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아를 생각하면 봄이 떠오른다. 그의 음악을 처음으로 접한 것은 ‘꽃처럼 한철만 사랑해 줄건가요’였다. 강하거나 파워풀한 느낌은 아니지만 무언가 속삭이는 듯한 루시아의 목소리는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첫 느낌이 그래서인지 루시아 하면 왠지 하늘하늘한 들꽃도 생각나고 아지랑이가 피는 듯한 봄 들판이 생각났다.Q. 최근 근황이 궁금하다. 무엇을 하며 지내나?
실제로 만난 루시아는 생각했던 그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이야기를 나눈 루시아는 여린 느낌의 외면과 달리 자신만의 생각과 철학이 확고한 사람이었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대중의 귀를 움직이는 것을 넘어 루시아의 색으로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가가 되겠다는 루시아. 앨범 타이틀 ‘빛과 그림자(Light & Shade)’처럼 신비로우면서도 털털하고, 조용한 것 같으면서도 유쾌한 그녀와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루시아 : 요즘은 인터뷰도 많이 하고 라디오에도 출연 중이다. 페스티벌 준비도 하며 다음 음반 준비도 하고 지낸다.
Q. 당신이 등장했을 때부터 긴 머리가 눈에 띄었다. 굉장히 긴 길이인데도 결이 정말 좋아 보인다.
루시아 : 하하. 아니다. 모두 눈속임이다. 가발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진짜 머리다. 앰플의 효과가 좋다.
Q. 정규 2집 ‘라이트 앤 쉐이드 챕터 원(Light & Shade Chapter.1)’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루시아 : 이번 앨범은 정규로는 두 번째 앨범이다. 챕터 원과 챕터 투로 나눠졌는데 챕터 투는 가을이나 겨울쯤 나올 것 같다. 쌍둥이 음반이다. 처음부터 두 개의 챕터로 나눌 생각은 아니었다. 한 장의 정규 음반을 준비하려 했는데 완성도를 생각해보니 넘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음반을 두 장으로 나눴다. 한 장에 몰아 넣는 것보다 두 장의 연작을 해보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했다.
Q. 앨범 작업하며 에피소드는 없었는지 궁금하다.
루시아 : 음… 원래 이 앨범은 지난해 11월쯤 발매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지난해 10월 말에 스페인 산티아고 여행을 떠나게 됐다. 너무 갑작스럽게 떠나서 음반 작업을 멈췄다. 두 달 정도 여행을 다녀와서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음반 작업이었는데 이를 미룬 것은 처음이었다. 산티아고 여행은 운명적인 경험이었다.
Q. 갑작스레 산티아고 순례길은 어떤 계기로 가게 된 것인가?
루시아 : 몇 년 전이었나.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라는 책을 읽게 됐다. 책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이 길을 걸어보고 싶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던 중 사장님께서 먼저 스페인에 다녀오신 뒤 가보는 것이 어떠냐 제안하셨다. 아, 사장님께서는 대도시에 다녀오셨고 난 도보 여행이었다. 하하. 농담이다. 아무래도 내가 카톨릭 신자다 보니 힐링도 할 겸 여러 의미가 있었다. 과감하게 간 여행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정말 멋진 경험이었다.
Q. 순례길이 굉장히 힘들다 들었는데 가녀린 체구로 어떻게 감당했는가.
루시아 : 하루에 20~25km의 거리를 종일 걸었다. 감도 오지 않는다. 하하. 일행 모두 너무 힘드니 말 없이 걷게 됐다. 그렇게 같이 걷다가 옛 동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의외로 많은 남자 분들이 옛 동화를 잘 기억 못하시더라. 그래서 가는 동안 구연동화를 하게 됐다. 다들 좋아하셨다. 여행을 통해 육체적으로 극한에 다다르면 오히려 정신이 말끔해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고된 경험이었지만 인생에 있어 필요한 순간이었다 느꼈다.
Q. 루시아는 어떤 계기를 통해 가수가 됐는가?
루시아 : 예전에 UCC를 찍은 적이 있다. 상품이 홍콩 디즈니랜드 여행권이기에 친구와 함께 찍었다. 운 좋게도 많은 조회수를 얻게 됐고 소속사의 연락도 왔었다. 한 소속사에 들어갔는데 나이는 나보다 열 살은 어리고 키는 15cm는 더 큰 친구들과 걸그룹을 준비하게 됐다. 내가 작곡한 곡을 회사에 들고 갔는데도 돌아오는 답은 음악에 관한 것이 아니라 성형수술을 하라는 것이었다. 하하. 그래서 그만 뒀다. 시간이 지나 지금의 소속사 사장님께서 엄청나게 설득하셨다. 그리고 지금의 루시아가 됐다.
