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에게 이승열은 시대를 앞질러 세련된 음악을 만들었던 유능한 뮤지션이지만, 누군가에게 이승열은 굵직한 목소리로 심각하게 원더걸스의 ‘Nobody’를 불렀던 남자일 뿐이다. 결코 대중적이지 않지만, 언제나 대중에 대한 가능성을 평가받는 이 남자에 대한 이야기에는 그래서 아직 마침표가 찍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MBC ‘나는 가수다’와 관련한 소문이 끊이질 않는 이 때, 스스로도 “어둡고 심각한” 분위기라는 새 앨범을 발표하는 이 남자는 지금 이 땅에서 가장 기묘한 방식으로 ‘핫’하다. 아무리 담금질해도 도무지 뜨거워 질 것 같지 않은 남자, 처음의 모양을 좀처럼 바꿀 것 같지 않은 남자, 그래서 진짜로 단단해 보이는 남자 이승열을 만났다. 곧 공개될 3집 앨범에 대한 힌트는 보너스다.
앨범 발매 전에 디지털 싱글을 두곡이나 먼저 발표했다.
이승열: 옛날에는 앨범을 쪼갤 수가 없었는데, 요즘은 그렇게 해도 좋은 환경인 것 같다. 타이틀 곡 하나만 활동하기도 그렇고, 먼저 공개하는 곡도 장점이 많은 곡이라서 이렇게라도 들려주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방송에 맞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 중에서 ‘그들의 블루스’에는 한대수가 참여했는데, 목소리를 악기처럼 사용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웃음소리를 사용하기도 하고.
이승열: 그렇게 물어보니까 참 재미있는 게, 앨범 재킷에 들어갈 뮤지션 크레딧을 쓰면서 ‘그들의 블루스’에 ‘한대수 선생님의 목소리’라고 썼다. 피처링, 스페셜 게스트 보컬이 아니고. 목소리가 중심이 되는 악기 같다는 생각을 나 역시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전부터 친분이 있던 사이였나.
이승열: 나는 그저 후배이자 유명인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그분을 알 뿐이었고, 친분은 없었다. 처음에 섭외를 상상했을 때는 그분이 워낙 거물이라서 좀 버거운 일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번 여쭤나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지인을 통해 컨택한 건데, 결과적으로 돌이켜 보면 한대수 선생님이었어야만 했던 것 같다. 뮤직비디오도 그렇고, 종합적으로 과연 누가 이런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싶다.
뮤직비디오의 분위기나 내러티브도 인상적이지만, 이승열의 모습에서도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연기를 시도한 것 같기도 하고. (웃음)
이승열: 편하게 놀았다. 오히려 연기를 한다기보다는 내 모습을 더 보여준 것 같다. 감독과 회의를 거치면서 서로의 성향과 취향을 알게 되니 마음이 편해 진 부분도 있다. 보통의 구조에서 뮤직비디오를 찍으면 뮤지션은 몸만 가서 찍고 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3집 작업을 하면서는 음악은 물론 뮤직비디오에도 진심으로 내 인풋을 집어넣어야겠다, 그런 느낌이었다. 즐긴 거다. 현장의 느낌들을. 방송에서 본 모습을 생각하면 노래를 할 때 주로 본인에게 집중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카메라를 응시하며 표정을 짓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연출로 보이는 게 아닐까.
이승열: 방송은 모든 상황이 굉장히 연출되는 곳이고, 거기에 적합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 방송에서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아닌 것 같다. 좋은 수단이기는 한데, 차라리 눈을 감고 노래에 집중하는 게 나에게는 더 멋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뮤직비디오는 여러모로 방송과 환경이 달랐고, 작업하면서 즐거웠다.
다른 인터뷰에서 한대수는 이 노래의 가사가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던데.
이승열: 그동안 나는 뜬구름 잡는 얘기만 주로 하는 스타일의 가사가 아니었나 싶다. 모호하고 시니컬하고. 그런데 ‘그들의 블루스’는 내가 쓰고 부르는 노래 중에서 좀 새로운 시도다. 먹고, 자고, 일상이 나오는 투박한 면이 있는데 그런 점이 마음에 드신 게 아닐까. 그분이 쓰신 자서전을 받아서 읽었는데 거짓말을 아주 싫어하시고 있는 그대로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에서 유앤미블루를 했던 3년은 혼란스러운 기간이었다”
가사에 ‘오십’이라는 나이가 등장한다. 먼 미래를 생각하며 사는 편인가.
