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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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한다. 수애에 대한 어떤 고정관념이 있었다. 여리고 수동적이고 소극적일 것 같다는, 어떤 고정관념. 하지만 수애라는 여자, 숨겨 두고 있는 패가 생각보다 많은 배우다. 그녀와의 인터뷰는 잘못 알고 있던 오류를 하나씩 고쳐나가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수애는 작품 안에서 늘 변모하고 변화하고 새롭길 원한다. 그런 그녀에게 영화 ‘감기’는 더 넓은 세계를 만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감기’ 속에 여리고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수애는 없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Q. 영화는 ‘심야의 FM’ 이후 3년 만이다. 1-2년에 한 편씩 해 왔던 걸 감안하면, 긴 텀이다.
수애:
재작년 겨울에 ‘천일의 약속’을 끝내고, 작년 5월에 바로 ‘감기’ 촬영에 들어갔다. ‘천일의 약속’ 전에는 ‘심야의 FM’을 했었고. 그러니까 영화 -> 드라마 -> 영화 ->드라마 꾸준히 한 셈인데, ‘감기’ 개봉이 늦춰지고 그 사이 ‘야왕’이 나오면서 영화 텀이 길다고 느끼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내 템포대로 온 건데 말이다. 계획하고 의도한 건 아닌데, 어떻게 하다 보니 그런 밸런스로 계속 활동해 오고 있다.

Q. ‘야왕’ 끝내고는 어떻게 지냈나? 종영 후 인터뷰도 안 하고 해서, 팬들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궁금한 점이 많은 거다.
수애: 파리 여행을 다녀왔다. 돌아와서는 운동을 하면서 체력 단련을 했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쳐 있었는데, 좋은 분들을 만나며 많이 밝아졌다.

Q. ‘천일의 약속’ 끝나고도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어 한 걸로 아는데, 그것이 ‘감기’ 출연에 영향을 끼친 게 있나?
수애:
지쳐 있었던 상태라 조금 편한 걸 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 찰나에 재난영화 시나리오가 들어왔고. 재난영화를 해 본 적은 없는데, 호기심은 늘 있었다. 그리고 재난영화는 출연진들이 많이 나오잖아. 밀도 있는 감정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드라마를 많이 해 왔던 터라, 여러 배우들과 협업하는 작업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 김성수 감독님의 10년만의 복귀작이라는 점도 컸다. 내가 ‘비트’와 ‘태양은 없다’의 팬이거든. 감독님의 열렬한 팬으로서 함께 작품을 하며 에너지를 받고 싶다는 생각에 출연을 결심했다.

Q. 그래서 에너지는 많이 받았나.
수애:
김성수 감독님이 무섭기로 유명한 분이다. 충무로에서 거의 전설적이시지. 그래서 살짝 걱정했는데, ‘무서웠던 게 맞아?’ 싶을 정도로 온화하시고 장난기가 많으셔서 의외였다. 감독님 말씀으로는, 영화현장이 많이 그리웠다고 하시더라. 묵은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발산해 주셔서 즐겁게 작업 할 수 있었다.

Q. 최근 당신의 출연작들을 보면 다음 행보가 예측이 안 된다. ‘천일의 약속’에서 절절한 멜로를, ‘아테나’에서는 액션연기를, ‘야왕’에선 악녀연기를 보이더니, 이번에는 재난과 맞서는 여자다. 변신에 대한 강박은 아닌 것 같고… 원하는 연기를 마음껏 풀어내고 있는 시기가 아닌가란 생각을 해봤다.
수애:
맞다. 멜로든 재난영화든 로맨틱 코미디든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편이다. 수애가 이번에 ‘감기’를 했으니 다음번에는 재난영화를 안 하겠지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있을 텐데, 아니? 또 재난영화를 할 수도 있다. 매력이 있는 작품이라면 경계를 두고 싶지 않다.

Q. 행보에 의도가 있는 건 아닌거네.
수애:
아니다. 의도한다고 해도 배우는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계획대로 되지 않고 말이다. 다행히 운이 좋아서 여러 장르를 경험할 수 있었다.

Q. 당신의 어떤 면을 보고, 감독들이 그런 다양한 시나리오를 던진다고 생각하나.
수애:
나도 궁금하다. 궁금해서 매번 여쭤본다. “감독님 왜, 저를요?” 각양각색의 대답들이 돌아오는데, 김성수 감독님 답변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수애 씨는 가짜를 해도 진짜 같다”고 말씀해 주시더라. 배우로서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라 생각한다.
수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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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다양한 작품을 한 덕분일까. 예전엔 수애하면 떠오르는 고착된 이미지들이 있었다. 단아함이라든지, 고전미라든지 하는 것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고정된 이미지가 많이 사라진 느낌이다.
수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갈증이 내 안에 늘 있다. 배우는 안주할 수 없는 존재니까. 내가 보여드리지 못한 모습이 뭘까를 계속 고민하고, 새로운 거에 도전하다보니 그런 고정관념이 많이 사라진 게 아닌가 싶다.

