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자본주의와 그러한 자본주의에 쩌든 추악한 인간의 모습을 위트있고 긴장감 넘치게 표현했다.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몸값'이다. 국내에서도 독특한 작품으로 주목받은 '몸값'이 세계에서도 인정받았다. 지난달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6회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 폐막식에서 장편 경쟁 부문 각본상(Best Screenplay)을 수상한 것. 한국 드라마 최초이자 국내 OTT 오리지널 시리즈로는 첫 칸 시리즈 수상이다. 기쁨을 만끽하면서도 다음을 차분히 준비하고 있는 전우성 감독 겸 작가, 곽재민 작가, 최병윤 작가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몸값'은 서로의 '몸값'을 두고 흥정하던 세 사람이 지진으로 무너진 모텔에 갇힌 후, 각자 마지막 기회를 붙잡기 위해 위험한 거래를 시작하며 광기의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 바깥세상과 단절이 만들어낸 아수라장 속 살아남기 위한 인간들의 밟고 밟히는 사투를 그린다.
전 감독은 "유럽 여행 일정이 있었는데, 갑자기 (칸 시리즈 후보 선정 소식을) 알게 돼서 일정을 바꿨다. 칸 시리즈 페스티벌에 갈 수 있게 되어 좋았다"고 말했다. 수상을 예상했냐는 물음에 전 감독은 "알지 못했다. 보통 전날 언질을 준다던데 없어서 상을 못 받을 수 있겠다 싶었다. 시상식 자리에 갔더니 바로 앞줄에 배우상 받은 사람이 있더라. (각본상을) 받게 돼서 깜짝 놀랐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또한 "어떤 일이 있을 줄 모르니까 수상 소감을 생각하긴 했다. 무대에 올라가서 소감을 말하는 그 시간이 빨리 후루룩 지나가기를 바랐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최대한 침착한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다행히 잘 넘어간 것 같다"고 수상 당시를 떠올렸다. 외신 반응은 어땠냐고 묻자 "한국 사람들이 실제로 저렇게 돈에 집착하냐는 말을 하더라. 장르물이기 때문에 과장된 부분이 있다고 했다. 악인들의 이야기라 좀 더 그럴 수 있다고 했다"고 답했다.
'몸값'은 현지에서 상영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 전 감독은 "극장 자체가 좋은 극장이라 (상영됐다는 사실이) 감사하고 기뻤다. 듣기만 했던 기립박수를 실제로 하는 걸 보니 관심이 뜨겁구나 했다"고 전했다.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던 최 작가는 "한국에 있었는데, 아침에 연락, 카톡이 오는데 전혀 안 믿겼다. 막 연락이 오는데 하루 종일 '놀람'이었다"고 수상의 날을 기억했다. 곽 작가 역시 "종일 연락이 오더라"고 공감했다.원작은 이충현 감독의 동명 단편영화다. 원작은 처녀를 원하는 중년 남성이 여고생과 모텔 방에 들어가 화대를 놓고 흥정하는 내용이다. 티빙 시리즈 '몸값'은 그 이후에 발생한 일을 이어가는 구성이다. 전 감독은 촬영팀으로 원작 작업을 함께하기도 했다. 수상에 대한 이충현 감독의 반응에 대해서는 "제작됐을 때 좋아했고 재밌게 봤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벤트들이 있을 때마다 축하하고 담소를 나눈 정도였다. 이번 수상에 대해서도 축하하고 본인도 너무 기쁘다더라"고 전했다. 배우들 반응을 묻자 전 감독은 "기뻐해줬고 좋아해줬다. 스케줄이 많아서 미리 한국으로 돌아가 있었는데, 카톡방에서 난리가 난다. 신기해하고 좋다더라. 본인들도 기쁘고 감사하다고 하더라. 아직은 제가 (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 (배우들과) 자리를 가지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몸값'이 장기밀매, 성매매에 자연재해까지 자극적 요소를 모아놓아 불편하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소재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잔악함, 추악함을 적나라하면서도 재치 있게 보여주는 이 작품에 많은 이들이 호평을 보냈다. 제작진이 '몸값'에 어떤 의미를 어떻게 담고자 했을까.곽 작가는 "단편에서 주제가 흥정이었다. 우리 시히즈의 영제도 '흥정'(bargain)이다. 몸값을 흥정하려는 사람에서 시작해서, 여성을 사려던 남성이 자신의 몸값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그런 전복들이 있었다. 그런 이야기가 주는 의미가 있지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최 작가는 "사건 위주로 가다 보면 주제 의식이 약해질 수 있는데 계속 잘 살리려고 노력했다. '값어치'에 관해 많이 생각했다"고 답했다.
