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그 겨울>김범, 소진되지 않은 청춘의 겨울
김범, 언제나 태반에서 방금 탈출한 듯 뽀얀 피부를 자랑할 것만 같은 이 미소년은 알듯 모를 듯 남자의 아우라를 표정에 담고 다가왔다. 아직도 그를 가을양의 키다리 아저씨로 기억하고 있다면 오산이다. 어느 새 스물다섯, 이십대 중반의 청년 김범은 차곡차곡 다채로운 캐릭터들로 그의 이십대 필모그래피를 채워오고 있었다. 천사, 사이코메트리, 도박사…. 확실히 또래들과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김범. 잘생긴 얼굴 저편에는 어떤 욕심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일까. 인터뷰 내내 “성장했다”는 표현에 유독 인색하고 민감하던 그는 이 모든 표현을 “배우는 과정”으로 대체하려 애썼다. 그것은 겸손의 표현이라기보다 아직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지 않은 것을 잘 아는청춘이 섣부른 칭찬에 들뜨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다.

배우 김범은 자신을 한 단계 도약시켜준 노희경 작가와 드라마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이하 빠담빠담) 이후, 얼마 전 종영한 SBS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이하 그 겨울)로 다시 만났다. <빠담빠담>을 자신의 기점이라고 고백한 그는 천사 이국수에 이어 백지같이 하얀 박진성을 연기하며 20대 또 한 번의 겨울을 멀리 보냈다. 그리고 “다음 작품을 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며 부지런한 봄 채비를 하고 있었다.

Q. 얼마 전 <웜바디스>라는 영화를 봤다. 핫스타의 낭창낭창 좀비 연기에 신이 났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한국에는 김범이 있더라. 천사를 연기하고, 사이코메트리까지 연기한.

김범: <빠담빠담>의 국수는 천사 반, 사람 반. 일반적인 캐릭터는 아니었다. <사이코메트리>의 김준 역시 초능력과 트라우마를 가진 독특한 인물이었고. 두 캐릭터 모두 배우에게는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다. 밑바탕에 어떤 색을 칠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그림들이었다. 잘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기보다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낚아챘다. 참, 니콜라스 홀트와 나는 동갑이다. 영화의 개봉시기도 한 주 정도 겹쳤고(웃음). 그런 좋은 배우와의 비교는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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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최근 김범의 필모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확실한 변화나 성장의 느낌이 감지된다. 얼굴에도 은근한 변화가 느껴지는데, 성큼 남자로 자란 느낌이랄까. 본인도 느끼고 있나.

김범: 글쎄. 화면 속 내 얼굴을 통해 변화를 느낀 적은 없지만, <빠담빠담> 하면서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성격이나 성향이 많이 변했고, 가치관 자체가 많이 달라졌다. <빠담빠담> 하기 전 1년 반이라는 시간을 쉬게 됐다. 그 전까지 데뷔하고 나서 6년 동안 촬영을 쉬어본 적이 없다. KBS에서 데뷔해 MBC에서 드라마 찍고,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을 10개월 동안 찍고, 영화를 찍고 또 드라마 <에덴의 동쪽>을 반년 간 찍었다. 그리고 일주일도 안 돼 <꽃보다 남자>에 투입됐다.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달린 거다. 전력질주의 느낌으로 앞만 보고 달렸던 시기였다. 이후 쉬는 1년 반 동안 처음으로 내가 달려왔던 길을 되돌아 봤다. 옆을 둘러보니 혼자만의 달리기가 아니었다. 그 과정 속에 소중한 사람들이 생겼고 제 손을 잡아주고 등 뒤에서 밀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들은 지금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고, 지켜주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쉬는 시간은 마음 편치만은 않았다. 처음 일주일, 한 달은 기분 좋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보냈다. 그런데 계절이 바뀌고 분기가 바뀌면서 불안함, 초조함, 조급함이 생겼다. 그 때 고맙게도 제 옆에서 절 믿어준 식구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오히려 ‘범아, 넌 흔들리지 마. 네가 흔들리게 되면 우리까지 흔들리니까, 너만큼은 흔들려선 안 된다’라고 말해줬다. 이 시간들을 거쳐 <빠담빠담>을 만났다. 그 작품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 중 ‘하늘이 갈라지고 땅이 꺼지고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는 것이 기적이 아니야. 사람들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이야’라는 대사가 있다. 연기하는 배우의 입장을 떠나 한 사람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준 작품이었다. 장기 휴식과 <빠담빠담>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배운 것이 많았고 그래서 아마도 내가 변화했나보다.

Q.김범의 성장 스토리를 듣는 것 같다.

김범: 성장했다기보다 가치관의 변화다. 살아가면서 일을 하면서 우선순위들을 매기는 것이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 심적으로 여유로움도 생긴 것 같고 작품을 고를 때나 작업을 할 때 시간에 대한 소중함을 생각하게 됐다.

Q.<그 겨울> 노희경 작가와의 첫 만남 <빠담빠담>은 소속사 보다는 본인이 고집했었다고 들었다.

김범:우연히 대본을 읽게 됐고, 무엇보다 국수라는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천사 캐릭터가 나왔는데, 누가 할지 궁금했다. 물론 내가 하고 싶었다. 감사하게도 (나를) 믿어주셔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캐릭터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나 혼자만의 노력은 아니었고, 노 작가님과 김규태 감독님과의 많은 대화를 통해 가능했다. 또 정우성 선배도 함께였다. 그 과정이 너무나 행복했고 많은 것을 배우게 해줬다.

Q.이후 <그 겨울>로 가는 길은 순조로웠을 것 같다.