Q. 배우가 자기만의 이미지를 갖는 것도 큰 재산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애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희미해진다는 건,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일 수도 있다.
수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는 게 그 배우의 힘인 건 맞다. 하지만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게 배우의 욕망 아닌가. 그 욕망에 따르는 것도 멋진 일이지 않을까 싶다. 그랬을 때 지금 이 시점에서 나에게 부족하다고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장르로 따지면 내가 로맨틱 코미디를 한 적이 없는데, 친숙한 모습을 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Q. 실수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의외로 없는 편인가 봐.
수애:
글쎄. 중요한 건 실패를 했느냐 안 했느냐가 아니라, 그 안에서 뭘 얻느냐가 아닌가 싶다. 최선을 다 했다면, 실패도 실패가 아닌 거다.

Q. 지금까지 해 왔던 많은 선택들 중에 예상과 다른 결과가 도출된 적, 많나?
수애:
늘 빗나갔다.(웃음) 예상과 맞아 떨어진 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깨달음은 늘 얻었던 것 같다. 이젠 어떤 결과를 바라고 작품을 선택하지 않는다. 대신 이 작품을 통해 내가 얻는 게 분명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로 작품을 본다. 그래서 도전을 추구하는 편인데… 도전적인 사람이라고 하기엔 조금 안일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Q. 안일하다함은?
수애:
도전을 하긴 하는데, 나는 그 안에서 안일함을 추구한다. 모순이 있는 말이긴 하지만 실제로 그렇다. 이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다양한 캐릭터를 하면서도 수애의 색을 잃지 않으려 한다고 해야 할까. 배역에 따라 확확 달라지는 배우가 있고 그것이 부러울 때도 있는데, 나라는 사람은 그보다는 내가 지닌 느낌을 놓지 않으려 하는 편이다.

Q. 예상과 맞아 떨어진 적이 없다고 했는데, ‘야왕’이 특히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여러 말들이 많았다.
수애:
드라마다 보니, 환경적으로 시간제약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쪽 대본도 나왔고, 캐릭터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했다. 끝나고 나서 악녀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는데, 지금 아니면 언제 이런 악녀 역할을 맡아 보나 싶기도 했다.

Q. 이전부터 악역을 하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해 왔다.
수애:
대신 조건이 있었다. ‘이유가 있는 악역’을 하고 싶다고. 지금처럼 드라마의 장치로 악역이 만들어지는 건 예상 못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두려웠던 것도 사실인데 다행히 시청률이 잘나와 줘서 거기에 힘입어 끝까지 달릴 수 있었다. 그게 또 드라마의 힘이기도 하고. 바로바로 시청자와 호흡을 맞추며 가는 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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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살인 청부, 사제 폭발 설치 등 주다해(수애)의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 꽤 많았다. 배우는 스스로가 그 캐릭터를 납득해야 연기를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지 않나. 캐릭터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수애:
결국은 나와의 싸움인 것 같다. 캐릭터를 책임지는 배우로서 누굴 탓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맡은 바 임무를 최선을 다해 실행하는 게 옳다고 보고. 물론 말은 이렇게 쉽게 하지만 그게 막상 닥치면 무너진다. 많이 좌절하고. 하지만 이런 걸 거듭하고 거듭하고 거듭하다보면 어느 순간 성장해 있을 거라고 믿는다. 사실 현재로서는 잘 모르겠다. 내가 ‘야왕’을 어떻게 했나 싶기도 하고. 하지만 이 작품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분명 있을 거다. 시간이 지나면 그 의미를 알게되지 않을까 싶다.

Q. 그래도 수애 덕분에 주다해 캐릭터가 일정부분 설득력 있게 표현됐다는 의견이 많았다. 나 역시 그 의견에 동의하고.
수애:
그런 말들에 정말 큰 힘을 얻었다. 하지만 나를 납득시키고, 추스르는데, 힘든 작업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Q. 캐릭터를 대하는 당신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일화를 하나 알고 있다. 예전 모 잡지사 화보 촬영할 때, 콘셉트가 충분히 이해되지 않아서 촬영을 중단시킨 적이 있다고. 스태프들 입장에서야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이해되지 않는 걸 눈치 봐가며 하느니 그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필요하기도 하고. 적어도 감정을 표현하는 배우라면 말이다. 사실 당신을 수동적인 배우로만 생각했는데, 그 일화를 접하고 다시 봤었다.
수애:
나를 어떤 사람으로 느끼느냐는 상대적인 것 같다. 그땐 서로 소통이 안 된 부분이 있었다. 나는 ‘님은 먼 곳에’ 홍보 중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니 다음 작품인 ‘불꽃처럼 나비처럼’ 콘셉트를 가지고 와서 해 달라고 했다. 나로서는 납득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서 내 의사를 밝히고, 서로 절충안을 모색했다. 작업은 소통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의 의견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지만, 내 생각을 말할 수도 있어야 한다.

