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1 목 밤 10시
올해 초 고려대학교 도서관에서 하나의 시집이 발견되었다. 라는 제목의 그 시집은 정약용, 박제가 등 18세기 일급 문인들의 시를 묶은 필사본 시집 안에 들어있었다. 놀라운 것은 당대의 지식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그 시집의 창작자가 노비였다는 사실이다. 어제의 ‘노비 정초부, 시인이 되다’는 천부적 재능을 지녔으나 신분의 벽에 가로막혀 평생을 가난한 무명의 초부(나무꾼)로 살았던 한 노비 시인의 삶을 흥미진진하게 조명한 한 편의 드라마였다. 방송은 정초부에 대한 다양한 기록을 바탕으로, 그가 얼마나 뛰어난 재능의 시인이었는가와 노비의 신분으로 어떻게 양반도 쓰기 힘들다는 엄격한 한시를 쓸 수 있었는가에 대한 미스터리를 추적해 나간다. 그 결과 정초부의 삶 중심에는 그의 주인이던 여춘영과의 주종 관계와 연령을 초월한 우정의 이야기가 있었다. 일찍이 여춘영 부친은 어깨 너머로 들은 한시를 암송하던 정초부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학문을 가르쳤으며, 그와 함께 공부하며 자란 여춘영은 20살 위인 그를 스승이자 벗으로 여겼다.

하지만 정초부는 여전히 노비였다. 여춘영의 소개로 유명해져 조선 후기 유명 시선집 에 박지원, 이덕무 등과 함께 시를 싣고 당대 최고의 화가 김홍도의 작품에 영감을 주었을 정도로 뛰어난 평가를 받았지만, 그는 늘 대청 아래서 양반들에게 허리를 숙이며 시를 바쳐야했다. 훗날 여춘영에 의해 면천된 뒤에도 가난한 초부로 생을 마친 그는 생전 한 권도 내지 못했던 시집을 유고집으로야 겨우 내놓을 수 있었다. 그의 시에는 그러한 신분의 한계와 가난의 고통이 예술로 승화되어 있다. 방송은 그의 시가 많은 이들에게 구전되며 오래 기억될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구도 신분으로 차별받지 않고 실력으로 평가받기 바라는 민중의 염원”이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정조 시대 또 한 명의 민중 영웅이 뚜렷한 인상을 남기는 순간이었다.

글. 김선영(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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