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데뷔작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독신녀와 그녀가 주운 고양이의 동거 생활이 고양이의 시점으로 약 5분 동안 그려지는 단편이다. 따스한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내 자신이 소녀가 되는 것 같다. W의 노래 ‘만화가의 사려 깊은 고양이’는 이 애니메이션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W의 노래들도 다분히 소녀 감성을 자극한다. 배영준, 한재원, 김상훈이 동등하게 삼각형을 이룬 W를 관통해온 것이 바로 세련된 전자음악과 섬세한 감수성의 최적화된 결합이었다. 그 오래되고 견고한 마을 W에 JAS(장은아)가 정착했다. 고양이를 주운 그녀처럼, 오빠들을 보살피러 왔다. W&JAS(더블유 앤 자스).Q. 최근 W&JAS로 클럽공연을 꽤 했더라. 이제 손발이 좀 맞아 가는가?
배영준이 만든 히트곡 중 가장 오래된 노래는 1996년에 나온 코나의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일 것이다. 1999년 코나 5집 작업 때 만난 한재원, 김상훈과 ‘웨어 더 스토리 엔즈’를 결성해 당시로는 낯설었던 일렉트로 팝을 선보였다. 만화가 김양수의 “밴드 이름이 너무 길다. 그냥 W로 하라”는 조언으로 팀 이름을 바꾸고 ‘Shocking Pink Rose’가 히트했다. 이후 W&WHALE로 ‘R.P.G. Shine’을 선보이는 등 오빠들의 생물학적 나이는 많아졌지만, 음악은 점점 젊어졌다. 어쩌면 이 역시도 만화 같은 일이었다. 새로운 보컬리스트 JAS와 함께 새 앨범 ‘New Kid In Town’으로 돌아온 W 오빠들의 음악은 더 젊어졌을까? 아니면 조금 철이 들었을까?
배영준: 자스가 합류한지 이제 1년 정도 흘렀다. 작년 6월에 ‘보이스 코리아’ 끝나자마자 팀에 합류해서 앨범 작업에 들어갔다. 이후 두어 달 있다가 바로 클럽 공연에 들어가서 20회 가량 공연을 한 상태다. 지금이 한창 재밌을 때다.
Q. 새로운 보컬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것이 어색하진 않던가?
김상훈: 자스가 우리 팀에 들어오기 전부터 워낙에 무대 경험이 많아서 어려움이 없었다. 사람들이 W&JAS에서 W&WHALE을 연상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
Q. 자스와는 어떻게 만나게 됐나?
자스: 내가 원래 W의 대단한 팬이었다. 러브홀릭의 객원보컬, 영화 ‘국가대표’ OST에 참여하면서 재원 오빠, 상훈 오빠와 만나 작업을 할 기회가 있었다. ‘보이스 코리아’ 녹화현장에서 오랜만에 오빠들을 다시 만났다. 보컬 자리가 공석인 걸 알고 있었는데 남자 보컬을 찾고 있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혹시 여성보컬이 필요하면 같이 하고 싶다고 했는데 진짜로 연락을 하시더라. 사활을 걸고 임했다.
Q. 원래 남자보컬을 찾았나?
배영준: 웨일과 한 번 했기 때문에 음악적 변화 줘보자는 생각에서 남자 보컬을 찾았다. 실제로 100여명 정도의 남자 보컬 오디션을 봤는데 딱히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자스가 물망에 올랐다. ‘보이스 코리아’ 생방송 앞두고 연락이 닿았다. 경황이 없어서 오디션 날짜를 기억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우리에게 왔다. 오디션 곡이 ‘만화가의 사려 깊은 고양이’였는데 한 소절 끝나기도 전에 같이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자스가 가진 목소리에 감동했다.
김상훈: 자스와는 예전부터 같이 해보고 싶었다. 어떻게든 만났을 운명이다.
Q. 앨범 제목이 ‘New Kid In Town’이다. 무슨 의미인가?
배영준: 우리 셋이 1999년경부터 함께 작업을 했으니 오래된 마을이다. 세 사람의 타운에 새로운 아이 자스가 이사를 온 것이다.(웃음)
Q. W는 이미 팀워크와 사운드 견고하게 짜인 팀이 아닌가? 새로운 보컬과 사운드를 맞춰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배영준: 힘들기보다 즐거운 작업이었다. 자스의 목소리라면 더 멋진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자심감이 있었다. 자스라는 무기를 어떻게 하면 돋보이게 할지가 관건이었다.
자스: W 2집 ‘Where The Story Ends’부터 좋아했다. 기존 W의 일렉트로닉한 팝을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오빠들이 기존 스타일을 고집하기보다는 내가 가진 목소리의 최대치를 뽑아낼 수 있는 사운드를 만들어주셨다. 그래서 음악이 전과 다르게 나온 것 같다.
Q. W&WHALE 때부터 앨범재킷에서 배영준, 한재원, 김상훈이 가면을 썼다. 이번에도 앨범 속지를 보니 가면을 썼던데.
배영준: 자스가 프론트맨이니까 우리는 가면을 쓴 거다. 남자 멤버들은 사이드맨이다.