Q. 루시아에 대해 본명인 심규선으로 아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어떤 곡에는 심규선이란 이름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루시아 : 아시다시피 에피톤 프로젝트의 ‘선인장’은 정말 대박이 났다. 그 때는 예명을 정하지 않았어서 심규선으로 나왔는데 어떤 분들은 ‘무슨 루시아야! 심규선이지’라고도 하시더라. 에이 뭐. 그냥 본인이 맘에 드는 이름으로 부르시면 된다. 루시아는 나의 세례명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가족들은 나를 루시아라 불렀다. 친척 아기들은 ‘루시아! 루시아!’ 이렇게 부른다. 규선이가 입에 붙지 않나. 하하. 루시아는 익숙하고 가장 나랑 친한 이름이기에 예명으로, 페르소나로 삼았다. 그런데 결과는? 대 실패다. 루시아와 심규선, 이름이 두 개다.
Q. 이번 앨범도 루시아의 자작곡으로 꼭꼭 채워졌다. 곡 작업을 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없는가?
루시아 : 늘 자작곡으로 해왔기 때문에 창작하는 것은 내게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 이번에는 작곡 할 때 굉장히 재밌었다. 작업 하고 난 뒤에 감사하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번 음반은 은유나 비유를 굉장히 배제했다. 한 사람의 작가로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언제까지나 똑같은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은 싫다. 계속 피어나야 한다. 이번에는 꽃, 바람, 밤, 달 등 이전에 해왔던 소재가 아닌 일상적인 단어들이나 문체로 삶, 사랑, 동경, 연민 등 감정적인 부분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음반이라 하는 것은 뮤지션이 그 때마다 입는 옷이라 생각한다. 뮤지션은 한그 때 가지고 있는 실과 천을 이용해 한 땀, 한 땀 음반이란 옷을 만든다. 준비물은 삶에서 얻어진 것을 토대로 하는 것이 진솔하고 옳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나에게 솔직한 것이 듣는 분들에게 도 솔직하게 닿을 것이라 믿고 있다. 여행을 다녀오며 삶에 대한 여러 이슈들이 생성됐다. 그래서 음악적 색이 바뀌었다고 너무 실망하시거나 슬퍼하실 필요는 없다. 옷이 달라져도 나란 주체는 그대로다.
Q. 루시아는 요조, 타루, 한희정, 레이디제인 등과 ‘홍대 여신’으로 꼽힌다. 이 수식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루시아 : 여신이라니. 재밌는 것은 나는 홍대에서 활동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데뷔 전에는 재즈클럽에서 연주를 하기도 했는데 데뷔 후엔 단 한번도 없었다. 아무래도 회사 선배 여자 뮤지션들로부터 타고 내려온 것은 아닐까. 여성 작가로서 스스로를 표현하고 싶다. 히히. 주변에서 홍대 여신이 아니라 ‘홍대 여식’이라고 하더라. 홍대 사니까 홍대 여식이 더 편하다.
Q. ‘가수 루시아’가 아닌 ‘자연인 루시아’의 취미 생활은 무엇인가?
루시아 : 시간이 날 때 매일 작곡을 한다. 음… 경험하는 것도 좋아하니까 계속 여행을 가보려 노력한다.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시간이 나면 늘 자연스럽게 책을 펼치는 것 같다. 아! 요즘 새로운 취미가 있다. 운동이다. 그 동안 여러 콘서트 장에서 실신한 경험이 있었다. 아무래도 육체가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스쿼트에 푹 빠졌다. 합주하면서도 시간 날 때마다 한다. 하하.
Q. 루시아가 지금까지 해온 음악도 있지만 다른 장르로의 일탈도 생각해 본 적은 있는지 궁금하다.
루시아 : 디테일하게 말하자면 희극적인 요소, 연극적인 요소를 음반에 넣어 발매한 적이 있다. 앞으로도 한 번 그런 음반을 내고 싶다. 음… 셰익스피어 동화 속에 있는 누구나 가지는 환상이나 판타지적 음악도 하고 싶다. 애절한 트로트도 도전해보고 싶다. 심수봉 선생님은 아직까지도 레전드로 불리시며 사랑 받고 계시는데 그런 음악도 해보고 싶다. 분위기 있는 트로트! 고민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다.
Q. 루시아는 앞으로도 대중에게 어떤 가수로 남고 싶은가?
루시아 : 가수라는 말보다는 표현과 창작 능력을 갖고 있는 한 명의 작가가 되고 싶다. 지금까지 그런 앨범을 계속 발매 해왔고 어필해왔다. 앞으로도 단순한 목소리를 내는 가수보다는 자기 표현과 창작하는 마인드를 가진 여성 작가로서 자리잡고 싶다. 지금 인디 신에서만 봐도 인정 받고 사랑 받는 싱어송라이터는 남자 분이 많다. 여성 작가로서도 그만큼의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다.
글. 최진실 true@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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