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스틸
방송가의 예상을 깨고 높은 시청률로 안방을 장악한 KBS2 수목 드라마 ‘비밀’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불행하다. 그래서 모두가 안쓰럽고, 모두에게 마음이 쓰인다.물론 강유정(황정음)만큼 비극적 인물이 또 어디 있으랴. 사랑하는 연인이 검사가 될 수 있게끔 뒷바라지를 했지만, 버림받을 처지에 놓였다. 하지만 검사가 돼 그녀 앞에 선 연인, 안도훈(배수빈)은 로맨틱한 청혼으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 연인의 지조 있는 사랑은 그러나 비극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아이를 잃었고, 아버지까지 잃어야 했다. 그런 강유정은 어쩌면 통속적 복수멜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로 그려질 법도 했다. 그만큼 강유정 캐릭터의 큰 줄기는 전형성을 띄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를 둘러싼 잔가지들은 때로는 예상치 못한 곳으로 뻗어나가 시청자들의 허를 찔렀다.
안도훈(배수빈)은 어떠한가. 그 역시도 전형적인 악역은 되지 않았다. 강유정의 비극만큼은 아니었을지언정, 안도훈의 삶 역시도 무조건적으로 비난할 수 없었다. 도리어 마음이 가고 이해가 됐다. 안도훈의 처지에 놓였을 때, 그와 다른 선택을 할 이는 과연 얼마나 있을까 싶기도 했다. 그 역시 사랑 앞에, 인생 앞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조민혁(지성)의 삶도 비극 그 자체. 모든 것을 가진 재벌 2세이지만 가장 소중한 이를 넋놓고 잃어야했다. 그런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복수의 칼끝을 강유정에게로 겨누고 그 삶을 하나하나 짓이겨갔다. 그렇지만 아무리 복수를 하고 또 해도 잃은 것을 돌이킬 수는 없었고, 삶은 더더욱 고통스럽게 타들어갈 뿐이다.
그런 민혁을 사랑하는 신세연(이다희)의 공허한 표정도, 민혁에게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을 내밀며 “사랑 때문에 한 복수의 끝이 어디로 가는지 읽어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힘이 빠진 손끝에도 눈길이 가고 만다.
네 인물의 삶은 때로는 서로에게 악역이 될지언정, 그들의 삶을 지켜본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모두가 안쓰러울 밖이다.
또 안타까운 지점은 비극은 모두 그들 스스로의 선택에서 비롯됐다는 것. 안도훈이 운전하던 차가 미끄러져 사고가 났다. 그 사고의 결과를 뒤집어쓰려 한 것은 전적으로 강유정의 선택이었다. 연인의 변치 않은 사랑에 감격한 유정은 뺑소니 사망사고의 죗값을 대신 치루는 것으로 보답을 하려했다.
안도훈은 그런 유정을 더욱 아끼고 지켜주려 했다. 하지만 검사라는 꿈을 이뤘지만, 자신이 꿈꾸던 정의구현으로 가는 길에는 더 큰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사회초년생인 그는 조민혁이라는 거물급의 제안과 연인을 놓고 저울질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손으로 연인을 더 큰 비극 속에 빠트리고말고 그 선택은 그 자신도 지키지 못하게 만들었다.
연인을 허망하게 잃은 것은 결국 자신이 비겁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가장 잘 아는 이는 조민혁이다. 강유정을 향해 온갖 돌팔매질을 해가며 분노를 달래보려 했지만, 그런다고 풀릴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마지막 순간 마주하게 되는 것은 모든 것에서부터 도망만 치려고 하는 자신일 뿐이다. 자신의 마음 앞에 솔직하지 못한 채 자존심만 지키려다 모든 것을 잃고만 신세연 역시도 모든 비극은 실상 자신이 초래한 것이었다.
‘비밀’ 속 인물들은 이 모든 비극의 시작점에 서 있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들이 그렇게까지 내동댕이쳐질 줄은 말이다.
드라마 ‘비밀’은 점점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인물을 둘러싼 전개를 촘촘하게 엮어 나가며 이들의 아주 사소한 선택이 낳은 엄청난 비극의 서사를 완성시켰다. 찰나라도 눈을 뗄 수 없게끔 만드는 극의 흡입력은 여기에서 나온다.
종영까지 4회. 궁금한 것은 이들의 끝이 아니라 그 끝으로 향하는 과정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제공. 드라마틱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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