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JTBC
‘비밀은 없어’ 고경표, 강한나가 동반 입수했다.

지난 2일 방송된 JTBC 수목드라마 ‘비밀은 없어’ 2회에서는 송기백(고경표)이 안하무인 갑질 아이돌 피엔(장원혁)에게 불꽃 참교육을 시전한 후 휘몰아친 후폭풍이 그려졌다. 당시 현장을 몰래 촬영한 스태프의 제보로 ‘아나운서 S씨, 아이돌 폭행’이란 기사가 보도됐고, 기백은 하루아침에 화제의 인물로 등극했다. 결국 잘 나가던 정오 뉴스에선 하차 통보를, 피엔 팬들에겐 “우리 오빠 건드린 죄”로 습격받았다.

그런데도 한 번 깨어난 ‘혓바닥 헐크’는 멈추지 않았다. “입에서 재떨이 냄새난다. 관리 좀 해라”, “귀찮은 건 후배들 다 시키면서, 뒤에선 일 못 한다고 욕하는 거 모를 줄 아냐?”, “똥 밟았냐? 발 냄새 심한 거 모르냐?” 등 사내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자비 없는 ‘팩트 폭격’을 가한 것. 입을 틀어 막고, 두 주먹을 불끈 쥐어도, 생각만 하던 말들이 통제되지 않고 튀어나오는 상황에 기백 역시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그런데도 누구 하나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가족들조차 그에겐 안식처가 되지 못했다. 팬들로부터 피신한 본가의 실체는 그가 ‘강남 출신 금수저’란 소문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아버지 송인수(신정근)와 엄마 나유정(강애심)은 지친 기백을 걱정하면서도 내심 지원받던 생활비 떨어질까 노심초사했고, 철없는 막내 송풍백(이진혁) 역시 용돈 생각뿐이었다. 둘째 송운백(황성빈)은 “연락도 없더니 왜 와서 식구들 눈치 보게 하냐”고 되레 큰소리를 쳤다. ‘K-직장인’이자, ‘K-장남’인 기백은 숨 막히는 집에서도 도망쳐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 기백을 위로한 이는 바로 예능작가 온우주(강한나)였다. 사실 기백의 난동 덕분에 우주 역시 위기를 맞았다. 피엔이 언어 폭력에 의한 PTSD를 호소하며 하차, 결국 프로그램 폐지를 면치 못한 것. 후배들 밥줄이 걸린 문제라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구질구질하게 매달려봤지만 소용없었다. 이런 상황에도 기백에겐 내심 고마웠다. 피엔이 인기 아이돌이랍시고 막내 스태프들 괴롭히는 거 알면서도, 참으라는 소리밖에 할 수 없었던 우주. 그로 인해 프로그램이 존속됐고, 광고도 붙었기 때문이었다. 우주는 기백에게 “속으론 백 번도 더 때려주고 싶었는데, 나 대신 혓바닥으로 후드려패줬다”는 취중진담을 전했다.

그런데 기백에게 절호의 기회가 주어졌다. 방송국이 처음으로 주관하는 브랜드 대상 시상식 진행을 맡게 된 것. 잘만 한다면 찬밥 신세 면하고, 메인 앵커 오디션도 잘 풀릴 수 있었다. 시작은 좋았다. 하지만 메이크업 수정을 받던 중 화장품 가루가 날려 기침이 터졌고, 혓바닥 헐크 스위치도 켜졌다. “후보 중에 딱 한 분 참석했는데, 누가 수상할지 뻔하지 않냐”, “짧은 수상 소감 요구할 거면 상은 왜 19개나 주냐”, “고맙다는 말은 평소에 해라” 등 남발되는 상과 지루한 소감에 대한 직언을 쏟은 것. 이날 시상식은 기백이 ‘남우상’을 수상한 배우의 과거 부정 이력까지 내뱉어, 그에게 불꽃 따귀를 맞고 쓰러지는 대참사로 마무리됐다.

기백은 그날 밤 악몽에 시달렸다. 그는 강남 금수저도 아니었고, 지금 살고 있는 럭셔리한 아파트와 타고 다니는 고급 외제차도 본인 것이 아니었다. 해외 파견 나간 지인 대신 관리해주고 있었던 것. 꿈속에선 본의 아닌 거짓말로 잘난 껍데기를 쓰고 살았던 인생이 만천하에 까발려졌고,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다 가짜!”라는 비난받았다.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공포에 휩싸여 눈을 떠보니, 그의 휴대폰엔 정직과 감봉 징계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기백은 그나마 속을 터놓고 지내는 아나운서 선배 윤지후(고규필)의 제안으로 시끄러운 속을 달래려 바닷가로 떠났다. 높은 바위에 올라 넘실대는 바다를 바라보니 하염없이 원망이 밀려왔다. ‘인내의 아이콘’이라 불릴 만큼, 정말 열심히 산 죄밖에 없었다. 그런 기백 앞에 갑자기 우주가 등판했다. 때마침 현장 답사를 왔던 우주는 안 그래도 자신 때문에 기백이 이상해진 것 같아 신경이 쓰였는데, 신발을 벗어놓고 바위에 오른 기백을 보니 극단적 생각을 하는 건 아닌지 오해한 것이다. 인생 나락의 원인이 우주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기백은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소리치며 뒷걸음질 쳤고, 우주는 그를 말리려다 발을 헛디뎠다. 두 남녀의 동반 입수, 그 후의 이야기가 왠지 모를 설렘을 불러일으켰다.

김서윤 텐아시아 기자 seogugu@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