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8월 7일은 젝스키스 김재덕의 생일이었다. 공교롭게도 tvN 6회에서 ‘안승부인’ 정은지와 ‘은도끼’ 정경미가 점심시간 교실에 H.O.T 노래를 트느냐 젝스키스 노래를 트느냐로 머리채를 잡고 싸운 날이다. 1세대 아이돌의 황금기였던 1997년에서 15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흘렀지만 아직도 ‘오빠의 생일’을 기억하고 이메일 주소와 각종 비밀번호에 오빠들의 추억을 새겨 놓은 2, 30대 여성들은 매주 화요일 밤 과 울고 웃는다. 스타와의 사랑 이야기 대신 스타의 숙소 담을 넘는 부산 여고생 성시원(정은지)의 1997년, 가족과 친구와 선생님 그리고 ‘우리 오빠’와 함께 했던 성장담은 2012년 서른셋 어른이 된 시원의 이야기와 교차되며 때로는 코믹하고 때로는 눈물겨운 드라마를 이어간다. 에서 어느 것 하나 특별할 것 없지만 그래서 더 각별한 이 드라마의 매력을 분석했다. 뜨거운 여름날 ‘떡볶이 코트’를 입은 윤제(서인국)와 친구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1997년으로 돌아간 촬영 현장 후기와, 전국 각지의 팬들로부터 제공받은 그 시절 팬들의 필수품 특별 전시도 함께 준비했다.
아마도 우리 어머니들은 당황하셨을 것이다. 멀쩡히 공부 잘 하던, 혹은 공부는 좀 못해도 얌전하고 말 잘 듣던 딸들이 어느 날부터인가 방이 떠나가라 시끄러운 노래를 틀고 야간자율학습 대신 공개방송에 가야 한다며, 한겨울 은행 앞에서 밤을 새야 한다며 ‘탈선’하기 시작했을 때. 온 벽을 ‘핫(H.O.T)’ 브로마이드로 도배하고 아빠보다 ‘오빠’ 말이 옳다며 바락바락 대드는 딸 앞에서 분을 이기지 못해 “저 여시 같은 새끼들이 뭣이라고! 저런 새끼들은 단체로 대가리를 싹 깎아갖고 군대에 넣어버려야 돼!”라며 호통 치던 아버지들도 답답하셨을 것이다. 도대체 내 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 해, 1997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tvN 은 그 시절에 부치는 2012년의 팬레터다.
또래의 오빠들과 함께했던 순수의 시대
1세대 아이돌을 대표하는 그룹 H.O.T는 1996년 9월 세상에 나왔다. ‘하이파이브 오브 틴에이저’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이들은 데뷔곡 ‘전사의 후예’로 학원 폭력을 비판했다. 90년대 중반 연세대 농구부와 고려대 농구부처럼 H.O.T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 그룹 젝스키스는 1997년 4월, 입시 위주의 교육을 비판하는 ‘학원별곡’으로 데뷔했다. 물론 이전에도 ‘청춘스타’라 불리는 가수나 연기자는 존재했지만, 아이돌인 동시에 팬들과 같은 학생 신분이며 소규모 또래집단인 그룹을 이루어 ‘십대들을 대변’하고 그 중 몇몇은 숙소 생활을 한다는 면에서 이들은 소녀들의 판타지를 극대화한 존재였다. 동경과 친근감이 공존하는 또래의 오빠들에 대한 로망, 오빠들은 형제보다 끈끈한 사이고 오빠와 우리(팬) 사이엔 누구도 끼어들 수 없다는 판타지는 이후 여러 그룹이 불화설과 해체 등을 겪으며 조금씩 무너져갔지만 1997년은 아직 그 모든 것이 태동하던 순수의 시대였다. 그래서 ‘쵸티 오빠들’이나 ‘젝키 오빠들’을 좋아한다는 한 가지 공통점만으로도 친구가 될 수 있던 1997년, 각각 토니와 강타의 부인을 자처하고 서로 ‘동서’라 부르던 부산 여고생 시원과 유정(신소율)의 살가운 우정은 오빠들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던 추억의 생생한 단면이다. MBC 를 녹화한 테이프 위에 실수로 를 녹화해 버린 뒤 땅을 치고, 오빠들의 노래가 교실, 상점, 거리에 한 번이라도 더 울려 퍼지게 하기 위해 ‘타 팬’과 머리를 뜯고 싸우는 에피소드 역시 보편적이기에 공감대를 자극한다. ‘빠순이’(‘오빠’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아이돌 팬을 지칭하는 속어)의 삶 바깥의 세계 또한 전라도가 고향인 시원의 아버지(성동일)가 1997년 대선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모습이나 를 탐독하던 십대 소년들의 성에 대한 호기심, ‘도쿄 대첩’이라 불린 한일전을 함께 관람하는 데서 충실히 재현된다.
