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이정재 인터뷰
"새로운 연기 도전하고 싶어 선택"
"징검다리 게임 가장 무서워"
"이병헌과 시즌2 함께하고파"
'오징어게임' 이정재./사진제공=넷플릭스


"망가졌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비주얼은 확실히 '오징어'가 됐더라고요. 하하."


29일 화상 인터뷰로 만난 이정재는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을 통해 '잘생김'을 내려놓은 캐릭터로 연기 변신을 선보인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오징어게임'은 황동혁 감독이 2008년부터 구상해온 이야기로, 게임을 소재로 한 이야기에 매료됐던 그가 어린 시절 추억의 놀이와 극한 경쟁에 내몰린 현대사회를 결부시킨 작품.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여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극 중 이정재는 구조조정으로 실직한 후, 사채와 도박을 전전하다 이혼하고 무기력한 삶을 이어가던 중 게임에 참가하게 되는 성기훈 역을 맡아 열연했다.

이정재는 "나이가 먹다보니 악역이랑 센 역할 밖에 안 들어오더라. 근래에 했던 작품 대부분이 극중에서 긴장감을 크게 불러일으켜야만 하는 캐릭터라 새로운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런 찰나에 황동혁 감독님이 기훈 캐릭터를 제안했고, 일상에서 흔히 볼수 있는 남자 역할을 오랜만에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출연 이유를 밝혔다. 이어 "처음부터 '오징어게임' 콘셉트가 좋았다. 성인들이 하는 서바이벌 게임인데 어렸을 때 했던 게임으로 한다는 것 자체가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졌다. 서바이벌 게임 장르긴 하지만, 게임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의 애환과 고충들을 꼼꼼하게 설명해 놨고, 그런 것들이 과장되지 않게 하나씩 쌓아져 나가는 게 효과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이 다른 작품과의 차별성으로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오징어게임' 스틸컷./사진제공=넷플릭스


기훈을 연기하는데 중점을 둔 부분을 묻자 이정재는 "강한 캐릭터는 초반에 설정을 잡아서 밀고 가면 수월하게 연기할 수 있는데, 생활 연기라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조금 더 신경을 썼다. 또 게임 안에서는 극한의 상황 속 교감이나 감정들을 표현해야 하는 것들도 있어서 일상과 극한을 섞어가며 연기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영상을 보니 많은 것을 벗어던진 느낌을 받았어요. 평상시 잘 쓰지 않는 표정과 하지 않는 동작들도 나오더라고요. 예전에는 그런 연기를 했었던 것 같은데, 근래에는 없었던 표현들이라 보면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기훈의 캐릭터 설정이 쌍용차 해고자로 묘사된 것에 대해서는 "마음이 무겁고 아프더라. 홍보용 문구에도 나왔지만, 인생이 가장 힘든 지점까지 몰린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게임이라는 문구를 보면 기훈이 해고 이후로 다른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어머니와 같이 살면서 대리운전을 하지 않나. 그런 것들이 마음 아팠다"고 말했다.

박해수(상우 역), 오영수(일남 역)와의 호흡은 어땠을까. 이정재는 "오영수 선배님은 워낙 연기가 뛰어나신 대선배님이라 이 작품을 같이 해서 반가웠다. 워낙에 나이차이도 많이 나고, 그동안 뵙던 적도 없어서 처음엔 조금 어려움이 있었는데, 선생님 자체가 생각이 굉장히 젊다. 작품을 보시는 시각도 젊으시지만, 촬영 끝나고 혹은 휴식할 때 전반적인 사회 이슈들에 같이 이야기해보면 생각이 젊다는 걸 알 수 있다. 연기적으로는 나하고 꽤 많은 부분을 함께 하는 캐릭터다 보니 처음부터 잘 맞았던 것 같다. 일남 캐릭터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만들어 오셔서 촬영을 순조롭게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박해수 씨도 연극 쪽 베이스가 탄탄히 잡혀 있는 친구라 캐릭터를 구축해가는 데 있어 깊게 해석을 해 왔더라. 박해수 씨는 덩치하곤 다르게 귀여운 면이 많다. 현장에서도 유머러스하다. 현장에서 분위기메이커라고 해야 할까. 가장 더울 때부터 추울 때까지 촬영을 하다 보니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는데, 그 친구의 밝은 성격으로 잘 이겨나갔던 것 같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오징어게임' 이정재./사진제공=넷플릭스


'오징어게임'은 한국 시리즈 최초로 미국 넷플릭스 '오늘의 Top 10' 1위에 등극했을 뿐만 아니라 '넷플릭스 인기 TV프로그램' 부문에서 6일째 전 세계 1위를 기록 중이다. 이는 지난 17일 공개된 지 일주일 만에 쾌거로,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사상 최초이자 아시아 드라마 사상 최초다. 이러한 인기를 실감하냐고 묻자 이정재는 "동료 배우부터 지인들까지 연락이 많이 온다. 너무 감사하다"며 "같이 출연했던 배우들이 예전 촬영장에서 찍었던 거 올리기도 하고, 나와 같이 찍은 거 올려도 되냐고 물어보더라. 마음껏 올리라고 했다"며 웃었다.

