. 내가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남에게 기대고 싶다고 생각하면, 정말 대화가 안 되고 정말 기대게만 되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저 역시 음악적으로 성숙하다 보니까 다른 음악인들과 작업할 때 할 말이 생기더라고요. 정치 오빠도, 제가 제대로 서 있을 때 서로 의지가 되는 것 같아요.
10. 음악은 어때요? “음악 없이 못살겠다” 쪽인가요, 아니면 “음악 없어도 살 수 있어” 쪽인가요?
정인 : 잘 모르겠어요. 절실함에서 나오는 힘이 있잖아요. 요즘 그런 절실한 마음을 더 키우고 있는데, 예전에는 항상 ‘언제든 음악을 그만둘 수는 있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어요. 음악 아니어도 난 뭐든지 할 수 있다고요.
10. 지금의 절실함은 어디서 생기기 시작하던가요?
정인 : 시간이 지나면서 이 일이 숙명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더라고요.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생각도 내가 잘나서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이게 내 길이 아닐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었거든요. 이 길이 나랑 잘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는. 내 재능을 의심했죠. 정재일이나 조정치 같은, 음악하려고 태어난 것 같은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아닌 것 같았거든요. 내 길도 아니고 잘하지도 못하겠고. 그냥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는,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섞여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 앨범 작업을 하면서, 특히 ‘비틀비틀’ 가사를 쓰면서 많이 바뀌었어요. 다 내려놓았어요. ‘자질,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냐. 그냥 하면 되지.’(웃음) 좋아서 하는 일이고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니까요. 내가 큰 가수는 못 되더라도 이 일이 나의 숙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10. 결과에 대한 욕심을 버려서 가능한 일이었을까요?
정인 : 오늘 아침까지는 진짜 그랬거든요? 타이틀곡도 개인적으로 너무 마음에 들어서, 결과는 어떻게 돼도 다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차트를 보니까 그렇진 않더라고요. 하하하.
10. 에이. 당장 1위는 못해도 오래도록 남을 앨범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수가 숙명처럼 여긴다면, 이 직업의 무게가 달라지기도 하겠어요.
정인 : 제가 원래 엄청 산만했어요. 편하게 살길 좋아하고. 옛날 인터뷰 보면 ‘재밌게 살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거든요. 피처링도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하다 보니까 많이 하게 된 것이고요. 지난날에 대해 후회는 없지만, 이제는 조금 더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람이 확 달라지진 않으니까 여전히 ‘헬렐레~’ 하면서 살겠지만(웃음), 좀 더 집중해서 내 음악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10. 그럼 정규 앨범을 기대해 봐도 좋을까요?
정인 : 글쎄요. 정규를 만들어야 해서 만드는 것 말고 그 당시의 무언가가 쫙 나와서 자연스럽게 만들고 싶어요. 아직 시기상의 문제도 있고, 여러 가지로 잘 안 맞아서 못 냈는데, 그렇다고 해서 조바심은 전혀 없고요. 저만의 세계가 탄탄하게 만들어지면 딱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10. 이번 앨범 얘기를 좀 더 해볼게요. 개인적으로 첫 트랙 ‘비틀비틀’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원테이크로 녹음했다면서요.
정인 : 네, 맞아요. 총 세 번 불러서 첫 번째 부른 버전을 실었어요.
10. 결과물은 기록으로 남잖아요. ‘나중에 후회되지 않을까’라는 걱정은 없었나요?
정인 : 했죠. 물론 더하면 더할수록 좋았을 수도 있었는데 노래의 정신을 생각하다보니 원테이크가 맞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원래는 편곡도 컸고 가사도 사랑얘기였거든요. 가사가 제 이야기로 바뀌면서 좀 더 진정성을 담고 싶었고, 그래서 기타 연주만 넣게 됐어요. 사실 무척 잘 부른 버전도 있었거든요. 너무 잘했는데, 그게 너무 잘 맞춰진 느낌? 조금 더 거칠게 표현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냥 첫 번째 버전을 수록하게 됐습니다.
10. 가사 내용도 내용이지만, 조정치 씨의 연주가 정말 좋았어요. 영혼으로 교감하는 느낌이랄까요. 두 사람의 모습이 굉장히 아름답게 그려지더라고요. 작업 과정은 어땠나요?
정인 : 그동안 우리 관계가 어땠냐면, 한 명이 도와달라고 하면 다른 한 명이 싫어하는 사이였어요.(웃음) 오래 만났지만 음악적으로는 호흡이 잘 맞지 않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좀 마음을 열어보자고 얘기했어요. 같이 하면 얼마나 좋아요, 가장 서로를 잘 이해해주는 사람인데. 그런 대화를 나누고 나서, 오빠도 좀 마음을 열어준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오빠가 열정은 없는데(웃음) 그래도 이번엔 되게 많이 협조해줬어요.
