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개봉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했다. 상상을 안했다고 하는게 적합할 것 같다. 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지, 어떻게 현실화시킬지에 더 많이 집중했던 것 같다.”
이번 영화만큼은 ‘배우’ 유지태가 아닌 ‘감독’ 유지태다. <동감>, <봄날은 간다>, <올드보이>, <주유소 습격사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등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 왔던 그가 영화 <마이 라띠마>로 감독 데뷔식을 치른다. ‘배우’로서의 명성과 인기를 등에 업고, 손쉽게 ‘뚝딱’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색안경’을 낀 시선도 꽤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감독’ 유지태는 장편 데뷔에 앞서 <초대>, <나도 모르게> 등 꾸준히 단편 영화를 만들며 연출력을 키워왔다. 또 <마이 라띠마>는 대규모 자본을 등에 업은 상업 영화도 아니다.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15년 전부터 품고 있던 이야기다. 이처럼 손쉬운 감독 데뷔는 결코 아니다. 유지태 감독은 “영화를 왜 만들려고 하는지, 이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진행형”이라고 감독으로서의 고민을 전하기도 했다.
유지태는 홍상수 감독, 박찬욱 감독, 허진호 감독 등 국내 유명 감독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많은 것을 몸소 배웠다. 폴 토마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 감독, 알렉산더 페인(Alexander Payne) 감독, 장 뤽 고다르(Jean Luc Godard) 등 해외 명감독들의 영화들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 ‘기억’들이 <마이 라띠마>에 영향을 주었음은 분명하다. 그에게 있어 음악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기억 속에 간직된 음악’을 차근차근 꺼내는 유지태의 입가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 음악 속에 담긴 기억에는 영화에 대한 기억도, 연인에 대한 기억도 함께 담겨 있었다.
1. Ludwig van Beethoven의
“<불멸의 연인>, <카핑 베토벤>, <노다메 칸타빌레> 등 많은 영화에 등장했던 음악이다. 여러 영화에서 사용됐는데 영화 속 내용과 맞물린 음악, 그 기억이 깊게 남아 있다.” 유지태의 말처럼, 베토벤 교향곡 7번은 수많은 영화에서 사용됐던 음악. 베토벤의 원숙미와 새로운 모험적 시도가 보이는 곡으로 평가된다. 강박적인 리듬의 반복을 통해 드라마틱한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제2악장 알레그레토의 아름다움은 유명하다.
2. Antoni Wit, Bernd Glemser, Polish National Radio Symphony Orchestra의 <영화 속 러브스토리>
“데이비드 린(David Lean) 감독의 <밀회>, 한국영화 <혈의 누> 등 많은 영화에 흘렀던 음악이다. 무엇보다 이 음악은 개인적인 기억이 강한데 효진 씨와 함께 자주 듣던 곡이다.” 이 음악을 이야기하는 유지태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유지태와 김효진이 연인 시절 즐겨 듣던 음악, 이에 대한 에피소드는 이미 언론과 방송을 통해 알려졌다. 이 기억이 유지태를 더욱 웃게 한 듯 싶다. 이 음악은 낭만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되며,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의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힌다.
3. Ryuichi Sakamoto의 4. Nine Inch Nails의 5. 조용필의 <19집 Hello> 영화를 향한 순수한 열정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어릴 때 류이치 사카모토(Ryuichi Sakamoto)의 ‘Rain’을 너무 좋아했다. 지금이야 다운로드 서비스가 많이 발달해서 음원을 금방 구할 수 있지만, 그땐 아니었다. 이 음반을 구하기 위해 홍대를 뒤집고 다녔다. 음반을 구해서 반복해서 듣고, 귀에 익은 음악이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1978년 첫 솔로 앨범
“연극 효과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음악을 많이 듣기 시작했다. 효과음을 내는 음악들은 대부분 세거나, 일렉트로닉 하거나, 음울했다. 그런데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의 ‘Closer’가 영화 <세븐>의 오프닝 시퀀스에 흐르는데 너무 멋있더라. 데이빗 핀처(David Fincher) 감독도 그렇게 느꼈는지 그 뮤지션하고 계속 영화를 같이 하더라.” 나인 인치 네일스는 트렌트 레즈너(Trent Reznor)의 1인 밴드. 전자 악기들로 여러 음악 장르의 접목을 시도한 유명 록 밴드다. 유지태의 말처럼, 나인 인치 네일스는 <세븐> 외에도 <소셜 네트워크>,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등에서도 데이빗 핀처 감독과 함께했다.
“요즘 편하게 듣는 음악은 조용필 <19집 Hello>다. 시대를 뛰어넘는 그분의 에너지와 열정은 귀감이 된다. 사실 예전엔 가요를 선호하지 않았는데 요즘엔 듣는 편이다. 그리고 유행하는 음악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조용필의 <19집 Hello>는 설명이 필요 없는 곡이다. 조용필의 19집 앨범 수록곡으로 발매와 함께 온라인 음원 사이트를 휩쓸었다. 나이는 들었지만, 감각과 음악적 열정만큼은 그 어떤 젊은 가수들에 뒤지지 않는 조용필, 그 모습에 온 국민이 반응했다.
유지태는 영화 이야기 못지않게 음악 이야기에 신이 났다. 슈베르트 피아노 연주곡 100번 2악장을 말하며 미하일 하네케(Michael Haneke) 영화를 떠올렸고, 사카모토 류이치(Ryuichi Sakamoto)의 ‘Rain’에 대한 기억도 들춰냈다. “예전엔 영화 음악을 먼저 듣고 영화를 볼 때도 있었다. 그렇게 봐서 실패한 영화도 있었지만 <트레인스포팅> 같은 경우에는 대만족했던 작품이다.” 유지태는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피식’ 웃으며 음악에 얽힌 과거의 기억을 말해주기도 했다. 영화와 음악을 향한 그의 순수한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사진. 채기원 ten@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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