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간지X하헌진, 바세린, 버스커버스커, 옐로우 몬스터즈(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사실 그대 몰래 그대 아닌 사람과, 사실 어젯밤도 그대 아닌 사람과, 사실 내일 밤도 그대 아닌 사람과김간지 X 하헌진 ‘김간지 X 하헌진’
김간지 X 하헌진 ‘그대 아닌 사람과’ 中
블루스맨 하헌진과 드러머 김간지가 듀오로 작업한 앨범. 하헌진은 재작년 혼자서 기타치고 노래한 델타 블루스 앨범 EP ‘개’를 발표하며 세상에 나왔다. 한국에서 보기 드문 ‘서울의 블루스맨’이었다. ‘개’는 인디 신에서 소소하게 블루스 붐이 일기 전에 나온, 국내에서 찾기 힘든 델타 블루스 앨범으로써 당시 소량 제작돼 오프라인을 통해서만 거래됐다. 하지만 음악이 좋아서였을까? 의외로 세간의 주목을 끌며 이름이 알려졌다. 김간지는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술탄 오브 더 디스코, 위댄스 등 굵직한 팀을 거치며 정력적으로 활동해온 드러머로 하헌진의 음악을 틀어놓고 드럼 편곡을 하곤 했다고 한다. 둘은 작년에 임시 프로젝트로 만났다가 합이 잘 맞아 아예 팀을 결성하고 앨범까지 냈다. 앨범에는 기존 하헌진의 곡, 신곡이 ‘기타와 드럼’ 버전으로 새롭게 녹음돼 담겼다. 기존의 구성진 블루스 곡들이 드럼의 활력을 타고 생기 넘치게 들려온다. 이야기꾼 하헌진은 블루스의 전통적인 미학에 우리 공감대를 건드리는 가사를 감칠맛 나게 결합하고 있다. 음악이 귀에 들어온다면 하헌진이 집에서 아이폰으로 녹음했다는 과거의 앨범들도 찾아 들어보길 권한다.
바세린 ‘Black Silence’
6년 만에 발표되는 바세린의 새 앨범이 대단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가장 신뢰하는 평론가 중 한 명(매우 까다롭기로 소문난)에게 전해 들었다. 기대감을 최대한 억누르고 평정심을 가지고 앨범을 들어본다. 첫인상을 말하자면, 이것은 하나의 대서사시다. 악곡에 있어서 전작들에 비해 한층 스케일이 커졌다. 기타 리프, 보컬의 그로울링에서 나오는 사운드의 질감은 과거의 트랜디한 뉴 메탈을 넘어서 매우 헤비하고, 중후하기까지 하다. 1996년에 결성된 바세린은 인디 신에서 피어난 뉴 메탈(당시엔 하드코어란 잘못된 명칭으로 불렀다) 사운드를 굳건히 지켜온 밴드다. 작년부터 당시 활동하던 몇몇 뉴 메탈 밴드들이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를 첨가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하며 컴백을 했다. 바세린 역시 국악, 덥스텝과 메탈을 결합하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고 있지만, 헤비니스라는 본질을 잃지 않고 있다. 아니, 잃기는커녕 과거에 비해 더욱 강렬하고 단단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그동안 와신상담의 세월이라도 가진 것일까? 작금의 한국 록 신에서 이런 탄탄한 완성도를 지닌 메탈 앨범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뿌듯할 뿐이다.
버스커버스커 ‘2집’
참 많은 사람들이 버스커버스커를 기다려왔나보다. 2집 발매 이후 현재까지 약 6일째 전 음원차트 1~9위가 버스커버스커의 노래로 도배돼 있다. (사흘께 쯤부터 몇 곡이 틈새를 비집고 오르락내리락 했지만 대세를 거스르진 못하고 있다) 음원차트가 생겨난 이래 이런 상황을 본 적이 없다. 지금 한국은 버스커버스커의 음악을 듣는 사람과 무관심한 사람으로 나뉜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이 이어지고 있는데, 부질없는 짓 같다. 듣는 사람들이 좋아하면 그만 아닌가? 그 좋아하는 사람이 다수일 뿐, 큰 의미부여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버스커버스커를 왜 좋아하는지 이해를 못하는 자신이 비정상이 아닐까 걱정하는 이들도 있는 것 같은데 그러지 말았으면 한다) 음악적으로 보자면 청자로 하여금 감정이입하게 하는 가사, 친숙한 멜로디 등 버스커버스커의 장점이 1집에 이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사운드적인 면에서 봤을 때 1집의 경우 버스커버스커의 아마추어적인 연주와 프로 세션연주자들의 연주가 뒤섞인 것이 큰 스피커로 듣기에 어색하게 들렸는데(버스커버스커를 큰 스피커로 듣는 경우는 별로 없겠지만) 2집은 보다 많은 시간을 들인 탓인지 이런 아쉬움이 해소됐다.
