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 불독맨션, 다프트펑크, 아시안체어샷(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나도 몰랐던 세상이 말한다. 웃지 않으면 안 될 지다.이효리 〈Monochrome〉
아시안 체어샷 ‘탈춤’ 中
이효리의 앨범에 김태춘이 참가했다는 소식을 미리 접했을 때부터 비로소 그녀의 컴백을 기대했다. 이효리 정도의 뮤지션이 기존의 이효리다운(?) 음악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인디 신에서도 ‘센’ 뮤지션인 김태춘과 협연을 한다면, 그녀가 어떤 음악을 해도 신기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앨범의 키워드는 ‘변신’. 그리고 그 변신을 가능케 한 것은 김태춘, 빈지노, 고고보이스 등 이효리와 활동반경이 다른 여러 뮤지션들과의 협연이다. 목소리도 전과 다르다. ‘사랑의 부도수표’는 조원선의 목소리로 착각할 정도. 최종적으로 나온 음악들은 기존에 보여준 트렌디한 댄스뮤직보다는 60년대 소울, 컨트리, 로큰롤, 모던포크 등 정통의 사운드에 가깝다. 이외에 각기 다른 스타일의 16곡에서 이효리의 음악적 욕심이 충분히 느껴진다. 가요계에서 자신의 지분이 확실한 아이돌 1세대 출신 슈퍼스타가 다양한 음악에 도전했다는 측면에서 좋은 모범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처음 목격하는 풍경이 아닌가? 효리의 변신에 일단 우리의 머리는 놀랐다. 가슴을 울릴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
아시안 체어샷 〈탈〉
결론적으로 말해서, 놀라운 데뷔앨범이 나왔다. 3인조 밴드 아시안 체어샷은 시조새 출신의 황영원, 네스티요나 출신 손희남, 배다른 형제 출신 박계완이 뭉친 ‘중고신인’ 밴드. 아마 ‘초짜’ 밴드의 데뷔앨범이라고 했으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EP에 실린 네 곡 안에는 록이 가진 다양한 가능성들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팀 이름처럼 동양적인 록을 들려주는데, 기존에 시도된 ‘한국적인 록’과는 궤를 달리 한다.(팬들 사이에서는 ‘사찰 메탈’이라 불린다고) 아마도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 명의 연주라는 것을 믿기 힘들 정도로 헤비하고 폭발적인 사운드를 구사하며 처연한 멜로디가 반전을 전한다. 특히 기타리스트 손희남의 톤 메이킹은 주목할 만하다. ‘소녀’는 마치 ‘헤비한 비틀즈’같다. 올해 안으로 정규 1집이 나온다는 반가운 소식.
불독맨션 〈Re-Building〉
지난 9년 동안 참 많은 팬들이 불독맨션의 새 앨범을 몹시도 기다렸을 것이다. 불독맨션은 2002년에 데뷔앨범 〈Funk〉로 데뷔했다. 당시는 롤러코스터, 긱스와 같은 펑키(Funky)한 팀들이 각광받던 시기. 약 10년이 흐른 지금 페스티벌, 공연계에서 불독맨션과 같은 펑키하고 멜로디 폭탄까지 지닌 팀들이 각광받고 있다. 불독맨션의 ‘Funk’처럼 관객들을 일순간에 들썩이게 하는 곡도 드물 것이다. 〈Re-Building〉에는 불독맨션다운 재기발랄하고 펑키한 곡들이 가득하다. 레이 파커 주니어의 영화 〈고스터버스터즈〉 주제가를 연상케 하는 ‘The Way’, 1집 타이틀곡 ‘Destiny’와 같은 감흥을 전하는 ‘Do You Understand’ 이한철 특유의 서정이 담긴 ‘침대’ 등 전곡이 불독맨션답다. 여성 팬들이여 눈물을 거둬라. 불독맨션이 돌아왔다.
다프트 펑크 〈Random Access Memories〉
바야흐로 다프트 펑크 열풍이라고 해도 좋다. 음원이 나오자마자 해외에서는 물론이고 국내 팝 부문 음원차트를 휩쓸더니만 여기저기서 극찬이 끊이질 않는다. 해외 유력 매체들 사이에서도 최고 별점들이 쏟아져 이대로라면 연말 ‘올해의 앨범’ 리스트에서 손가락 안에 들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에서의 열풍은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lectronic Dance Music)의 유행 때문일까? 하지만 신보의 음악은 70년대 디스코에 맞닿아 있다. 쉭의 나일 로저스와 퍼렐이 참여한 노래 ‘Get Lucky’가 미리 공개됐을 때에는 이게 과연 다프트 펑크의 음악이 맞나 싶어 놀라 자빠질 정도였으니까. 이 곡 외에도 신보에는 일렉트로니카와 복고 디스코의 결합이 매끄럽게 나타나고 있다. 다프트 펑크 식의 아날로그 댄스뮤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렉트로니카 뜨는 가운데 그 원조인 다프트 펑크가 역행을 이유는 뭘까? “요즘 음악에는 감성이 부족하고 기술을 과대평가한 느낌이 있다. 감정은 컴퓨터로는 잡기 힘들다.”(소니뮤직이 제공한 제네릭 인터뷰)
오지은 〈3〉
오지은이 왜 ‘마녀’라고 불리는 지 이유를 모르겠다. 나긋나긋한 ‘여신’들에 비해 센 음악도 들려줘서일까? 그렇게 단순한 이유는 아닐 거다. 아마도 ‘華(화)’와 같이 심연을 건드리는 서슬 퍼런 노래 때문이 아니었을까? 정규 3집 〈3〉에서 오지은은 한결 차분해졌다. 서른셋이라는 좋은 나이에 발표하는 앨범이라 그럴까? 사랑, 일상에 대한 이야기들을 보다 여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성진환, 이이언 등과 듀엣을 했는데 이는 콜라보를 통해 다른 음악을 시도했다기보다는 오지은이 자기의 품으로 이들을 초대한 느낌이다. 이 역시 성숙함의 결과가 아닐까? 린, 소이, 정인, 이랑(디어클라우드), 타루, 나인 등 여성뮤지션들이 함께 한 ‘Not Gonna Fall In Love Again’은 사랑에 대한 유쾌한 수다. 오지은으로서 음악적으로 전과 다른 시도라면 재즈 풍의 곡 ‘I Know’(프렐류드 고희안 작곡)가 아닐까 한다.
