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은 관객 개인의 몫인 것 같아요. 그 배우를 사랑하지만 안타까워서 영화를 안 보는 분도 계실 겁니다. '봐달라'고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영화를 보면 우리가 얼마나 좋은 배우를 잃었는지는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그런 분들도 극장 와서 안 보시더라도 언젠가는 보실텐데, 이선균이 좋은 배우였구나 느낄 겁니다."
이선균의 유작인 '행복의 나라'의 추창민 감독은 영화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행복의 나라'는 1979년 10월 26일 상관의 명령에 의해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박태주와 그의 변호를 맡으며 정치 재판에 뛰어든 변호사 정인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조정석, 이선균, 유재명이 주연을 맡았다. 이선균은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정보부장 수행비서관 박태주 역을 맡았다. 조정석은 박태주의 변호사 정인후로 분했다. 유재명은 군사반란을 일으키는 합수부장 전상두 역을 맡았다. 박태주는 박흥주 대령을, 전상두는 전두환을 모티브로 만든 인물이다.
이번 영화는 10.26 사건을 바탕으로 창작한 작품이다. 현대사를 다룬 작품은 여럿 있었다. 추 감독은 "요즘 세대들은 그 시대를 겪지 못했고 저는 그 시대를 겪은 사람인데도 속속들이 알진 못 한다. 최근에는 '서울의 봄'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추 감독은 특정인물과 사건 자체보다는 거대한 사건에 휘말린 인물들을 통해 야만적이었던 시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고 한다.
추 감독은 이선균, 조정석, 유재명 등 배우들과의 작업에 만족감을 표했다. 이선균에 대해서는 "뜨거운 배우, 소년 같은 배우"라며 "직설적으로 표현해내는 것도 잘했다. 화내는 연기도 잘하지 않나"라고 기억했다. 이번에는 어떤 디렉팅을 줬냐는 물음에 "선균이의 다른 모습을 꺼내보고 싶었다. 박태주는 겉으로는 무표정하고 무덤덤하고 무감각하지만 내면은 뜨겁다. 말도 정제되고 표현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며 "200% 이상 해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유재명에게는 "꼭 전두환처럼 말하거나 할 필요없다"고 요청했다고. 추 감독은 "권력은 예민하고 세련되고 감춰져있는 욕망의 꿈틀거림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재명 씨와 얘길 나눴다. 시대의 상징성으로 표현했다. 그 인물로 자체로 표현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메타포가 들어있다고 봐주시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선균의 유작으로 알려져있지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이는 정인후 역의 조정석이다. 추 감독은 "3~4일쯤 찍고 제가 조정석에게 '너는 스포츠카 같다'고 했다"고 말했다.
"일반 차는 속도를 올리는 데 시간 필요한데 스포츠카는 순식간에 올라가잖아요. '이렇게 해볼까?' 하면 순식간에 그렇게 바꿔요. 배우가 그걸 할 수 있다고? 순발력도 좋고 머리도 좋아요. 그걸 빨리 판단해서 바꿀 수 있는 배우라고 느꼈어요. '슬프게 해볼까?' 하면 슬프게 하고 '웃기게 해볼까?' 하면 웃기게 해요. 배우가 디렉팅을 받아들이고 표현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데 정석이는 그 타임을 짧게 잘 쓰더라고요."
추 감독은 진정성 있는 전개를 위해 법정신은 특히 공들였다. 실제 법정에서 벌어진 일들이 영화 속 대사와 상황으로 충실히 표현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다큐멘터리 등 자료에 근거해 변호인단과 방청객의 위치, 피고인들의 인원수까지 맞췄다. 법정신 한 장면을 찍기 위해 200명에 가까운 인원이 동원됐다고 한다.
"국내 법정 세트 중에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제작사 입장에선 좌우 1m 키우면 그것에 따라 비용 차이가 많이 나죠. 제가 '다른 건 다 포기하더라도 이건 지키자'고 부탁드렸고, 제작사에서도 오케이했어요. 촬영 감독님, 조명 감독님, 미술 감독님까지 모두가 한 호흡으로 촬영했죠. 최대한 사실화시키고 기록처럼 찍자고 했어요."
극 중 정인후가 골프치는 전상두를 찾아가 호소하는 장면이 있다.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한 이 장면은 의도성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이야기의 드라마틱함을 더하기도 한다.
"골프장 장면 전까진 다큐였던 거 같아요. 골프장 장면은 일종의 판타지라고 할 수 있죠. 관객들 입장에서는 다큐가 갑자기 판타지가 되니까 '뭐지?'하는 분들도 있을 거에요. 반면 판타지적이라 영화적이기도 하죠. 다큐처럼 보여진다면 그건 현실을 그대로 묘사했을 뿐이죠. 받아들일 수 있는 분, 부정하는 분, 시원해하는 분, 부류가 나눠질 것 같아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눈치 보고 거기에만 맞추기보다 욕을 먹더라도 가끔은 제가 하고 싶은 얘길 담고 싶었어요. 유재명, 조정석 배우도 동의해줬고요. 우리 영화 시퀀스 중 오래 찍은 장면입니다."
추 감독은 박태주 캐릭터의 모티브인 인물을 미화하는 것도 경계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상관의 명령으로 인한 선택이 잘못됐다고 하더라도 비난할 수 있을까, 싫다고 하면 죽을 텐데, 과연 피할 수 있었을까. 그 아이러니가 재밌었다"고 관전 포인트를 짚었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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