옐로우 몬스터즈 ‘Red Flag’
지난 8월 초 열린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취재를 갔다가 공연 중에 수만 명의 관객이 홍해 갈라지듯이 양쪽으로 나뉘는 장면을 목격했다. 주인공은 옐로우 몬스터즈. 열정적으로 노래하던 리더 이용원이 크게 수신호를 하자 관객들이 둘로 갈라졌다가 노래 시작과 함께 단체로 몸 부딪치기를 했다. 정말로 장관이었다. 오직 록 공연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에너지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옐로우 몬스터즈의 3집 ‘Red Flag’은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는 앨범이다. 록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담긴 앨범이기 때문이다. 펑크록의 스트레이트부터 헤비메탈을 연상케 하는 공격적인 기타리프, 귀를 쫑긋하게 하는 멜로디까지 록의 미덕을 골고루 만나볼 수 있다. ‘I Don’t Wanna Be With You’에서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록밴드들이 지원하는 세태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허세에 취한 너 오디션 스타, 하루살인걸, 밴드 오디션?, Slayer 대 Green Day?, TV노리개’라는 가사는 누군가는 했어야 할 말이다. 그리고 옐로우 몬스터즈는 그런 쓴 소리를 할 자격이 있는 밴드라는 것을 이번 앨범으로도 증명해보이고 있다.
권영찬 ‘op. 01’
배우 정은채의 앨범 ‘정은채’를 꽤 좋게 들었다. 그녀의 음악이 여배우의 허세가 아닌 진솔한 일기로 읽혔기 때문이다. 정은채의 매력을 잘 잡아낸 프로듀서 권영찬의 공도 컸을 테다. 권영찬은 제18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 은상 수상자로 박지윤, 권순관, 신혜성, 나인, 김예림 등의 앨범의 작곡, 편곡, 스트링편곡, 세션 등으로 참여해왔다. 뮤지션들 사이에서는 신뢰감을 얻는 아티스트로 ‘op. 01’은 본인의 이름을 걸고 처음 발표하는 데뷔앨범이다. 권영찬은 피아노, 기타 등 미니멀한 편성으로 차분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가을에 어울릴법한 스산한 음악들이다. 권영찬은 음악으로 예상해보건대 매우 차분한 사람인 것 같다. 타이틀곡 ‘바람, 노래’가 그나마 용기를 내 로킹한 음악을 시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말이다. 천천히 느리게 가는 음악.
스팅 ‘The Last Ship’
스팅이 10년 만에 발표하는 오리지널 곡으로만 채워진 앨범 ‘The Last Ship’은 자신의 고향인 영국 북동부의 조선소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을 제작하던 중에 받은 영감을 고스란히 옮긴 작품이라고 한다. 스팅이 태어난 월젠드의 주민들은 상당수가 목조선을 만들며 생활을 영위했고, 스팅의 가족 역시 이 일에 종사했다고 한다. 몇 십 년 전부터 지금까지 팝계를 통틀어 최고의 뮤지션으로 자리하고 있는 스팅은 음악과 동떨어진 이런 환경에서 자랐구나. 음악적으로 봤을 때 영국의 트레디셔널한 포크음악 성향이 나타난다. 악기들도 피들, 백파이프 등을 사용해 켈틱 포크 느낌도 난다. 물론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으 스팅 고유의 멜로디다. 아마도 스팅에게는 가장 자전적인 앨범이 아닐까 예상해본다. 한 가지 명징한 사실은 스팅은 여전히 ‘The Night The Pugilist Learned How To Dance’와 같은 아름다운 곡을 만드는 음악가라는 것이다. 앨범의 원작이라 할 수 있는 동명의 뮤지컬 ‘The Last Ship’을 국내에서도 볼 수 있는 기회가 오길 바래본다.
엘튼 존 ‘The Diving Board’
무려 서른 번째 정규앨범이다. 어린 시절에 FM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고 있으면 디스크자키 배철수는 엘튼 존에 대해 “23년 연속 빌보드 톱40 곡을 배출한 유일무이한 가수”라고 소개했다. 어쩌면 엘튼 존을 존재감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기록이 아닐까? 이제 어느덧 60대 후반이지만 작년 내한공연에서 보니 피아노가 부서져라 두드리는 에너지가 대단하더라. 새 앨범은 어쿠스틱 위주의 소박한 편성으로 간결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전작 ‘The Union’에 참여해 ‘아메리카나’를 선보인 티 본 버넷이 프로듀서로 다시 참여했는데, 이번에는 미국 전통음악의 색보다는 엘튼 존 특유의 피아노를 중심으로 한 관조적인 노래들이 담겼다. 엘튼 존은 한 인터뷰에서 “난 차트에 올리기 위해 이 음악들을 작업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좋다고 느끼는 음악만을 만들려고 했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음악들은 역시나 훌륭하다. 나이에 걸맞은 깊이 있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모습이 너무나 멋질 뿐이다.
