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쿠라에서의 첫 공연이었던 메가헤르츠에서

코쿠라
시모노세키에서 보통열차로 3 정거장만 가면 바로 코쿠라다. 기본요금으로 약 15분 정도 걸린다. 그런데 시모노세키보다 조금 더 넓고, 건물도 웅장하다. 혼슈의 끝인 시모노세키와 큐슈의 끝인 코쿠라지만, 역시 이동거리 때문인지 시모노세키의 뮤지션들과 그냥 한동네 친구처럼 지내는 느낌이었다. 7월 처음으로 코쿠라에서 공연을 가졌었는데, 코쿠라의 메가헤르츠(Megahertz)에서는 공연과 함께 헌책과 음반, 수제 과자를 파는 바자를 겸했다. 메가헤르츠는 공연장이라기보다는 DJ가 나와서 음악을 트는 클럽 공간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운드를 잡느라 애를 먹었는데, 다들 너무 고생했고, 사운드도 꽤 잘 나와 줬다. 리허설을 마치고 나오씨와 후지무라씨와 함께 중화요리 집에서 타이라멘을 먹었었는데, 후지무라씨 가 말하길 “메가헤르츠가 있는 저 골목, 야쿠자들 무서워요. 총을 들고 다니거든요.” 그래서 그런가? 어둑해지니 거리가 좀 싸늘하긴 하더라. 마치 ‘GTA’의 뒷골목 같은 느낌이랄까.

코쿠라의 마지막 공연은 투어의 마지막 공연이기도 했다. 갤러리 SOAP. 이곳은 오너도 메니저도 모두 사람 좋고, 한국 뮤지션들을 좋아해주었다. 공연 홍보 전단지는 메인으로 내 얼굴과 전위 색소폰연주자 카츠라 야마우치(山? 桂)님의 얼굴이 반반 실려 있었는데, 내가 찍혀있는 전단지가 코쿠라 전역에 깔렸다고 생각하니 그 느낌 또한 이상했다. 매니저 코우스케 타카하라(高原宏佑)씨도 드럼 없이 기타 두 대로 밴드 연주를 했는데, 이 친구가 1960~70년대 사이키델릭 하드록을 좋아해서 찰진 기타 사운드가 갤러리의 빈 공간을 아주 가득 채웠다. 공연은 끝나고, 일본 투어에 가져온 음반들도 모두 팔렸다! 80일간의 공연이 끝난 것이다.

이번 투어의 마지막 공연이었던 코쿠라 갤러리 SOAP

공연이 끝나고 뒤풀이는 우동가게에서 다함께 맥주와 우동을 먹으면서 끝냈다. 후지무라씨의 차를 타고 코쿠라-시모노세키를 잇는 심해터널을 지나면서 집으로 가는 동안 모두 서운함에 침묵을 지켰다. 후지무라씨는 특히 나를 좋아해주고 많이 챙겨줬는데, 다음날 아침 시모노세키 역까지 차로 태워주었다. 그의 페이스 북에는 일본의 마지막 날 역으로 향하는 내 뒷모습이 찍힌 사진이 있다.

후쿠오카
후쿠오카는 갤러리 IAF에서 두 번 공연을 가졌다. 모두 장비 없는 ‘무 전원’ 라이브였고, 단독 공연으로 이루어졌다. 사실 큰 인맥도 없었고, 아는 사람도 없고, 그저 한국의 진상태(닻올림)씨의 연결로 후쿠오카 거주중인 호주 사운드 아트 뮤지션 셰인(Shayne)의 소개로 연결되어 하게 되었는데, 주인이 정말 사람 좋은 분이었다. 처음에는 첫 만남에 신세지는 것이 싫어서 후쿠오카에 게스트 하우스를 잡아서 지냈었는데, 나중에는 친절히 메일로 “드린지 씨, 괜히 호텔 잡느라 돈 쓰지 말고 갤러리에서 자도록 해요. 침대 있어요.”라고 보내주었다.

5월 후쿠오카의 첫 공연. 마치 스터디 그룹에서 “내 곡 들어봐!” 하는 느낌이었다

후쿠오카의 마지막 날은 공연이 끝나고 새벽 3시까지 남은 사람들과 함께 맥주와 일본 술을 마시면서 밤새 얘기를 나누었다. 어차피 다음날부터 2일 동안 공연이 없어 여유도 있었고. 공연이 매일 있거나 긴 시간 도시를 이동하다 보니 2일 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꿀맛 같은 휴일이었다. 마지막에는 관객 2명이 집으로 돌아가니 뮤지션이라는 젊은 친구와, 미대에서 설치 예술을 한다는 교수님 한 분이 끝까지 남아 있었는데, 결국 내가 먼저 넉다운 되어서 침대에 누워서 자버렸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젊은 친구는 오간데 없고, 늙은 교수님 바닥에 웅크리고 주무시고 계셨다. 그러고 보니 갤러리의 주인은 공연이 끝나자마자 보이지 않았었구나. 여튼 다음날 점심 즈음 교수님과 야쿠인 역에서 어색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두번째 후쿠오카 때 받은 선물. “쿠마몬 좋아한다고 해서 가져왔어요”라며 선물을 주었다