김범: <빠담빠담>은 종편채널에서방송돼흥행에는한계점이 있었지만 우리들끼리는 너무 행복했다. 나 역시 무엇보다도 누구보다도 행복했다. 그 행복한 작업을 뒤로하고 중국에서 영화를 촬영하고 있었을 때 <그 겨울> 이야기를들었다. 노희경 작가님과 김규태 감독님의 두 번째 호흡이 잘 됐으면 한다고 조용히 응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규태 감독님이 같이 해줬으면 좋겠다고 연락을 해오셨다.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결정했다. 또 찾아온 행복한 시간에 감사하고 믿어주신 것에 대해서도 감사드린다. 다만 더 잘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송함과 아쉬움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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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 겨울> 속 진성은 이상적인 캐릭터다. 너무나 맑고 착한 인물. 보는 사람을 미소 짓게 만든다. 그런 캐릭터에 자신을 대입시키는 과정은 어떠했나. 노희경 작가와 이번에도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 텐데.

김범: 그렇다. 좋았던 점은 다른 드라마에 비해 시간적 여유가 많았던 것. 그래서 1부 부터 마지막 회까지 대본 리딩을 빼놓지 않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나 혼자만의 (캐릭터) 해석이었다면 그렇게 못했을 것이다. 상대 배우와 이야기 하고 노 작가님, 김규태 감독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은 진성의 감정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너무 좋은 시간들이었다. 앞서 말씀드렸듯, 내게 진성은 뜻하지 않은 선물이었다.

Q. 진성 같은 맑은 사람을 혹시 주변에서 만난 적이 있나.

김범: 국수라는 친구를 만났었다(웃음). 그는 한없이 깨끗했다. 천사였으니까.

Q. 결국 자꾸만 김범의 성장으로 이야기가 귀결된다. 주변에서 칭찬소리도 많이 들리는 봄을 보내고 있지 않나.

김범: 내 스스로 내가 성장했다는 평가를 내리기에는 섣부르다. 또 만약 그렇다고 해도 혼자가 아닌,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는 배우들과 나눈 이야기, 또 작가님, 감독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빚어진 결과다. 사실 국수도 진성도 이해가 어려운 감정을 지닌 인물들이었다. 예를 들어, “저리가 꺼져”라는 대사를 하지만 “제발 내 옆에 있어줘”라는 마음을 가진, “죽고 싶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미친 듯이 살고 싶었던 캐릭터들이 한데 모인 작품이었다. 덕분에 캐릭터 제각각 긴장감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Q. 우연찮게도 정우성, 조인성, 송혜교 등 시대를 풍미한 선배들과 호흡했다. 확실히 다른 점이 있었나.

김범: 매일매일 그 다른 점을 느꼈고, 매일매일 배웠다. 나도 저런 선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촬영장에서 실제로 많이 의지하기도 했고 감정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항상 배려해주셨고, 제가 제 시간을 가질 수 있게끔 여유를 주셨다. <그 겨울>의 경우 마지막 방송을 극장대관해서 함께 봤다. 그 회의 감정이 너무 슬펐다. 내 출연 장면 외에도 오수와 오영의 감정이나 오영과 왕비서의 감정, 무철이를 떠나보내는 진성의 감정, 오수를 해쳐야만 하는 진성의 감정들 모두가. 그래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 웃는 모습으로 마무리 하고 싶어서 불이 켜졌을 때 애써 안 운척 했는데 옆에 있던 인성 형이 나를 안아주면서 “수고 했어. 잘 했어 진성아” 하면서 안아주셨다. 참았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형과 부둥켜안고 울었고, 나중에는 혜교 누나까지 같이 울었다.

Q. 그렇다면 김범 역시 정은지에게 좋은 선배가 됐나.

김범: 선배라기에는 민망하다. 그보다는 편한 오빠로 다가가려고 했다. 나이대도 비슷해 고민도 비슷했기에 대화를 많이 했다. 그 친구는 열심히 하고 똑똑한 친구다. 그래서 내 역할은 긴장하지 않도록 편한 오빠로서 다가가는 정도였다.

Q. <그 겨울>은 엔딩을 둘러싸고 이야기가 많다. 김범이 생각하는 엔딩은 무엇인가.

김범: 많은 분들이 제각각 의견이 있으시던데, 그 부분에 있어서는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배우가 하는 작업은 대본에 쓰여 있는 것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한 가지 관점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보시는 분에 따라 다른, 마침표가 아닌 …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결말 같아서 좋았다. 마침표였다면 이대로 끝나는 결말일텐데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것 같아 좋았다. 오랫동안 회자될 것 같다. 그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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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 겨울>을 떠나보낸 김범의 꿈은
김범: 4년 전쯤 수상소감으로 했던 말이 있다. 도전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가 되겠다는 것. 앞으로도 변함이 없다. 개인적인 목표라면 흔들렸을 때 잡아준 소중한 사람들을 데리고 가능한 갈 수 있는 한 멀리 높게 데려다주고 싶다.

Q. 책임감이 강한 배우라는 느낌이 부쩍 많이 든다. 소속사 이진성 대표가 어깨를 누르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웃음).
김범: 하하. 이진성 대표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Q. 다음 계획은?
김범: <빠담빠담> 이후 일 년 동안 네 작품을 했다. 그 전까지는 어떤 작품을 하고 나면 감정적으로 소비했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빠담빠담> 이후로는 작품을 해도 소비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오히려 더 좋은 에너지를 얻고 간다. 그래서 욕심을 부려 빨리 다른 작품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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