Q. 실제로는 사이드맨이 아니지 않나?
한재원: 아니다. 우리는 무대에서 사이드맨이다. 무대에서 우리가 보이길 원치 않는다. 사실 자스 혼자 무대에 서도 상관이 없다.
Q. 그래도 앨범 만들 때에는 배영준, 한재원, 김상훈이 주연 아닌가?
배영준: 앨범을 만들 때도 우리가 주연이 아니다. 주연은 자스다.
자스: 전 오빠들이 없으면 안 되는데… 왜들 이러시나?(웃음)
Q. W에 합류하면서 자스는 어떤 면에 가장 중점을 뒀나?
자스: 철저하게 보컬에 집중했다. 작사, 작곡, 편곡, 코러스 디렉팅 등에 있어서는 오빠들의 각자 맡은 부분이 체계적으로 잡혀 있다. 내가 어줍지 않게 송라이팅에 관여하려 하지 않았다. 영준 오빠의 가사는 스토리가 있어서 읽어보면 느낌이 바로 온다. 나름대로 느낌을 살려 불렀다. 오빠들이 특별한 주문이 없었다. 알아서 부르라고 하시더라.
Q. 남자 멤버들은 자스에게 특별한 요구가 없었나?
김상훈: 자스가 곡이 가진 느낌을 미리 숙지를 하고 와서 우리가 따로 주문할 필요가 없었다. 보컬들을 보면 현장에서 노래하면서 감으로 익히는 경우가 있는데 자스는 곡의 느낌을 이미 소화한 상태에서 녹음을 하더라.
한재원: 자스는 뮤지컬 경험이 많아서 보컬 연기력도 좋다. 단지 노래만 잘하는 보컬이 아니다. 우리 앨범을 녹음하는 기간에 ‘광화문 연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두 개의 뮤지컬을 했다. 그걸 동시에 다 소화해내더라. 무서운 친구다.
배영준: 나와 상훈 군이 곡을 쓰고 재원 군이 편곡을 하는데 목소리가 얹어지기 전까지는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예측할 수 없다. 자스가 노래를 하니 비로소 곡의 느낌이 살아나더라. 그런 과정이 놀랍고 또 즐거웠다. 자스가 노래를 하는데 새삼 “내가 생각보다 곡을 잘 만드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웃음) 그런 기쁨이 없으면 음악을 계속 할 수 없다.
Q. 음악을 들어보니 W&JAS는 W, W&WHALE과는 또 다른 느낌인 것 같다.
자스: 가장 바란 것이다. 들으시는 분들은 전 보컬인 웨일과 비교할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런데 정작 오빠들은 기존의 색을 고집하지 않으시고 나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음악을 만드셨다. 그래서 기존과 다른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Q. 타이틀곡 ‘Green’에서는 루시드폴과 작가 김중혁을 인용했더라. 일렉트로 팝인데 차분한 느낌이다.
배영준: 둘 다 친한 사이다. 김중혁이 쓴 소설은 한 권도 빼지 않고 다 읽을 정도로 좋아한다. 이번 앨범의 포인트는 두 가지다. 사운드의 에너지보다 자스의 목소리가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자스의 목소리가 잘 들릴 수 있는 작곡과 편곡. 믹싱과 마스터링에 포인트를 줬다. 한편으로는 마음에 와 닿는 멜로디를 쓰고 싶었다. 기억에 오래 남는 멜로디 말이다.
Q. ‘별을 쫓는 아이’의 뮤직비디오에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언어의 정원’ 영상을 사용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직접 허락을 했다고 하던데?
배영준: 영상을 사용하려면 감독 본인이 직접 허락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신카이 마코토에게 직접 편지를 썼다. 그 노래 안에 신카이 마코토의 거의 모든 애니메이션이 녹아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테면, 곡의 이미지는 ‘초속 5센티미터’에서 주인공 다카키가 로켓 발사대를 바라보면서 “언젠가 저 로켓을 타고 말거야”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가져왔다. 또한 가사의 스토리텔링은 ‘별의 목소리’에서 가져왔다. 몇 광년 떨어진 별에서 사는 연인의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이다.
Q. 신카이 마코토의 엄청난 팬인가 보다.
배영준: 그렇다. 신카이 마코토에게 다음 작품은 꼭 당신과 함께 하고 싶다고 편지에 썼다. ‘만화가의 사려 깊은 고양이’도 신카이 마코토의 데뷔작인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를 보고 만든 것이다. ‘별을 쫓는 아이’ 뮤직비디오에서 그의 애니메이션 영상을 쓰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엄청난 영광이다.
Q. 배영준은 엄청난 애니메이션 광으로 알려져 있다. 노래 제목과 가사에 애니메이션 제목을 쓰기도 하더라. ‘최종병기 그녀’, ‘사거리의 미소년’ 등등. 왜 이런 흔적을 남기나?
배영준: 내가 좋아하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 아닌가? 그런 것을 같이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Q. 요새 즐겨보는 만화가 있나?
