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이정현
이정현

‘무한도전 –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이하 토토가)에서 단연 빛난 두 여가수가 있다. 바로 이정현과 엄정화.

이정현과 엄정화의 ‘토토가’ 무대는 단순히 추억을 자극하는 것 이상의 감흥을 줬다. 무술 동작과 함께 무대에 오른 이정현의 ‘와’, 그리고 농염한 눈빛만으로도 남성들을 녹여버린 엄정화의 ‘초대’는 단연 압권이었다. 레이디 가가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아방가르드한 패션을 선보인 이정현, 그리고 꽤 긴 세월 ‘한국의 마돈나’로 살아온 엄정화의 끼가 오랜만에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둘의 무대가 특별했던 이유가 있다. 이들과 같은 가수들은 어느 때부터인가 가요계에서 실종돼버렸기 때문이다. 여성 솔로가수들은 많지 않냐고? 아니, 이정현처럼 독창적인 무대를 선보이거나, 엄정화처럼 세련된 음악에 섹시함, 연기력까지 겸비한 여가수는, 지금 없다.

이정현이 1999년에 1집 ‘레츠 고 투 마이 스타(Let’s Go My Star)’로 가수 데뷔를 했을 때의 열풍을 기억한다. 그때 대중은 “저건 도대체 뭐지?”하는 반응들이었다. 영화 ‘동방불패’에나 등장할 법한 의상을 입고 희한한 춤을 춰댔다.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괴상망측한 콘셉트였다. 이정현이 테크노 여전사로 등장해 ‘와’를 불렀을 때 “왜 연기 잘 하는 배우가 저런 짓을 하는 걸까”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곧 대중은 이정현의 퍼포먼스에 매료됐다. 그리고 그녀는 90년대 후반 가요계를 강타한 테크노 열풍의 시작점으로 기록됐다.

이정현의 인기는 중국을 넘어 해외로 갔다. 당시 한류스타였던 안재욱은 중국 행사에서 이정현의 복장을 입고 ‘와’를 노래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에는 이탈리아에서 ‘와’를 표절한 사례가 보도돼 화제가 됐다. 항상 표절만 봐왔던 우리는 최초로 ‘역표절’을 경험했다. 그만큼 독창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정현 본인이 직접 기획했다는 신선한 퍼포먼스와 패션은 ‘평화’ ‘줄래’ ‘미쳐’ 등으로 이어졌다.

엄정화
엄정화
엄정화

무려 김완선의 뒤를 이어 ‘댄싱퀸’이라는 명함을 얻은 엄정화가 인기로 정점을 찍었던 것은 ‘포이즌’ ‘초대'(야한 노래 잘 만드는 박진영 곡 중에서도 특히 섹시한 곡)가 담긴 4집 ‘인비테이션(Invitation)’과 ‘페스티벌’ ‘몰라’가 수록된 5집 ‘005.1999.06’이었다. 엄정화의 도전은 단지 인기가수에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윤상, 정재형 등이 함께 한 8집 ‘셀프컨트롤(Self Control)’에서 세련된 일렉트로 팝을 시도하면서 음악 팬들을 놀라게 했다. 대중은 낯설어했고 엄정화 본인은 “제작자들은 대중성이 없다고 많이 울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음악 마니아들과 평단은 박수를 보냈다.

엄정화의 음악적 도전은 차기작으로 이어졌다. 9집 ‘프레스티지(Prestige)’에서 직접 작사 작곡에까지 참여한 것이다. 엄정화는 이 앨범을 작업하기 위해 히트작곡가가 아닌 롤러코스터 출신의 프로듀서 지누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단순히 히트곡을 내기보다는 음악적으로도 근사하고, 의미 있는 앨범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엄정화는 이 앨범으로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앨범을 수상했다. 이후 서른아홉의 나이에 YG엔터테인먼트와 함께 작업한 ‘디스코(D.I.S.C.O)’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거머쥐며 다시 정상의 자리에 섰다. 음악평론가 나도원 씨는 자신의 책 ‘결국, 음악’에서 “엄정화의 ‘디스코’는 오로지 외적인 콘셉트에만 의지하려는 관성적인 몇몇 아이돌들의 솔로앨범과는 구별된다.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인 결과물”이라고 평했다.

지금 우리 곁에 S.E.S.와 같은 걸그룹은 많지만 이정현, 엄정화와 같은 가수는 찾아볼 수 없다. 도대체 어디로 실종돼버린 걸까? 이 두 여가수가 그렇게나 특별한 존재였던 걸까? 언제쯤이면 메인스트림에서 이들처럼 능동적인 여가수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러기에 지금의 걸그룹, 여가수들은 너무나 동어반복이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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