열여덟 시원의 성장이 가슴을 치는 이유
하지만 당시 유행하던 채팅방의 대화나 단역 배우의 ‘최진실 고데기 머리’까지 꼼꼼하게 구현된 1997년의 풍경이 의 가장 큰 미덕은 아니다. 과거는 미화되기 쉽고 ‘레트로’는 한 때의 유행일 뿐이다. 그 시절 H.O.T와 젝스키스에 관심 없던 소녀도 있었을 것이고, 지금만큼 ‘왕따’라는 단어가 흔히 쓰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그 안에서 겉돌기만 한 소녀도 있었을 것이다. 대신 은 늘 싸우는 것 같지만 서로를 끔찍이 사랑하는 시원의 부모님, 철없어 보이지만 착한 친구들, 윤제의 포경수술 소식까지 훤히 알고 지낼 만큼 가까운 동네 주민들로 이루어진 일종의 유토피아를 그린다. 태어난 날부터 하루도 떨어져 본 적 없이 함께였던 윤제가 시원을 이성으로 인식하고 좋아하게 되면서 서투르게 고백하고 엇갈리는 순간, 죽은 시원의 언니 송주(김예원)의 애인이었던 윤제의 형 태웅(송종호)이 열여덟의 시원을 보며 송주를 떠올리는 순간은 아다치 미츠루의 나 같은 소년 순정 만화의 정서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은 리얼리티 위에 쌓아올린 섬세하고 따뜻한 판타지다.
부산에서 알아주는 H.O.T의 열성팬이지만 막상 좋아하는 ‘토니 오빠’ 앞에서 괴성을 지르며 매달리는 대신 주뼛주뼛 “오빠, 사랑합니데이”를 내뱉고 울어버리는 시원의 마음이, 가장 친한 친구 윤제를 짝사랑해 삐삐로 음악 선물을 보내고 수줍게 ‘1004’를 찍는 준희(호야)의 마음이 조금도 희화화되지 않고 본질 그대로 담기는 것은 의 이러한 태도 덕분이다. 암 수술을 받은 남편이 암 환자가 나오는 드라마를 보고 상심하자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 하루라도 웃게 해 달라고 애원하는 시원의 엄마처럼, 윤제를 짝사랑하는 유정이 울고 있을 때 이어폰 한 쪽을 나눠주며 “내일은 아무 거나 너 좋아하는 거 하자”고 제안하는 학찬(은지원)처럼 누군가를 아끼고 누군가에게 설레는 마음은 1997년 부산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통해 2012년으로 전달된다. 토니 오빠를 ‘원숭이 새끼’라 부르는 것도 모자라 비싼 청바지를 사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빠를 원망하고, 유정이 젝스키스로 ‘갈아탄’ 뒤 그 사실을 자신에게 숨긴 것에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지만 “누구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고 사소한 것 하나에도 내 모든 것을 걸었던” 평범한 열여덟 여고생 시원이 그 모든 순간을 통해 한 뼘씩 성장하는 모습은 한동안 한국 드라마가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던 지점에 대한 소중한 성취이기도 하다. 그래서 은 1997년을 추억하는 이들에게도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도, 공들여 성실하게 구현한 세계가 그 자체로 훌륭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고마운 응답이다.
글. 최지은 five@
아마도 우리 어머니들은 당황하셨을 것이다. 멀쩡히 공부 잘 하던, 혹은 공부는 좀 못해도 얌전하고 말 잘 듣던 딸들이 어느 날부터인가 방이 떠나가라 시끄러운 노래를 틀고 야간자율학습 대신 공개방송에 가야 한다며, 한겨울 은행 앞에서 밤을 새야 한다며 ‘탈선’하기 시작했을 때. 온 벽을 ‘핫(H.O.T)’ 브로마이드로 도배하고 아빠보다 ‘오빠’ 말이 옳다며 바락바락 대드는 딸 앞에서 분을 이기지 못해 “저 여시 같은 새끼들이 뭣이라고! 저런 새끼들은 단체로 대가리를 싹 깎아갖고 군대에 넣어버려야 돼!”라며 호통 치던 아버지들도 답답하셨을 것이다. 도대체 내 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 해, 1997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tvN 은 그 시절에 부치는 2012년의 팬레터다.