타루 〈Puzzle〉
타루의 3집. 뮤지션이 하나의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빅히트 이후 OST에 참여한 타루(더 멜로디), 요조, 한희정은 ‘홍대여신’이라는 호칭으로 묶였다. 이로써 한때는 인디 신에서 특별한 인기를 누렸지만, 그것은 어느새 족쇄가 됐다. 다행히 최근 들어 세 명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은 활동을 재개하며 예전과 다른 음악을 선사하려 하고 있다. 타루의 새 앨범에 달달한 곡은 별로 없다. ‘Kiss You’, ‘기침’ 등에서 타루의 한결 성숙해진 팝적 센스가 빛난다. 옐로우 몬스터즈 멤버들이 지원사격을 나선 강한 록 세션도 조화롭다. 이제 슬슬 여신이라는 호칭을 벗을 시점!
위 아 더 나잇 〈We Are The Night〉
이모코어 밴드 로켓다이어리의 멤버들이 결성한 프로젝트. 최근 데뷔하는 국내 신인밴드들 사이에서 가장 각광받는 ‘일렉트로 팝 – 댄스 팝’ 계열의 음악이다. 춤추게 하는 음악이 사랑받는 시기에 등장한 또 하나의 댄서블한 밴드로 보이지만, ‘Summer’의 멜로디 감각, ‘This Is It’의 로킹한 사운드는 귀에 착 감긴다. 태생이 이모코어여서 그런지 몰라도, 위 아 더 나잇의 미덕은 심각함이 전혀 없이 신나게 달린다는 것이다.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해줄 청량한 사운드. 멤버들이 스타일링, 비주얼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하니 이정도면 괜찮은 ‘맞춤형’ 밴드.
로드 스튜어트 〈Time〉
로드 스튜어트를 보면서 “방탕한 로커는 저래야 돼!”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백인 중에 로드 스튜어트만큼 섹시한 보컬리스트가 또 있을까? 가슴을 풀어헤치고 “나 섹시하지?(Da Ya Think I’m Sexy)라고 노래하는 방탕함도 로드 스튜어트의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흑인의 소울을 자신만의 목소리로 소화해낸 ‘무적의 성대’가 자리하고 있다. 감히 말하지만, 로드 스튜어는 나이를 들수록 노래가 좋아지는 가수다. 최근작 〈The Best Of… The Great American Songbook〉를 들었을 때에는 스탠더드를 너무나 멋스럽게 부르는 노장의 목소리에 감탄사를 연발했었다. 〈Time〉은 스튜어트가 커버 곡이 아닌 신곡만을 담아 발표한 무려 20년 만의 앨범이다. 여전히 야생마처럼 노래하는 스튜어트. 이게 정녕 칠순을 앞둔 이의 목소리란 말인가?
포올스 〈Holy Fire〉
2005년 영국 옥스퍼드에서 결성된 5인조 밴드 포올스의 3집. 록페스티벌의 묘미라면 처음 보는 뮤지션의 음악을 통해 관객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밴드가 바로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로 처음 내한하는 포올스일 것이다. 포올스의 뿅뿅 거리는 록을 들으면 최근 범람하는 일렉트로 록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오산이다. 신스팝부터 매스 록(math rock)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지닌 포올스는 댄서블한 리듬부터 연주의 추구에 이르기까지 록에 대한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밴드다. 이들의 라이브가 궁금하다.
조슈아 레드맨 〈Walking Shadows〉
재즈 색소포니스트 조슈아 레드맨이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발라드 앨범. 마치 냇 킹 콜이 노래하듯이 미끈하게 색소폰을 불고 있다. 현존하는 최고의 비바퍼인 조슈아 레드맨의 전통에 충실하면서도 진취적인 연주를 알고 있는 팬들이라면 이런 부드러운 연주가 상당히 낯설 것이다. 하지만 레드맨이 1집 〈Joshua Redman〉을 발표한지도 어언 20년이 흘렀으니 오케스트라 협연작을 낼 때도 됐다. 조슈아 레드맨의 지우인 브래드 멜다우가 프로듀서와 피아노를 맡았고 래리 그레나디어(베이스), 브라이언 블레이드(드럼)가 힘을 보탰으며 지휘자 댄 콜맨이 멜다우와 함께 오케스트라 어레인지를 맡았다. 매 앨범마다 실험적인 시도를 즐기며 색소폰 연주, 임프로비제이션, 리듬 운용의 한계에 도전했던 그로서는 쉼표와 같은 앨범이 아닐까 한다. 발라드도 조슈아 레드맨이 불면 다르다는 것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앨범.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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