10. 첫 번째 미니앨범 마지막 트랙 ‘고마워’에도 조정치 씨가 참여했잖아요. 심지어 그 땐 “feat. 남자친구”라고까지 했음에도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기사 제목부터 “남편 조정치 지원사격” 같은 문구가 나왔어요. 그게 부담스럽진 않던가요?
정인 : 그런 것도 있긴 한데, 한편으로는 내가 기자라도 기사 제목에 참~ 쓸 것 없겠더라고요. 하하하. 부담스럽기도 한데, 감사하기도 해요. 그렇게라도 또 알아주시고 관심 가져주시면, 감사한 일이죠.
10. 하하. 노래가 워낙 좋아서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것 같아요.
정인:아유, 감사해요. 끝까지 걱정이 많았어요. 괜찮게 들으실까? 그런데 의외로 1번 트랙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마음이 통하나’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 곡이 제겐 주제가 같은 곡이거든요.
10. 그렇지 않아도 자전적인 느낌이 물씬 나요. 스스로 비틀비틀 걸어왔다고 생각하나요?
정인 : 그렇죠. 지금도 비틀비틀 걷고 있고요. 제 생각에, 저는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운 좋게 이제까지 온 것 같거든요. 아까도 말했듯이, 완성형으로 태어난 사람도 있어요. 반면 저는 완성이 안 된 상태로, 뭔가 통하는 면이 있어서 계속 해나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고요. 기대는 있는데 그만큼 안 되는 것도 있으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감사한 건, 스태프 분들이 “그래. 너는 안 돼”라고 포기하는 게 아니라 “하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기회를 많이 주셨어요. 그래서 작품적으로는 어느 정도 좋게 만들 수 있게 됐죠. 사실 레코딩에 담긴 게 그 당시 저의 최고 상태에요.(웃음) 그리고 레코딩을 이기기 위해 연습하면서 조금씩 나아지기도 하고요. 이번에도 레코딩 때 턱걸이로 간신히 하다보니까 조금 나아졌진 거 같아요. 녹음을 하다가 너무 힘든 거예요, 잘 안 되고. 엔지니어 언니가 “이 심정을 담아서 가사로 써보자”고 얘기했고 그래서 내용이 바뀌었어요.
10. 좀 의외네요. 정재일, 노영심 등 완성형 뮤지션들과 계속 작업을 해왔잖아요. 그런데도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한 건가요?
정인 : 예를 들어, 완벽한 외모가 아니라도 점 하나가 되게 매력적일 수도 있잖아요. 제가 그런 케이스라고 생각했어요. 그냥 코드가 맞아서 매력적으로 보였다고요. 그걸 받아들이고 즐겁게 하면 되는데, 그러지 못했던 거죠. 지금 생각하면 욕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아닌 척 하지만 욕심이 많았던 거야.
10. 이제는 모자란 면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만의 매력을 발견하는 단계인 건가요?
정인 : 누군가 좋게 봐줬을 때에는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예전에는 누가 좋게 말해줬을 때에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했거든요. 제가 나름 긍정적인 스타일인데… 욕심이 많았네. 욕심이 내 눈을 가렸어! 지금 알았네, 욕심이 있었네~! 욕심이 비뚤어지게 있었어!
10. 그럼 나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된 지금은, 비틀거림이 적어질 거라고 기대하나요?
정인 : 아뇨 아뇨. 지금 마인드는 어떠냐면, 비틀대도 된다. 예전에는 비틀대는 걸 견딜 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렇게 힘들면 뭘 가냐. 안 가도 되지 않냐.’ 물론 그것도 맞는 말일 수 있지만, 지금은 비틀거리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고 있어요. 예전에는 라이브 하나를 망하면 세상이 꺼질 것 같고 스트레스도 너무 많이 받았는데, 이제는 ‘한 두 번 망하냐. 망하면서 사는 거지. 뭐, 대단히 잘 될 수 없을 뿐이지’ 생각해요.(웃음) 열심히 하면 되는 거니까요. 마인드가 살짝 바뀌었어요. 안 좋은 건가? 완벽을 추구해야 되나? 으하하.
10. ‘이 길이 내 길이 아닌 건가’라는 고민을 가지고도 상당한 무명 시절을 버티셨잖아요.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정인 : 오랜 무명시절이라 함은…
10. 솔로 데뷔 이전, 밴드 활동 시절을 얘기하는 거예요.
정인 : 그런데 저는 그 무명시절이라는 게 와 닿지가 않는 게, 그런 개념이 없었어요. 그 때는 더욱 더 음악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대중의 사랑, 무명, 유명, 그런 생각이 없었어요. 그냥 음악에 빠져 사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어요. 물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았지만, 그게 아무 상관없었어요.
