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벳가 4번지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킹스크로스 역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끝났다. 영국에서 시작되고 끝난 이야기지만 전 세계 2백여 개 국, 수천만 명의 독자들이 부터 까지 이 기발하고도 매혹적인 일곱 편의 시리즈에 빠져들었다. 그렇다면 만약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이 소년 마법사가 한국 땅에 떨어졌다면 어땠을까. 여기, 그 험난하고도 안타까운 해리의 인생역정을 담았다. 원작자 조앤 K. 롤링과 해리 포터, 세베루스 스네이프에게 미리 사죄드리며, 변신 저주를 걸 거라면 무생물로 해주길 부탁한다.

평창동에 살고 있는 아회장 부부는 자신들이 정상적이라는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기이하거나 신비스런 일과는 전혀 무관해 보였다. 아니, 그런 터무니없는 것은 도저히 참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어느 날 ‘해리 포터’라는 쪽지 한 장만 달랑 쥔 채 대문 앞에 버려져 있던 아기를 발견했을 때 부부는 소방차의 사이렌과 맞먹게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물론 이 때 아회장은 자신도 모르게 서양 여자와 바람을 피운 적이 있는지를 황급히 돌이켜 보며 한층 더 목청을 높였다. 사실 부부는 아이를 맡아 키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경찰서, 고아원, 성당, 교회 앞에 몰래 아기를 버리고 와도 다음 날 아침이면 대문 앞에 어김없이 아기를 감싼 담요 꾸러미가 놓여 있었다. 결국 용하기로 소문난 정도사로부터 “때가 되기 전에 아이를 내보내면 외아들이 기생과 맺어진다”는 예언에 놀란 이들은 가정부에게 아이를 맡겼고, 아이는 커가면서 신발장 옆 두 평 반짜리 골방에서 지내게 되었다.

10년 뒤, 호그와트 마법학교 서울 캠퍼스가 생기면서 해리 포터는 처음으로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회장 부부가 해리의 급식비를 내줄 수 없다며 그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해리는 비록 얼굴도 모르지만 교양 있고 뼈대 있는 집안의 자손임이 분명할 부모로부터 천부적인 마법의 재능을 물려받았는지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에 다녔다. 학교에서 발견한 서류에 의하면 그린고트 저축은행에 해리의 이름으로 된 예금이 있었지만 은행은 도산 직전 말포이 가를 비롯한 VIP 고객들에게만 미리 돈을 찾아가라고 알려주었고, 결국 해리는 편의점에서 시급 3800원을 받으며 아르바이트한 돈을 모아 퀴디치용 봉화 싸리비를 샀고, 방학 때 평창동으로 돌아와 배가 고파지면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로부터 선물 받은 투명 망토를 쓰고 근처 마트의 시식 코너를 순회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던 해리 포터는 졸업 후 죽음을 먹는 자들과 맞서 싸우는 오러가 되기로 결심했지만 회장 부부는 그가 에 출연하기를 바랐다. “마법사 그까짓 거, 말단이나 해봤자 얼마나 번다 그래? 그런데 TV 나가 지팡이 몇 번 휘두르고 나면 수입도 엄청나고, 그동안 너 키워준 데 대한 은혜는 갚고 나가야지. 그 때도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고 다들 뜯어 말리는데 우리 회장님이 사람이 좋으셔서 학교까지 다 보내주신 거야. 아니, 별로면 요샌 상금이 그렇게 짭짤하다는데…” 해리의 망토를 락스에 담가 흰색으로 만들고 잠든 해리의 부엉이 귓가에 진공청소기를 켜서 발광하게 만든 뒤 “새장 청소해 주려고 했더니 고마운 줄도 모른다”며 회장 부인이 큰소리칠 때마다 해리는 평창동을 떠나고 싶어했지만 학교와 마법부에서는 허락하지 않았다. “아무리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라도 접근 불가능한 4차원의 카오스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지구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라는 것이 이유였다.

회장이 어둠의 마법에 걸린 것은 해리의 마지막 방학 때였다. “보쌈김치 할 꺼는 배추를 갈지 말고 통으로 슴슴하게 절여야 돼. 줄기부분 말고 잎만 잘라서 큼직한 밥그릇 같은 데 한 두세 잎 깔아서 편다구. 잎이 크니까 밥그릇이 넘치지? 그건 나중에 여미면 되구 거기다 무 썬 거, 각종 과일, 배추줄기 썬 거, 굴, 미나리, 대추, 잣, 밤, 표고버섯, 석이버섯에다가 제일 중요한 게 낙지. 그리고 참, 젤 큰 굴비를 구해서 살점을 적당하게 썰어 가지구 사이사이 박는 거야. 동태도 포 떠서 끼워넣구, 마지막으로 잣, 실고추 이쁘게 올리고 남은 배춧잎으로 야무지게 독에다 차곡차곡 담아서 간간한 김칫국물 부어놨다가 익혀서 하나씩 꺼내 먹어봐. 얼마나 맛있나. 둘이 먹다 하나가 약 타도 몰라”라며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것은 한식세계화를 향한 의지로 이해할 수 있었지만 거실 복판에 주저앉아 과자를 달라며 칭얼대는 회장의 모습은 해리가 3학년 때 읽었던 을 연상시켰다. 게다가 회장은 곧바로 자신이 임경업 장군이라 믿는 ‘착각 마법’에도 걸려 있었다.


결국 고막의 순결을 빼앗겨가며 정성껏 기른 맨드레이크 약물로 회장에게 걸린 저주를 풀어준 해리 포터는 친부모를 찾아 떠나기 전 더 이상 그들이 자신에게 간섭할 수 없도록 마법의 위엄을 한 번만 보여주기로 결심했다. “폴리쥬스, 맛은 없지만 칼슘, 철분, 마그네슘, 비타민 B, C가 풍부한 항암식품이에요. 보름초는 섬유질이 많아서 장 활동에 좋구요. 풀잠자리는 단백질이 아주 풍부하고, 마침 오늘이 복날이니까 거머리도 별미죠. 거머리 좋은 건 아시죠? 잘게 썬 오소리 가죽이랑 바이콘 뿔 가루는 제가 특별히 아는 약재상에 부탁드려서 싸게 샀어요. 안 맞을 것 같은데 의외로 아주 궁합 잘 맞고 영양식이니까 쭈욱 들이키세요.” 회장 가족이 막 컵을 들려던 찰나, 초인종이 울렸다. 그리고 ‘세베루스 스네이프. 호그와트 마법학교 본교 마법의 약 및 어둠의 마법 방어술 전임강사’라고 적힌 명함을 내민 손님이 말했다. “사실…네 이름은 해리 포터가 아니라 해리 스네이프란다. 내가 니 애비다.” 해리의 검은 곱슬머리와 남자의 검은 단발머리가 바람에 나부꼈다.

글. 최지은 f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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