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강력한 비트, 댄서블한 리듬에다 멜로디가 톡톡 튀는 일렉트로닉 록 사운드를 구사하는 밴드들이 대세를 이룬다. 블랙백은 기본적으로 에너지 넘치는 사운드를 구사한다는 점에서 요즘 밴드들과 비슷하지만 개체수가 희박해진 빈티지풍의 개러지 록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다. 전통적 록의 계보를 이으면서 자신들만의 감성과 폭발적 에너지가 공존하는 블랙백의 음악은 사뭇 매력적이다. 일상의 감성을 소재로 삼은 서정적인 곡에서 사회적 문제를 다룬 서사적인 곡까지 이들의 음악은 팔색조로 펼쳐지는 스펙트럼처럼 다양한 빛깔의 사운드와 다채로운 질감의 메시지로 채색되어 있다.
블랙백은 장민우(보컬, 기타), Jeff(이성복. 기타), 구태욱(드럼), 이혜지(베이스)로 구성된 4인조 혼성밴드다. 음악학원에서 만나 2009년 합주실에서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제작한 비공식 첫 EP ‘인투 아워 메모리스(Into Our Memory’s)’는 첫 음악여정을 떠난 이들의 첫 흔적이다. 치기 넘치는 젊은 영혼들은 노래 시작 전에 터져 나오는 헛기침까지 고스란히 담아낸 인위적 사운드가 배제된 날 것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모던 록을 구사했다. 이들의 음악여정이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질주했던 것은 아니다. 헬로루키 1차 음원심사에서도 고배를 마셨을 정도로 데뷔초기엔 별다른 성과를 내진 못했다. 이후 심기일전한 이들은 2011년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쌈지 오가닉 페스티벌(숨은고수) 무대에 올랐고 KT&G 상상마당 ‘밴드 인큐베이팅’ 4기에 선정되며 가능성을 보여줬다. 2012년 1월 공식 데뷔 EP ‘비욘드 더 스카이(Beyond The Sky)’를 발매 후, 단독공연을 매진시키며 존재가치를 높여나갔다.
블랙백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금년 봄, 한강 난지공원에서 열렸던 그린플러그드 페스티발 무대였다. 내 취재리스트에 그들의 이름은 없었지만 강력 추천하는 평론가 후배들에 이끌려 공연을 보게 되었다. 처음 ‘블랙백’이라는 밴드이름 때문에 걸밴드로 오해했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처음 접한 이들의 음악은 오랜만에 경험하는 70년대의 느낌이 물씬 풍겨나는 친숙한 개러지 록 사운드였다. 분명 처음 듣는 밴드의 음악이건만 마치 오래 전부터 들어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했다. 자신들만의 색깔이 분명한 음악을 구사하는 블랙백은 기타 리프가 인상적이었고 특히 리드보컬의 똑똑 끊어지는 창법이 꽤나 독특했다.
한방에 ‘훅’ 가게 만드는 노래가 있다. 흔히 그런 곡을 킬러곡이라 말한다. 블랙백의 대표곡 ‘화이트 원(White One)’이 내겐 그런 노래다. 몽롱한 기타 리프로 시작해 점점 스피드를 높여가며 젊은 패기를 발산하는 이 근사한 노래는 리드보컬의 창법에서 에너지가 느껴지고 기타 솔로는 단숨에 청자를 매료시키는 마력을 발휘한다. 안정적인 곡 진행과 폭발적인 기타 연주가 마치 70년대 클래식 록명곡을 듣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프리(Free)’를 거쳐 극한의 서정으로 채색된 대곡 ‘비욘드 더 스카이(Beyond the sky)’에 이르는 순간, 청자는 블랙백의 중독성 강한 마법에 사정없이 걸리게 된다. 앞서 언급한 노래들이 수록된 2012년 블랙백의 첫 공식 싱글의 감흥이 컸기에 기대감을 가지고 정규 1집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최근 블랙백은 ‘레인 해즈 폴른(Rain has Fallen)’이란 타이틀로 정규 1집을 발표했다. 청춘의 고민과 감정 그리고 젊은 날의 기록들을 빈티지한 사운드로 다채롭게 담아낸 이번 앨범은 숫자 ‘12’가 키워드다. 2009년 공식적인 활동 전에 멤버들은 서울 노량진에서 출발해 12번째 버스를 타고 12번째 정류장에 도착한 동해안 경포대 바다를 만나는 음악여행 이야기가 이 앨범에 녹아있다. 실제로 함께 여행을 떠나는 들뜬 기분을 안겨주는 경쾌한 첫 트랙 ‘하이웨이(highway)’부터 서정적 분위기로 차분하게 갈무리되는 마지막 트랙 ’다크네스 투 시(Darkness to see)’까지 블랙백의 음악은 전작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어쿠스틱 기타, 전자 피아노, 리듬샘플링 등 다양한 사운드 실험을 통해 한층 탄탄해진 앨범 완성도를 획득했다.
정규 1집 발표 직후 서울 합정동에 소재한 블랙백의 소속사 루비살롱레코드에서 멤버들과 만났다. 앨범 분위기에 어울리는 여행 느낌을 살리기 위해 실제로 근처 망원동의 마을버스 종점에서 홍대까지 멤버들과 버스를 타고 한 바퀴를 돌아보았다. 비가 오면 좋으련만 쾌청한 날씨였기에 분무기를 동원해 비 내리는 분위기를 연출하며 피쳐사진 촬영을 시도하고 긴 인터뷰를 통해 이들이 지나온 음악여정의 흔적을 되짚어 보았다.
