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규민의 영화人싸≫

이병헌 'BH엔터' 창립 멤버
35살에 독립, 매니지먼트 AND(현 앤드마크) 설립
김다미, 김혜준 등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배우 배출
넷플릭스 오리지널 필름 '서울대작전' 제작

'앤드마크' 권오현 대표./


≪노규민의 영화人싸≫

노규민 텐아시아 영화팀장이 매주 일요일 오전 영화계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배우, 감독, 작가, 번역가, 제작사 등 영화 생태계 구성원들 가운데 오늘뿐 아니라 미래의 '인싸'들을 집중 탐구합니다.
"늘 불안합니다. 하지만 그 불안함이 제 삶의 원동력이 되더군요. 불안감이 자신감을 만들어 줬죠."배우 이병헌, 손석우 대표와 함께 BH엔터테인먼트 창립 멤버로 회사를 이끌다, 2015년 독립해 김다미부터 김혜준까지 2년 연속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배우를 배출시킨 권오현(41) 앤드마크 대표가 이렇게 말했다.

권 대표는 능력자라기 보다 '저력의 사나이'다. '가능성'을 알아보고, B+를 A로 만들 줄 아는 특별한 '힘'이 있는 사람이다. 정작 자신은 "운이 좋았다"며 겸손해 했다.

"특별히 잘 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어떤 큰 비전을 가지고 매니저일을 시작한 것도 아니었죠."2003년 군에서 전역한 이후 한 엔터사에 입사해 매니저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내부적인 사정으로, 자신이 사수 였던 손석우 대표와 BH 엔터테인먼트 창립 멤버가 된다. 현장 매니저부터 시작 했지만, 남달리 기발하고 빠릿빠릿 했던 그는 남들보다 빨리 회사의 실무책임자가 됐다. 권 대표는 "사실 운전을 잘 못 해서 현장 매니저 일을 안 시킨 것 같다"라며 웃었다.

당시 엔터사는 지금처럼 체계적이지 않았다. 차량에 네비게이션도 없을 때였다. 구형 복사기로 시나리오를 복사 하는데만 하루를 꼬박 보냈다. 무작정 발로 뛰면서 선배들 어깨 너머로 보고 배워야 했다.

권 대표는 "가족들도 제가 하는 일을 반대 했다. 하필 연예계에 사건, 사고도 많을 때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꾸준히 했다. 10년 가까이 한 조직에서 이탈한 적이 없다. 저는 일을 하면서 비전을 찾아가는 타입이더라. 열심히 하니까 결혼할 때가 되서야 가족들도 인정해 줬다"고 떠올렸다.BH 엔터의 실무책임자자로 배우 한효주, 김민희, 진구, 심은경, 하연수 등과 함께 일했다. 특히 하연수는 권 대표와 처음부터 함께해 앤드마크까지 의리를 이어갔다. 권 대표는 "쇼핑몰 모델이던 하연수는 연예 활동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이병헌을 중심으로 BH가 제일 잘 나갈 때 영입 제안을 했는데 거절 당했다"라며 비화를 전했다. 이후 하연수는 생각보다 빨리 영화 '연애의 온도'에 캐스팅 됐고, 이후 시트콤 '감자별' 주연까지 맡았다. 당시 BH는 신인을 키우지 않았다. 하연수는 권 대표의 선구안에 의해 발탁 된 유일한 신인이었다.

BH 엔터와 합이 잘 맞았다. BH는 국내를 대표하는 배우 회사로 거듭났고, 배우들의 뒤에서 묵묵하게 최선을 다한 권 대표는 그만큼의 대우를 받으며 안정적인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그는 '도전'을 감행한다. 35살 젊은 나이에 독립을 결심, 엔터사인 '매니지먼트 AND'(현 앤드마크)를 세웠다. 권 대표는 "매니저이기 때문에 배우를 키워 나간다기 보다 그 배우에게 영향을 주고, 그에 따른 보람을 느끼고 싶었다"며 창업을 결심하게 된 이유를 말했다.

BH에서부터 권 대표와 동행한 심은경, 하연수를 필두로, 김다미, 김혜준 등의 특급 신인을 발탁 했고 박진주, 백진희, 그리고 장영남까지 든든한 배우들로 회사를 구축해 나갔다.
앤드마크 권오현 대표./

권 대표는 "저는 배우를 볼 때 눈빛과 보이스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라고 했다. 그가 눈빛과 보이스에 매료 돼 발탁한 대표 배우가 김다미다. 권 대표는 "평소에 워낙 말수가 적은 배우다. 연기할 땐 180도 돌변한다. 처음 만난 날도 저혼자 3시간을 떠들었는데, 계약하고 싶은 생각 있냐고 물었을 때 '좋은데요' 한 마디가 전부였다"라며 "사실 '배우의 눈빛이 뭐냐'고 묻는다면 제대로 설명 못 한다.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게 있다. 김다미를 처음 만났을 때 배우의 눈을 보는 것 같았다. 잠재력이 느껴졌다"고 말했다.앤드마크 소속 배우들은 대부분 젊다. 이 회사의 컬러라고 할 수 있다. 미래 지향적인 배우들과 함께 앤드마크를 키워 나겠다는 권 대표의 의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장영남을 영입한 것은 의외였다. 권 대표는 "특별한 케이스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장영남 배우를 처음 본 날 연예인이 아니라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아직까지 제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신다. 처음 만난 날 너무 예쁘다고 느꼈다. 그런 분이 엄마, 노역이나 거센 캐릭터를 주로 연기 하시더라. 선배님께 '같이 하게 되면 전문직을 합시다'라고 말씀 드렸다. 또 다른 커리어를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저희와 함께한 이후 법무부 장관, 국정원 차장 등을 하고 계신다"라며 웃었다.

