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신비한 이미지가 영화에서 극대화된 것 같다. 생각해보면, 특별한 노력 없이 신비스러운 느낌이 잘 묻어난 것 같다.
해원은 신비한 소녀다. 예쁘장한 외모를 지녀 남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할 것만 같지만, 오히려 정반대다. ‘왕따’인데다가 해괴한 소문도 무성하다. 영화 ‘소녀’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 소녀를 연기한 배우는 김윤혜다. 해원과 김윤혜, 어딘지 모르게 한참 닮아 있다. 김윤혜를 둘러싼 이미지가 ‘신비’ 아니던가. 그래서일까.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해원이 지닌 신비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것 같다. 또 해원처럼 뭔가 비밀이 가득한 소녀 같다. ‘소녀’와 김윤혜, 이보다 딱 맞는 ‘궁합’이 있을까 싶다. 그렇게 김윤혜는 비밀 가득한 신비한 소녀 해원으로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
김윤혜 : 그렇게 볼 수 있다. (해원이) 가지고 있는 깊은 상처나 그로 인해 마음의 문을 담은, 그런 느낌을 담으려고 나름 한다고는 했는데. (웃음). 무엇보다 해원과 비슷한 것도 많다.
Q. 전작인 ‘점쟁이들’에서도 비슷한 이미지다. 김윤혜만이 가진 독특한 느낌이지만 동시에 극복해야 할 이미지이기도 하다.
김윤혜 :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 매력이 특출나고, 특별히 가지고 있는 건 좋은 부분이다.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없는 매력이고, 일부러 낸다고 해도 쉽게 낼 수 없는 거다.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매력이 보인다고 해주는 건 좋은 것 같다. 물론 신비로운 것만 어울린다고 할 것 같아 걱정되긴 하는데 아직 많은 작품을 한 게 아니지 않나. 나중엔 그 이미지를 깨려고 노력할 것 같긴 하다.
Q. 스웨덴 영화 ‘렛미인’을 봤나. 분위기가 상당히 흡사하다.
김윤혜 : 원래 좋아했던 영화다. 그렇다고 참고했던 건 아니다. 신비하고 비밀이 많은 소녀, 순수한 소년, 눈 덮인 마을, 풍경 등이 비슷한 느낌이긴 하다. 하지만 ‘소녀’는 소문이나 말의 폭력적인 부분도 포함돼 있어 내용적으론 차이가 있다. 겨울 느낌이 ‘렛미인’ 같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딱 떠오르진 않았던 것 같다.
Q. 어찌 됐든 ‘소녀’만큼은 딱 맞춤 캐스팅 같다. 그래서 선택하기는 쉬웠을 것 같은데.
김윤혜 : 고민의 시간이 길었다. 쉬운 캐릭터도 아니고, 영화 자체도 무서운 면이 있다. 무엇보다 잘 표현해내지 못하면 스스로 속상할 것 같고, 폐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고민 탓에 안 하기엔 후회를 더 많이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어려워도 부딪혀보자고 마음먹었다.
Q. 최진성 감독이나 제작사에서는 어떤 말을 해주던가.
김윤혜 : 감사하게도 ‘해원으로 잘 어울릴 것 같다’는 말을 해주셨다. 또 ‘해원이 왜 그런 것 같니’, ‘왜 이런 행동을 할까’ 등을 물어봤다. 사실 처음엔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 게 더 많았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해원이라면 이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여하튼 ‘왜 그럴까’가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이었다.
Q. 주연은 처음 아닌가. 첫 주연으로 영화 한 편을 끝마친 느낌이 어떤가.
김윤혜 : 더 열심히 해야 했는데 하는 생각도 들고, 부족한 부분을 보게 된다. 그래서 씁쓸하기도 하고. 고민도 많이 했지만, 이걸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도 든다. 감사하기도 하고, 책임감도 생겼다.
Q. 윤수 역의 김시후도 주연은 처음이다. 둘 다 처음 주연을 맡았기 때문에 더 힘이 되고, 의지가 됐겠다.
김윤혜 : 영화를 찍으면서도 그랬던 것 같은데 끝나고 나서 보니까 시후 오빠하고 감독님이 많이 커버를 해준 것 같다. 어려웠던 부분에서 윤수의 눈빛이나 눈을 보면서 끌리기도 했고, 빨려 들어가기도 했다. 표정 변화가 많은 건 아닌데 어떤 표정을 짓지 않아도 가슴 속 안에서 감정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오빠한테 집중할 수 있고, 서로 힘이 됐던 것 같다. 오빠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랬다.