모던 록, 포스트 펑크, 얼터너티브, 블루스, 개러지 록, 프로그래시브 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들이 혼재된 블랙백의 음악을 하나의 장르적 정체성으로 규정하기는 힘들다. 실제로 이들의 음악은 무한질주로 분위기를 업시키는 펑크적 질감과 어두운 슬픈 정서와 이를 극복하려는 희망적 정서가 혼재한다. 인터뷰를 통해 왜 이들이 이런 복잡한 정서가 공존하는 음악을 구사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블랙백은 송라이팅의 중심축인 리더 장민우를 구심점으로 리듬의 강약을 조절하는 드럼 구태욱, 여성특유의 섬세한 터치로 밴드의 합을 조율하는 베이스 이혜지, 거칠면서도 감성적이고 환상적인 톤을 만들어가는 탁월한 내공의 리드기타 이성복이 만들어내는 사운드는 이미 농익은 경지에 도달해 있다.
서정적이면서 파워풀한 사운드가 공존하는 이들의 음악만큼 알송달송한 밴드 이름 ‘블랙백’의 작명과정이 궁금했다. ‘블랙 백(Black Bag)’은 ‘까만 가방’이라는 의미 외에 미국 대통령이 출장 중에 군사 보좌관이 들고 다니는 핵전용 암호가방을 뜻하기도 한다. 일단 중요한 메시지(이들에겐 음악)를 담은 소중한 가방이 되겠다는 의미인 것 같다. 곡 제목만큼이나 밴드이름을 결정하는 과정도 힘들었다고 한다. “처음 밴드 이름 정하려 했을 때 별의 별 이름이 다 나왔습니다. 제 꿈에서 나왔던 ‘디키와키세븐’, 펑키존, 히치하이킹 등등, 민우가 갑자기 기타 가방이 블랙이라며 블랙백을 제안하더군요. 하드케이스 기타 가방이 가지고 있는 가구의 엔틱 빈티지 느낌과 비슷한 품위가 느껴져 마음에 들었습니다.”(이성복) “사람들이 블랙백의 의미에 대해 자주 질문을 해 찾아보다가 밴드 이름을 결정한 지 1년 뒤에야 블랙백이 핵폭탄 가방이란 걸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저희들의 정체성은 검은 007가방 안에 우리의 진실한 이야기가 숨어져 있다는 음악적 모토와 연결된다고 할 수 있겠네요.”(장민우)
멤버들은 각자 어떻게 음악에 입문해 함께 밴드를 결성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1989년 10월 3일 서울 목동에서 태어난 리더 장민우는 음악과 친밀한 집안 환경에서 성장했다. 부모님은 목동에서 만나 연애를 해 그는 속도위반으로 태어났단다. 어머니는 피아노 선생님이었고 아버지는 다방과 나이트클럽에서 DJ로 활약했던 분이다. 1남 1녀 중 장남인 그는 10살 터울의 어린 여동생이 있다. “어릴 때를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가족들과 함께 인천 월미도로 놀러가 보았던 방파제에 쌓여있는 큰 바위들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기억납니다.”(장민우)
4살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해 서울 목동 황제아파트에서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성장했다. 늘 음악이 흘러나왔던 가정의 환경 탓에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이브, 롤러코스터, 자우림 같은 밴드음악을 가족을 통해 접했다. 처음으로 관심을 가졌던 밴드는 엑스재팬. 초등학교 때 여친이 엑스재팬의 광팬인지라 그들의 사진이 장식된 책받침과 포스터를 선물 받았다. “처음엔 왠지 모르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는데 기타리스트의 모습이 멋있어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중1학교 때 직접 엑스재팬의 테이프를 샀습니다. 묘한 것은 저희 블랙백의 1호 팬이시자 어머니 같은 존재인 김시향 누님이 여고생 시절에 엑스재팬 라이브를 일본에 직접 가서 봤다고 해 그 열정에 깜짝 놀랐습니다.”(장민우)
장민우 어린 시절
남들이 하는 건 싫어했던 그는 처음부터 기타 배우기를 좋아하진 않았다. 남들이 다하는 피아노나 기타 같은 악기 하나를 가르치려 했던 어머니에 대한 사춘기의 반항이었다. 그의 관심은 동네에 유일했던 도장에서 ‘가라데’와 ‘합기도’ 같은 무술이었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친구를 사귄 그의 친한 동네친구들은 죄다 1진 같은 터프한 아이들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당산동에 있는 한강미디어고등학교 광고사진과에 진학했다.고1 때 사랑하는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는 그를 남겨두고 일본으로 떠났다. 이후 외삼촌 집과 고시원을 전전하며 살았던 그는 학교를 그만둘 생각이 들 정도로 정신적으로 방황하면서 음악에 대한 갈증이 처음으로 생겨났다. 외가 쪽 친척 누나 임명진은 그가 음악을 배우게 인도한 메신저다. “외가 쪽은 음악적으로 사고방식이 개방적입니다. 친척 누나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전문음악가에요. 고1 겨울방학 때 누나가 출강하는 경기도 분당에 있는 마마세이 실용음악학원에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학원 건너편에 있는 고시원에서 혼자 살았는데요. 밴드 바이바이배드맨 멤버들과 밴드 후후(WHOwho)의 베이스 안요한도 그때 같은 학원에서 음악을 배웠습니다. 그 학원에서 제프를 처음 만났죠. 당시 제프는 근로 장학생으로 학원 청소를 하는 선임으로 기타를 배우고 있더군요.”(장민우) (PART2로 계속)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사진제공. 장민우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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