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매력적인 사람은 시종일관 유머를 뽐내는 사람이 아니다. 흐름을 깨지 않고 과하지 않게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이야말로 주위를 기분 좋게 만든다. 2010 남아공 월드컵부터 2012 런던 올림픽까지 깨알 같은 스포츠 중계로 호응을 얻은 SBS 배성재 아나운서가 바로 그런 경우다. 그는 전문성과 재치 모두를 중계에 녹임으로써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차범근 축구 해설위원과 호흡을 맞춘 낯선 캐스터에게 쏟아진 의구심을 지웠고, 2012 런던 올림픽 때는 유쾌하고 안정적인 캐스터란 이미지를 굳혔다. 전술을 쉽게 전달하는 건 물론 2012 런던 올림픽 한국 대 스위스의 경기에서 모르가넬라에게 항의하는 기성용 선수를 보며 던진 “기성용 선수에게 걸리면… 없습니다” 등 경기에 적절히 녹아든 멘트로 보는 사람에게 깨알 같은 즐거움을 안긴 것처럼 말이다.

배성재 아나운서의 이러한 힘은 누구보다 자신의 강점을 잘 알고 그것을 살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방송사 입사 후 배성재 아나운서는 자주 보지 않아 흐름을 잡기 어려운 예능 보다,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에 집중하며 누구보다 의욕적으로 방송에 임했다. “예능이었다면 말을 잘 못했을 거예요. 원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요. 다만 스포츠는 어릴 때부터 좋아했고 가족이나 친구처럼 옆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듯 경기를 봐와서 흐름도 놓치지 않을 수 있고 어떤 게 스포츠팬에게 재미가 될지 아는 거 같아요.” 전문성은 갖추되 경기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축구를 즐기는, 젊은 중계를 지향하게 된 것도 이로부터 나온 결과다. “비장하기보다 재밌게 경기를 전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일부러 웃기기만 하려고 농담을 하는 건 아니에요. 경기 중에 들었을 때만 피식 웃을 수 있는 정도가 최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이상 가면 경기보다 말이 남아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며 나름의 기준으로 움직이는 배성재 아나운서는 중계 중 마음껏 터지는 그의 언변처럼 자유로워 보였다. 7년 동안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제대로 된 휴가를 간 건 한 번밖에 없을 정도로 만만치 않은 양의 일을 해 왔지만, 그것 모두 타의가 아닌 스스로의 열정을 발판 삼에 달려왔기에 보는 이에게 좋은 에너지로 전달됐다. 그의 중계는 물론 깨알 같은 멘트가 언제나 유쾌한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배성재 아나운서가 추천한 다음 노래들도 강한 에너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1. Kasabian의
“축구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추천하는 곡입니다.” 배성재 아나운서가 처음으로 추천한 곡은 카사비안의 ‘Fire’다. SBS ESPN의 EPL 하이라이트 장면에 나오는 배경음악으로도 유명한 이 곡은 카사비안의 세 번째 앨범에 수록됐다. 오아시스 다음을 잇는 브릿팝의 대표 밴드로 불리는 카사비안의 이 앨범 제목은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 정신병원의 이름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그만큼 ‘Fire’에는 광기를 나타낸 듯한 사운드와 후렴 부분에 터지는 폭발력과 한 번 들으면 잊기 어려운 멜로디의 중독성이 강하게 배어있다. 배성재 아나운서 또한 “EPL 팬들 사이에선 후렴구 발음 때문에 ‘아몬드 빵’이라고도 불리지만 노래 자체가 위대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추천했다.

2. MIKA의
귀여운 외모에 돋보이는 무대 매너, 그만큼 사랑스러운 노래 때문에 미카는 한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팝 가수 중 한 명이 됐다. 배성재 아나운서가 이 앨범에서 가장 좋아한다며 추천한 ‘Love Today’는 시원하게 올라가는 미카의 고음만큼이나 ‘Everybody`s gonna love today, love today, love today’ 등의 반복되는 가사가 인상적인 곡이다. 또한, 배성재 아나운서에게 이 곡은 4년 동안 진행하던 새벽 라디오 프로그램인 SBS 파워 FM 을 떠오르게 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라디오를 시작한 해에 미카가 많이 유명해졌는데 미카 자체가 너무 반가웠어요. 프레디 머큐리 목소리랑 너무 똑같은 천재가 나왔다고 생각했거든요.”