어스 윈드 앤 파이어 ‘Now, Then Forever’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8년만의 정규앨범 ‘Now, Then Forever’를 플레이하자마자 코끝이 찡하면서 어깨가 자동으로 들썩여진다. 정말 대단한 그루브가 아닌가! 그리고 지겹게 들었던 과거의 앨범에 비해 조금은 아쉬운 가성이 나온다.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1번 ‘어스 윈드 앤 파이어는 신이다. 이토록 완벽한 그루브를 들려주니까’ 2번 ‘어스 윈드 앤 파이어는 신이 아니다. 가성에선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니까.’ 분명한 사실을 한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이 앨범은 전설에 누가 되기는커녕 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첫 곡 ‘Sign On’부터 16비트가 명불허전이다. 원년멤버는 세 명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공연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이들은 거의 대를 물려 밴드를 유지하는 수준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타이틀곡 ‘My Promise’에서는 소리의 빈틈을 찌르는 브라스 편곡 등 스릴이 잘 나타난다. ‘Guiding Lights’와 같이 감성을 자극하는 슬로우잼 넘버들도 여전하다. 담겼다. 밴드의 창립자 모리스 화이트는 파킨슨 씨 병으로 투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신곡들을 모니터링하고 가이드하는 등 신보 작업에 힘을 보탰다고 한다.
존 레전드 ‘Love In The Future’
현재 미국 소울음악계를 대표하는 이름 존 레전드(John Legend)가 5년 만에 발표하는 정규앨범. 존 레전드의 음악이 반가운 이유는 그가 소울의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공연에서 ‘Wake Up Everybody’을 노래할 때마다 곡 말미에는 테디 펜더그래스의 ‘Close The Door’의 전주를 삽입하는 것을 봐도 존 레전드의 방향성을 잘 알 수 있다. 이번 신보는 존 레전드의 앨범 중에서도 특히 고전 소울에 대한 사랑이 노골적으로 나타나 있다. ‘Who Do We Think We Are’에 진 나이트, ‘Tomorrow’에 닥터 존의 음악을 샘플링한 것을 시작으로 ‘Hold on Longer’에서 스티비 원더 방식의 신디사이저 편곡을 재현하는 등 그런 노력이 엿보인다. 물론 가장 두드러진 것은 존 레전드만의 훌륭한 멜로디다. ‘Open Your Eyes’의 경우 존 레전드가 ‘Ordinary People’ 이후 그만한 멜로디를 계속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곡이 아니겠는가? 존 레전드는 ‘레전드’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소울 뮤지션이다. 물론 냇 ‘킹’ 콜, 스티비 ‘원더’의 이름들과 존 ‘레전드’를 비교하는 것은 아직 힘들겠지만 지그머럼 전통의 고집에서 조금 벗어난 행보를 시도해본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여겨진다.
드림 시어터 ‘Dream Theater’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대명사 드림 시어터가 데뷔 28년 만에 처음 내놓는 셀프 타이틀 앨범이다. 그러고 보니 ‘Pull Me Under’, ‘Another Day’가 담긴 앨범 ‘Images And Words’가 나온 지도 20년이 훌쩍 지났다. 2010년에 드러머 마이크 포트노이가 탈퇴해 충격을 주기도 했지만 작년 내한공연에서 드림 시어터는 여전히 화려한 초절기교의 연주를 들려줬고, 2011년 앨범 ‘A Dramatic Turn of Events’로 처음 그래미 후보로 지명되는 등 건재함을 과시했다. 정규 12집인 새 앨범에서는 초심으로 돌아가려 했다고 한다. 장엄하기까지 한 첫 곡 ‘False Awakening Suite’부터 헤비한 광폭하게 달려가는 ‘The Enemy Inside’, 멤버 간의 칼 같은 호흡을 느껴볼 수 있는 ‘Enigma Machine’에 이르기까지 마치 젊은 시절의 드림 시어터를 보는 듯하다. 22분짜리 마지막 곡 ‘Illumination Theory’는 ‘Paradoxe de la Lumi?re Noire(검은 빛의 역설)’, ‘Live, Die, Kill(生, 死, 殺)’, ‘The Embracing Circle(포용의 원)’, ‘The Pursuit of Truth(진실의 추구)’, ‘Surrender, Trust &Passion(굴복, 신뢰와 열정)’ 등 5부작으로 구성돼 드라마틱한 감흥을 전한다. 이것이 바로 드림, 드림시어터!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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