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KBS2 ‘불후의 명곡2-전설을 노래하다’, ‘절친과 함께 떠나는 여름 여행’편에서 첫 번째 대결을 마친 전지윤 씨와 허각 씨가 명곡 판정단의 선택을 받고자 단상 위에 선 순간 저도 모르게 허각 씨 쪽인 빨간 불이 들어오길 기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딱히 허각 씨 편을 드는 심정이었던 건 아니에요. 솔직히 ‘불후의 명곡’ 출연자들을 두고 우열을 가린다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다들 어려도 실력만큼은 검증된 멤버들인지라 그날의 대진 운에 따라, 컨디션에 따라, 판정단의 취향에 따라 당락이 갈리기 마련인 터, 누굴 따로 응원할 이유가 있을 리 있나요. 그런데 그때만큼은 허각 씨가 이기길 바라게 되더라고요. 심지어 두 손을 모으고 말이죠.
어찌 응원을 하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그건 순전히 허각 씨의 절친 자격으로 함께 무대에 오른 이시영 씨 때문이었어요. 허각 씨의 전화를 받자마자 추호의 망설임 없이 출연을 승낙하더라는 이시영 씨. 여자 연예인이라면 누구든 앞뒤 정황을 파악할 시간적 여유를 가질 법도 한데 소속사의 의견을 타진해보겠다니 뭐니 하는 군소리 한마디 없이 바로 ‘오케이’ 했다지요? 그리고 그 즉시 안무 학원에 등록까지 하셨다고요. 처음 허각 씨를 만났을 때 계속 두리번거리며 불안해하는 모습이 마치 자신의 데뷔 때를 보는 듯 짠해서, 그래서 도와주고 싶었다면서요. 사실 케이블 채널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으로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허각 씨로서는 공중파 고정 출연이 여러모로 부담이었을 겁니다. 거기에 ‘절친과 노래하라’는 미션이 주어졌으니 아마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겠죠. 보나 안 보나 유일하게 번호를 아는 여자 연예인이라는 이시영 씨에게 연락을 취하기까지 고민 좀 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바로 수락과 동시에 연습에 돌입해 하루에 몇 시간씩 일주일을 꼬박 매달렸다니 그 마음 씀씀이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화음 연습이 시작되자 ‘나 원래 노래방 다닐 때 화음 넣는 거 되게 좋아했어’라며 혹여 허각 씨가 미안해할까 봐 슬쩍 너스레까지 떨어주더군요.
‘도움을 주려고 나온 게스트니까 허각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대로 무대 위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애쓰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지금껏 숱하게 많은 허각 씨의 무대를 봐왔지만 이번의 ‘일과 이분의 일’ 무대처럼 귀엽고 밝은 느낌은 처음이지 싶어요. 아무래도 이시영 씨의 긍정적인, 진취적인 에너지가 영향을 준 거겠죠? 그리고 마치 내 일처럼 조마조마해하며 결과를 기다리더군요. 내가 잘 못해서, 내 실수 때문에 후배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면 어쩌나, 진심으로 초조해하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을 본 이상 시청자 입장에서 어찌 응원을 하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흥미로운 건 허각 씨 쪽에 불이 들어온 후 이시영 씨가 팔짝팔짝 뛰며 미친 듯 좋아하는 모습이 그다지 거부감이 들지 않더라는 거예요. 사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특성 상 탈락한 상대에 대한 배려가 중요한지라 너무 지나치게 좋아하는 티를 내면 밉상으로 다가오기 마련이거든요. 그런데 후배가 잘 되기를 바라는 절절한 마음이 전해져서인지 저도 모르게 함께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전지윤 씨, 그리고 전지윤 씨와 함께 좋은 공연을 펼친 공형진 씨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말이에요.이시영 씨, 앞으로도 변치 않으실 거죠?
이시영 씨가 본래 뭘 하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어요. 다들 아시겠지만 ‘전국여자신인아마추어 복싱선수권대회 우승’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겠어요? 요즘 스포츠 댄싱이며 피겨 스케이팅이며, 자신과의 싸움에 도전하는 연예인들이 날로 늘고 있지만 어느 종목이라도 복싱보다 더한 인고의 시간을 필요로 할 것 같지는 않거든요. 뿐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 MC로서도, 본업인 연기자로서도 흠잡을 데 없는 활동을 했었죠. 지난 해 보여준 KBS2 에서의 ‘부태희’, 우리가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천하에 둘도 없을 망종임에도 비난은커녕 사랑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신기한 캐릭터인 걸요. 그와 같은 다채로운 활동 못지않게 작다면 작다고 할 이번 역할이 돋보였던 건 바로 실리보다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중시하는 자세 때문일 겁니다.
언젠가 KBS2 에 출연했을 적이 생각나요.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살았기에 개구리며 뱀을 잡아먹으며 자연을 즐기던 자유로운 영혼의 소녀였다는 얘기가 재미있었는데요. 조부모님께 밥상머리 교육 덕에 지금까지도 음식을 남긴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던 것도 기억납니다. 아마 당시 조부모님께 밥상머리 교육뿐만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도리 또한 야무지게 배우셨던 모양입니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세상을 저울질하는 약은 모습이 아닌, 도움을 청하는 이를 위해 무조건 앞뒤 안 가리고 최선을 다하는 의리 있는 자세, 정말 마음에 들어요. 앞으로도 그런 마음가짐, 변치 않으실 거죠?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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