배영준: ‘취성의 가르간티아’라는 작품을 본다. ‘진격의 거인’과 같은 시기에 나와서 묻힌 감이 있지만 매우 훌륭한 작품이다. 인류가 멸망한 뒤 바다만 남은 지구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군국주의를 비판하는 메시지도 담겨 있다. 기회가 되면 텐아시아 독자 분들이 꼭 보셨으면 한다.(웃음)
Q. 배영준은 감수성이 풍부한 것 같다. 소녀 감성 아니신가?
일동: 정말 그렇다.
배영준: 멤버들이 다 취향이 비슷하다.
한재원: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자스 빼고.
자스: 난 성격으로는 세 분과 반대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오빠들에게는 많이 배우는 중이다.(웃음)
배영준: 자스가 수준이 높은 거다. 자기와 다른 것을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말이다. 사실 ‘덕후’ 셋이 모여 있어서 평소에 대화도 많지 않고, 지가기 좋아하는 것에 대한 고집이 센 편이다. 그런데 자스가 온 후 우리끼리 이야기하고 노는 시간이 늘었다.
Q. 다른 멤버들은 취미가 뭔가?
배영준: 김상훈 군의 취미가 대단히 다양하다. RC 카, RC 비행기에 빠졌다가 금방 흥미를 잃고 카메라에 몰입하다가, 영상 편집에 몰두하고, 산악자전거 타고, 자동차를 직접 수리하기도 한다.
자스: 기계를 정말 기가 막히게 고치신다. 내 스마트폰 버튼이 안 되자 분해해서 고쳐주셨다.
배영준: 얼마 전 오래된 기타 이펙터 GT5가 고장이 났는데 그것도 즉석에서 고쳐줬다.
한재원: 기계의 알고리즘에 대한 이해가 대단하다.
배영준: 이공계 취미와 감성적인 취미를 모두 아우른다.
김상훈: ….
Q. 웨어 더 스토리 엔즈의 1집 ‘안내섬광’이 2001년에 나왔다. 일렉트로 팝을 발 빠르게 시도했다. 나름 트렌드를 빨리 캐치한 것 같다.
배영준: 그 앨범을 두고 일렉트로닉 음악의 선구적인 뮤지션으로 평가하기도 하던데 사실 굉장히 낯간지럽다. 전자음악은 현실적인 이유에서 시작했다. 코나를 그만두고 동아기획에서 나온 후 이 친구들에게 찾아갔다. 우리가 팀을 해야 할 이유를 30분 정도 설명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갔는데 3분 만에 설득되더라.
한재원: 우리가 순진했다. 영준 형 말이 법이었다.
배영준: 그래놓고 보니 녹음실이 없고, 녹음실을 빌리거나 세션 드러머를 쓸 여유도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홈레코딩 뿐이었다. 로파이의 사운드로 청자의 감정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 전자음악이었다. 단지 그렇게 시작됐다.
Q. 배영준은 코나로 데뷔한 것이 1993년이다. 무려 20년이 흘렀다.
배영준: 20년쯤 지나면 뭔가 굉장히 달라져 있을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더라.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가 마흔이 돼서 ‘(I Can’t Get No) Satsfaction’을 부르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여전히 하고 있지 않나? 다만 내가 원하는 것은 W&JAS가 내 인생 마지막 밴드가 됐으면 소망이 있다. 지금 라인업이 너무 재밌다.
Q. 앞으로는 어떤 음악을 하고 싶나?
배영준: 과거에는 대중의 취향보다 반 발자국 앞선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트렌드에 연연하지 않으려 한다. 흐름을 파악하고 사람들의 취향을 고려한 음악을 만드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시점에서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다른 사람들도 좋아했으면 하는 욕심이다.
Q. W의 곡들을 들어보면 배영준은 낭만적인 음악을 좋아할 것 같다.
배영준: 난 의외로 빠르고 거친 로큰롤을 좋아한다.
한재원: 영준 형이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주곤 하는데 정말 내 타입이 아닌 경우가 많다.(웃음) 하지만 형이 권해주니까 들어본다.
Q. 코나 시절의 빅히트곡인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은 최근까지도 회자되는 곡이다. 플럭서스뮤직의 아티스트 여러 명이 다시 노래하기도 했고, 최근 Mnet ‘밴드의 시대’에서 쏜애플이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이 노래는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배영준: 코나 2집이 잘 되지 않아서 시간이 많이 남아돌던 시절에 만든 곡이다. 거의 백수나 다름없어서 영화와 책을 많이 봤다. 영화 ‘블루벨벳’에 보면 주인공이 혼자 조명을 받으며 로이 오비슨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서 영감을 얻었다. 가사에는 이성에 대한 관심이 녹아 있다. 당시 신해철 형이 백수들을 위한 찬가라고 그 노래를 소개했었다. 그래서 난 내가 백수 시절에 만든 노래인지 그 형이 어떻게 알았을까 하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웃음)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플럭서스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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