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위대한 영화나 음반들이 그러하듯, 가령 영화 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때로는 엄청난 자금으로만 실현할 수 있는 상상력이 있다. 마운틴 스테이지 이하 네 개의 스테이지가 운영되는 마쿠하리 메세 컨벤션 센터에서 관객들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다음 공연을 기다리는 섬머 소닉의 풍경 역시 그러하다. 여기에는 나에바 리조트에서 열리는 후지 록페스티벌(이하 후지)과 차별화되는, 도심 속 록페스티벌은 이래야 한다는 수많은 영감들로 가득하다. 메인 무대이자 지바 롯데 전용 구장에 세운 마린 스테이지와 바로 옆 바닷가에 세워진 비치 스테이지를 제외하면 비에 대한 걱정도 없고, 일본 특유의 폭염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수많은 업체가 입점한 푸드 코트와 오피셜 바에서 산 음식과 맥주를 야외가 아닌 컨벤션 센터의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 먹는 풍경이 낭만적이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비 때문에 진창이 된 바닥을 피해 몇 개 안 되는 파라솔 테이블을 찾아 헤매야 하는 번거로움을 떠올리면 이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다. 심지어 소닉 스테이지와 아일랜드 스테이지 사이에는 굳이 자리를 찾기 위한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긴 테이블과 의자들이 잔뜩 구비되어 있다. 모든 록페스티벌 최고의 화두인 여성 화장실 문제에서도 컨벤션 센터라는 공간은 상당히 유리하다. 요컨대, 섬머 소닉은 오직 이 규모이기에 가능한 굉장히 안락한 록페스티벌이다.

압도적인 규모와 메카니즘, 그 자체로 하나의 정체성

기본 콘셉트에 있어 섬머 소닉에 영향을 받은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이하 펜타)은 오히려 덜 정제된 야외 문화를 추구하고, 후지의 영향을 받은 지산밸리 록페스티벌(이하 지산)이 정서적으로는 섬머 소닉의 안락함에 근접했다는 건 흥미로운 아이러니다. 어느 쪽이 더 우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 도심에서의 접근성으로 따지면 섬머 소닉이 열리는 지바현보다도 나을 인천의 펜타가 거의 매년 내리는 비와 그 덕에 만들어지는 진창을 차라리 하나의 정체성이자 문화로 받아들였다면, 지산은 그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리조트 안 피크닉 같은 페스티벌을 처음부터 콘셉트로 잡았다. 이것은 헤드라이너 섭외에서도 제법 명확하게 드러난다. 올해 섬머 소닉에 온 거물 밴드 중, 펜타는 콘을, 지산은 스웨이드를 선택했다. 물론 지산에서도 엔비와 크래시, 아타리 틴에이지 라이엇이 공연을 했고, 펜타에서도 최고은과 시와무지개의 공연이 있었지만, 지산에서 콘이 헤드라이너를 맡는 모습은 쉽게 상상할 수 없다. 한국 양대 록페스티벌의 서로 다른 정체성은 역시 서로 다른 취향과 가치관을 가진 음악 팬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만하다. 하지만 이 취향의 벤다이어그램에서 교집합이 차지하는 비중은 반 이상이고, 주머니 사장 상 그들 중 누구도 쉽게 두 개 페스티벌 모두를 즐길 수 없다는 걸 떠올리면 섬머 소닉의 규모는 부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콘과 스웨이드 모두 보고 싶다고? 그럼 둘 다 섭외하마. 펜타와 지산이 서로에 대한 차별화로 자신의 색을 만들었다면, 섬머 소닉 정도의 규모에서는 차이라는 것조차 의미를 잃는다. 압도적인 규모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정체성이 된다. 세계적 록페스티벌 중 하나로 꼽히는 이 페스티벌의 규모를 재차 언급하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지만, 새삼스럽다는 게 빤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새삼스러운 풍경은 여전히 한국 록페스티벌을 위한 영감을 제공한다.

