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에게 불가능은 없었다. 21년 차 배우 유선이 '한소라'를 통해 또한번 의미 있는 연기 변신을 선보였다.
25일 배우 유선과 강남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지난 21일 종영한 tvN 수목드라마 ‘이브’(극본 윤영미 / 연출 박봉섭)을 마친 소감을 비롯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브'는 13년의 설계, 인생을 걸고 펼치는 한 여자의 복수극을 그린 작품. 극 중 유선은 LY 그룹 안주인이자 대한민국의 대표 셀럽 한소라 역을 맡았다. 남편에 대한 집착과 완벽함에 대한 강박으로 광기를 폭주시키며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이날 유선은 인터뷰 도중 눈물을 보였다. 그는 "끝나고 나서도 감정이 계속 남아있었다"라며 "한동안 계속 빠져나가지 못하고 머물고 있었던 것 같다. 막방 후 비로소 내가 소라랑 이별하는 날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밝히며 눈시울을 붉혔다.
마지막 신이 '컷' 하는 순간 캐릭터에서 나와야 한다는 원칙을 가진 유선. 눈물의 의미는 '한소라'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가 아니었다. 작품에 대한 애정과 8개월간 모든 에너지를 '이브'에 쏟았던 노력, 감독 및 동료, 스태프들과 끈끈한 정에서 비롯된 아쉬움 섞인 감정이었을 터다.
"현장에 가면 그 감정에 빠지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그게 더 컸다. 캐릭터가 가진 예민함을 집까지 끌고 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더더욱 감정이나 정서들을 집으로 끌고 오면 안 되기에 현장에서 다 정리한다. 아직 울컥하는 건 작품에 대한 애정 때문이지 감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건 아니다."
대중이 바라보는 유선은 차분하고 조용한 이미지. 화려한 비주얼에 광기와 똘끼로 뭉친 한소라는 그에게 있어서 큰 도전이었다. 13년 만에 다시 오른 연극 무대와 이제껏 맞아보지 못한 악역이라는 부담이 겹쳐 자연스럽게 4kg이 빠지기도 했다고.
"처음 대본을 보고 매니저한테 '나한테 들어온 거 맞냐'고 물어봤다. 감독님과의 미팅에서도 '왜 나를 선택했냐'고 말씀드렸더니, 제 작품을 많이 보셨다고 하셨다. 여러 가지 캐릭터를 넘나드는 모습들이 신뢰를 드렸던 것 같다. 너무 감사한 건 다른 배우에 대한 추천도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흔들리지 않고 저를 원픽으로 고집해주셔서 제가 소라가 될 수 있었다. 그 믿음과 신뢰에 보답하고자 더 노력했다."그간 다양한 작품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역대급 악역' 가운데 한소라의 차별점은 대본에 있었다. 천진한 아이 같은 모습이 있으면서도 아버지와 관계성에 대한 전사들이 있었던 것. 막연하게 자기 멋대로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악역이 아닌, 아버지의 억압 속 최고가 될 수밖에 없는 비운을 가진 인물.
"제일 불쌍한 건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인물이라 윤겸에 대한 사랑에 집착 갈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버지와 정반대인 사람에게 빠진 것 같다, 젠틀하고 따뜻하고, 쉽게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모습들을 보면서 마음에 평안과 안정을 느낄 것 같은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저 사람과 함께라면 평안하겠다는 끌림으로 운명처럼 빠졌을 것이다. 다른 걸 다 뺏어가도 윤겸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은 여자. 그 사랑에 절실하게 몰두했는데 너무나 가슴 아프게 버림받는 과정에 마음이 많이 무너지면서 연기했던 것 같다."
'이브'를 통해 역대급 악역에 이름을 올린 유선. 주변 반응은 어땠을까. 그는 "연락을 그간 안 했던 분들한테 많이 받았다"며 "심지어 대학 동기 황석정 언니랑 졸업하고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본 적이 없는데 언니가 연락을 주셨다"고 밝혔다.
"황석정 언니가 '너무 이 얘기를 해주고 싶어서 연락했다'면서 너무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그 전화를 받고 펑펑 울었다. 연락 안 하던 동기 언니가 전화해서 칭찬해주고, '좋은 배우로 잘 가고 있는 네 모습이 정말 고맙다'고 얘기하는데 너무 감격스러웠다. 마치 내가 소라를 연기한 것에 대한 보상을 다 받은 것처럼 너무 행복했다. 걸으면서 혼자 펑펑 울었다."
유선이 연기한 한소라는 분노에 가득 찬 인물. 그의 실제 성격은 참고 인내하는 게 습관처럼 자리 잡아 폭발하고 터뜨리는 성격과 180도 다른 모습이다. 많은 분노를 표현하는 방법 중에도 소라와 같이 언성을 높이고 소리를 질러본 적이 없어 고민이 많았다고. 이후 '소리'에 대한 집중을 '분노'로 옮겼고, 자연스러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고 말했다. 이 과정을 통해 새로운 감정이나 표현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청자분들이 '스트레스 저기서 다 풀겠네’라고 말해주시는데 그렇진 않다. 분노를 표출하는 건 에너지 소모가 엄청나서 오히려 진이 다 빠진다. 감정이 격한 신들이 몰아쳐서 있는 날이 있는데, 카메라 감독님이 쫑파티 때 ‘분량을 다 못 찍겠다고 예상한 날이 많았는데 항상 예상보다 빨리 끝내더라. 어떻게 지치지 않느냐’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날은 차를 타자마자 실신했다."
서예진 텐아시아 기자 ye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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