"한국 콘텐츠를 떠나 독특한 콘셉트이면서 여러 가지 측면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있는데, 그런 것들의 조화가 잘 이뤄진 것 같아요. 감독님이 이 작품을 오래전부터 준비했다고 하는데, 그때보다 지금이 더 공감할 수 있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일각에서는 극중 기훈이 유독 오일남(오영수 분)에게 관심을 보이고 챙겨주는 게 이해 가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이정재는 "기훈은 본인이 생각하기에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심리가 있는 것 같다. 자신도 보잘 것 없는 약자인데 자기보다 더 약자를 봤을 때 자기를 보는 듯 한 느낌이 들면서 측은지심이 발동되는 것"이라며 "또 회사에 다닐 때 죽어가는 자기 친구를 지켜주지 못한 트라우마도 있지 않나. 그해서 오일남을 도와주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왜 약한 사람들을 그냥 못 지나칠까 생각하면 보호받지 못한 인간이라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기훈이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가 워낙 철없고 불효막심한 아들로 비쳐서 오일남을 향한 따뜻한 인간미가 나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에 대해서는 "보통 자기 부모에게는 어리광을 피우지 않나. 투덜대기도 하고. 집 밖에 나가서는 어리광이 통하지 않으니까. 그런 투정을 받아줄 곳이라고는 엄마밖에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좀 더 불쌍해 보이는 것 같고"라고 설명했다.

'오징어게임' 스틸컷./사진제공=넷플릭스


이정재는 가장 기억에 남는 게임으로 '달고나 뽑기 게임'과 '징검다리 건너기 게임'을 꼽았다. 그는 "달고나 뽑기 게임에서 달고나를 핥는 장면이 있는데, 이렇게까지 핥아야 하나 생각이 들더라. 감독님이 막 하라고 하는데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목숨을 걸고 하는 거니까 그럴 수 있겠다 생각하면서 열심히 핥았던 기억이 난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징검다리 건너기 게임은 실제로 2M 높이에 강화유리를 깔아놨다. 안전하니까 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데 잘 안되더라. 발에 땀이 나서 자꾸 미끄러졌다. 간격도 처음에는 넓게 떨어트려 놔서 뛰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결국 다시 배열하고 뛰었는데 어떤 구간은 너무 쉽게 넘어가게 돼서 조정하는 게 힘들었다"고 밝혔다.

기훈은 마지막 장면에서 빨간색으로 염색을 해 시선을 사로잡기도. 이에 이정재는 "빨간 머리는 실제로 대본상에 있었다. 왜 빨간 머리를 해야 하느냐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기훈 나이의 일반 남성이 하지 않는 색깔이지 않나. 절대 하지 않을 한계를 뛰어넘는 행동을 보여주고 싶었던 의지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염색한 건지 묻자 이정재는 "빨간 머리를 하면 다른 일은 못하니까"라고 웃으며 "잘 맞는 가발로 착용 했다"고 밝혔다.

엔딩에 대해서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더 펼쳐질 것 같이 끝나서 마음에 들었다. 힘도 없고 능력치도 뛰어나지 않은 기훈이 '이건 잘못된 거잖아, 안되는 거잖아'라는 대사와 함께 무시무시한 세계로 뛰어 들어가는 듯한 기훈의 용감함과 정의가 느껴져서 좋았다"고 말했다.

특별 출연한 이병헌과 함께 연기 호흡을 맞춘 소감은 어땠을까. 이정재는 "이병헌 형과는 친분이 남다르다. 데뷔 때부터 친했고, 같은 소속사에도 몇 년간 함께 있었다. 이상하게 같이 연기할 기회가 없었는데, '오징어게임'에 특별 출연을 해줘서 나하고는 딱 한 장면 만나게 됐다"고 반가움을 드러냈다.

"'오징어게임' 시즌2가 나온다면 당연히 이병헌 형과 작업을 하고 싶어요. 시즌2에 제가 못 나오더라도 다른 작품에서라도 꼭 함께하고 싶습니다."

태유나 텐아시아 기자 you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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