10. 그럼 질문을 바꿔볼게요. 솔로 데뷔 후 7년 동안, 당신의 원동력이 됐던 건 무엇인가요?
정인 :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당당하고 싶은 마음인 것 같아요. ‘비틀비틀’ 가사에도 나오는 내용인데요, 내 마음에 안 드는 무대인데 박수를 받았을 때가 있잖아요. 그 때 좀 더 당당해지고 싶었어요. 그리고 ‘진짜’가 되고 싶은 감정. 아티스트로서의 욕심이라고 할까요? 그걸로 계속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노래가 잘 되면 자유로운 기분이 들거든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요즘에는 그런 개인적인 욕심 외에도 또 다른 힘이 생겼어요. 제 음악을 들어주시는 분들이요. 예전엔 가수들이 이런 얘기를 하면 귓등으로도 안 듣고 ‘그런가보다’ 했는데(웃음) 지금은 달라졌어요. 제가 마지막으로 냈던 앨범이 ‘가을남자’였거든요. 그게 기대한 것만큼 히트를 한 앨범이 아닌데, 주변에 사유리 언니도 그렇고 우연히 만난 팬 분도 “‘가을남자’ 너무 좋아요”라고 말해주더라고요. 아, 이런 감정이구나. 그 때 알았어요. 이번 앨범도 타이틀은 ‘유유유’이지만 많은 분들이 수록곡에도 귀 기울여주고 마음을 써주는 걸 보면, 이젠 거기에서 힘을 얻어요.
10. 타이틀곡은 ‘유유유(UUU)’에요. 아름다운 팝발라드 넘버죠. 개인적으로 정인의 발라드를 무척 좋아해요. 무척 솔직하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노래를 부르는 입장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정인 : 아무 생각 없이 부르는 게 목표에요. 신기하게,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노래를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제가 아무리 슬퍼하면서 노래를 해도 안 슬프게 들을 때가 있고, 노래하는 4분 동안 너무 불편해서 다른 생각만 했는데 관객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도 있어요.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경험이긴 한데, 중요한 건 순간에 집중하고 생각 없이 하는 것 같아요. 그 전에 내가 해왔던 것들을 믿고 나를 믿으면서요.
10. 나를 믿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조금 더 설명해주실래요?
정인 : 예전엔 무대에 오르기 전에 강박적으로 목을 풀고 연습을 했어요. 그걸 안 하면 노래를 다 망칠 것 같은 거예요. 그런데 요즘에는 무대를 하는 게 뭔가를 새로 만든 게 아니라, 내가 연습하고 살아온 게 다 나오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당장 내가 애쓰고 어떻게 해야지 생각해서 하는 게 아니라, 나를 믿고 흘려보내는 거. 그게 뭔지 조~금 알 것 같아요.
10. 이를 테면 밥을 먹는 것처럼, 노래도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는 말인가요?
정인 : 예를 들어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나를 꾸미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과장을 한다거나 순간순간 애쓰지 않아도,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다 보이는, 그런 노래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10. 노래 제목의 ‘U’가 ‘당신(You)’를 가리키는 말이잖아요. 가수 정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줬던 ‘당신’을 세 사람 꼽아 보면요?
정인 : 리쌍은 두 명인가요? (10. 한 팀으로 하죠.) 그럼 리쌍. 그리고, 윤건 오빠와 엔지니어 곽은정 언니. 곽 언니는 거의 공동 프로듀서 같은 역할에 보컬 디렉팅까지 해줬어요. 가끔은 농담 삼아 “이 노래를 나 혼자 부르는 게 아니라 곽 언니랑 같이 부르는 게 아닐까” “내가 곽 언니의 아바타 아닐까” 그런 얘기도 해요.(웃음) 노래를 부를 때 내가 갖고 있는 안 좋은 습관을 곽 언니 덕에 많이 고쳤어요. 제가 처음 나왔을 때 발음이 안 좋다는 얘기를 되게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잘 몰랐어요. 발음을 못 들었어요. 그 때 곽 언니가 잡아줬어요. 그리고 그걸 잡아주기 위해 ‘너 이렇게 해라’가 아니라 내가 왜 못 들을까 부터 인생 전반에 대한 얘기를 정말 많이 나눴어요. 저에겐 멘토와 다름없는 사람이에요.
10. 인간 정인에게 영향을 많이 줬던 사람은요?
정인 : 조정치, 곽은정 언니, 그리고 길(리쌍) 오빠를 넣고 싶어요.
10. 아니, 개리 씨는 왜 빼나요.(웃음)
정인 : 개리 오빠는 정말 음악 사부 같은 느낌이고요. 길 오빠는 산에도 같이 다니고, 사생활을 좀 나누는 사이거든요.