Q. 첫 주연이라서 나름대로 준비도 많이 했을 거고, 각오도 다졌을 텐데.
김윤혜 : 제일 중요한 건 마음이었다. 현장 경험이 많지 않아 겁도 많이 났다. 그리고 해원이 생각도 많이 했던 것 같다. 돌아보면, 시후 오빠가 없었다면 더 힘들었을 것 같다. 또 감독님도 옆집 오빠처럼 포근한 말들로 힘을 주셨고, 해원을 이해할 수 있게 잘 끌어준 것 같다. 혼날 각오도 했는데 그런 부분은 없었다. (웃음). 무엇보다 열심히 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요즘은 ‘열심히’가 아니라 ‘잘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그래도 나는 열심히 하면 잘하게 된다고 믿는다.
Q. 스케이트 타는 장면은 거의 다 직접 했다고 하던데. 그런 준비는 어떻게 했나.
김윤혜 : 연습 많이 했다. 오전, 오후 나눠서 하루에 4시간 정도. 그리고 촬영할 땐 얼어붙은 논밭에서 틈틈이 연습했다. 실제 영화에서 타는 것처럼 말이다.
Q. 준비 기간이 그리 길진 않았을 텐데 그럼에도 상당히 잘 타는 것 같다. 운동 신경이 좋은가 보다.
김윤혜 : 운동을 좋아한다. 죽어라 연습했던 거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하고 싶었다. 스케이트 탈 때 해원은 행복해 보여야 하고, 자유로워 보여야 했다. 그런데 대역을 쓰게 되면 그게 잘 표현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할 수 있는 한 노력을 했다. 자연적인 호수라서 빙질이 절망적이긴 했지만. (웃음).
Q. 사실 영화를 보면서는 그런 생각이 안 들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매우 춥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교복 입고 나오고, 눈도 쌓여있고.
김윤혜 : 그렇게 질문 주시는 분들이 꽤 있다. 근데 너무 추웠다. 교복을 입으니까 껴입을 수도 없고, 짧은 치마였고. 그래서 얼굴이 굳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스케이트 타는 장면이 있을 땐 그게 운동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스케이트를 타면서 열을 내기도 했다. (웃음).
Q. 베드신에 대한 어려움을 얘기하기도 했는데. 사실 베드신이라고 하긴 다소 민망한 수준 아닌가.
김윤혜 : 연애를 해보긴 해봤어도 어려서부터 활동을 해 와서 또래 친구들처럼 평범하게는 못해봤다. 그래서 베드신 아닌 베드신인데도 많이 어려웠다. 그런 장면을 찍은 경험도 없을뿐더러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됐다.
Q. 앞서 이야기했지만 ‘소녀’는 말이 갖는 폭력성을 이야기한다. 특히 연예인은 잘못된 소문이나 터무니없는 악성 댓글 등으로 가장 많이 피해를 보는 사람 중 하나 아닌가. 어렸을 때부터 활동해 왔기 때문에 실제 이런 일이 많았겠다.
김윤혜 : 오래전부터 활동하다 보니 (소문 등이) 항상 있긴 있었다. 학교생활을 하다 보면 가만히 있어도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오래전부터 일해 왔고, 화보 이미지가 있다 보니 도도하고 새침할 거란 오해도 있을 수 있고. 또 그렇다고 일일이 친구들 만나서 ‘나 그런 사람 아니야’라고 할 수도 없지 않나. 지금은 크게 연연해 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공감 갔던 부분은 좋은 의미, 의도로 이야기했는데 그게 다른 사람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거다. 조심해야 한다 생각이 들었다.
Q. 그런 일에 닥쳤을 때 김윤혜는 어떻게 이겨냈나. ‘소녀’ 속 해원은 스스로 벽을 만들고, 닫아버리지 않나.
김윤혜 : 비슷했다. 20살까지 모든 것을 막았다. 지금도 쉽게 대처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연연해 하지는 않지만, 더 의연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지내오면서 느낀 건 어떠한 말들이 있어도 날 응원해주는 사람이나 내 편은 꼭 있다는 점이다. 그게 더 중요한 것 같다.
