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시작한 이래 숨가쁘게 달려온 MBC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는 훌륭한 무대를 만들며 여러 이슈의 중심이 됐다. 경연과 중간점검, 그리고 탈락과 새 가수의 등장이라는 긴장감 넘치는 경쟁구도는 TV에서 쉽게 볼 수 없던 가수들을 재조명하고 임재범, 김범수와 같은 가수를 전보다 대중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 ‘나가수’의 이런 포맷은 시청자들에게 어느 정도 익숙한 형식이 됐고, 거세게 몰아친 만큼 긴장감 혹은 피로감을 주는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지적도 피할 수 없었다. ‘나가수’ 고유의 장점이었던 무대에 대한 놀라움만큼이나 형식 자체에 대한 피로감도 늘어가는 상황에서, ‘나가수’가 기존 원칙을 지키면서도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4가지 특집을 제안해본다.

듀엣 특집
‘나가수’는 무엇보다 혼자 감당하는 싸움이었다. 곡을 준비하는 동안 편곡자와 원곡자 등이 도움을 주고 무대 밖에서는 매니저로 활동하는 개그맨들이 힘을 줬지만 출연자들은 혼자 큰 무대를 이끌어야 했다. 이 형식은 가수들이 ‘스스로와 싸우는 시간’이라고 표현할 만큼 가수들의 한계를 뛰어넘는 무대를 만들도록 했다. 하지만 중간점검에서 김범수, 정엽, 김건모, 박정현 등 네 명이 즉석으로 부른 주현미의 ‘짝사랑’, 이소라와 김범수가 함께 불렀던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은 가수들에게도, 시청자에게도 색다른 감동을 줬다. 가수들이 함께 할 때 느낄 수 있는 음악의 재미와 감동을 잠깐이나마 보여준 셈이다. 7명인 ‘나가수’ 체제에서 듀엣 구성은 기존 가수들끼리 뿐 아니라 새로운 가수 혹은 하차한 가수들과도 가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록큰롤 대디’ 임재범과 ‘록큰롤 베이비’ YB가 함께 무대를 꾸민다면 음악을 새롭게 조명하려는 ‘나가수’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고정 시청자에게 또 한 번의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김조한과 박정현의 경우, 과거 ‘I’m your angel’, ‘Somewhere out there’ 등 이미 여러 듀엣 무대를 가진 적이 있는 만큼 새로운 듀엣 무대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듀엣 특집은 지금까지 무대에 홀로 섰던 가수들에게도, 긴장감 가득한 무대를 지켜봤던 시청자들에게도 훈훈한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언플러그드 특집
‘나가수’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가수들이 기존에 보여줬던 것과는 다른 음악을 들려줬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박정현과 이소라는 ‘나가수’를 통해 그의 팬이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록, 라틴 음악을 보여줬다. 이는 청중평가단 뿐 아니라 방송을 보는 시청자에게도 놀라움이었고 ‘나가수’의 다음 무대를 기대하게 하는 큰 요인이었다. 하지만 이는 정기적으로 무대를 준비해야 하는 가수들에게는 기존의 음악 방향을 수정하더라도 ‘파격’에 가까운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부담이 되기도 했다. 이는 고음과 성량이 넘치는 무대가 계속되며 ‘나는 성대다’라는 농담 섞인 말이 등장한 만큼 시청자들에게도 아쉬운 점이었다. 이 때 전자음을 배제한 ‘Unplugged’ 특집은 어떨까. 7명의 가수가 어쿠스틱으로 장르가 제한된 환경에서 각자 무대를 준비해온다면 ‘듀엣 특집’으로 가수 구성을 변화시킨 데에 이어 장르에 변화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특집은 특성상 몇몇 가수들에게 유리할 수도 있지만 가수들의 음색과 악기의 조합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송창식의 ‘사랑이야’를 끝내고 “집에서 엄마, 동생, 친구 앞에서 부르는 것처럼 힘을 많이 빼고 불렀다”고 말한 이소라의 노래처럼 지친 귀를 달래는 특집도 ‘나가수’의 롱런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편곡자 특집
10일 ‘나가수’의 옥주현 무대에 올라 기타 연주를 펼친 넥스트의 김세황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나가수’가 대단한 이유는 대중이 편곡에 관심을 갖게 한 점이라고 말했다. ‘나가수’ 또한 편곡이 좋은 무대를 위해 꼭 필요한 것임을 알기 때문에 가수들의 편곡 과정을 중요하게 다룬다. 그만큼 기존 곡을 해당 가수에게 가장 어울리면서도 새롭게 바꾸는 편곡자들은 ‘나가수’의 또 다른 가수들이다. 바로 이들이 주인공이 되는 특집은 어떨까. 지금까지 ‘나가수’가 편곡된 노래를 얼마나 가수가 잘 소화하는 지에 중점을 뒀다면 편곡자들이 직접 편곡과 노래를 맡는 특집은 이들을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실제로 편곡자들 대부분이 직접 노래를 부르는 가수다. 이소라가 부른 ‘너에게로 또 다시’를 편곡한 정지찬은 솔로 앨범과 주식회사라는 프로젝트 그룹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박정현이 부른 ‘겨울비’를 편곡한 정석원은 015B의 멤버다. 이소라가 부른 ‘No. 1’을 편곡한 이승환은 1993년 유재하의 음악장학회에서 은상을 받기도 했고 BMK가 부른 ‘아름다운 강산’,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의 편곡자 권태은은 런치송이란 이름으로 앨범을 낸 가수다. 이 뿐만 아니라 하광훈, 황성제, 돈 스파이크 등의 편곡자들이 펼치는 편곡과 노래 대결도 가능하지 않을까. 편곡이 ‘나가수’에서 중요한 만큼 스페셜 미션으로 이들과 혹은 해당 가수와의 무대를 보는 것도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즐거움이 될 듯하다.

레전드 특집
‘나가수’가 두 번의 경연 형식을 도입한 후 1차 경연 곡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미션으로, 2차 경연 곡은 네티즌이나 청중평가단이 추천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시청자들은 가수들에게 선택권이 있던 미션을 통해 이소라의 ‘No. 1’ 등의 색다른 노래는 물론 가수들의 음악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1차 경연의 주제들이 ‘본인이 부르고 싶은 남의 노래’,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노래’,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 ‘무대에서 도전하고 싶은 노래’ 처럼 갈수록 전의 미션 주제와 겹치면서 프로그램 관전 포인트가 불분명해졌다. 비슷한 미션을 반복하는 느낌인 것. 거기에 2차 경연이 네티즌과 청중 평가단이 추천하는 노래로 정해지면서 새로운 미션이 주는 기대감이 사라졌다. 이럴 때 ‘레전드 특집’은 어떨까. MBC 이나 Mnet 에서 이미 도입되기도 했던 이 형식은 특정 가수들의 노래 중 자신이 원하는 곡을 선택해 부르는 미션이다. 이 미션의 장점은 히트곡이 많은 가수의 노래인 만큼 어떤 노래를 골라도 웬만하면 듣는 사람들이 아는 곡이고 가수의 취향과 함께 편곡으로 원곡이 달라지는 재미도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나가수’의 시청자들은 이 미션을 통해 가수들의 선택과정과 함께 같은 미션을 활용했던 프로그램과의 비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산울림처럼 폭 넓은 장르의 히트곡을 보유한 뮤지션 특집을 마련한다면 조금씩 단조로워지는 ‘나가수’에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글. 한여울 기자 six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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