3.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배성재 아나운서가 세 번째로 추천한 곡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절룩거리네’다. 이 곡이 수록된 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진심 어린 고뇌와 열정, 갈등이 가사에 그대로 담긴 작품이다. 슬프지만 그만큼 굳건하게 들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발표된 지 9년이 다 되어가지만 ‘보석처럼 빛나던 아름다웠던 그대. 이제 난 그때보다 더 무능하고 비열한 사람이 되었다네’ 등의 가사는 아직도 듣는 이의 마음을 쓰리게 한다. 배성재 아나운서 또한 이 곡의 가사를 인상 깊게 들었다. “박찬호, 월드컵 이야기가 가사에 있잖아요. 이 노래 나올 때가 박찬호 선수가 메이저리그를 풍미했고 월드컵도 끝나고 스포츠팬으로서 이루고 싶은 걸 다 이뤘을 즈음이거든요. 개인적으로 군대 다녀와 복학도 했고요. 근데 이상하게 슬픈 거예요. 원하던 세계에 왔는데도 드는 쓸쓸한 느낌. 그 감정이 이 노래에 담긴 거 같았어요.”


4. 타바코 쥬스(Tobacco Juice)의
제목은 ‘청춘’이지만 마냥 밝은 노래는 아니다. 배성재 아나운서가 추천한 네 번째 음악인 타바코 쥬스의 ‘청춘 (Feat. 옥상달빛)’은 2010년 발표된 2집에 수록됐다. ‘청춘’은 한창일 땐 느낄 수 없고 지나간 이후 더 크게 다가오는 청춘의 색깔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곡이며 세상을 향해 절규하듯 내뿜는 보컬의 목소리와 ‘어쩌다 꿈결처럼 지나쳐버린 그때가, 청춘이구나’와 같은 쓸쓸한 가사가 이를 극대화한다. 배성재 아나운서는 “라디오를 마무리할 즈음에 많이 틀었던 곡”이라며 이 곡을 추천했다. “되게 슬픈 곡인데 또 되게 멋있어요. 30대들에게 특히 추천 드리고 싶은 곡입니다. 청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거예요.”

5. John Williams의
배성재가 마지막으로 추천한 곡은 영화 의 OST 중 ‘Escape/Chase/Saying Goodbye’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많은 작업을 함께한 존 윌리엄스는 이 곡이 수록된 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다. 이 앨범의 20번 트랙 ‘Escape/Chase/Saying Goodbye’는 조금씩 긴장감을 고조시키다 웅장하게 터지는 오케스트라의 사운드가 돋보이는 곡이다. 이 곡을 추천한 배성재 아나운서는 일화도 함께 소개했다. “제가 늘 영화 OST를 들으면서 운동을 하거든요. 예전에 피트니스 센터에서 싸이클을 타고 있었는데 이 노래가 나오더라고요. 처음엔 되게 좋았는데 금방 슬퍼졌어요. 어렸을 때 이 노래를 들으면서 ‘크면 자전거 타고 진짜 하늘을 날아야지’ 하고 생각했거든요. 그게 당연한 줄 알았고요. 근데 ‘내가 지금 지하 피트니스 센터에서 살 빼려고 자전거 타는구나’ 이런 생각이 드니까 눈물이 진짜 핑 돌더라고요.”



주말도 반납하며 중계에 힘 써온 것처럼, 좋아하는 것을 잘하기 위해 쏟아 부은 배성재 아나운서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니, 더 구체화되고 있다. 그가 3년째 진행하는 축구 전문 프로그램 SBS 도 그 중 하나다. “은 저뿐만 아니라 K리그에 대한 애정이 엄청난 사람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이에요. 나름대로 올해는 K리그를 더 많이 중계하면서 K리그의 매력을 알리려는 계획도 갖고 있어요.” 물론 모든 사람의 꿈처럼 배성재 아나운서의 목표도 적지 않은 시간을 필요로 할지 모른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나오는 그의 유쾌한 에너지는 이 모든 불확실성을 상쇄시킨다. “언제까지 아나운서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대중의 호응을 못 받고 내가 트렌드에 안 맞는다면 멈춰야죠. 나중의 계획은 아직 없지만요. 근데 뭘 해도 잘할 거예요. 아하하하” 밝고 유쾌한 이 에너지 때문이라도 배성재 아나운서의 지금을 응원하고 싶은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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