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아무것도 하지말자, 이번에는 그 생각으로 연기했어요.”

눈빛과 분위기만으로 스크린을 장악하는 배우 전도연이 오는 19일 개봉하는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하 ‘지푸라기’)로 돌아온다. 전도연은 이 영화에서 새 삶을 살고 싶은 술집 사장 연희 역을 맡았다. 전도연은 강렬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는 캐릭터, 돈 가방을 차지하기 위한 인물들의 갈등이 얽히는 상황과 관련해 “뭔가 더 하려고 하면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이미 만들어져있는 연희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편하고 가볍게 연기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나긋나긋하면서도 서늘한 말투, 관능적이고 맹랑한 몸짓, 여기에 그의 연기를 한층 더 돋보이게 하는 강렬한 의상까지 전도연이 아니면 이 캐릭터를 누가 소화했을까 싶다. 영화에는 돈 가방을 차지하려는 8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캐릭터들의 사연이 하나하나 풀어지고 러닝 타임 1시간 만에 등장한 전도연은 이들을 하나의 큰 줄기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 강렬함과 존재감은 스크린을 뚫고 관객들에게 꽂힌다.“연희뿐만 아니라 모든 인물들을 따라가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에요. 연희가 나오면서 퍼즐이 맞춰지죠. 저도 시사회 때 영화를 처음 봤는데 인물들을 쫓아가는 재미가 있다는 게 와닿더라고요. 연희는 이미 등장부터 파격적인데 제가 아니라 누가 했어도 다들 그렇게 느꼈을 겁니다. 하하. 흐트러져 있는 퍼즐을 하나로 맞추는 키를 갖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더 존재감이 있다고 느끼지 않았나 싶어요.”

연희는 표독스럽고 악랄하게 행동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랑스럽고 귀엽게 느껴진다.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인생을 꿈꾸는 연희의 모습이 설득력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도연의 연기는 세지만 서글퍼보인다. 전도연은 “잔혹한 연희의 모습을 미화한 건 아니지만 그녀에겐 여러 가지 면모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 작품이 아니라도 우리는 악녀들에 대해 어떤 선입관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시작이 미우면 끝까지 미워야한다와 같은 거요. 그런데 인간에겐 너무나 많은 모습이 있잖아요. 연희가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존재이지 않을까 같은 로망도 있었던 것 같아요.”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전도연에게 영화 시사회 후 찬사가 쏟아졌다. 전도연은 그런 반응에 대해 “사실은 보기가 조금 무서웠다”고 털어놨다.

“이게 좋은 걸까, 영화에 도움이 되는 걸까라고 생각 했어요. 예를 들어 얼마 전 제가 영화 ‘백두산’에 깜짝 등장을 했잖아요. 사람들은 제가 ‘백두산’에 나오는 줄 몰랐어요.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나오니 ‘좋았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사실 어느 순간부터 관객들이 저를 좀 무게감 있는 배우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연기에 대한 호평은 좋지만 ‘전도연’이라는 게 부각된다면 관객들이 ‘지푸라기’를 무겁게 느낄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더 있을 거야’라고 하지 않아도, 온전히 ‘지푸라기’라는 작품으로만 즐겨도 충분할 겁니다.”

이번 영화에는 전도연 외에도 정우성, 배성우, 윤여정, 진경, 정만식, 신현빈, 정가람 등이 주연했다. 주로 단독으로, 혹은 투톱으로 영화를 이끌고 갔던 전도연은 이 같은 멀티캐스팅에 “묻어 갈 수 있는 영화여서 좋다”고 너스레를 떨었다.“많은 배우들이 참여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갈증이 늘 있었어요. 사실 정말 좋아요. 혼자서는 수습을 못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마다 정우성 씨가 쫙 정리해주는 거에요. 힘이 되고 의지가 되고 기댈 수 있는 누군가 있다는 게 촬영할 때도, 영화 홍보를 할 때도 든든하더라고요.”

정우성이 연기한 태영은 극 중 연희와 연인 관계다. 연희는 태영에게 사채를 떠넘기고 도망 갔다가 아무렇지 않게 다시 돌아온다. 태영은 화를 내다가도 마성의 매력을 가진 연희에게 또 홀딱 넘어간다. 전도연과 정우성이 한 작품에서 함께 호흡하는 것은 ‘지푸라기’가 처음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사적으로는 종종 봐왔죠. 하지만 정우성이 캐릭터를 구현해내는 모습은 이번 현장에서 처음 본 거에요. 당황스럽더라고요. 호호. 연희가 태영의 집에 가서 태연하게 요리를 하고, 집에 들어오는 태영을 맞고, 둘이 함께 식사를 하는 그 장면이 연기하기 가장 어려웠어요. 익숙한 연인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그런 연인 사이에서 나올 수 있는 애교를 해야 하는데 낯 뜨겁더라고요. 그래도 점점 적응해 나가니까 연기를 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아쉬운 건 정우성 씨와 함께하는 신이 많지 않아서 ‘나와 정우성 씨가 함께 연기하면 이런 느낌이구나’를 알 때쯤 끝나버린 거죠. 두 캐릭터의 이야기만으로도 영화 한 편이 나올 거 같다는 얘기를 계속 했어요.”
2007년 열린 제60회 칸영화제에서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를 얻은 전도연. 최근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소식은 그에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일 것이다. 전도연은 수상 소식에 “너무 놀랐다”고 밝혔다.

“먼 이야기,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게 현실적으로 한 발짝 온 거잖아요. 제가 상을 받은 것도 아닌데 실감이 안 나요.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된 거 같아요. 정말 대단해요. ‘기생충’이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 봉준호 감독님과 송강호 선배님에게 축하 문자를 남겼어요. 그런데 지금은 ‘축하한다’보다 그냥 ‘우와’라고 밖에 안 나올 만큼 역사적인 순간이에요. 모든 영화인들이 ‘나도 열심히 하면 갈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큰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지인들에게도 이제 ‘칸의 여왕’이라는 이야기는 그만하라고 했어요. 이제 아카데미를 위해 열심히 하겠다고 했죠. 호호.”

‘칸의 여왕’을 넘어 전도연이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거기서 내려오거나 일부러 부술 필요는 없지만 스스로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저와 관객의 거리감을 좁히는 걸) 해주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그런 생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질실해졌죠. 그래서 말만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선택을 실천하자고 생각했어요. ‘칸의 여왕’이라는 자리를 깬다기보다 그게 무엇이든 올라서고 싶어요. 최고의 최고를 지향하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 올라서고자 하지 않으면 극복이 안 될 것 같아요.”전도연은 “옛날에 나는 ‘영화나라 흥행공주’로 불렸다”면서 웃었다. ‘흥행의 여왕’을 노리냐고 묻자 “나도 한 번 달아야하지 않겠나. 이제 1000만 영화도 찍어야지 않겠나”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흥행을 욕심내면서도 전도연은 ‘알찬 영화’에 대한 열의를 내비치며 다양한 영화의 추구를 강조했다.

“‘백두산’은 한 신을 찍었는데도 눈만 뜨면 100만, 200만… 그런 경험이 없어서 제겐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었어요. 그런 작품이 들어온다면 하고 싶어요. 그렇지만 작은 이야기라도 내가 동감하고, 누군가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이고, 관객들이 봤으면 좋겠다 싶은 영화들도 만들어져야 해요. 그런 기회들은 계속 있어야 합니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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