마지막 날 헤드라이너인 레드 핫 칠리 페퍼스 공연 당시 지바 롯데 전용 구장의 모든 자리와 필드까지 꽉 채운, 6만에서 8만 정도로 예상되는 엄청난 인파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코엑스 전체에 4개의 스테이지와 부대시설을 운영하고, 잠실야구장에서 메인 스테이지를 운영하는 수준의 공간적 규모를 이야기하는 것만도 아니다. 펜타의 헤드라이너급이었던 콘과 팅팅스, 심플 플랜(하지만 섬머 소닉 공연 취소) 지산의 마지막을 장식한 스웨이드에 더해 스트록스,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에이브릴 라빈, 엑스 재팬 등 특급 헤드라이너를 배치하고 역시 펜타와 지산의 중요 라인업이었던 맥시멈 더 호르몬과 ONE OK ROCK 등 로컬 밴드까지 잔뜩 채워 넣은 막강한 라인업의 위용도 굉장했지만 역시 그 때문만도 아니다. 한국의 록페스티벌만을 본 사람에게는 컬쳐 쇼크에 가까운 그 풍경들을 만들어내는, 아니 그 풍경들이 모두 긴밀하게 연결된 톱니바퀴가 되어 실현하는 섬머 소닉의 메커니즘이야말로 실로 거대하며 가장 흥미로운 요소다.섬머 소닉이 한국의 록페스티벌에 던지는 영감

엄청난 자금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과 엄청난 자금이면 다 된다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마쿠하리 메세와 마린 스테이지의 인원 모두를 합치면 십만에 육박할 인파가 수십만 원 수준의 공연 티켓을 구매할 때, 비로소 그 정도 장소와 뮤지션 섭외가 가능하며, 거대하기에 균열이 일어나기 쉬울 전체 운영에서 실수를 최대한 줄일 때, 비로소 앞서 말한 상상력이 실현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기본적으로 콘텐츠를 돈 주고 구매하고 소장하는데 익숙한 일본의 문화 환경과 기획자들의 탄탄한 운영 능력이 없다면 섬머 소닉은 지금과 같은 모습일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음반 관계자와 만화가, 개그맨, 심지어 격투기 대회 전문가들조차 항상 부러워하는 일본의 콘텐츠 구매 문화는 낯설고도 부러운 요소다. 페스티벌 티셔츠를 비롯해 기념품을 구매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행렬은 그래서 막강 해외 라인업의 면면만큼이나 인상적이다.

물론 섬머 소닉이 록페스티벌이 가야할 어떤 최종 목적지는 아니다. 이곳은 안락하지만 과거 우드스탁부터 글래스톤베리 록페스티벌, 그리고 한국의 펜타 등으로 이어져오는 야외 특유의 자유롭고 일탈적인 분위기가 부족하고, 안락하되 후지나 지산처럼 도심 바깥의 공간에서만 가능한 휴양의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다. 펜타의 열광적인 분위기에 취해 모든 걸 쏟아부은 심플 플랜이 결국 성대에 문제가 생겨 섬머 소닉을 비롯한 나머지 아시아 일정을 취소하게 만든, 한국 관객들의 무시무시한 호응은 섬머 소닉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한 건, 앞서 말한 영감이다. 현재의 펜타와 지산이 그렇듯 아직 발전할 여지가 많이 남은 록페스티벌에게 필요한 건 다른 수많은 페스티벌과의 변증이다. 남을 배우거나 부정하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나의 정체성이 조금씩 완성될 수 있는 법이다. 발전이란 그런 것이다. 하여 아시아의 여름 록페스티벌 섬머 소닉은 여전히 흥미로운 텍스트다. 과연 이 텍스트 속 행간의 의미와 의도들은 어떤 방식으로 한국 록페스티벌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언제쯤 우리의 록페스티벌이 그들을 위한 영감을 제공할 수 있을까.

사진제공. 2011 섬머 소닉

글. 위근우 기자 eight@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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