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업체 부장 태일(황정민)은 채권회수 때문에 만난 호정(한혜진)에게 첫 눈에 반한다. 사랑의 감정이 난생 처음인 태일은 정상적인 구애방법을 몰라 사채 거래하듯, 각서를 내밀려 만나줄 때마다 빚을 제해 주겠다고 호정에게 제안한다. 여차저차 만남을 이어가던 태일과 호정은 마음을 열고, 사랑을 속삭이게 된다. 하지만 세상은 둘 사이의 사랑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는다. 15세 관람가, 22일 개봉.

10. 한 남자의 투박한 사랑이 먹먹함을 남긴다. 허나 뜨겁진 않다. ∥ 관람지수 6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 스틸 이미지.

‘남자가 사랑할 때’는 황정민표 정통 멜로다. 사채업계서 일을 하며 거칠게 살아온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눈을 뜨게 된다는 내용. ‘조폭’ 계통 종사자와 평범한 여자의 사랑, 수없이 봐 왔던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다. 만나는 과정부터 위기의 순간까지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황정민과 한혜진, 극 중 태일과 호정의 사랑도 절절하게 끓어오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먹먹한 감성을 남긴 건 배우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황정민은 투박하고 우직한 태일의 사랑을 호정에게 보냈고, 한혜진은 한층 성숙해진 감정으로 태일의 사랑을 받았다.

황정민은 ‘역시’를 연발하게 만든다. ‘밀당’을 전혀 모르는, 우직한 태일의 사랑과 감정은 황정민을 만나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해진다. 또 ‘신세계’ 정청과 ‘너는 내 운명’ 김석중을 섞어 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한 여자만을 향했던 김석중의 사랑은 호정을 향한 태일의 마음과 같다. 거칠게 살아온 인생이지만, 호정을 향한 사랑만큼은 김석중 못지않게 순수함을 지녔다. 외형적인 모습에선 정청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겉으론 거칠지만, ‘온리 유’인 순정파다.

한혜진은 한층 깊어졌다. 태일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반할 만큼 빼어난 미모. 여기에 병든 아버지를 수발하며, 사채 빚에 시달리는 삶의 피곤함이 더해졌다. 캐릭터 자체가 그리 입체적으로 표현되진 않았지만, 분명 이전보다 성숙해진 느낌이다. 황정민과 함께 있는 그림이 제법 잘 어울린다. 나머지 캐릭터는 아쉽다. 태일의 형(곽도원)과 형수(김혜은) 그리고 태일의 조카(강민아)와 태일의 아버지(남일우) 등 가족 구성원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각기 다른 성격과 특색을 지닌 가족 구성원들을 내세워 여러 이야기를 만들었지만, 어느 하나 크게 와 닿진 않는다. 결국 영화는 관객에게 ‘이쯤 눈물을 흘려’라고 하는데, 큰 움직임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황정민과 한혜진의 멜로 라인은 뜨겁거나 격렬하지 않고,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하지만 그 점이 ‘남자가 사랑할 때’의 약점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흐름도 전형적인데다가 감정의 진폭마저 크지 않다 보니 전체적으로 밋밋한 기운이다. 전형적인 신파인데도 결말이 전하는 감동은 크지 않다. 빤한 이야기의 흐름 탓도 있지만, 두 사람의 감정이 스크린과 객석의 차이만큼 떨어져 있다. 두 사람의 사랑에 같이 공감하고, 두 사람의 위기에 같이 안타까워할 대중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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