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화면" />tvN <응답하라 1997> 방송화면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은 1990년대 후반의 향수를 자극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97년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제작진이 선택한 것은 당시 10대?20대가 소비했던 문화. 아이돌 그룹과 그들의 노래를 비롯해 드라마, 삐삐, PC통신, 다마고치와 DDR에 이르기까지 당시 유행했던 ‘트렌드’를 절묘하게 이야기 속에 녹여냈다. <응답하라 1997>에서 문화를 소비하는 주된 창구로 부각되는 것은 TV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대중적으로 보급되지 않았던 때라는 걸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다. 인터넷이 생활을 지배하기 전까지 TV는 ‘바보 상자’ 소리까지 들어가며 거의 모든 가정의 ‘중심’ 역할을 수행했다. 1997년의 분위기를 치밀하게 구현한 드라마인 만큼, <응답하라 1997>은 일반 가정집의 TV 시청행태도 디테일하게 묘사해냈다. 드라마에서 TV를 보는 모습은 2013년의 그것과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응답하라, TV 1997
#1. 시원이네 집 거실에서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 시원이의 친구들. 윤제, 성재, 준이는 TV 화면과 연결해 DDR을 즐기고 있고, 뒤에 앉은 유정이는 DDR 화면에 맞춰 손으로 맨 바닥을 눌러가며 연습중이다. ‘Butterfly’가 한창 클라이맥스로 치닫던 그 순간, 갑자기 음악이 끊긴다. 방에서 ‘토니 오빠야’ 사진을 들여다 보고 있던 시원이가 갑자기 나타나 채널을 돌린 것. ‘토니 오빠야’가 나오는 <스타 다큐>를 녹화하기 위해서다. 집 주인이 아닌 애들은 투덜대면서도 소파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 자기가 선물한 곰인형을 끌어안고 잔다는 토니 오빠야를 보면서 시원이가 기쁨의 비명을 지르는 동안, DDR 패밀리는 TV를 뺏긴 채 지겨운 표정으로 <스타다큐>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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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프랑스 월드컵 최종 예선 일본전이 열린 1997년 9월 28일. 시원이네 집 거실에 다시 한두 명씩 사람이 모여든다. 아버지(성동일)는 중계가 시작되기 전부터 TV 앞에 앉아 기다리고, 어머니(이일화)는 부엌에서 치킨과 함께 먹을 샐러드를 준비한다. 방에서 친구 유정이(신소율)와 함께 잡지를 뒤적이던 시원(정은지)이도 축구 중계가 시작되자 거실로 나온다. 같은 집 식구나 다름없는 윤제(서인국), 싹싹한 준이(호야), 전학생 학찬이(은지원)와 말 많은 성재(이시언)까지. 다함께 TV 앞에 앉아 축구중계를 본다. 경기가 시작되고, 8명의 시청자는 중계에 집중한다. 지지부진한 경기내용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면서도 눈은 하나같이 TV에 꽂혀 있다. 0-1로 뒤진 채 종료 시간이 다가오자 짜증이 난 사람들은 하나 둘 거실을 떠난다. 그 순간 극적인 동점골이 터지고, 홀로 TV 앞에 앉아 있던 성재가 ‘골~’ 소리를 지르자 다시 8명은 TV 앞으로 모인다.방송통신위원회, ‘방송매체이용행태조사’, 2011
그 때만 해도 미디어 콘텐츠의 중심은 TV였다. 드라마, 스포츠 중계를 볼 수 있는 방법은 TV뿐이었고 심지어 노래도 KBS <가요TOP10> 등 음악 방송을 통해 듣는 경우가 많았다. 그랬기에 나이를 불문하고 온 가족이 TV 앞에 모여들었고, 리모컨 싸움은 한층 더 치열했다. 본방송을 놓치지 않으려면 비디오테이프에 녹화라도 해야 했다. ‘TV보다가 화면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말을 엄마에게 들을 만큼, 시청자는 TV에 집중했다. 하지만 2013년의 시청행태는 많이 달라졌다.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에 따르면, 2012년 30대 이하 연령층의 TV 시청시간은 1992년에 비해 101분 감소했다. 같은 시기에 50대 이상 연령층의 시청시간이 122분 증가했으므로, TV시청시간의 세대 간 격차가 급격히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의 TV시청시간이 줄어든 이유는 신규 매체 및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미디어 활용 방식이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감소한 TV 시청시간은 대부분 PC와 모바일로 전환됐는데, 특히 눈에 띄는 건 모바일이다. TV와 PC가 주를 이뤘던 2009년, 하루 미디어 이용시간은 4.42시간이었다. 2012년에는 TV 시청시간이 줄었지만 모바일 서비스의 비중이 커지면서 전체적인 미디어 이용시간은 오히려 6.92시간으로 늘었다. 모바일 활성화를 주도하는 것 역시 30대 이하다. 방송통신위원회의 2011년 조사에 따르면, 10대 28.5%, 20대 57.9%, 30대 45.4%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비율이 높았다. 50대와 60대가 각각 7%, 1.6%에 그친 것과 대조적인 결과다. 이제 핸드폰과 컴퓨터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은 TV 없이도 TV를 볼 수 있게 됐다. 2013년, 시원이네 거실 풍경은 어떻게 달라질까.응답하라, TV 2013
#1. 시원이네 집 거실에 다시 모인 시원이의 친구들. TV 화면과 연결해 ‘닌텐도-위’를 하고 있다. 마리오가 죽으려는 찰나, 방에서 시원이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토니 오빠야’와 걸스데이 혜리의 열애설 기사를 인터넷에서 본 것. 시원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거실로 뛰쳐나와 IPTV로 KBS2 <뮤직뱅크> 지난방송을 튼다. 당연히 마리오게임을 하던 이들은 물러날 수밖에 없다. 걸스데이의 ‘기대해’ 무대를 보며 다시 한 번 욕을 퍼붓는 시원이. 친구들은 혹시나 자기에게 불똥이 튈까 두려워 숨을 죽인 채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마리오 게임 공략법’을 검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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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브라질 월드컵 최종 예선 이란전이 열린 2013년 6월 18일. 시원이네 집 거실은 휑하다. TV 앞에 앉아 치킨을 뜯는 아버지와 샐러드를 내오는 어머니는 그대로지만, 소파에 앉아있던 아이들은 이제 없다. 시원이와 유정이는 ‘토니 오빠야’가 나오는 QTV <20세기 미소년>과 축구 중계를 동시에 보기 위해 실시간 인터넷 TV 창을 두 개 띄워놓고, 스마트폰으로 게임까지 한다. 그 시각 지하철을 타고 학원으로 향하는 윤제와 준이는 안테나를 길게 끄집어내고 스마트폰 DMB 중계를 본다. 학찬이와 성재는 갑자기 잡힌 소개팅 장소로 급히 가는 중. 소개팅을 무사히 끝내고 학찬이 집에 가서 다운받아 볼 것을 다짐하며, 둘은 옷매무새를 다듬는다.글. 기명균 kikiki@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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