Q. 당신의 이런 모습이 너무 안 알려져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미디어에 노출돼 있는 수애의 이미지는 수동적인 쪽에 가까우니까.
수애:
그런데 늘 그때(화보 촬영)처럼 하는 건 아니니까, 뭐.(웃음) 어쨌든 확실한 건,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지려 한다는 거다. 납득하려하고, 이해를 구하려 하고, 최선을 다 하려 하고. 작업할 땐, 그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Q. 여러 배우와 함께 작업한 ‘감기’는 책임감 부분에서는 조금 편하기도 했겠다. 나눠 가질 수 있으니까.
수애: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된 현장이었다. 힘든 건 그때그때 해소를 해 가며 작업했다. 회포도 풀고, 하소연도 하면서. (장)혁이 오빠도 그렇고, 유해진 씨도 그렇고, 감독님, 마동석 씨 이희준 씨 모두 워낙 젠틀하신 분들이라 편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Q. 개인적으로 당신을 눈여겨 본 건, 드라마 ‘러브레터’ 때부터다. 그 많은 여배우들 중에서 당신이 유독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수애:
목소리!

Q. 맞다. 목소리. 중저음의 허스키 보이스가 굉장히 독특했다.
수애:
좋아해 주시는 분도 있고 낯설어 하시는 분도 계신 것 같다. 음. 목소리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는데, 정작 나는 별 생각이 없다.(웃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부분이라면 깊이 생각해 볼 텐데, 생각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아니기 ?문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Q. 처음 들었을 때 ‘이 목소리가 무기가 될까, 장애물이 될까’ 내심 궁금했는데 결국은 무기가 된 느낌이다. 당신만의 개성으로 발휘되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묻는데, 당신이 지니고 태어난 것 중에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수애:
그런 거 없다. 하하. 정말로 자랑스럽게 내세울만한 게 없다. 그냥 작품을 통해서 소통을 잘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Q. 소통 외에 작품을 통해 당신이 얻고 싶은 건 또 뭐가 있을까.
수애:
배움이다. 어쨌든 현장에는 배울 것들이 많거든. 누가 됐던, 뭐가 됐든, 나를 자극시키는 게 많았으면 좋겠다.
수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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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만약 마를린 먼로와 오드리 햅번을 연기할 기회가 동시에 온다면, 어떤 인물을 선택하겠나?
수애:
하하하. 누가 좋지? 나는 마를린 먼로의 섹시함을 동경하는 동시에 오드리 햅번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도 좋아한다. 둘 다 여배우로서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겐 부족하지만.(웃음) 아직 보여주지 못한 모습이라서, 둘 다 도전해 보고 싶은데 너무 욕심이 과한가?

Q. 만약 칸국제영화제에 가게 된다면…
수애:
(불쑥)아, 그런데… 뭐라고 해야 하지? 내가 허황될 수 있는 것들은 잘 생각하지 않는 편이라 이런 질문은 힘들다. 그건 너무 멀리 있는 얘기 같아서.

Q. 아, 당신은 현실주의자인가.
수애:
현실주의자, 맞다. 하나씩 하나씩 이라는 욕심은 있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멀리 있는 것까지 추구하지는 않는다. 앞에 있는 것들부터 순차적으로 해나가는 편이다.

Q. 그게 당신이 지닌 진중함과도 연결이 될까.
수애:
그렇지 않나 싶다. 좋게 말하면 진중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재미없는 거다.(웃음)

Q. (웃음) 스스로가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수애:
어떤 면에서는. 조금 여유를 부리면 삶의 활력을 얻을 수도 있을 텐데, 나는 그게 쉽지 않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부분이 많은 거지.

Q, 예전 인터뷰를 보니, 스스로를 뜨거운 사람이라고 정의했더라. 어떤 점에서 스스로를 뜨거운 사람이라고 정의한 건가?
수애:
뜨겁고 차가운 건 종이 한 장 차이라 생각한다. 나는 뜨겁기도 하고 차갑기도 한 사람인데, 작품을 할 때만큼은 뜨거운 사람이려고 한다. 그래서 그렇게 얘기했던 것 같다.

Q. 당신이 정의하는 뜨거움이란?
수애: 열정? ‘뜨거움=열정’이 아닐까 싶다.

Q. 열정은 갈수록 커지나?
수애:
상대적인 것 같다. 하지만 열정이 없어서 작품을 선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앞으로도 없을 테고.

글,편집.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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