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욱의 장르에서 일상성을 보는 이유
'킬러들의 쇼핑몰'의 정진만 캐릭터는 어떤가
'킬러들의 쇼핑몰' 스틸컷. /사진 제공=디즈니 +


"잘 들어. 정지안" 디즈니+ '킬러들의 쇼핑몰'에서 삼촌 정진만을 연기한 이동욱은 나지막이 해당 문장을 읊조린다. 조카 정지안(김혜준)에게 가닿은 문장들은 삼촌이 떠나간 자리를 채우듯, 머릿속에서 왱왱거리며 리플레이된다. 사실 강지영의 원작 소설 '살인자의 쇼핑몰'에서 묘사된 정진만은 '이마 가장자리부터 탈모가 시작돼 언뜻 40대'로 보이는 외형을 가졌지만, '킬러들의 쇼핑몰'에서는 언뜻 보기에도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소설 속 정진만의 툭툭거리는 매정함 안에 녹아든 조카를 생각하는 정진만은 이동욱을 만나 비슷하면서도 독특한 느낌을 장착했다. 조카에게도 언급 한 번 없이 킬러들을 위한 쇼핑몰을 운영해올 정도로 무자비한 정진만은 사실 누구보다 따스한 인물이다. 이러한 괴리감을 이질적이지 않게 봉합하는 것은 이동욱의 얼굴에 서려있는 일상성이다. 사실 킬러들을 위한 쇼핑몰은 정진만에게 생계이자 한 편으로는 지독한 운명에 가깝다. 쇼핑몰은 정진만의 가족인 늙은 노모와 형 부부를 모두 앗아갔고, 어린 조카 정지안만을 간신히 지켜냈다.
'킬러들의 쇼핑몰' 스틸컷. /사진 제공=디즈니 +


어린 조카 정지안과 삼촌 정진만은 10년 가량의 세월을 공유하며 살아왔지만, 어쩐지 진실만은 가려진 비밀스러운 관계 같은 느낌이다. "삼촌에 대해서 아는게 없어"라며 정진만의 죽음 이후, 정지안이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두 사람은 뒤틀린 시간 안에서 서로 다른 언어를 주고 받았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잘 들어. 정지안" 뒤에 붙는 문장들은 부모를 대신해 삶을 살아낼 방법을 일러주고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정지안을 위한 일종의 트레이닝이었다. 오롯이 홀로 판단하고 선택해내는 정지안의 보이지 않는 나침판이 되어줬던 것이다. 그러므로 '킬러들의 쇼핑몰'은 가장 판타지적이면서도 일상에 가까운 이야기에 가깝다.

이동욱은 현실에서 동떨어지고 이질적이라고 느끼는 세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립해 일상적인 모습으로 펼쳐놓는 배우다. '킬러들의 쇼핑몰'에서 이동욱의 정진만은 시니컬하다. 아니 어린 조카에게 너무 매정하다 싶을 정도로 도움을 주지 않는 것만 같다. 정지안이 부모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실어증에 걸렸을 때도, 반 학교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을 때도 이렇게 응수하기 때문이다. "정지안 혼자서 해내야 하는 일이다" 누군가는 정진만을 두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이런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인물은 이동욱의 얼굴과 몸짓으로 인해 입체적인 캐릭터가 되어간다.
사진=tvN '도깨비' 스틸컷.


그러나 '킬러들의 쇼핑몰' 한 작품만 두고 이동욱을 판단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늘 새로운 장르와 작품을 도전하기에 하나의 카테고리로 분류하기 굉장히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몇 개의 캐릭터를 꼽아서 이야기해본다. 이동욱의 필모그래피를 지탱하고 있는 여러 축이 존재할 테지만, tvN 드라마 '도깨비'(2016)의 저승이를 빼놓고는 논하기 어려운 것에 대부분 동의할테다. 김은숙 작가의 '도깨비'는 불멸의 삶을 끝내기 위해 인간 신부가 필요한 도깨비 김신(공유)와 도깨비 신부 지은탁(김고은)의 이야기. 누구보다 일상에서 빗겨 난 판타지였지만, '도깨비'를 본 시청자들은 웃기도 울기도 하며 빠져들었다.

'도깨비'에서 이동욱이 연기한 전생의 기억을 잃고 착실하지만 까칠하고 코믹스럽기까지 한 저승사자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흔하게 저승사자를 생각할 때의 눈가에 내려앉은 까만 다크서클, 제 몸짓보다도 큰 도포가 아닌 깔끔한 양복을 입은 '도깨비'의 현대식 저승사자는 무언가 신선했다. 외형만 그런 것은 아니다. 웬만한 일에는 감정적 동요가 없이 시니컬하지만 어째서인지 김신과 지은탁 사이에서는 장난기 가득한 말들과 풀어진 모습, 짝사랑하는 치킨집 사장 써니(유인나) 앞에서는 자기소개도 제대로 못 하는 뚝딱거리는 행동들까지. 이동욱이 표현한 저승사자는 분명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임이 틀림없는데, 캐릭터의 표면에는 현실성이 묻어 시청자들은 그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지점들을 만들어냈다.
사진=tvN '구미호뎐: 1938' 스틸컷.


'구미호뎐'(2020), '구미호뎐: 1938'(2023)에서는 어떤가. 구미호 이인(이동욱)은 전설이나 설화에서 전해지던 영특한 지능과 사람을 홀리는 미색으로 정당성을 만듦과 동시에 내세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소속된 말단 공무원으로 600년째 대체 복무하는 직장인이라는 이상한 현실이 그러하다. 지고지순한 순정파에 인간미 넘치는 이동욱의 모습은 그야말로 인간적이다.

특히 '구미호뎐: 1938'에서는 이전 에피소드의 남지아(조보아)와의 멜로보다는 조선의 마지막 산신이었던 1938년으로 돌아가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아편 중독으로 인해 남들에게 민폐 연발이거나, 아이들에게는 관대하고 너그러운 어른으로, 동생 이랑(김범)을 놀리는 일에는 진심인 짓궃은 형으로. 반복적으로 표현되어 온 구미호 캐릭터의 핵심인 사랑의 관점뿐만 아니라 여러 색채는 이동욱의 비일상적이면서도 일상적인 연기로 완성됐다. 그 외에도 '타인은 지옥이다'(2019)의 평범한 치과의사인 듯 보이지만 속내를 알 수 없는 고시원 304호 입주자 서문조 역시 비현실적인 느낌이지만, 일상의 스릴러를 구축해냈다.

아마도 '킬러들의 쇼핑몰'의 이동욱이 일상과는 떨어져 괴리감이 느껴지면서도 가장 맞닿아있다고 생각되는 순간은 이 때문일 것이다. 어린 조카를 위해 매몰차게 굴면서도 학교 운동장의 비품실에 갇힌 지안을 찾아다니거나, 말도 없이 생활 공간을 공유하는 형태인 것만 같지만 물품을 사달라는 지안의 메모에 메모로 응답하고, 정지안을 위해 맞서 싸우는 방식을 알려주거나, 집에서 독립하려면 자신을 한 대라도 때리라는 요상함이 말이다. 이동욱의 얼굴에 얹어있는 판타지는 너무 낯설지도, 너무 동떨어져 있지도, 너무 이상하지도 않은, 우리의 일상의 조각을 재조립한 무언가가 아닐까. 이동욱의 얼굴에 판타지라는 장르가 묻었을 때, 단숨에 몰입하게 되는 이유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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