10. 아까도 조정치 씨 얘기를 잠깐 했지만, 두 분이 같이 있으면 조정치 씨가 되게 어른처럼 보여요. 좋은 영향을 많이 주는 분 같아요.
정인 : 제가 어릴 때에는 마냥 밝은 게 콤플렉스일 정도였거든요. 음악하는 데에도 방해가 되고. 생각이 엉뚱하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게, 정치 오빠를 만나면서 밸런스가 맞아진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니까, 스스로 알아서 밸런스를 맞추게 된 거죠. 만약에 오빠를 안 만나고 나보다 기가 약한 사람을 만났다면 저는 지금 완전…아, 그게 나았으려나? 더 좋았을까?(웃음). 오빠는 원래 되게 어두웠거든요. 그런데 저 때문에 사람 됐죠. 하하.
10. 예전에 흑인 음악을 좋아했다고도 했고, 목소리가 워낙 특이하기도 하니까요. 한국적인 멜로디 안에서 어떻게 자신의 매력을 살릴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아요.
정인 : 네. ‘미워요’를 할 때 아홉 개의 완성 테이크가 있었어요. 어떤 건 정인스럽게, 어떤 건 좀 더 소울풀하게, 그러면서 아홉 개가 나왔죠. 그런데 마지막에 생각해보니, 그런 식으로 계산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노래에 맞게 해야죠. 나 자체로 있다가 노래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자기 색깔을 어떻게 잡을지 누구나 고민하잖아요.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정인 답다고 하는 거에 부합할까’ 생각하면서 노래하면, 다 까여요. 조금이라도 사심이 들어가면 스태프들이 다 알더라고요. ‘비틀비틀’도 더 과장된 버전으로 연습한 게 있었는데 너무 멋만 부린다고 해서 바꿨어요. 욕심은 내려놓고 노래에 맞추자. 나를 믿자.
그래서 예전과 달라진 것도 있어요. 노래도 달라지고 목소리도 달라졌죠. 변화에 대한 고민도 되게 컸어요.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가’가 터닝 포인트였죠. 그 때 리쌍 오빠들이 예쁘게 불러보라고 했어요. ‘이거 내가 아닌데’ 하면서 불렀는데, 사람들이 잘 받아들이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하면 내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거예요. 뭔가 하나 장착된 느낌입니다. 그런 슬럼프가 ‘사람 냄새’ 할 때 한 번 더 왔어요. 그 때도 엄청 예쁘게 불렀어요. 더 오버스럽게 부른 버전도 있었는데, 결국 가장 자연스럽게 부른 걸로 갔어요. 그런데 더 좋다는 반응이 많더라고요. 괜찮은 거예요, 그렇게 해도! 뭔가 벗어낸 느낌이었어요.
10. ‘정인스럽다’는 틀을 깨뜨린 듯한 느낌일까요?
정인 : 사실 정인스럽다는 틀도 내가 만든 게 아니었거든요. 그냥 저의 어떤 포인트가 대중의 선호와 잘 맞아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돼버린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이게 진짜일까’ 생각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럼 진짜 중요한 걸 놓치게 될 거 같았어요.
10. ‘러쉬’나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사실 대표곡 가운데 피처링으로 참여한 노래들이 꽤 많잖아요. 어쨌든 남의 노래니까, 내 노래로 그걸 뛰어 넘어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던가요?
정인 : 그동안은 없었어요. 그게 자연스러운 상태였으니까요. 피처링 노래를 능가하는 게 뭔가가 나오면 당연히 (대표곡이)바뀔 거라고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 들였어요. 그런데 요즘은 넘고 싶긴 해요. 무슨 일이 있었냐면, 이번에 리쌍 노래에 참여한 미우라는 가수 아시죠? 사실 미우랑 저는 목소리도 다르고 창법도 다르거든요. 서로 너무 달라서 모창도 잘 못해요. 하지만 듣는 사람에겐 이미지가 있잖아요. 리쌍의 노래에 피처링 했다는. 이번에 미우가 피처링한 노래가 나왔을 때 저인 줄 알았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이미지가 되게 강하구나, 싶었어요. 거기에 감정을 쓸 필요는 없겠지만, 그 이미지를 넘고 싶긴 하죠.
10. 아까 정인에게 영향을 준 사람을 꼽아봤잖아요. 정인 씨 역시 노래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니까요, 혹시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싶다는 바람이 있을까요?
정인 : 그건 너무 욕심인 거 같고요.(웃음) 누구든 들어주시고 그 곡을 느껴준다면 그걸로 너무너무 행복하죠.
10. 질문을 바꿔볼게요. 이 앨범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길 바라나요?
정인 : 어떤 식으로든 감성이 젤리처럼 몽글몽글해졌으면 좋겠어요. 감성을 건드릴 수 있는 앨범이 되길 바랍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
사진. 리쌍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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