전 감독은 "느슨한 메타포나 의미를 넣었다. 건물 자체가 악한 자본주의라고 생각했다. 가격을 매기는 것 자체가 악독한행위다. 악독한 자본주의 사회가 붕괴되면서 어떤 더 악한 것들이 나올 수 있는지 보여주려 했고 나눠진 층별을 통해 구조적인 것들을 보여주래 했다. 서로 몸값을 매기는 형태나 관계가 전복되고 뒤바뀌는 재미가 있었으면 했다"고 말했다.
시청자 반응을 살펴봤냐는 물음에 최 작가는 "욕설이 너무 많이 나온다는 반응이 있더라"고 말했다. 전 감독은 "원테이크로 현장감 있게 촬영하다 보니 배우들도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다. 저희도 중간에 피드백하면서 욕설이 좀 많다고 하는 부분이 있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여기 등장인물들은 악인이기 때문에 배우들이 그런 특성을 고려해 감정을 절제하지 않고 표현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 감독의 말처럼 '몸값'은 6부 전회차가 모두 원테이크 기법으로 촬영됐다.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중간에 끊지 않고 한 번의 컷으로만 촬영하는 기법이다. 곽 작가는 "컷을 나눠서 가는 영화들과는 각본을 쓰는 과정부터 달랐다. 이야기가 끊기지 않고 리얼타임으로 가는 서사이기 때문에 각본을 쓸 때부터 신경을 많이 썼다. 회상신을 넣는 것도 원테이크에서는 할 수 없다. 한 호흡으로 어떻게 흐름을 끊지 않고 매력적으로 이어나갈지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대본 작업 중 아쉬웠던 부분에 대해 최 작가는 "더 흉측한 캐릭터를 초반에 몇 번 넣은 척 있는게 그게 빠져서 아쉽긴 했다"고 말했다. 곽 작가는 "어쨌거나 수위를 조절해야 해서 한 선택이었다"라고 부연했다. 이어 "원테이크 안에서 구현할 수 있는 스펙터클한 장면을 구현할 수도 있겠지만 '몸값'의 매력은 '구강액션이'라고 생각한다. '몸값'은 원테이크로 인물들을 따라가기 때문에 정적 없이 만담 같은 게 계속된다. 그런 부분이 재밌게 나온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욕설이 많이 나왔는데, 일종의 구강액션이라고 생각해주면 어떨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배우들 한 명 한 명을 칭찬했다. 전 감독은 "진선규는 리허설을 많이 하고 싶어 했다. 작품 선택할 때도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리허설할 수 있는 시간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준비해 나가면서 쌓인 게 많다고 생각한다. 진선규는 노력파이고 이전에 연극도 많이 해서 이 작품과 맞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작업은 처음이었는데, 진선규가 일상생활에서 귀여운 면모가 많더라.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됐다"며 웃었다. 전종서에 대해서는 "날 것 같은 느낌의 연기를 하고 싶어 한다. 현장에서 슛 들어가면 뿜어내는 에너지에 압도되는 느낌이 있었다. 좋은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놀라고 재밌었다"라고 전했다. 장률에 대해서는 "노력파다. 주연들 중에 메소드 연기를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평소에도 인물에 빠져서 많이 물어보는 게 인상적이었고 좋았다"고 칭찬했다.
이번 작품에는 최 작가가 양아치 역으로 깜짝 등장해 재미를 더했다. 최 작가는 연극 등을 통해 연기를 한 경험이 있다. 평소 최 작가와 막역한 사이인 전 감독은 "항상 작업을 같이 해왔고 믿고 맡겼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다른 배우들도 너무 잘해주셨다"며 고마워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최 작가는 "내가 나왔던 장면"이라고 농담을 던져 폭소를 자아냈다.
이번 작품은 무너진 모텔에서 주인공들이 겨우 탈출하게 되는 장면으로 결말을 맺었다. 시청자들은 시즌2가 나올지 궁금해하고 있다.전 감독은 "창작자로서 시즌2를 기다려준다는 게 감사하다. 확정된 부분은 없어서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한 "만약 시즌2가 제작된다면 원테이크 형식은 가져갈거라 생각하고 있다. 시즌1은 갇혀있는 얘기였는데 시즌2는 트인 배경에서 액션이 도드라지는 버라이어티가 있는 시즌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곽 작가는 "시즌1은 무너진 세상을 보여주면서 끝난다. 그렇다면 바깥세상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들이모텔에서 벗어났는데, 더 큰 지옥에 빠지게 되는걸까. 바깥세상은 어떨지 보여준다면 흥미로울 것 같다"고 상상했다.
'한국 최초'의 기록을 썼지만 세 사람의 다음 꿈은 소탈하다. 최 작가는 "상에 대한 부담감도 있다. 오늘 이후로는상 받은 걸 까먹고 계속 작업하려고 한다. 삶의 냄새, 사람 냄새가 나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바랐다. 전 감독은 "목표는항상 다음 작품을 만드는 것"라며 "거기에 (수상이) 도움이 많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곽 작가는 "한국 사회에서 '확증편향' 문제는 우리 세대가 싸워나가야 하는 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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