또래의 오빠들과 함께했던 순수의 시대
1세대 아이돌을 대표하는 그룹 H.O.T는 1996년 9월 세상에 나왔다. ‘하이파이브 오브 틴에이저’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이들은 데뷔곡 ‘전사의 후예’로 학원 폭력을 비판했다. 90년대 중반 연세대 농구부와 고려대 농구부처럼 H.O.T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 그룹 젝스키스는 1997년 4월, 입시 위주의 교육을 비판하는 ‘학원별곡’으로 데뷔했다. 물론 이전에도 ‘청춘스타’라 불리는 가수나 연기자는 존재했지만, 아이돌인 동시에 팬들과 같은 학생 신분이며 소규모 또래집단인 그룹을 이루어 ‘십대들을 대변’하고 그 중 몇몇은 숙소 생활을 한다는 면에서 이들은 소녀들의 판타지를 극대화한 존재였다. 동경과 친근감이 공존하는 또래의 오빠들에 대한 로망, 오빠들은 형제보다 끈끈한 사이고 오빠와 우리(팬) 사이엔 누구도 끼어들 수 없다는 판타지는 이후 여러 그룹이 불화설과 해체 등을 겪으며 조금씩 무너져갔지만 1997년은 아직 그 모든 것이 태동하던 순수의 시대였다. 그래서 ‘쵸티 오빠들’이나 ‘젝키 오빠들’을 좋아한다는 한 가지 공통점만으로도 친구가 될 수 있던 1997년, 각각 토니와 강타의 부인을 자처하고 서로 ‘동서’라 부르던 부산 여고생 시원과 유정(신소율)의 살가운 우정은 오빠들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던 추억의 생생한 단면이다. MBC 를 녹화한 테이프 위에 실수로 를 녹화해 버린 뒤 땅을 치고, 오빠들의 노래가 교실, 상점, 거리에 한 번이라도 더 울려 퍼지게 하기 위해 ‘타 팬’과 머리를 뜯고 싸우는 에피소드 역시 보편적이기에 공감대를 자극한다. ‘빠순이’(‘오빠’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아이돌 팬을 지칭하는 속어)의 삶 바깥의 세계 또한 전라도가 고향인 시원의 아버지(성동일)가 1997년 대선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모습이나 를 탐독하던 십대 소년들의 성에 대한 호기심, ‘도쿄 대첩’이라 불린 한일전을 함께 관람하는 데서 충실히 재현된다.
열여덟 시원의 성장이 가슴을 치는 이유
하지만 당시 유행하던 채팅방의 대화나 단역 배우의 ‘최진실 고데기 머리’까지 꼼꼼하게 구현된 1997년의 풍경이 의 가장 큰 미덕은 아니다. 과거는 미화되기 쉽고 ‘레트로’는 한 때의 유행일 뿐이다. 그 시절 H.O.T와 젝스키스에 관심 없던 소녀도 있었을 것이고, 지금만큼 ‘왕따’라는 단어가 흔히 쓰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그 안에서 겉돌기만 한 소녀도 있었을 것이다. 대신 은 늘 싸우는 것 같지만 서로를 끔찍이 사랑하는 시원의 부모님, 철없어 보이지만 착한 친구들, 윤제의 포경수술 소식까지 훤히 알고 지낼 만큼 가까운 동네 주민들로 이루어진 일종의 유토피아를 그린다. 태어난 날부터 하루도 떨어져 본 적 없이 함께였던 윤제가 시원을 이성으로 인식하고 좋아하게 되면서 서투르게 고백하고 엇갈리는 순간, 죽은 시원의 언니 송주(김예원)의 애인이었던 윤제의 형 태웅(송종호)이 열여덟의 시원을 보며 송주를 떠올리는 순간은 아다치 미츠루의 나 같은 소년 순정 만화의 정서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은 리얼리티 위에 쌓아올린 섬세하고 따뜻한 판타지다.
부산에서 알아주는 H.O.T의 열성팬이지만 막상 좋아하는 ‘토니 오빠’ 앞에서 괴성을 지르며 매달리는 대신 주뼛주뼛 “오빠, 사랑합니데이”를 내뱉고 울어버리는 시원의 마음이, 가장 친한 친구 윤제를 짝사랑해 삐삐로 음악 선물을 보내고 수줍게 ‘1004’를 찍는 준희(호야)의 마음이 조금도 희화화되지 않고 본질 그대로 담기는 것은 의 이러한 태도 덕분이다. 암 수술을 받은 남편이 암 환자가 나오는 드라마를 보고 상심하자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 하루라도 웃게 해 달라고 애원하는 시원의 엄마처럼, 윤제를 짝사랑하는 유정이 울고 있을 때 이어폰 한 쪽을 나눠주며 “내일은 아무 거나 너 좋아하는 거 하자”고 제안하는 학찬(은지원)처럼 누군가를 아끼고 누군가에게 설레는 마음은 1997년 부산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통해 2012년으로 전달된다. 토니 오빠를 ‘원숭이 새끼’라 부르는 것도 모자라 비싼 청바지를 사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빠를 원망하고, 유정이 젝스키스로 ‘갈아탄’ 뒤 그 사실을 자신에게 숨긴 것에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지만 “누구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고 사소한 것 하나에도 내 모든 것을 걸었던” 평범한 열여덟 여고생 시원이 그 모든 순간을 통해 한 뼘씩 성장하는 모습은 한동안 한국 드라마가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던 지점에 대한 소중한 성취이기도 하다. 그래서 은 1997년을 추억하는 이들에게도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도, 공들여 성실하게 구현한 세계가 그 자체로 훌륭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고마운 응답이다.
글. 최지은 f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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