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4일만에 돌아온 KBS '개그콘서트'
여전한 외모 비하 개그에 시대착오적 발상
소재 한계점 有
개그콘서트
<<류예지의 예지력>>

류예지 텐아시아 기자가 연예계의 미래와 그 파급력을 꿰뚫어봅니다.

'개그콘서트'가 1234일 만에 돌아왔다. 일요일 밤의 웃음을 책임지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첫방송은 아쉬움이 컸다. 공영방송인 KBS에서 진행되는 만큼 개그 소재와 표현의 제약, 엄격한 잣대를 의식한 눈치다. 개콘이 예전의 명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개그를 개그로 보는 대중적 시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따른다. 유튜브 등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자유도는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다.

지난 12일 '개콘' 첫 방송의 막이 올랐다. 3년 넘는 시간 동안 휴식기를 가진 '개콘'이었기에 첫 방송 시청률은 4.7%로 준수한 성적표를 받았다. '개콘'은 그동안 신입 개그맨들을 영입하고 MZ세대의 트렌드를 읽으려 했다. 나름의 개그판 세대교체도 이루려고 했으나 기본적인 웃음 코드는 그대로였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아직까진 새로운 개그 플랫폼으로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그콘서트
요즘 개그 트렌트는 극현실주의다. 현실에서 있을 법한 상황에 개그 코드를 입혀 재밌게 풀어내는 게 대세다. 여기에 19금 코드 등이 더해진다. 유튜브 등에서 흥행한 개그 코드 공식이다. 하지만 공영방송인 개그콘서트에서 이를 구현하기란 어렵다.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이 있기에 철저히 상황극과 캐릭터 중심의 개그가 나올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캐릭터가 대중들에게 각인되고 그 캐릭터의 말과 행동이 인기를 얻는, 과거의 문법을 답습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여기에 있다.

다시 돌아온 '개콘'은 '2023 봉숭아학당'을 시작으로 '금쪽유치원', '니퉁의 인간극장', '진상 조련사', '숏폼 플레이', '형이야', '대한결혼만세', '볼게요', '데프콘 닮은 여자 어때요?', '우리 둘의 블루스', '팩트라마', '내시 똥군기', '바니바니', '소통왕 말자 할매' 등 다채로운 성격을 띠는 14개의 코너를 선보였다.

개그콘서트
개그콘서트

'형이야' 코너에서는 형 정태호가 동생 장현욱의 고민을 들어주는 내용의 콩트가 펼쳐졌다. 정태호가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 것"이라고 조언을 한 뒤, "형 결혼한 거 봤지? 형은 겁쟁이야"라고 말하며 아내가 미인이 아니라는 식의 발언을 해 웃음을 자아내려 했다. 정태호가 본인 스스로를 개그 코드로 삼으면서 웃음을 자아냈다.
개그콘서트
개그콘서트
정태호는 이후 방청객으로 온 장현욱의 실제 부모를 향해 버즈의 '겁쟁이'를 부르며 외모를 개그 소재로 삼았다. 사전에 조율됐을 부분이지만, 과거 개그콘서트에서 보던 문법이 반복되고 있었다. 코너가 끝난 후 장현욱 부모를 향해 큰절을 하며 사과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그만큼 외모 지적 개그가 논란에 휩싸일까봐 노심초사했다는 게 편집상 반영된 것이다. 개콘 제작진 스스로가 얼마나 여론에 예민한 지 보여준 사례다.
개그콘서트

이외에도 '데프콘 닮은 여자 어때요?'에서도 외모와 관련된 개그가 주를 이뤘다. '니퉁의 인간극장'에서는 외국인 며느리를 소재로 삼았다. '니퉁의 인간극장' 코너는 결혼 이민자들의 삶을 다뤘다. 소재 차원에서는 좀 더 폭넓은 시도였다. 외국인 며느리도 이제 우리 이웃의 모습 중 하나라는 점에서 개그 소재로 삼기에 큰 무리는 없었다. 다만 공영방송이 할 수 있는 '수위'를 맞춰가면서 개그로 승화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개그콘서트
개그콘서트

'개콘'은 개그맨들만큼이나 대중에게도 각별한 프로그램이다. 매주 일요일 한 주의 마지막이자 시작을 알리는 노래를 들으며 많은 세대가 성장했고 살아왔다. 3년만에 돌아온 개그콘서트를 놓고 대중들은 기대가 컸다.

하지만 첫 회에서 보여준 개그콘서트의 모습은 공영 방송이라는 틀 속에서 아직 꿈틀대고 있다. 앞서 개그맨 장동민이 "세계적 쉐프(능력있는 개그맨)도 썩은 재료(소재의 한계)로 맛있는 음식(웃긴 개그)을 만들 순 없다"고 지적한 부분과도 일맥상통한다.

첫 술에 배부를 순 없다. 소재의 한계는 분명히 있다. 문제는 그 '핑계'가 대중들에겐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디까지나 공급자인 제작진과 출연진의 사정일 뿐, 대중은 웃기지 못하는 프로그램을 봐주지 않는다. 제작진은 출연진과의 소통을 통해 이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하고, KBS는 개그콘서트가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 '방패막이' 역할을 해야 한다. 결국 아이디어라는 신선한 재료로 개그콘서트를 맛있는 프로그램으로 만들 때다.

류예지 텐아시아 기자 ryuperstar@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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