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하철 안에서 놀라운 광경을 봤다. 긴 좌석에 앉은 일곱 명이 모두 동시에 휴대폰을 꺼내서 사용 중이었다. 남녀노소, 모두 휴대폰으로 다른 곳에 있는 사람과 접속하거나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지하철 한 칸을 슬쩍 둘러봐도 책을 읽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니콜라스 카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주장한 것처럼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었다면, 스마트폰은 이렇게 한국의 일상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전지전능한 스마트폰 덕분에 바로 옆에 앉은 사람들과 쉽게 벽을 치고, 멀리 떨어져 있는 지인들과의 근접성을 높이면서 사는 게 가능해졌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인들의 이런 모습을 ‘고독을 잃어버린 삶’이라고 정의내리고 있다. 쉽게 설명하면, 인간이 창조적인 행위를 하기 위해선 고독이 필요하지만, 그런 시간조차 인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와 접속하지 못하면 잠시도 참을 수 없는 불안에 휩싸인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다.

[예술 즐기는 습관] 유동하는 세상에서 불안과 맞서기
(좌),<고독을 읽어버린 시간>(우)" />지그문트 바우만 < 리퀴드러브>(좌),<고독을 읽어버린 시간>(우)

작년 여름, 바우만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을 흔들리는 지하철 속에서 읽었다. 그는 근대 세계를 ‘유동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탈근대 사회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액체(liquid)처럼 흘러가다 보니, 현대인에게 불안과 위험이 그림자처럼 생겨난다. 그는 2000년대에 사회의 유동성과 불확실성을 추적하는 ‘리퀴드’ 시리즈를 내놓았다. 그 후 편지 형식으로 쓴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선 현대인은 혼자서 고독을 누리거나 사색하는 방법을 잃어간다고 충고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끊임없이 접속하지만, 그럴수록 쉽게 채워지지 않는 우리의 공허함을 지적하는 대목을 보면 소름이 돋을 정도다. 최근에 번역된 <리퀴드 러브>도 언제나 쉽게 연결을 끊을 수 있는 허약한 관계에서 오는 문제점들을 지적한다. 인간관계의 나약함은 너무 숨막히는 포옹을 피하게 만든다. 즉 사랑에 빠질 때는 반드시 사랑을 끝날 때 오는 리스크 또한 계산해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바우만은 우리의 병을 날카롭게 진단하지만, 만병통치약이 있다고 떠벌리진 않는다. 관계의 우울증과 싸우기 위해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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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해변의 카프카>

바우만을 좇아 글로벌 시대의 휴머니티나 타자와의 관계를 사유하게 되면,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을 사랑한 소년의 이야기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관계 맺기를 희망하면서도 진짜 관계에선 너무 빨리 도망치고 만다. 이런 질문을 연극 <해변의 카프카>에 던지는 것도 가능하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년은 궁극적으로 인간됨과 관계 맺기에 대해 고민한다. 국내에서도 히트를 쳤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2002년 동명 소설을 연극화했으며, 미국 연출가 프랭크 갈라티의 각본을 토대로 했다. 하지만 소설의 판타지적 요소를 효과적으로 살리기 위해 김미혜 연출이 수정을 가했다. 터프한 소년이 되고 싶은 타무라 카프카의 성장통을 다루지만,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무대라서 미궁 속을 끝없이 방황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작품의 심연에 위치한 섹스와 살인은 역시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본능마저 일깨운다. 연출은 “작품 안에 관념적인 대사가 많아서 가볍지 않다”고 고민하지만, 어른들을 위한 우화처럼 다가오기에 결코 난해하지 않다. 굳이 하루키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로 이 연극을 재단할 필요는 없다.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공연 중이다.

[예술 즐기는 습관] 유동하는 세상에서 불안과 맞서기
의 ‘Eija-Liisa_Ahtila’ ‘Nedko Solakov’ ‘Wolfgang Tillmans’ 作 (좌측부터 반시계방향으로)" />‘무담 룩셈부르크’ 현대 미술관 전경, < 더 완벽한 날:무담 룩센부르크 컬렉션 전>의 ‘Eija-Liisa_Ahtila’ ‘Nedko Solakov’ ‘Wolfgang Tillmans’ 作 (좌측부터 반시계방향으로)

전시로는 <더 완벽한 날>이란 제목을 내세운 ‘무담 룩셈부르크 컬렉션’을 추천한다. 요즘 삼청동 카페 골목의 핫 플레이스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으니, 차 한 잔의 여유를 아트선재센터에서 찾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 전시는 ‘유토피아’라는 주제로, 동시대 미술가들의 설치, 회화, 사진 작업 등을 모았다. 사실 ‘미래는 없다’식의 반항적인 제목이 은근히 더 어울린다. 개인적으로는 독일 사진가 볼프강 틸만스의 초상 작업을 좋아하지만, 이번 전시에는 가장 눈에 띠는 것은 불가리아 작가 네드코 슬라코브의 <진실(지구는 평면이다, 세상은 평평하다)>와 핀란드 작가 에이야-리사 아틸라의 <집>이다. 전자는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진실에 회의를 던지는 작업으로 부조리한 유머를 일으키고, 후자는 집의 안과 밖이 혼합(무너진 경계)되는 정신분열을 통해 존재의 불확실성을 추적한다. 작품을 전부 보고 나면, 홀연히 무담 미술관(2006년 완공)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앞선다. 이오 밍 페이가 설계한 이 미술관은 상부의 덮개가 유리라서 다양한 빛의 변화를 즐길 수 있다. 또 요새의 유적과 맞닿아 있어서 독특한 외관을 자랑한다. 미술관을 소개한 동영상이 없는 것이 무척 아쉽다.

글.전종혁 (대중문화평론가) hubul2@naver.com
편집.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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