Q. 어쩌면 본인의 성격과 행동이 해원과 비슷해서 감정을 잡아가는 건 쉬웠을 수도 있었겠다.
김윤혜 : 맞다. 처음 해원을 봤을 때 사춘기 때 내가 가졌던 마음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을 닫은 이유가 알 수 없는 깊이까지 상처가 자리해 버려서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공감하기도 했다.
Q. 해원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다. 동시에 관객들에겐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전해야 하지 않나.
김윤혜 : 그 부분이 제일 어려웠다. 처음에 보면 감정 없고 편하게 보일 수도 있는데 그 안에는 해원이 가진 많은 감정이 있다. 상처도 있고, 배신도 있고, 경계하는 것도 있다. 그런 것들을 계속 생각하고 의도하기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다.
Q. 윤수와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데 그 감정은 쉽게 와 닿던가.
김윤혜 : 영화 찍으면서 윤수가 매우 좋았던 것 같다. 믿을 사람이 윤수 밖에 없었나 할 정도였다. 끝나고 나서도 윤수가 보고 싶었다. 시후 오빠 말고, 영화 속 윤수다. (웃음). 나도 모르게 사랑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시사회 때 슬픈 장면이 아닌 데 둘이 있는 것만으로도 슬펐다. 결말을 알기도 하지만 해원이 윤수를 얼마나 믿고 있고, 서로 마음이 얼마나 열러 있는지가 보여서 그런 것 같다.
Q. 캐릭터와 사랑 말고, 진짜 사랑을 해야 할 텐데. (웃음).
김윤혜 : 그러니까요. 이제 슬슬 하려고요. (웃음). 해보는 게 나한테 좋은 거고, 필요한 부분이다. 연애를 못하다 보니 주위 사람한테 꼬치꼬치 묻는 버릇이 생겼다. 키스할 때 어떤 기분이야, 나도 모르게 이런 걸 물어보게 되더라.
Q. 스스로 가장 못 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김윤혜 : 보통 촬영이 순서대로 진행이 안 되는데 그 부분을 좀 더 꼼꼼히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앞뒤를 생각하면서 감정들을 세세하게 잡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너무 의식하면 오히려 더 안 될 때가 있다. 그래서 항상 마음속에 생각해보고, 자연스럽게 녹여야겠다는 마음이다.
Q. 그래도 이건 ‘잘한 것 같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김윤혜 : ‘해원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눈빛이 잊히지 않아요’ 등의 평을 하신 분들이 계셨다.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공감이 가게 했던 부분인 것 같다. 내가 잘했다는 것보다 나도 모르는 부분을 봐주시니까 감사하다. (웃음).
Q. 활동을 오래 해왔어도 본격적으로 연기에 뛰어든 거 얼마 되지 않는다. 주연을 맡은 것도 처음이고. 해보니까 연기가 재미있던가.
김윤혜 : 재미는 아직 모르겠다. 어렵고, 두려운 마음이 더 크다. 재미라고 한다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이 된 것 같을 때가 있다. 촬영장에서 나도 모르게 감독님께 ‘해원이라면 이럴 수 있을 것 같아요’라는 말이 툭 튀어나온다. 생각하고, 연구해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게 아니라 해원으로 지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동화돼 나오는 말 같은 거다. 이래서 포기 못 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래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때까지 할 거다. 그리고 재미가 느껴질 때는 그 재미를 아니까 더 재밌지 않을까.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여유도 생기지 않을까 싶다.
Q. 앞으로의 각오와 다짐을 듣고 싶다.
김윤혜 : 모델 활동은 계속 해왔지만, 연기는 20살 넘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조급함 아닌 조급함이 있었는데 ‘소녀’를 찍으면서 많이 바뀌었다. 크고 작은 영화 마다치 않고, 스스로 연기가 재밌어지고 즐거워질 때까지 나를 채워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올해 잘 돼야 지가 아니라 올해 이런 작품을 해서 이런 걸 느껴보자는 마음이다. 지금은 ‘김윤혜가 나오니까 봐야지’란 말을 들을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근데 앞으론 한 신만 나와도 ‘김윤혜가 나온대, 기대된다’란 신뢰감을 주고 싶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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