"어느날 갑자기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게 연예계 입니다."앤드마크에는 전도연, 이병헌 등 이른바 톱배우는 없다. 그런데도 탄탄한 배우 회사로 업계에서 인정 받는데는 권 대표의 남다른 소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신인의 경우, 첫 날 만나면 기본 5시간을 이야기 한다. 이후 4개월 정도를 지켜 본다. 그들의 근성을 알고 싶어서다. 배우가 기존에 뭘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겪어 보는 것이 제 영입 기준이다. 얼마나 매력이 느껴지고 얼마나 애정을 줄 수 있느냐에 판단이 서면 그땐 자신감을 가지고 잡는다"고 말했다.

그렇게 만나 권 대표와 함께하게 된 배우들도 그를 믿고 따른다. 권 대표는 "제 방이 '눈물의 방'이다. 배우들이 휴지를 꺼내 놓고 시작한다"며 농담 섞인 말을 했다. 그러면서 "여기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럴 때마다 제가 신뢰를 받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며 웃었다.

'어떻게 신뢰를 얻었냐'고 묻자 권 대표는 "쓸데 없는 짓을 안 해서? 저는 엉뚱한 일로 사고를 치지 않는 타입"이라며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보였다. 그러면서 "되게 정상적이고 본질적인건데 저는 배우들에게 거짓말을 안 한다. 그들의 계약 기간에 상관 없이 미래를 함께 이야기 하고, 그들의 인생사를 들어준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그들에게 존재 자체가 힘이 되고 싶다"라고 진심을 전했다. 권 대표는 "회사문을 열 때부터 저는 놀이터를 만들고자 했다. 곳곳에서 놀이기구를 디자인 하는 사람들을 내 놀이터에 모셔서 대우 해주고, 그로 인한 성과나 보람을 느끼고 싶었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앤드마크를 '작지만 강한 회사'로 보고 있다. 권 대표 역시 "현재 배우 규모는 크지 않아도 결국은 사업 사이즈는 확장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앤드마크 권오현 대표./

김다미 주연 리메이크 영화 '소울 메이트'를 공동 제작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콘텐츠 사업 부서인 앤드마크 스튜디오 설립, 계열사인 브이에이코퍼레이션(VA Corporation)과 밸류체인을 구축해 본격적인 제작에 뛰어들었다.

브이에이코퍼레이션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버추얼 스튜디오를 보유하고 있으며 영화, 드라마는 물론이고 광고부터 공연, 라이브커머스까지 다양한 실감형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제작 환경을 제공한다. 앤드마크 스튜디오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필름 '서울대작전'(문현성 감독) 제작에 나섰다. '서울대작전'은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당일, VIP 비자금 수사 작전에 투입된 상계동 슈프림팀의 이야기를 그린 다. 유아인, 고경표, 이규형, 박주현, 옹성우, 김성균, 정웅인, 문소리, 등이 출연해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한 권 대표는 달라지는 미디어 환경에 발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인플루언서를 영입해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을 준비중이다.

아울러 권 대표는 "창작자들의 종합 에이전시를 구축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인플루언서부터 연출가, 작가 등을 매니지먼트 하려고 한다. 실력있는 창작자들이 보호를 받고, 잘 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고 싶다"고 희망했다.

권 대표는 늘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불안감이 자신을 움직이게 원동력이라고 했다. 그는 "김다미가 '마녀'를 성공한 이후 '이태원 클라쓰'를 선택하는 데 2년이 걸렸다. 잘 됐을 때 기쁨의 퍼포먼스를 보이는 건 짧다. 그 날 뿐이다. 불안해지고 고려할 게 많아진다. 또 외롭기도 하더라. 그래서 더 많이 움직였고, 더 많이 뛰었다"라고 했다.

"회사를 차린 지 6년이 됐고,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 제 머릿속에 성장은 두 번째이고, 생존이 1번 입니다."

권 대표는 차근 차근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면서도 "매니지먼트를 근간으로 한다"라며 일의 본질을 중요시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잘 하자"를 늘 목표로 삶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배를 탄 우리 배우들과 직원들, 일이 잘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두 정신과 몸이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인간관계를 무엇보다 중요시 하며 쌓아온 '신뢰'를 통해 작지만 점점 더 강한 회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권 대표다. 그는 "일이 우선으로 식단 조절과 건강관리를 잘 못하는 편이다. 엊그제 였나? 새벽 쯤 집에 들어 갔는데 라면이 그렇게 먹고 싶더라. 서재에서 몰래 끓여 먹는데 와이프가 들어 오더니 '본인 관리도 못 하는데 다른 사람을 어떻게 관리 하려고 하냐'고 했다. 뜨끔 했다. 늘 되새기겠다"라며 해맑게 웃었다.

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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