이승열: 물론 20대에는 30대를 생각하고, 30대에는 마흔을 상상했다. 하지만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떠올리지는 못한다. 대신 젊은 친구들을 보면서 ‘저 시절로 돌아갈래?’ 스스로 묻기는 한다. 그때 플래시백 되는 장면이 좋으면 돌아가고 싶다가도, 불쾌한 기억이 떠오르면 싫어지고 그렇다. 그런데 당신의 20대는 번민과 고민이 많았던 시절처럼 전해지고 있다. 음악을 잘하지만 사람들이 몰라줬던 시절 아닌가.
이승열: 거대한 사건은 없었지만, 그때 나의 삶에는 음악 말고 다른 일들도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생활의 거취를 옮긴다던가하는 굵직한 일은 결국 음악 때문이었을 텐데.
이승열: 그렇지. 그런 생각은 했었다. 내가 계획을 세워서 움직였던 건가. 이리저리 휘둘려 다니면서, 하기 싫은 걸 한 것도 아니지만 많은 일이 일어났던 것 같다. 대학 4년과 한국에서 유앤미블루를 했던 3년은 혼란스러운 기간이었다. 단지 ‘왜 이렇게 안돼?’라는 것 때문만은 아니고 ‘뭔가 이유가 있겠구나. 그게 뭐지?’ 그런 질문은 가끔 했다. 저평가 되었다는 평가는 늘 민망하지만, 그것도 관심이라서 고맙게 생각하기도 한다.
아직도 당신은 소급되어서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앨범을 빨리 내고 과거를 앞질러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 같은데.
이승열: 나뿐만 아니라, 방송을 보면 이런 말을 많이 한다. 방송을 너무 오래 쉬었어. 그럼 모든 게 그렇게 현재적이어야 하는 건가? 그 사람의 삶은 진행되고 있었던 것뿐인데 말이다. 모든 것을 다 소급해서 말하다 보니 방송이 식상해 지는 거다. 커리어를 짚어 주는 것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기술적으로 세련되지 않았다는 생각은 든다. 하물며 한 대수 선생님에 대한 것도 다 되새김하는 것을 보면 이런 게 현실인가 싶기도 하고. 대중들은 덜 리프레쉬하고 싶어 하고 생각보다 느리구나, 깨닫고는 한다.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말은 그런 의문들에 무뎌졌다는 이야기로 이해된다.
이승열: 시간이 쌓여가면서 나를 계속 지켜봐 온 고마운 팬들도 있으니까, 그런 게 위로가 되기도 했다. 모르는 분들을 위한 한 말씀을 언제나 부탁 받는데, 그것도 중요한 건가보다 이해하며 산다. 배려해야 한다는 얘기를 늘 들으니까. 그런데 과거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얘기를 안 들으려면 뭔가 굵직한 게 하나 터져주면 된다. 전에 박찬욱 감독님이 1집 뮤직비디오를 찍어 주셔서 같이 잡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사진을 찍는데, 귓속말로 ‘이런 거 너무 지겹지 않아요?’ 그러시는 거다. 그 분은 결국 로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거대한 것을 보여준 뒤에 하고 싶은 작품을 하시지 않나. 그러면 자질구레한 설명은 필요 없는 거지. 내가 아직 그 단계에 미치지 못해서 이런 부수적인 설명을 하고 있는 거다. (웃음)
‘나는 가수다’에 출연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는데, 그런 방송도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승열: 이제는 그 방송 이야기 하는 게 좀 창피하려고 한다. (웃음) 좋은 기회가 오면, 그 순간 좀 미쳐서 할 거 하고, 겁내지 않고 결과를 받아들이고, 그 정도까지만 생각 한다. 시청률이 높은 방송이니 뭔가 보여 줄 수 있는 장이 되기는 하겠지.