쿠마모토
쿠마모토는 예전 머물렀던 츠루가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10일 동안 9번의 공연과 15시간의 열차 여행 뒤의 휴식을 위해서 2일 정도 쉴 생각으로 관광의 기분으로 방문했었다. 울산마치라는 곳도 가보고 싶었고, 쿠마몬이 정말 있을까 하는 기대감, 그리고 울산의 석공들이 지었다는 쿠마모토 성도 보고 싶었다. 열차라면 환장을 하는지라 쿠마모토의 노면열차도 타고. 후쿠오카에서 출발해서 쿠마모토로 여유 있게 출발했다. 내려서 예약한 비즈니스 호텔에 짐을 풀고 밀린 빨래도 했다. 2일 동안 관광이다! 노면 열차를 타고 성으로 향했다. 곡선을 뽐내는 돌벽을 보면서 천수각이 있는 곳 까지 걸었다.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리기도 하고, 높은 천수각 터에서 쿠마모토 시내를 내려다보면서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이제 일본에 머무는 날이 한자리 수다. 처음 도착했을 때 80일을 버티자 였는데, 중간에 서울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막상 5일도 채 남지 않으니 아쉽고, 더 있고 싶은 기분도 들었다.

예정에 없던 라이브. 쿠마모토 Club Navaro

천수각 터에서 바람을 쐬고 있는데, SNS에서 멘션이 날아왔다. “드린지 씨, 혹시 지금 쿠마모토에 계십니까?” 그렇다고 하니 개인 메신저로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쿠마모토에 혹시 라이브를 하러 왔냐고 물어본다. 아니라고 하니, 왜 쿠마모토에는 공연하러 안 오냐고 그랬다. 물론 하고 싶지만 아는 사람도 없고 해서 인연이 없다고 하니, 그 친구가 오늘 공연이 있는데 무례가 안 된다면 스페셜 게스트로 30분 정도 공연 해줄 수 없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당일 공연하는 다른 뮤지션들의 양해를 구하고 공연이 잡혔다. 예정에 없던 도시에서의 공연. 부랴부랴 쿠마모토 성에서 호텔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튜닝을 했다. 알려준 주소로 6시 30분까지 보기로 했다. 과연 목요일 저녁에 누가 공연을 보러 올까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도착하고, 리허설을 간단히 마치고 7시가 넘으니 관객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공연 오픈 시간인 8시가 다가오니 관객들이 클럽을 가득 매웠다. 싱어송라이터 두 명의 순서가 끝나고 나를 초대한 친구가 먼저 마이크 앞에 서서 내가 준비하고 있는 동안 멘트를 해주었다. 내가 어떻게 쿠마모토에 오게 되었고, 어떻게 오늘 게스트로 참여하게 되었는지 차분하게 소개했다. 그리고 30분 동안 예정에도 없던 라이브를 했다. 마치 시골 장터의 장돌뱅이가 된 것 같은 느낌. 투어를 하면서 변했나? 뻔뻔해진 건가? 장소와 여건만 되면 예정에 없던 라이브도 하고, 준비도 없이 그냥 술술 해왔던 느낌으로 라이브가 되었다.

다시 칸사이 공항
후쿠오카 공항에서 예약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칸사이 공항으로 돌아왔다. 서울행 비행기까지 4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서 오사카의 카이츠부씨에게 인사라도 할까 생각했는데, 혹시나 일정에 차질이 있을 것 같아서 참았다. 돌아오는 날 오사카는 태풍 때문에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정말 비행기가 뜰 수 있을까? 올해 4월 한국에서 공연을 가졌던 밴드, 알프스의 리사씨가 새로운 음반이 나왔다며 음반을 가지고 칸사이 공항으로 배웅을 와주었다. 리사씨가 이번 나의 투어를 보고, 자신들도 시간을 내서 일본 이곳저곳을 투어해볼 거라고 얘기했다. “아! 혹시 생소한 도시 있으면 얘기해요. 내가 아는 사람 있으면 소개해줄게요.”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이제 진짜 돌아가는 구나. 그리고 투어가 끝났다. 인천 공항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지 않았다. 2013년 내게는 여름이 남들보다 한 달 더 긴 것 빼고는. 한동안 후유증이 있겠지….

다시 칸사이 공항으로 돌아가기 위해 떠나던 아침. 후지무라씨 꽤 서운했었나보다

글, 사진. 드린지 오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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