한편으로는 뮤지션 이승열이 아니라 당신의 목소리에 대한 요구가 따로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승열: 그건 그 방송에 출연하는 모든 분들에게 해당되는 얘기일 거다. 사실 고민이 되는 부분이, 나는 예컨대 박찬욱 감독처럼 작가로서 기억되고 싶은데 그 방송에 출연을 한다면 그게 좀 모순일까 하는 부분이다. 경쟁이 기반이지 않나. 그리고 내 목소리를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고마울 따름이고, 그런 시각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대표곡을 언급 할 때 내 곡도 있는데 ‘비상’이나 ‘시간의 끝’이 언급되면 ‘아차, 저건 내 곡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송라이터로서 나를 좋아해 주는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은 취향이 나와 다르구나 싶고. 그래서 OST 작업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도 있다. “3집은 원래 내가 갖고 있는 무거운 면이 더 배어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번에 발표되는 3집에는 ‘굵직한 무엇’이 될 곡이 있을까.
이승열: 그런 건 없다 그런 걸 생각을 하면 망할 것 같다. 그건 운명적인 것 같고 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런 기회가 없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들의 블루스’에서 힌트를 얻어도 될까?
이승열: 전혀 아닐 거다. 형식도 그렇고, 톤이나 가사까지도 ‘그들의 블루스’는 앨범 안에서 굉장히 튀는 곡이다. 좋은 힌트가 아니었던 셈인데, 3집은 원래 내가 갖고 있는 심각하고 무거운 면이 더 배어있을 것 같다.
2집은 1집에 비해 밝아졌었는데, 다시 가라앉게 된 건가.
이승열: 오히려 2집이 좀 튀는 앨범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간이 없는 성격인데, 음악에 성격이 묻어나는 것 같다. 한없이 어둡다가, 발랄한 양극을 왔다갔다하는 편이다. 돌이켜 보니 2집을 작업할 때는 밝은 면을 좀 더 보여주려고 노력을 한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면 3집은 굳이 밝은 면을 보여 줄 필요가 없었던 건가.
이승열: 막말로, 생긴 대로 살아야 한다. 그게 앨범의 참 목적이 아닌가 싶다. 앨범을 내면 상업적인 결과를 떠나서 본인도 즐거워야 하지 않나. 일부러 2집 음악을 좀 피한 경향도 있는데, 내가 라이브를 할 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할 수 있는 곡이 많아야 듣는 사람에게도 그렇고 서로 좋은 일인 것 같다.
앨범 타이틀이 이라는 부분은 미리 공개 되었다. 굳이 실패에 주목한 이유가 있나.
이승열: 굉장히 예민한 편인데, 곡을 쓸 때도 사소한 부분에 많이 영향을 받는다. 기계적인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왜 이런 멜로디가 생겨났고, 가사가 왜 이런지 스스로도 모르는 경우가 많지 않나. 나는 데모 단계에서 곡을 받아낼 때 흥얼거려지는 내용을 허투루 듣지 않으려고 한다. 조각일지라도 내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라면 이유를 몰라도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 한다. 는 원래 곡 제목인데, 역시 그런 과정에서 발견했다. 곡 작업을 하면 제목을 정할 때부터 집중을 하는 편이고, 이 곡이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 느낌이 오는 단어를 고르는 편이다. 결국 ‘Why we fail’이라는 노래 제목이 계속 밟혀서 앨범의 타이틀까지 된 건데, 원초적인 프로세스다. 그리고 나는 성공스토리도 물론 좋아하지만, 하루하루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용기를 잃지 않는 게 더 흥미롭다고 생각 했다. 어려서 부터 ‘왜’에 집중했던 것 같은데, 왜 역사적으로 실패했나, 왜 다른 사람들을 해치게 되었나, 그런 다큐를 즐겨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fail’이 아니라 ‘Why’에 방점을 찍은 제목인 것인가.
이승열: 세상일이란 게 성공 아니면 실패인데. 성공에 집중했다면 ‘How’였을 것 같다. 실패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 이유는 짐작할 수는 있지 않을까.
글. 윤희성 nine@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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